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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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리아스]<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Four Weddings and a Funeral, 1994)이란 특별한 이름의 영화가 있었다. 그런데 『일리아스』(이하 <일리아스>)에는 특별한, 세 번의  '아흐레'와 세 번의 '열두 번째 되는 날(아침)'이 등장한다. <일리아스>라는 작품 속 시간 이야기다. 무슨 얘기이신가, 하실 분들이 있을 것인데, 여러 번 읽다보니 문득 보이는 ‘발견’이랄까, 그런 규칙이 있는 듯하다. '아흐레(9)는 정수 기본 수 가운데 극수라는 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듯하고, 열두 번째(12) 되는 날은 문제가 해결되는 날이다. 다시 말해 아흐레 되는 날은 ‘슬픔’이든 ‘역병’이든 ‘시신훼손’이든 갈등이 극에 치닿는, 서사장르 구성의 '절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동안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발견한 것들을 정리해본다. 

 

No01."열 이틀째 되는 날 다시 올륌포스로 돌아오실 것인즉"
테티스가 아들 아킬레우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아가멤논의 교만(한 말과 행동) 때문에 촉발된 아들의 분노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그동안 너는 빨리 달리는 함선들 옆에 앉아 아카이오이족을

원망하며 전쟁에는 일절 관여하지 마라."(『일리아스』 1권: 421-422행)
회의장에도 전장에도 나가지 말고 함선들 옆에 꼭 붙어 있으라, 신신당부를 하는 것.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극에 이르렀을 때, 여신 아테네가 올룀포스에서 내려와 제지하지 않았다면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을 단칼에 베어버렸을 것이다. 어쨌든 '그동안'이란 대체 며칠을 얘기하는 것일까?

 

"제우스께서는 어제 나무랄 데 없는 아이티오페스족의 잔치에

참석코자 오케아노스로 가셨고, 다른 신들도 모두 따라갔다.

열 이틀째 되는 날 다시 올륌포스로 돌아오실 것인즉," (1권: 423-425행)

비로소 ‘그동안’을 가늠해볼 단서와 숫자가 등장한다. '어제' 제우스가 신들을 거느리고 올룀포스를 떠나, 12일 동안의  여행을 시작했다. 오늘은 제외하고, 내일부터 10일째 되는 날, 테티스는 제우스를 찾아가 청원하겠다고 한다. <일리아스>에서 처음 등장하는 '열 이틀째 되는 날'이다. 그리고 오늘은 역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킬레우스가 소집한 회의가 열렸는데, 역병에서 벗어날 길을 찾은 날이다. 역병이 발생한 지 아흐레는 이미 흘렀고, 오늘이 10일째 되는 날이다. 역병에서 벗어날 방법은 찾았지만, 회의를 주도하는 아킬레우스가 미운 아가멤논은 그에게서 브리세이스를 빼앗고, 분노가 촉발되는 바로 '그날'이다. 아폴론이 보낸 역병에서 더 이상 헤어날 수 없음을 깨닫기까지 9일은 임계점으로 해석한다. 9는 기본수 가운데, 극수로 '무한', ‘영원’ 등을 상징한다. 역병이 그리스 군을 전멸시킬 수 있음을 암시하는 무시무시한 숫자인 것, 그런데 제우스는 하필 이날을 잡아 약속이라도 한 듯, 출장을 떠난 것이다. 오늘로부터 11일째 되는 날 아침 제우스는 돌아오고 테티스는 지체 없이 올룀포스에 올라,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청탁을 한다. 아킬레우스에게 '그동안'은 11일쯤이 된다. 또한 역병 발생시점부터 20일째 되는 날, 아킬레우스-테티스의 청원은 접수된다. 

 

No02."열두 번째 아침이 밝았건만 그의 살은 조금도 썩지 않았으며"
이제 <일리아스> 24권(몸값을 주고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받다)으로 가보자, 24권은 그 이야기 전개가 1권과 대칭 혹은 대조를 이룬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열두 번째 되는 날'이 24권에서도 등장한다. 앞서 22권에서 헥토르를 죽임으로써 절친의 복수를 하고, 23권에서 아킬레우스의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그는 절친을 추모하는 장례경기를 제안하고 주관한다. 그동안에도 헥토르 시신은 아킬레우스의 막사 부근에 방치되어 있다. 그런데 아직도 그의 분노는 여진처럼 남아 헥토르의 시신을 욕보인다. 그것은 분노이고, 그리움 때문이다.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그리움으로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아킬레우스는, 새벽녘이 되면 갑자기 일어나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 뒤에 매달고 그의  무덤 주위를 세 바퀴씩 돌며 분을 삭인다.

 

"그러면 그는 날랜 말들에게 전차 밑에서 멍에를 얹고는/ 끌고 다니기 위해 헥토르를 전차 뒤에 매달았다./ 그러고는 헥토르를 끌고 죽은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을 세 번/ 돌고 나서 다시 막사로 돌아와 쉬었고, 헥토르는 먼지 속에/ 엎드러져 길게 누워 있도록 내버려두었다."(24권: 14-18행)

'세 번'도 <일리아스>에서는 유의해서 살펴야 할 숫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자. 이와 같은 일을, 장례식 이튿날 새벽부터 열두 번째 날의 새벽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킬레우스가 하고 있다(12일의 기점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 좀 더 살펴야). 누구도 말릴 수 없다. 발칵 뒤집힌 곳은 올룀포스다. 신들 대부분은 헤르메스를 보내 그의 시신을 빼내자는 주장하나 헤라와 포세이돈과 아테네는 완강하게 반대한다(이들은 그리스 군을 지원하는 대표 신들이다).

 

"그들에게는 신성한 일리오스와 프리아모스와 그의 백성들이/ 알렉산드로스의 죄 때문에 여전히 처음처럼 미웠으니,/ 그는 이들 여신들이 그의 농장을 찾아갔을 때 이들을 모욕하고/ 파멸을 초래할 색욕(色慾)을 그에게 준 여신을 찬양했던 것"(24권, 27-30행)

두 여신의 뒤끝도 상당하다. '파리스(=알렉산드로스)의 선택'(사과)에 대한 앙금이 여전하다. 헥토르는 파리스의 형인 것이다. 이제 트로이아를 지원하는 아폴론이 나서서 반대 의견을 개진한다.

 

"아킬레우스는 동정심도 수치심도 없는 자요. 수치심은/ 사람들에게 손해가 되기도 하지만 큰 이익이 되기도 하지요./ 생각건대,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더 소중한 사람을/ 이를테면 동복형제라든가 또는 아들을 잃었소./ 하지만 그들의 눈물과 슬픔에도 한계가 있었소."(24권: 44-48행)

갑론을박 중이지만 신들의 중론은 아킬레우스가 신들도 용납할 수 없는 어떤 선(線)을 넘었다는 것. 그런데 신들은, (테티스가 왔을 때 제우스가 하는 말) "헥토르의 시신과 도시의 파괴자 아킬레우스를 둘러싸고/ 아흐레 동안 불사신들 사이에 시비"(24권 107-108행) 중이다. 여기서도 '아흐레'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임계점'으로 작동한다. 1권에서 역병에 휩쓸린 날들처럼. 아킬레우스가 짐승처럼 행동하는 시간들, '미친 날들'이기도 하다. 아킬레우스가 제 맘대로 헥토르의 시신을 훼손하는 날들이 '아흐레'라고 봐야 할 것이다. 헤라의 끈질긴 반대에도 제우스가 조율하는데, "아킬레우스 몰래 헥토르의 시신을 빼내는 일은 하지 않는" 조건으로 해결책을 낸다. 마침내 (1권에서와는 역순으로, 강대진,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을 참조하시라.) 제우스는 전령을 보내 테티스를 부르고, 이 여신을 통해 아들(아킬레우스)을 설득한다. 프리아모스가 장남(헥토로)의 시신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는데, 신들이 그리 진행되도록 손을 써놓은 것, 어쨌든 이 글에서는 12일이 중요하므로, 전령 헤르메스가 프리아모스를 안심시키는 다음을 보자.

 

"노인장! 그는 아직 개들이나 새들의 밥이 되지 않고/ 여전히 아킬레우스의 함선 옆 막사들 사이에/ 처음 쓰러진 그대로 누워 있소. 그가 누운 지 벌써/ 열두 번째 아침이 밝았건만 그의 살은 조금도 썩지 않았으며/ 전사자들을 파먹는 구더기들도 꾀지 않았소./ 신성한 새벽이 다가올 무렵이면 아킬레우스가/ 사랑하는 전우의 무덤을 그를 끌고 사정없이 돌았지만 그를/ 손상시키지 못했소. 직접 가서 보시게 되면 놀라실 것이오."(24권: 411-418행)

어쨌든 이 시신훼손을 포함, 시신반환으로 사태가 일단락까지 소요된 시간은 열두 날이다. 열두 번째의 아침. 대체 왜 이런 것일까? <일리아스> 작품 속 시간은 또 한 번 12일을 만난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No03."열 이틀째 되는 날에는 양군이 전투를 개시해도 될 것"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면서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 왕에게 묻는다.

 

"고귀한 헥토르의 장례를 치르자면 며칠이나 걸리겠소?

그동안은 나 자신도 쉴 것이며 백성들도 붙들어두겠소"(24권:  657-658행)

뜻밖의 제안이다. 트로이아 군은 도성에 갇힌 상태라, 화장할 땔감을 구하려면 도성 밖으로 나가야 한다. 프리아모스는 가능하다면 12일을 요청한다. 그들은 '아흐레' 동안 헥토르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열흘째 되는 날 그를 땅에 묻고 백성들에게 조문객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열 하루째 되는 날 무덤을 만들어 줄 예정이다. 그리고 열 이틀째 되는 날에는 양군이 전투를 개시해도 될 것이라고.

 

"아흐레 동안 우리는 집에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열흘째 되는 날 그를 땅에 묻고 백성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열하루째 되는 날 그를 위해 무덤을 만들어줄 것인즉,
열이틀째 되는 날 꼭 필요하다면 우리는 싸울 수 있을 것이오.”(
24권:664-667)

아킬레우스는 기꺼이 헥토르의 장례절차를 밟도록 12일 동안의 휴전을 약속한다. 여기서도 아흐레 동안 죽음을 슬퍼하겠단다. 대단한 애도, 헥토르를 영원히 추모하겠다는 뜻이 된다. <일리아스>에서 만나는 세 번째의 특별한 열 이틀째 되는 날이다.

 

"이렇게 그들은 말을 길들이는 헥토르의 장례를 치렀다."(24권 804행)

이 한 행은 <일리아스> 1~24권, 대단원의 막은 내린다. 특히, 세 번째의 열두 날은 제우스의 뜻이 아니다, 인간 아킬레우스가 연민과 배려가 12일의 장례 기간 허용이다. <일리아스>를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하는 아킬레우스에 초점을 맞춰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도 하는 데 가장 빛나는 대목이다.

 

이제 <일리아스>의 날들을 정리하자. 본격적인 전투의 날들은 4일이다. 그 앞에 전투 이전, 그 뒤에 전후이후로 <일리아스>는 3분되는데, 흘렀거나 흐른 것으로 여기는 세 번의 12일은 36일, 4일간의 전투를 포함하면 40일. 앞서, 역병에 속수무책으로 시달린 작품 이전의 아흐레(9일)를 포함하면 대략 50여 일이 <일리아스>라는 작품 속 시간이다. 10년 전쟁에 비하면 참 짧다. 왜 그런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사례들을 좀 더 제시한 다음에 정리하기로 하자. <일리아스>에는 세 번씩의 특별한 '아흐레'와 열두 번째 되는 날 아침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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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3-24 2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숫자로 살펴보는 일리아스도 재미있군요.

아흐레, 열두 번째, 말고도 ‘아홉 해‘도 몇 차례 등장하는지 궁금합니다.
전쟁이 아홉 해 동안 교착 상태였던 데 대해서는 2권에서만 하더라도 두 차례나 언급되어 있더군요.

어느덧 위대한 제우스의 아홉 해가 흘러
선재는 썩고 밧줄은 풀어지고 말았소이다.
(제2권 134-135)

뱀이 참새 새끼 여덟 마리와 그 새끼들을 낳은
어미를 합쳐 모두 아홉 마리를 집어삼켰듯이,
우리도 아홉 해 동안 그곳에서 전역을 치를 것이나
열 번째 되는 해에는 길 넓은 도시를 함락하게 될 것이오.
(제2권 326-329)

timeroad 2019-03-25 08:30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숫자에 대해 동서양의 관념은 좀 다른 듯 하지만 닮은 점도 있는 듯하고요. 영국이 청나라에 홍콩의 조차기간을 99년으로 요구한 것은 긍정이면서 부정적인 두 의미를 다 가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취재는 되어 있으니 시간이 닿는대로 올릴게요. 감사합니다.

oren 2019-03-25 2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리아스』를 뒤적이다가 또 하나의 ‘아흐레‘를 발견했네요.
글라우코스와 디오메데스 사이의 무구 교환이 나오는 대목에서,
글라우코스가 자신의 출신 내력을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이윽고 뤼키아와 크산토스의 흐름에 이르렀을 때
광대한 뤼키아의 왕이 그분을 진심으로 존중해주었소.
왕은 그분을 위하여 아흐레 동안 잔치를 벌이며 황소 아홉 마리를 잡았소.
그러나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 열 번째 나타났을 때
왕은 자기 사위인 프로이토스로부터 무슨 표지를 가져왔느냐고
그분에게 묻고 그것을 보여달라고 했소.
(6권 172-177)

timeroad 2019-03-26 18:43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뭔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ransky 2019-05-11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옥균을 상해에서 살해한 자가 프랑스 유학자 홍종우였음은
명성왕후의 끈질긴 복수심의 끝판이었고
자객고영근 또한 면성왕후의 심복이었으니!

timeroad 2019-05-13 19:5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인류 최고의 최초의 고전이 분노와 복수의 이야기라는 것이 예사롭지 않지요? 꼭 막장드라마가 아니라도 기본적으로 최근의 흥행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골조도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