일종의 카드뉴스로 만든 ‘출판사 제공 책소개’가 눈길을 끌어  책(『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을  살피게 되었다. 삶과 비즈니스 현장에서 철학적으로 생각하고 답을 도출하는 법을 알려 주는 실용 철학서란다. 부제는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다. 목차만 읽어보아도 그러한 컨셉트에 충실한 책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그리스 3대 철학자의 저작만 골라보면 다음과 같다.

 

[04 사람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 아리스토텔레스_수사학]

[38 ‘결국 이런 뜻이죠?’라고 말하면 안 되는 이유 : 소크라테스_무지의 지]
[39 이상은 이상일 뿐, 환상에 사로잡히지 말지어다 : 플라톤_이데아]

 

철학(고전 혹은 인문을 적용해도)의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본 사람이라면 참으로 놀라운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언뜻 주워들은 한마디에서도 깨침을 얻기도 하거니와 무심코 읽는 동안 기대 이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나아가 좀 더 깊이 있는 질문으로 이어져 관심 분야로 진입하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는 말처럼 어려우니까 철학이다, 라는 말로 언제까지나 위안을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다만, 몇 가지 눈에 띄는 점에 이의제기를 해야겠다. 내용이 형식을 규정하고, 그 역도 가능하듯이 책의 발상에 걸맞게 책 소개 또한 형식(방법)의 새로움을 제시하여 귀감이 되었다. 그런데, 일러스트와 함께 실린 우화의 내용은 다듬어질 수 있기에 논외로 하고 ‘이솝 우화’를 언급한 본문과 관련하여 할 얘기가 있다. 본문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솝우화에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가 있다.]

"여우가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발견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손이 닿지 않았다.

결국 여우는 "이 포도는 엄청 신 게 분명해. 이런 걸 누가 먹겠어!”라며 가 버린다."

-<철학은 어떻게..> 50면.[01 타인의 시기심을 관찰하면 비즈니스 기회가 보인다 : 프리드리히 니체_르상티망]

이 우화가 현재 어린이들의 교과서에는 어떤 번역으로 실려 있는지 확인해봐야겠지만 제목부터 문제가 있다. 물론 필자도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라 「여우와 신 포도」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현존하는 이솝 우화 전편(358편)을 총망라하여 (원전) 번역한 책이 몇 해 전에 나왔다. 희랍-라틴 고전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천병희 선생의 번역이다.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이솝 우화』(숲, 2013.5.)인데, 당시 신문의 신간 안내에서 이 책을 다루면서 화제가 되었다. 「여우와 신 포도」로 알고 있는 우화가 원전을 살피니 그 제목부터 좀 다르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므로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굶주린 여우가 나무를 타고 올라간 포도 덩굴에 포도송이들이 매달린 것을 보고 따려 했으나 딸 수가 없었다.

여우는 그곳을 떠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 포도송이들은 아직 덜 익었어."*

- 「여우와 덜 익은 포도송이」 전문, 『이솝 우화』 53면

짧지만 우화에도 처음과 끝이 있고 중간이 있다. 이것을 ‘전체’라고 하며, 처음과 끝과 중간이 전체를 이루는 부분이다. 어쨌든 첫 인용은 우화의 요약이라고도 할 수 있기에(이 짧은 이야기의 요약이 왜 필요할지는 모르겠으나) '신 포도'가 아니라 '덜 익은' 포도라는 점을 이야기하자.

옮긴이의 설명(주석)를 살핀다. <*'덜 익다'의 그리스어 omphax(복수형 omphakes)는 '시다'는 뜻이 아니라 맛과 관계없이 '덜 익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sour grapes'라는 영어 표현은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주석에 따르자면 영어판을 우리말로 옮기는(중역) 과정에서 생긴 오류다. 덜 익은 포도가 대체로 신 맛이 나고,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 쓴 맛일 수 읽고 설익었을 때는 단 맛이 더 지배적일 수도 있다. 신 맛은 덜 익은 포도가 내는 여러 맛 가운데 하나일 수 있는데 단어 하나를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바람에, 그리고 그것이 교과서나 동화(그림)로 널리 읽히면서 어느덧 '신 포도'로 고정되어 버린 것이다.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필자는 결코 사소하게 여길 수 없다. '사소한'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대단히 복잡한 문제도 차근차근 관련된 사소한 질문부터 풀어가노라면 풀리는 것을 일상에서 경험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고전은 여러 층위의 질문들(해석의 여지가 넓다고 달까) 을 함유하고 있어, 스포일러에도 지장 받지 않으며 읽고 또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발견하는' 그런 저작이다.
사실, 이 책(정본 이솝우화)의 경우도 몇몇을 제외하고 우화마다 주석처럼 '교훈'이 붙어 있는데, 해당 우화 아래 '교훈'을 주석처럼 배치해놓아 우화를 읽고, 이거 뭐지(모든 우화가 그렇게 의도한 바, 친절한 교훈으로 일대일 대응하지는 않거니와) 하다가 '교훈'을 읽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 달까, 생각의 폭을 좁히게 되는 '결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가령, 두 번째로 인용한 우화 「여우와 덜 익은 포도송이」의 교훈은

"이와 같이 사람도 더러는 자기가 맡은 일을 능력이 부족해서 해내지 못하면 시운(時運)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이다. 어쩌면 이런 교훈은 훗날 편저자들이 덧붙인 것으로, 어쩌면 교과서에는 없지만 교사용 교재에는 있는 '지침'인데 이것이 해당 우화들과 짝을 이뤄 남게 된(고착된)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의 내용을 보완하는 각주(脚註: 본문의 어떤 부분을 설명하기 위하여 아래쪽에 따로 달아 놓은 풀이)는 가급적이면 해당 면((이나 양면의 각주를 오른쪽 면 아래에)에 있어 즉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좋다. 대체로 주석이 많은 학술논문들에 질린 경험 때문에 주석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으면, 난해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 후주(後註: 책에서 한 편이나 장 등의 끝이나 책의 맨 끝에 보충하여 주는 말이나 글) 처리를 하는데(이는 출판사의 의도), 꼭 필요한 주석이라면 해당 면에 자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석이 필요 없으면 없을수록 좋겠지만 필요한 주석이라면 그 목적에 맞는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교훈'의 경우는 후추 처리하여 책의 끝부분에 배치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한 편의 우화를 읽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을수록 좋은 우화이고, 대부분의 우화들은 실제로 그러하기에, 알고 보면 '교훈'이 곧 정답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해석의 여지를 미리 차단해버리면 왜 책을 읽는지 회의감이 들게 된다. 책을 읽는 것은 질문을 찾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구나 나름대로 대답할 있는 질문을 ‘해석적 질문’이라 하는데, 가령, "부자가 된 흥부는 왜 형을 찾아갔을까?"(<흥부와 놀부>라면) 같은 질문이다. 정답은 없다. 다양한 견해(의견)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대답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여우와 포도송이」의 경우도 교훈을 배제하고 조금만 더 생각하고, 질문을 찾으면 철학자 니체의 '르상티망'을 경험하지 않겠는가? 우화가 실린 해당 면에 '교훈'을 함께 싣는 것처럼 ‘A는 B다’와 같은 '작위적인' 연결은 위험성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지금 논하는 책과 관련하여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던질 수 있는 해석적 질문을 다룬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일 수 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만 이해하고(외우고)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읽지 않는다면, ‘플라토닉 러브’의 개념만 파악하고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이나 사랑에 대한 논의를 심화한 『파이드로스』를 읽지 않게 된다면 그런 삶(사고)은 얼마나 건조할 것이며, 풍부하고 기지 넘치는 대화를 이끌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그 유명한 비극의 정의('완결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전체적인 행동의 모방')하면서 '전체'에 대해 설명한다.  '전체는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갖는다.'는 것.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처음'과 '중간'과 '끝'을 자세히 설명하는 데, 하나마나 한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아래]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논의가 심각해질 것이니, 이만 하기로 하고. '50가지 생각 도구'를 섭렵하되, 그 과정을 살피는 독서로 이어지기를, 또한 가능하면(특히, 번역된 텍스라면) 한없이 원전에 가까운 번역을 골라 읽으면 좋을 것이다. 제대로 옮겼다면 결코 어려울 리가 없다. 젊은이들을 선동했다는(죄목 가운데 하나) 이유로 소크라테스가 사형 선고를 받았을 리 없다. 소크라테스가 그토록 어렵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면 말이다.

“진정한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담론보다는 이야기를 지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나는 원래 이야기꾼이 아닌지라 …아이소포스의 우화들을 운문으로 고쳐 썼단 말일세.”(플라톤 「파이돈」 61b)
독배를 마시고 죽던 날,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의 고백한다. 아이소포스와 겨룬다는 건 쉽지 않으며, 그와 겨룰 생각이 전혀 없다(아이소포스는 이솝의 그리스어 이름이다). 이솝의 내공을 당대의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 소크라테스가 인정한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는 독자라면 역시 일본인 저자가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쓴 『독학獨學』(이룸북, 2015)이란 책을 참고하기를. 분량도 많지 않고, 독서를 통해 뭔가를 얻으려는 이에게 특별한 정보를 준다. '스스로 공부하려고 해도 어쩐지 불안하고 미덥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용기와 지침을 주고, 독학 요령을 알려주는 데' 책을 쓴 목적이 있단다. 제목 때문에 독학을 위한 노하우를 담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터득한 독학하는 방법의 일부분은 소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평범하게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의문이 생긴다. 순수한 의문이 많이 떠오를수록 좋을 것이다.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의문이 지식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독학하는 동안 살아있는 지식을 얻게 된다. 사소한 의문 하나를 규명해가다보면 기대한 지식의 바다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을 이어본 것이다. 괜히 꼬투리를 잡아 보라는 달은 못(안) 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탓만 한 것은 아닌지, 숙고하게 된다. <능엄경>(불경)이었던가! 가끔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눈길을 주어야 할 때도 있다. 말이 길어졌다.

*      *      *      *      *      *

[아래] ;"'처음'은 필연적으로 다른 것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에 필연적으로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되는 것이다. 반대로 '끝'은 필연적으로 또는 대게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다음에 다른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중간'은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다음에도 다른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시학』 중 <시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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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5권에서 두 번째로 그려지는 군중 전투(트로이아가 우세한 상황)에 앞서 그리스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자기 부하들을 격려하면서 다른 사람 앞에서 체면을 잃지 말라고 역설한다.

 

"친구들이여! 사나이답게 행동하고 마음속으로 용기를 내시오.
격렬한 전투에서도 서로 남 앞에서의 체면을 존중하시오.
체면을 존중하는 자들은 죽는 자보다 사는 자가 더 많을 것이나
도망치는 자들에게는 명성도 구원도 없을 것이오.” _『일리아스』5: 529~532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란 말이 떠오른다. 충무공이 자주 사용했다는 이 말의 출처는 『오자병법』(필사즉생 행생즉사 必死卽生 倖生卽死)이다. 생사(生死)가 엇갈리는 절체절명의 전장에서 아가멤논이 강조하는 것은 '체면'이다. 대체 체면이 무엇이기에, ‘덕분에’ 살 수 있고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걸까? 평자들은 이 대목을 희랍 문화가 죄의식의 문화(guilt culture)보다는 수치의 문화(shame culture)에 가깝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하곤 한다.

 

덕분에’ 살 수 있고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수치의 문화(shame culture)
수치심(羞恥心)은 불명예를 안겨줄 성싶은 과거, 현재 또는 미래의 비행(非行)과 관련된 일종의 경멸 또는 무관심이다. 파렴치는 똑같은 비행과 관련된 일종의 경멸 또는 무관심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시학』 <수사학> 2권 6장 수치심) 아리스토텔레스는 들고 있던 방패를 내던지거나 싸움터에서 도주하는 경우를 대표적인 예로 제시한다. 우리 자신이나 돌보는 사람들의 명예를 실추시킬 성싶은 비행은 무엇이든 수치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것. 또한 수치심은 불명예에 대해 느끼는 '인상'이고 그 결과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 때문에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명예를 부여하는 사람들의 '의견'에만 관심이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그들의 의견이 우리에게 중요한 (그) 사람 앞에서 수치심을 느낀다. 인지상정이다. 그런 사람들이란, "우리에게 감탄하는 자들, 우리가 감탄하는 자들, 우리가 감탄 받고 싶은 자들, 우리의 경쟁자들, 그들의 의견을 우리가 존중하는 자들이다."(앞과 같음)
그리고 뒤집어 생각한다. 우리는 별로 믿을 게 못 되는 자들 앞에서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아이들이나 동물들 앞에서와 같이). 그런데, 또한 안면이 있는 자들과 안면이 없는 자들 앞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좀 다르다. 안면이 있는 자들 앞에서는 '실제로' 수치스러운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안면이 없는 자들 앞에서는 '관습적으로' 수치스러운 것에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

 

'실제로' 수치스러운 것과 '관습적으로' 수치스러운 것
플라톤(기원전 427~347)의 『향연』은 기원전 381년에 쓴 것으로 추정하는데, 비극작가 아가톤이 기원전 416년 레나이아 제(祭)의 비극 경연에서 처음 우승한 것을 자축하기 위해 베푼 술잔치(symposion)가 배경이다. 이 자리의 참석자들은 에로스(eros; 사랑)에 관해 발언하는데, 첫 번째로 나선 파이드로스는 신화적인 관점에서 에로스를 찬미한다. 그는 곧바로 에로스가 인간들에게 베푸는 가장 큰 은혜는 사랑인데, 그 사랑은 자기를 사랑해줄 연인을 갖는 것, 그리고 연인은 자기를 사랑해줄 소년을 갖는 것이란다. 나이차가 좀 있는 있는 남자들 사이에서 싹트는 '사랑'이 에로스가 준 최고의 선물이란다. 오늘날 말하는 동성애와는 차원이 다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나이어린 소년(연동)과 성인 남자(연인) 사이의 동성애를 사랑의 최고 경지로 보았다. (『향연』) 옮긴이는 사랑하는 자를 '연인'(戀人: erastes), 사랑받는 소년을 '연동'(戀童; paidika 또는 eromenos)으로 옮기고 있다.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연상의 연인)이 사랑받는 사람(연하의 연동)을 평생 동안 인도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은 '사랑'인데, 이것은 혈연, 공직, 부(富)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랑의 원칙으로 수치심과 자긍심을 제시한다. "수치스러운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훌륭하게 행동하는 것에 자긍심을 느끼는“ 이런 감정 없이는 국가도 개인도 위대하고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치스러운 행위와 관련하여 그것을 자신의 연동에게 들킬 때가 가장 괴롭지 않겠느냐, 역설적으로 자신의 수치스러운 행위를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한 사람만 꼽으라면 그의 연동(연인)이다. (물론 '수사학'보다는 '향연' 집필시기가 앞서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실제로' 수치스러운 것(중에서도 가장 수치스러운 것)을 피하고 싶은 거다. 아버지, 친구들, 그 밖의 다른 사람에게는 들킨다 해도 그 사람에게는 숨길 수 있었으면 하는데, 그가 연동이며, 연동에게는 연인이다.
'그러므로' 파이드로스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국가든 군대든 잘 다스려지게 하는 최선의 방법은 연인들과 연동들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 때 그들은 추한 것은 모두 멀리하고 서로 경쟁적으로 명예를 추구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나란히 서서 싸우게 되면 비록 소수라 해도 말 그대로 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연인)은 대열을 이탈하거나 무기를 내팽개치는 것을 연동에게 보이는 것을 가장 싫어할 것이며, 그런 것을 보이느니 몇 번이고 죽기를 택할 것이라고. 이때에 에로스가 불어넣어주는 것은 '용기'인데 사랑의 힘이다.(플라톤의 <향연>, 189e~197a 정리)

 

파이드로스, 연인들과 연동들로 군대를 구성하자
부왕 필립포스가 뷔잔티온으로 원정을 떠나고 없는 사이에, 알렉산드로스(흔히 '알렉산더 대왕'이라 부르는)는 16세밖에 되지 않지만 마케도니아의 섭정 겸 옥새 관리자로 뒤(宮)에 남게 된다. 이 기간에 어느 부족이 반란을 일으키는데, 알렉산드로스는 이들을 무찌르고 그들의 도시에 헬라스 식민시를 세우고 '알렉산드로폴리스'라고 개명한다. 2년 후, 18세 무렵에는 카이로네이아 전투(기원전 338년)에 참가해 헬라스 연합군과 싸웠는데, 그가 맨 먼저 테바이인들의 <신성부대> 대열을 돌파했다고 전한다.
카이로네이아 전투(기원전 338년)는 보이오티아의 카이로네이아 근교에서 벌어진, 필리포스(2세)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이 아테나이-테바이 연합군을 상대로 싸워 압도적으로 승리한 전투다. 마케도니아는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의 주도권을 잡는다. 앞서 아테나이가 델로스동맹의, 스파르테가 펠로폰네소스동맹의 주도국으로 그리스 패권을 잡았던 것처럼, 이후 마케도니아는 코린토스동맹의 맹주국으로 오랜 동안 그들의 시대를 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가 제압했다는 '신성(神聖)부대'가 흥미롭다. 그 당시에도 십자군 같은 것이 있었단 말인가!  

 

18세 알렉산드로스가 무너뜨린 '신성부대'
'신성부대(hieros lochos)는 테바이의 명문가에서 가려 뽑은 300명의 중무장 보병으로 이루어진 정예부대다. 이 부대는 150쌍의 동성애자들로 이루어져 유난히 결속력이 강했다. 이 부대는 기원전 371년 레욱트라에서, 기원전 362년 만티네이아에서 스파르테군을 격파하는 데 부분적으로 기여했으나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병력이 너무 적었다. 기원전 338년 아테나이와 테바이 연합군이 필립포스에게 패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다 옥쇄했다.'(『플루타르코스영웅전』, <알렉산드로스 전> 주44)
사료에 따라 조금 보충하면(출처: 위키백과), 신성부대는 기원전 378년에 보이오타르크(사령관)였던 고르기다스가 창설했는데, 그리스에서 최강이란 찬사를 받은 부대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테바이는 엘리스와 함께 동성애에 가장 개방적인 도시였다는 것. 테바이가 위치한 그리스 중부의 보이오티아 지방에서는 소년애로 알려진 헤라클레스 숭배가 활발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실된 저작에는 헤라클레스의 조카이며 종자이자 애인이었던 이오라우스의 묘소에 관한 묘사가 있는데, 그곳은 고대 테바이의 남성 동성애자 커플이 서로의 사랑을 맹세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플루타르코스는 '신성부대'라는 호칭이 이런 풍습에서 유래한다고 보았다).

 

헤라클레스의 동성애(신화)에서 '신성부대'라는 호칭 유래
플라톤의 『향연』 집필 연대가 기원전 381년이고, 이 대화편이 기원전 416년의 '향연'에서 나눈 이야기인 점을 상기하자. 파이드로스의 제안이 3년 후(기원전 378년) 테바이 군대에 도입된 것일까? 플라톤은 생전에 시켈리아(시칠리아)섬에 있는 시라쿠사이를 세 번 방문했다, 자신의 철인정치론을 현실에 도입해보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만약 ‘향연’의 언급이 신성부대 창설과 인과 관계라면, 플라톤으로서는 뿌듯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사랑의 힘으로 똘똘 뭉친 이들 테바이의 신성부대가 최후를 맞이하는 전투가 그들이 아테나이와 연합한 전투였다. 연동과 연인의 나이차를 감안할 때(이상적인), 150쌍의 그들은 요즘 군대의 '사수와 부사수' 쯤으로 대입할 수 있으리라. 사랑만이 아니라 전술을 전수하고 전수받는 관계이기도 했다면,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으리라. 하필 이들을 멸망시킨 이가 18세의 알렉산드로스였다는 점도 놀랍다. 굳이 인용문을 찾아 그의 면면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알렉산드로스야말로 출중한 외모에 지혜(인문학도)와 기예를 겸비한, 연인이라면 누구나 탐하는 연동이었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어쨌든 이 전투에서 테바이 신성부대 300명 중 254명이 전사하고 나머지 46명은 부상을 당하거나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이들의 숫자가 짝수인 점이 흥미롭지 않은가!) 

 

기원전 381년 『향연』 집필, 기원전 378년 '신성부대' 창설
(내친 김에) 한편, 이들 신성부대가 활약한 기원전 362년 만티네이아 전투는 테바이가 주도한 보이오티아동맹군과 아테나이+스파르테+만티네이아 연합군이 그리스의 패권을 놓고 치른 전투다. 보이오티아 동맹군은 에파메이논다스가 이끄는 보이오티아 군이 좌익을 맡았고, 이들과 맞서는 연합군은 만티네이아 군과 아카디아 군이 스파르테 군(스파르테 왕 아게실라오스 2세)과 함께 우익을 맡았다. 보병끼리의 싸움에서는 보이오티아 군과 스파르테 군이 격전을 벌인다. 그 와중에 에파메이논다스는 몸소 수하들을 이끌고 적들을 공격한다. 적의 총사령관이 최전선에 나가 있음을 간파한 스파르테는 에파메이논다스의 죽음이 승리의 관건이라고 보고 많은 손해를 보면서도 그를 공격하는데 집중했다. 그는 마침내 적이 던진 창을 가슴에 맞고 쓰러진다. 그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은 안티크라테스(스파르타인)라고 플루타르코스는 말하고, 파우사니아스(143~176년 활동 그리스 지리학자, 여행가)는 크세노폰의 아들 그륄로스라고 기록하고 있다. 직업군인이자 저술가인 크세노폰(기원전 428년경~354년경)의 두 아들이 이 전투에 참전했는데, 장남 그륄로스가 전사한 것. 크세노폰의 사망 시기는 정확하지 않은데(기원전 354년경으로 추정), 그가 쓴 『그리스 역사』가 다루는 마지막 사건(기원전 350년대 중후반에 일어난)을 기준으로 가늠한다. 크세노폰이 쓴 『그리스 역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의 막바지(기원전 411년)와 그 이후 4세기 초반의 그리스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투퀴디데스가 그의 '역사'(『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완성하지 못하고, 쓰기를 멈춘 시점(기원전 411년 가을)에서 기원전 362년 여름까지 49년 동안의 헬라스(그리스) 역사를 크세노폰은 서술했다. 크세노폰의 『그리스 역사Hellenica』 마지막 Ⅶ권이 '기원전 369년~기원전 362년'인 것.

66세쯤의 크세노폰은 장남이 전사한 만티네이아 전투를 그의 역사에서 다루었을 것인데, 그런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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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2-26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을 때 자주 등장하던 ‘카이로네이아 전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마침 플루타르코스의 고향도 카이로네이아여서 더욱 흥미롭고, 숱한 후세의 사람들이 그리스 최고의 영웅으로 인정하던 에파메이논다스(키케로는 그를 ‘최초의 그리스인‘이라 불렀고, 플루타르코스를 ‘최후의 그리스인‘이라 불렀지요.)가 스파르테군을 격파한 레욱트라, 만티네이아 전투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담긴 50명의 인물 가운데 에파메이논다스와 대(大) 스키피오의 전기가 후세에 전해지지 않는 건 두고두고 아쉽기만 합니다. 4세기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람프리아스 목록‘(플루타르코스의 작품 목록)에는 그들 두 사람의 전기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던데 말이지요.


timeroad 2019-03-09 01:00   좋아요 0 | URL
오이디푸스 아버지 라이오스가 펩롭스의 궁전으로 피난 갔다가 그의 아들 크뤼십포스에게 반해-이때부터 남자들 사이에 동성애가 시작되었다고 한다.-어린 소년을 납치하자 펠롭스가 라이오스를 저주한다. 그러자 라이오스를 벌주기 위하여 헤라가 테바이로 스핑크스를 보내는데.. <오이디푸스 왕>의 스핑크스 주석(천병희) 일부입니다. 테바이가 동성애에 관대했다는 것이, 이유가 있었네요. 다음 글을 준비하다가, 긴가민가해서 이 글을 수정할까, 했는데 여기에 메모하고 갑니다. 그리스 등 일대의 고지도를 구해서 벽에 붙여야 할지 지명에는 약해서요. 최근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천천히 읽었는데, 시간도둑이더군요. 뒷편 지도 확인하느라 정신없고.. 감사합니다.

oren 2019-02-26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티네이아 전투에서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한 크세노폰의 반응은 『몽테뉴 수상록』에도 나와 있어서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옛날에 그 대목을 필사해 놓은 게 있어서 덧붙여 봅니다.
* * *
가장 심한 고난에 대한 위안이며 진정제

크세노폰은 화관을 쓰고 제물을 바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아들 그릴로스가 만티네아의 전투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이 소식을 들은 첫 충격으로 화관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대단히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 화관을 다시 집어서 머리에 썼다.

에피쿠로스도 역시 그의 종말에는 자기 문장의 영원성과 유용성에 위안을 느꼈다. ˝영예와 명성이 수반하는 모든 노고는 견디기가 수월하다.˝(키케로) 똑같은 상처이며 똑같이 처지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군대의 장수는 병사만큼 그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크세노폰은 말하였다. 에파미논다스는 승리가 자기 편으로 넘어 왔다는 소식을 받고,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죽어 갔다. ˝이것이 진실로 가장 심한 고난에 대한 위안이며 진정제이다.˝(키케로) 그리고 이러한 사정들 때문에 사물 자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빗나가며 헷갈려진다.

timeroad 2019-02-27 03:3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어떤 책은 가까이 있어도 자주 펼치지 못하는데 몽테뉴 수상록이 그런 것 같고요, 이런 대목이 있었군요. <그리스 역사>가 다룬 마지막 시점과 아들이 죽은(전투) 시기가 거의 같은 시기 같아(더 살펴야해서, 그러다가 글을 맺었지요. 신라의 화랑 관창은 아버지 김품일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16세의 나이에 잘 알려진 대로 황산벌 전투에서 죽지요. 살아 돌아온 아들을 꾸짖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어디까지가 팩트일까(가짜 뉴스가 횡행하니 별 소릴 다하는 군요) 눈앞에서 자식을 보내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처자식을 죽이고서 출전한 계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런저런 생각했네요. 크세노폰이 군인이었다고는 하지만 절규하는 모습이 그답다는 생각은 들어요. ,
 

플라톤(기원전 427~347)은 <향연>을 기원전 381년에 쓴 것으로 추정하는데(집필 시기), 비극작가 아가톤이 기원전 416년 레나이아 제(祭)의 비극경연에서 처음 우승한 것을 자축하기 위해 베푼 술잔치(symposion)가 배경이다.
크세노폰(기원전 428년경~354년경)도 플라톤과 동일 제목의 대화편을 남겼다. 크세노폰의 <향연>은 기원전 421년 대(大)판아테나이아 축제 때 칼리아스가 자기 집에서 베풀었다는 '가상의' 만찬회에서 있었던 일을 (크세노폰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비록 ‘설정’이라 해도 작중 ‘향연(대화)’ 시점을 크세노폰이 명기한 것은 당시의 소크라테스의 생각(철학)을 추정하는, 단초가 된다. 당시의 소크라테스라면 이런 식으로 발언했을 것이라는, 제자의 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향연>과는 달리 크세노폰이 이 대화편을 쓴 시점은 특정할 수가 없다.

 

한 작가가 특정 작품을 ‘언제’ 썼을까, 하는 문제를 푸는 데는 그의 전기적인 기록을 살핌으로써 가능하다. 크세노폰의 대표작 중 하나인 『페르시아 원정기』(이하 ‘원정기’)에 고스란히 담긴 그의 ‘원정(용병 참여)’은 그가 직업군인이자 저술가로 생을 일관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크세노폰은 이 원정을 떠나기에 앞서(기원전 401년 3월 이전) 소크라테스를 만나 상담한다(‘원정기’에 수록). 만 2년에 걸친 원정이 일단락되었을 때는 기원전 399년 봄으로, 그해에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는 사형을 당한다. 원정이 끝났음에도 크세노폰은 곧바로 귀국하지 못한다(그리고 잠시라도 언제쯤 아테나이에 들렀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지켜볼 수 없었고, 멀리서나마 비보에 애통해하였을 것이다. ‘원정기’는 여느 저술보다 크세노폰의 자전적인 저술이기에 '전기적' 관점에서 크세노폰을 추적하는데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이력을 따라가는 글은 별도로 다루기고 하고) 크세노폰에게 <향연>은 어떤 의미였을까, 관련된 저작들을 살피면서 생각을 펼쳐볼까 한다. 

 

크세노폰이 아테나이에서 추방된 시기(기원전 394년)를 기점으로 이후 시골에서 살며 집필활동에 전념했다는 20년을 계산하면 기원전 374년까지가 된다. 또한 그가 코린토스(펠로폰네소스반도의)로 거처를 옮기기(기원전 371년) 전까지 20년을 집필에 전념한 시기(기원전 391~370년)라고 볼 수도 있다. 아테나이에서 추방당한 그가 스파르테가 준 (올룀피아의) 영지에 정확히 언제부터 머물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추방령이 철회되어 기원전 366년 조국(아테나이)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나이는 62세쯤이 된다. 그렇다면 그는 집필에 전념한 시기에만 집필을 했을까? 다산(정약용)이 유배지에서 18년을 그리 살았던 것처럼.
그런데 그의 사망 시기 또한 특정할 수 없어 (그의 다른 저작인) 『그리스 역사』에서 그가 다루는 마지막 사건을 근거로 추정하고 있다. 『페르시아 원정기』(다른 원정기들에 반론을 제시하는 데서) 또한 말년에 쓴 것으로 보는 점 등(천병희의 옮긴이 서문)에 따르면, 크세노폰은 죽는 순간까지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그가 <향연>을 언제쯤 쓴 것일까, 그 시기를 특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다만 그 집필 시기가 플라톤의 <향연>(기원전 381년)보다 앞서는 것일까, 그 이후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답할 수가 있을 듯하다.

 

크세노폰이 쓴 일련의 글들(<소크라테스 회상록>, <향연>,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거의 같은 시기에 쓴 '소크라테스 회상‘ 모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회상록>에서 그는(당시 자신은 페르시아에 머물렀고, 이후에도 한동안 아테나이에 올 수 없었기에) 소크라테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본 이에게 듣기도 하고, 관련된 기록들을 살폈음을 밝히고 있다. 관련 기록물에는 플라톤의 관련 대화편들이 당연히 포함되었을 것이다. 또한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고'에 속하는 글들은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소크라테스-플라톤'(플라톤에 의해 재구성된 소크라테스의 삶과 철학) 문제를 감안하고 쓴 것으로 보인다. 아니 누구보다도 먼저 플라톤의 ’권위에 의한 논증‘ 작업에 이의제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련의 다른 글들보다 (크세노폰의) <향연>에서 그런 흔적(집필 동기)이 두드러진다.

"나는 진실로 훌륭한 사람들의 행동은 진지한 것뿐 아니라 장난삼아 한 것도 언급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경험을 했기에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 밝히고자 한다."

크세노폰의 <향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물론 플라톤의 대화편들에서도 소크라테스는 특유의 '산파술'에 의거한 대화의 진행방식(언어유희처럼 보이기도 한다)이나 곳곳에서 재담을 즐길 뿐만 아니라 밉지 않게 짓궂은 장난을 행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크세노폰은 그런 정도로는 평소의 소크라테스의 진면목을 제대로 담았다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향연'이 열렸다는 기원전 421년, 대(大)판아테나이아 축제 때 칼리아스가 자기 집에서 베풀었다는 가상의 만찬회라는 '설정' 자체에서부터 뭔가가 있다.
그리고 그 ‘뭔가’는 플라톤의 <향연>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고 플라톤(<향연>)을 본격적인 패러디했다고 보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서두에서부터 패러디적인 요소를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다만 크세노폰은 자신의 <향연>을 통해(‘의해’가 아니라), 자타가 공인하는 소크라테스의 적통 제자인 플라톤에게 '이의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집필 시기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뉘고, 후기로 나아갈수록 소크라테스의 영향에서 벗어나 플라톤 자신의 철학(혼불멸론이나 이데아론 같은)을 설파하고 있다. 하지만 대화편 전체에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소크라테스-플라톤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향연>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에 속하는데, 적어도 크세노폰은 <향연>을 비롯하여 그 이전에 쓰인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섭렵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제 좀 스승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라고!" (‘절제, 절제, 절제’ 스승을 앞세운 마케팅에도 '절제'가 필요함을) 크세노폰은 플라톤에게 일침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플라톤의 <향연>은 기원전 416년의 일을 다룬 것이고, 크세노폰의 <향연> 기원전 421년의 일을 다룬 것이니, 플라톤이나 크세노폰이나 어려서 그 '향연' 자리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토론 주제로 두 번의 ‘향연’은 불과 5년 차이인데 소크라테스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다는 말인가? 또한 플라톤의 <향연>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는 이가 상기(想起)한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설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단한 발언들이 쏟아진 자리였다고 하자. 그러나 기억을 재구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필요에 따라 덧붙여지고, 재구성을 하였을 것이다. 크세노폰은 플라톤 당신도 그 자리에 참석한 당사자가 아니면서 너무 '진지하게' 술잔치에서(나) 나눴을 법한 얘기를 무겁게 전개하는 것 아냐, 반문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나의 스승이기도 했어!' 비록 직업군인으로서 전선을 누비고, 추방당해 오랜 기간을 고국(아테나이)을 떠나 있(었)지만, 크세노폰은 플라톤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초상에 '불편함'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나만 불편한가?’  크세노폰의 독백이 행간에서 읽히는 것이다.

 

 

플라톤의 <향연>에 대한 패러디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로저 스크루턴(1944~ )의 『프뤼네의 향연』(김재인 옮김, 민음사, 1999)을 우연히 읽었다. 소설이라고 해서 ‘그렇고 그런’ 책이다 싶어 서가에 꽂혀 있을 뿐이었던 책이다. 비록 철학자가 쓴 철학소설이지만, 플라톤의 <향연>에 대한 본격적인 (그리고 노골적인) 패러디로, 플라톤주의자들은 금서(禁書) 목록의 1호로 지정하고 싶은 책일 것이다. 본래 『프뤼네의 향연』은 저자의 『크산티페의 대화』(한 권으로 엮은)이란 저서에 수록된 대화편(철학소설) 가운데 하나인데, 한국어판에서 독립시켜 한 권으로 펴냈고, 나머지는 대화편들은 『크산티페의 대화록』이란 별권으로 출간되었다.
『프뤼네의 향연』의 주제도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향연>이 그렇듯이 '사랑'이다. 그런데 저자는 책 뒷부분에에 수록한 글(<‘프뤼네의 향연’과 그 안에 묘사된 인물들>)에서 의미 있는 언급을 한다. ['향연'은,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것 이외에도 몇몇 예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4세기 아테네의 정착된 문학형식이었다.]라는 대목이다. 출처는 J. 마르틴 <심포지움: 한 문학적 형식의 역사>(Paderborn, 1931)다. 아마도 '기원전 4세기'를 말하는 듯한데, 인용에는 '4세기'라고만 되어 있다. 앞서 기원전 얘기를 하고 있으므로, '기원전'을 생략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인용에서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것 이외에도'라는 대목이 중요하다고 나는 보았다.
『프뤼네의 향연』은 플라톤의 <향연>과는 대조적으로 등장인물이 모두 여인들이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의 역할을 담당하는 이는 그의 미망인 크산티페다.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라는 용어의 의미는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서 기원한다.(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 하나로 다 알았다고 하는 것과 비교할만한 이야기다) 어쨌든 '위키백과'에 따르면, '플라톤 사랑은 순수하고 강한 형태의 비성적(非性的)인 사랑'이다. 그러나 『프뤼네의 향연』에서는 육체적인 사랑의 가치를 폄하하고 시종일관 근엄한 플라톤의 이미지는 심하게 훼손된다(물론 소설이다). 『프뤼네의 향연』에는 플라톤의 누이와 그 누이의 딸이 ‘향연’에 참석하여 나름의 주장을 필치고, 플라톤마저 간접적으로 등장하여 <향연>(플라톤) 패러디의 임계점을 넘나든다. 크산티페의 우정 어린 변호에 힘입어 플라톤 또한 ‘트라우마’에서 해방되기는 하지만, <19금>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위험한’ 발상을 이 소설은 서슴지 않는다.
'더 이상의 패러디는 아마도 없다'라고 해야 할까? 절판되어 도서관에서나 구해 읽어야 할 상황이라(알라딘 정보) 아쉽지만 말이다. 로저 스크루턴은 그 자신이 철학자이기도 하지만, 크세노폰의 <향연>에서 용기를 얻어, 이런 철학소설을 쓰지 않았나 싶다(움베르토 에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장미의 이름』을 구상했듯이). 로저 스크루턴에 비하면 크세노폰의 <향연>은 플라톤의 '작품'을 점잖게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또래이면서 집필 시기도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의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크세노폰의 '용기'가 돋보인다. 사랑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플라톤이 합리적인 논증 형식을 고집했다면, 크세노폰은 철학적 '직관直觀'에 따라 시원스럽게 가상의 '향연' 한마당을 펼친 것이다.

 

 

-천병희의 (원전번역) <향연>은 세 편의 대화편들과 함께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2012년, 양장본)이란 이름으로 출간되었다(현재는 2017년 개정판이 나와 있다). (아마도) 개정판을 펴내면서 ‘푸른시원 시리즈’로 『향연』(2016.9.)을, 이어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다룬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2017.3.)을 반양장본으로 펴내, 새롭게 다듬은 번역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하였다. 특히, 『향연>에는 철학자 양운덕의 해설(<사랑의 진리를 찾아서_<향연>읽기, 사랑의 향연에서 진리의 향연으로>)을 곁들여 사랑의 탐구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고 있다.
"철학적 에로스는 '주체의 금욕'을 바탕으로 함께 '진리로 상승하는 길'을 찾는다. 이처럼 지혜를 추구하는 사랑은 새로운 사랑방식을 제시하고, 사랑을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는 '새로운 연예술이자 새로운 '생활양식'이다."
해설의 끝부분 언급은 이렇다. 이 해설은 자신의 책 『문학과 철학의 향연』(문학과지성사) 제4장, 『사랑의 인문학』(삼인) 제2장을 수정·보완한 원고라고 한다. 원전번역과 함께 이처럼 고전 자체가 함유한 ‘미덕’을 읽는 데 도움을 주는 ‘후속작업’에 박수를 보낸다.

-천병희가 원전번역한 크세노폰의 「향연」은 『소크라테스 회상록』에 「소크라테스 회상록」,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절판되었지만 『프뤼네의 향연』(로저 스크러턴, 김재인, 민음사, 1999)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프뤼네의 향연>을 읽으면(철학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플라톤의 『향연』을 다시 펼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비로소 크세노폰의 『향연』(의 가치에도)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프뤼네의 향연』과 세트로 동시에 출간된 『크산티페의 대화』(1999, 절판)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크산티페의 대화』에는 <크산티페의 국가>, <페릭티오네의 파르메니데스>. <크산티페의 법률>까지 세 편의 대화편(철학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들만 보면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법률><파르메니데스>(박종현/천병희/정암학당 필진들에 의해 [원전]번역되어 있다)들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크산티페의 대화』는 플라톤의 주요 대화편들에 대한 패러디로 플라톤 대화편 전편과 관련된 '소크라테스-플라톤'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한다. 어쩌면, 인간 그리고 스승 소크라테스의 미덕을 플라톤이 여러 대화편에서 설파하려 한 것을 한 권에 담아낸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과 『크산티페의 대화』는 저마다의 역할을 하면서 상당수 난해한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접근하는 가이드 역할을 하게 되리라, 필자는 그렇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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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이것은 수기(手記)이다." 상하 두 권으로 펴낸 장미의 이름_서문 앞에는 으레 헌사(獻詞)가 놓일 자리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이 서문은 198015일에 썼다. 탈고 시점부터 39년이 흘렀다. 움베르토 에코는 2016219일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소설은 픽션(fiction)이다. 사실이 아니지만 독자가 사실처럼 받아들일 때(개연성 확보)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소설가는 서문에서조차 사실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려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장 위대한 거짓말은 서문에 있다다. 소설론 강의에서 들은 얘기다. 장미의 이름처럼 꼭 들어맞는 경우가 또 있을까?

에코는 작가이기 전에 볼로냐대학교 기호학과 교수(1971~ )였다. 어떤 의미가 생성되고 소비 되는 현상을 다루는 학문. 언어의 구조와 그 의미를 연구한다는 데서 언어학 분야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언어학과 다르게 기호학은 비언어 기호 체계도 연구 대상이다. 기호학(記號學)이 그렇다. 현대 사회의 세기말적 위기를 소설에 담고 싶다, 에코의 바람이었다. 마침 출판사에 근무하는 여자 친구가 추리소설을 써보라고 권유하고, 장미의 이름2년 만에 썼단다. 여자 친구, 고마우신 분이다.

장미의 이름은 일독만으로 의미 파악이 쉽지 않은 작품이다. 노년에 이른 화자가 7일 동안, 자신이 겪은 인생 최고의 경험을 회상하는 방식이다. 그래도 추리소설답게 끊임없이 일렁이는 호기심 덕분에 책은 읽힌다. 화자의 내레이션이야말로 독자의 눈길을 붙드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작가가 책머리에 "당연히 이것은 수기(手記)이다."라고 한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것이다.

장미의 이름은 웃음(희극, 코미디나 개그, 정치풍자)이 가진 강력한 힘을 역설한다. 말 그대로 민주주의가 실현된 국가일수록 정치풍자가 허용되고 권장되며, 풍자 대상에서는 예외가 없다.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웃음에는 서슬 퍼런 날이 서 있다. 비극에 이어 고()희극이, 비극과 동시에 희극이 축제 마당 연극 경연에 오르던 황금기의 아테나이가 그랬다. 그러한 맥은 오늘 미국의 정치문화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언론자유(지수)와도 비례한다.

이참에 장미의 이름을 다시 읽은(거의 처음처럼) 계기가 있다. <김현정의 뉴스쇼>(유투브)를 시청하는데 공중파 시간이 끝나고 앵커와 제작진들, 일부 게스트가 후일담을 나누는데(시청자들은 실시간에 댓글 참여, '댓꿀쇼')에서 누군가 희극이 가진 힘을 이야기하면서 장미의 이름을 언급했다. 한 권의 금서를 둘러싸고 살인사건이 이어지는데 그 책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다고 여기는 <시학> 2권이란다. 장미의 이름1(시학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그리스) 희극에 관해 다루고 있다는 것. ", 그랬지!, 그런 대목이 있었지."하고는 천천히 그리고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25장으로 구성된 시학의 핵심은 6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비극의 정의가 시작되는 것. 그 앞은 비극을 정의하는 데 필요한 기초를 다뤘고, 이어질 장들은 이에 대한 부연설명이 되는 것이다. 6장에서 비극은 '완결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전체적인 행동의 모방'이라고 정의한다. 7장에서는 '전체는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갖는다.'며 비극의 정의 중 '전체'에 대해 자세히 다루는 식이다.

"처음은 필연적으로 다른 것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에 필연적으로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되는 것이다. 반대로 끝은 필연적으로 또는 대게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다음에 다른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중간은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다음에도 다른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언어유희로 여길 수 있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당연하신 말씀을 왜 늘어놓는 것일까? 간결하고 명징한 문체로 예술론을 전개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나는 이 대목이 늘 궁금했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6장 첫머리에 바로 그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6절 운율에 의한 모방과 희극에 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먼저 비극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하자."

‘6절 운율에 의한 모방은 서사시다. "서사시에 관해서는 23·24·25장에서 거론하지만 희극에 관한 논의는 없다."(옮긴이 주석) 바로 이 대목에서 에코는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을 착안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소개한 '발견(무지의 상태에서 앎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의 종류 가운데 네 번째인 '추리에 의한 발견'을 주로 사용하면서 말이다. 희극에 관해 논한 후속편, <시학> 2권이 '없을 리 없다' 에코는 그런 심증에 기반하여 논픽션처럼 픽션의 세계를 펼친다.

희극시학6장 첫 대목의 언급 말고 시학의 어디 쯤에 숨어 있는 걸까? 앞서 언급한 '전체'에 대한 부연 설명에 있다고 본다. '전체는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갖는다.' 그런데 현존하는 시학의 끝부분은 파손되어 있다. "비극과 서사시의 일반적 본질과 그 종류, 구성 요소의 수와 성질, 성공과 실패의 여러 원인, 비평가들의 비판과 그에 대한 해결에 관해서는 이쯤 해두자……."로 끝나는 것. 옮긴이(천병희)도 이와 관련 "이 파손된 부분에서는 (최소한)비극과 희극의 비교론이 펼쳐졌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주석을 달았다.

(약간의 스포일러)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들까지 희귀한 장서(藏書: 책을 간직해 둠. 또는 그 책.)들을 소장하고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가상의, 공간 배경) 전체가 한 권의 장서(:감출 장) 때문에 불에 타 사라진다. 희극에 관해 논하였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스스로가 말한 시학의 전체 가운데 끝부분, "필연적으로 또는 대개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다음에 다른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을 감추려는 세력과 찾으려는 이들의 갈등(문제)이 소멸되는 즈음에, 수도원은 소실(燒失)되어 끝장을 보게 되는 셈이다. 발상도 그렇거니와 훌륭한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소설은 후반부에서 (가상의) <시학> 2권의 첫 대목을 소개한다.

"……1부에서 우리는 비극을 다루면서 이 비극이 연민과 공포를 야기함으로써 카타르시스의 창출을 통해... 이제 약속대로 희극을 풍자극, 광대극과 더불어 다루면서 이 희극이 어리석은 자들을 즐겁게 함으로써 비극과 같은 작용을 하는 과정을 검토해보기로 하자. "(장미의 이름831)

천병희 선생의 시학(원전번역, 문예춢판사) 초판은 1982년에 발행된다. 선생은 1975년에 처음 <시학> 그리스어 번역을 시도했다고 한다.(수사학/시학옮김이 서문) 이 책 이윤기 선생이 장미의 이름초판을 펴낸 해는 1986년이다. 움베르토 에코가(서문) 장미의 이름을 탈고한 해는 19801월 이전이다. 그래도 문학 전공자가, 창작을 고민하면서 천병희의 시학이 원전번역으로 나와 있음에도 너무 가볍게 읽지 않았나, 때늦은 후회다. 천병희 선생은 시학을 생활고로 힘들게 공부하던 시절에 옮겼다. 한 출판사에 매절(인세가 아닌)로 넘길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다. 근래에 이르기까지 그 출판사의 손에 꼽히는 스테디셀러였는데, 선생의 희랍어·라틴어 원전 번역서들을 꾸준히 펴내는 출판사에서 수사학/시학(2017)으로 묶어 발행하였다.'시학'은 고전번역가의 인생 역정을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에코는 희극을 다룬 시학 후속편이 집필되고 발행이 되었지만 너무 위험한 내용이라 극소수만 독점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설정(픽션)에서 장미의 이름을 썼다. 그런데 천병희 선생은 출간 당시, 그리고 십수 세기 동안 묻혀 있다가 발굴되어 세계사를 뒤흔들었던 사연 많은 금서(禁書)를 번역하기도 했다.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20123, ). 한 권의 책이 가져온 파장은 위험천만했으며, 순혈주의에 토대가 되어 유대인 학살의 근거가 되었다. 실제의 책(시학)과 관련한 가상의 책(에코의 경우) 때문에 벌어진 참사(장미의 이름)가 아니라, 게르마니아라는 책(논픽션)이 야기한 비극(논픽션)이 실제 일어난 것더불어 크리스토퍼 B. 크레브스가 쓴 가장 위험한 책-로마 제국부터 나치 독일까지 <게르마니아> 오독의 역사(20129, 민음인, 현재 절판)게르마니아(최초의 원전 번역)에 이어 번역·출간되어 입체적인 독서가 가능하게 되었다

장미의 이름은 책(시학)을 다룬 책일까? (시학)이 미처 다루지 못한 책을 다룬 책인 것은 분명하다. 움베르토 에코는 웃음(희극)이 가진 신비한 힘과 그 '파괴력'을 충분히 다뤘다, 그 안에 시학_희극편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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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22-05-22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9년 3월에 작성한 글을 2022년 5월 22일, 기존 글을 대폭 수정하여 별도의 카테고리에 올렸습니다.
 
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푸른시원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양운덕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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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이 연극 무대에 오른 모양이다. 반갑다. 두근거린다. 공연이름은 <오이디푸스>다. 서울공연(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2019.01.29~02.24)은 시작되었고, 3월에는 지방공연[전북(8~9일), 광주(15~17), 경기(22~23), 전남(29~31)]이 이어진다. 연예계 소식을 다루는 한 TV 프로그램은 이번 <오이디푸스> 공연에 출연하는 세 배우(황정민: 오이디푸스 역/ 배해선: 이오카스테 역/ 남명렬: 코린토스 사자역)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 연극의 원작인 <오이디푸스 왕>이 수록된 책을 한 권 구입해서 읽었다. 천병희의 <오이디푸스 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반양장)다. 원전 번역인 점도 있지만, 가장 최근의 책에는 기존의 번역을 끊임없이 다듬은 노고가 담겨 있으리라는 점도 감안했다.

 

 왜 이 인터뷰에 이 세 사람이 등장했을까? 이들이 맡은 배역의 중요도에 따른 것일까? 어떤 다른 이유(흥행) 때문에 이 세 사람이 그 배역을 맡은 것은 아닐까? 사소한 질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그 배우가 누구냐가 아니라 <오이디푸스 왕>에서 중요도에 따라 세 배역을 고르라고 한다면, 세 사람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런 이야기다.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얼마나 힘들었을까) 연기파 배우들이 천만 영화의 주역으로 드라마, 케이팝과 더불어 한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나름대로' 상당수 조연급 주연들은 그런 영화들에 다수 출연하여 어지간한 주연급 배우 부럽지 않은 조연으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잔뼈가 굵은' 세월은 배고픔도 견뎌야 하는 그런 시간이다. 모든 순수예술이 그러하듯 그가 금수저든 흙수저든 경제적인 뒷받침이 없이는 활동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해서 연극판의 수준급 연기자들은 스크린이나 드라마 등에서 '새롭게' 발견되었고, 그들이 맡은 역할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도 소비자들은 열광하고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연극판을 떠나 (시장의 언어로) '출세한' 연기자들은 행복할까? 대체로 (각종 인터뷰들을 살피면) 연극무대가 본인의 본 무대이고 스크린과 TV는 연극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기는 듯하다. 물론 스크린에서 성공하기 위해 연극 마당에서 고생하면서 기예(機藝)를 갈고 다듬을 수 있다. 어쨌든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과 생계를 위한 노동이 일치하지 않은 삶이 거의 대부분인 때에 새삼 배우들만의 문제인 양 강조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연극은 시간예술(공연예술)이면서(리플레이는 없다) 일정한 공간(무대와 객석)을 필요로 한다.  연극에서의 시간은 불가역적不可逆的이라 NG도 재촬영도 편집도 허용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PLAY만이 있을 뿐이다. 배우들로서는 같은 내용을 연기할 때마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공연 회차가 늘어날수록 연기는 완숙해질 것이나 그렇다고 자만은 금물이다. 무대라는 공간에서 진행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배우는 관객들과 직접 대면해야 한다. 때문에 부담스럽지만 덕분에 현장 반응을 직접 그리고 즉시 확인할 수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대면하는 직거래이기에 가능한 일이며, 이것은 일종의 대화다.
연극 무대야말로 연기자들에게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훌륭한 연기학교이고 그 참여 자체가 예술행위이며 작품의 일부다. 그렇기에 배우라면 연극 무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시간에 행하는 예술이기에 참여하는 관객들의 입장료 부담은 불가피한 것이다. 또한 같은 이유로 생산한 작품이 보다 많은 소비자들을 만나는 점접 형성에서 연극은 스크린(TV)을 따라잡을 수 없으며, 비효율적이다.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연기자들에게 연극 무대는 떠나 있을 때도 늘 향수의 대상이고, 귀향을 다룬 소설(대체로 성장소설)이나 영화처럼 가끔씩 찾는(무대 위든 객석이든) 연극 마당에서는 회한이 가득하지 않겠는가? 

 

이번 <오이디푸스> 공연에서 황정민은 오이디푸스 역을 맡았다. 배해선(이오카스테 역)과 남명렬(코린토스 사자역)도 출연한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배우들만 거론하면 세 사람이다. 그런데 이 연극의 원작자인 그리스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가 최초로 비극의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를 두 사람에서 세 사람으로 늘린 개혁을 한 사람이다. 그리스 비극을 얘기할 때 3대 비극 시인(아이스퀼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들의 작품과 그들의 역할을 이야기 하는데, 아이스퀼로스는 제2배우를 추가함으로써(이전에는 한 사람이란 얘기다) 음악(노래)를 담당하는 코러스(장) 없이도 배우들만으로 '대화'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아이스퀼로스에게 작시법을 배운 소포클레스가 제3배우를 추가한다. 오늘날의 연극 무대를 생각하면(물론 모노드라마도 있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드라마의 출발은 이러했다. 아이스퀼로스를 그리스 비극의 창시자, 소포클레스를 비극의 완성자로 부른다. 또한 소포클레스는 연극 무대의 배경을 도입했고, 비극 3부작(축제 중 진행된 비극경연에는 세 시인이 출전하였는데, 저마다 세 편의 비극과 한 편의 사튀로스극을 세트로 무대에 올렸다)에서 3부작 모두가 하나의 주제를 연속해서 다루는 연속 3부작(아이스퀼로스의)의 기법을 버리고 개개의 비극이 그 자체로 완결되도록 했다. 이것은 인간 운명의 주역을 신이(아이스퀼로스처럼) 아닌 인간으로 보는 그의 인생관과 무관하지 않다.

 

어쨌든 이러한 비극 개혁에 기여한 점만으로도 소포클레스를 비극의 완성자라고 보는  데에 지장은 없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위대한 창조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반성적인 문헌학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 그들은 비로소 비극의 기원에 대한 물음을 묻기 시작하였지만-김상봉: <그리스비극에 대한 편지> 322면)는 <시학>에서 비극 위주로(서사시에 대한 언급이 일부 있다), 예술론을 전개하는데, <오이디푸스 왕>을 최고의 작품, 가장 비극다운 비극작품으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제3배우의 등장은 <시학>에서 제시하는 비극의 6대 구성요소(플롯, 성격, 조사措辭, 사상, 볼거리, 노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플롯(사건의 짜임새) 그리고 성격(인간의 성질은 성격에 의해 결정되지만, 행복과 불행은 행동에 의해서 결정된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내용'을 담기에 기존 '형식'(2명의 배우라는)은 한계로 작용했고, 보다 비극다운 비극을 위해 그 형식을 파괴한 것, 그것이 제3배우의 등장이다. 무대배경(미술) 도입도 기존 무대를 일종의 '마당극'에서 '무대'를 독립시킨 것이다(대상화 함). '연속 3부작'의 틀을 깬 것도 혁명이다. 그 해 축제의 비극 경연에 출전한 세 명의 시인이 비극 세 편씩, 9편의 비극을 무대에 올렸는데, 이전에 비해 그 주제가 얼마나 다채로웠을까,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top10 다음에도, 인간 세상을 읽는 키워드는 숱하게 널려 있다. 

 

'제3배우의 등장'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잠시 살펴보자. <오이디푸스 왕>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코린토스에서 온 사자가 등장한 이후(924행~)부터다. 이 사자는 실제로는 양부이지만 (오이디푸스가) 친부로 알고 있는 코린토스 왕의 사망 소식을 가져온다. 이제 코린토스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오이디푸스라는 희소식을 가져온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친부를 살해하고 근친상간(어머니)을 하게 된다는 신탁 때문에 코린토스를 떠나 방랑하다가 위기에 처한 테바이를 구하고(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그 상으로 공석인 왕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전왕(라이오스)의 왕비(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이했다.] "사자는 오이디푸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그를 모친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오지만, 그의 신분을 밝힘으로써 정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한다."(<시학> 11장)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와 사자(가끔 코러스장이 끼어들지만 그는 배우가 아니다), 세 배우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한 사람을 빼는 것이 가능할까? <시학>은 이 대목을 '급반전'(사태가 반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한다. 또한 '발견'(무지의 상태에서 앎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은 <오이디푸스 왕>에서처럼 급반전을 수반할 때 가장 훌륭하다고 한다. "발견은 급반전과 결합될 때 연민이나 공포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비극이 그런 행동의 모방이라는 것은 이미 규정한 바 있다. 그리고 불행해지느냐 행복해지느냐 하는 것도 발견과 급반전으로 야기된 사태 변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시학> 11장)

 

재판은 판사와 변호사(원고)와 검사(때론 피고측 변호사)라는 세 그룹의 활동으로 진행된다. 최소의 조건이면서 더 이상은 군더더기다. 증거가 우선이다.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경우는 심판이 있고, 관계자 둘을 직접 만나게 하는 삼자대면을 해야 그 증언은 설득력을 얻게 된다. 그런 절차를 제대로 밟아야 최종적인 판사의 판결은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다'라는 결론은 못 내리고 '그렇게 보인다'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국회는 말할 것도 없고 국정농단(행정부)에 이어 사법농단까지 민주공화국의 근간인 삼권분립은 회복불가할 정도로 오염된 상태로 정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얘기다.  소포클레스는 자신의 비극 무대에 제3의 배우를 등장시킴으로써 그리스 비극이라는 장르의 존재 이유를 입증하는 정점을 찍었다. 플라톤의 대화편 <소크라테스의 변론>도 소크라테스의 발언 위주로 구성되어 있지만, 가끔씩 인용되는 고발자(원고)의 발언이나 술렁이는 객석(배심원들)을 진정시키는 소크라테스의 당부 등을 감안하면 세 그룹이 등장하는 비극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지방공연이라도 가까이서 상연될 이번 <오이디푸스 왕>을 꼭 보고 싶다. 해서 <오이디푸스 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읽었다. 아마도 천병희의 '오이디푸스 왕'만을 기준으로 할 때 그의 원전번역은 이번이 최소한 네 번째가 아닐까. 단국대 출판부(5편 수록)에서, '소포클레스비극전집'(숲, 현존7편 수록)으로, 다시 '그리스비극걸작선'(여기에는 <안티고네>도 실림> 그리고 이번까지 개정판을 배제하고 최소한 네 번째다. 천병희는 오래 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원전번역한 번역가다. <시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 비극의 모범답안으로 삼는 그리스 비극의 정점이다. 책을 새롭게 펴낼 때마다 번역가 천병희는 끊임없이 기존 번역을 다듬고 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그런 흔적들을 발견하였지만 이는 [가능하다면]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하자. 이번 연극 <오이디푸스>의 대본도 궁금하다(가능하다면 이것도 또 하나의 글감이..).

<오이디푸스 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크게 세 부분 구성인데, 두 편의 비극과 비슷한 분량의 해설(『오이디푸스 왕』을 읽는 몇 가지 방식)이 있다. 1)고전학자 베르낭과 2)역사학자 르네 지라르 그리고 3)장-조셉 구스(Goux)을 따라가며 '오이디푸스 문제'를 개관한다. 그리스 비극을 좀 읽었다는 독자들에게도 새롭게 오이디푸스를 만나게 하지 않을까? 특히, 구스(Goux)의 견해는 흥미롭고 진행형이다. 플라톤이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를 통해 철학(자)의 탄생을 알렸다면, 앞서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 인간의 탄생을 선언했음을 가늠하게 한다. 플라톤은 오이디푸스의 한계를 지적했지만, 자연인 소크라테스의 초상화에 드리워진 오이디푸스의 그림자를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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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2-14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천병희 선생님이 『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라는 책에서 다시 한번 번역을 가다듬은 모양이군요. 이번에 무대에 올릴 연극도, 새로 나온 번역본도 모두 궁금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이디푸스 왕』을 생각할 때마다, 헤로도토스가 『역사』에서 밝힌 이야기가 늘 마음에 걸리더군요. 오이디푸스는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이었다는 주장 말입니다. 그걸 믿어야 옳을지 지어낸 얘기로 흘려야 옳을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되더군요.(☞ http://blog.aladin.co.kr/oren/6827813)

timeroad 2019-02-15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지방공연이라도 꼭 챙겨 볼려고요, 대본을 구할 수 있으면 좋은데.. <역사>를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워낙 설화가 많을 뿐더러, 그것이 또 읽는 재미이기도 하니, 그러려니 하지만.. 투퀴디데스의 <역사>와 바교대상이 되나 보니, 신빙성에 대한 논의가 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