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넥세노스』, 플라톤의 저작 중 위작 논란이 있는 대표적인 대화편이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플라톤의 대화편의 우리말 원전번역은 크게 세 흐름― 박종현 교수(서광사), 정암학당 연구원들(이제이북스), 천병희 선생(숲)―으로 진행되고 있다. 천병희 선생의 경우 어떻게 번역가 한 사람이 플라톤의 주요한 대화편들을 연이어 번역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속도감 있게 작업했다. 그 배경이 되는 당대의 전후한 주요 고전들을 번역했기게 가능했으니라. 다른 두 그룹은 철학 전공인 까닭에 해설과 역주에 노고를 보내야 하는 것과도 상관이 있으리라. 어쨌든 천 선생은 거의 대부분의 플라톤 대화편들을 번역하면서도 <메넥세노스>는 번역하지 않았다. 이런 선택은 위작 논란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일까? 궁금증 가운데 하나였다. 반면 다른 두 '그룹'은 최근에(2018년 12월) 박종현의 역주 <메넥세노스>가 추가됨으로써 (이제이북스 이정호의 번역은 2008년 출간) <메넥세노스>가 위작논란에서 벗어나 있음을 느끼게 한다. (물론 위작 논란 중인 작품이라도 번역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메넥세노스>는 소크라테스의 연설문(추도사)을 다룬 대화편이다. 연설문을 메인으로 전후에 대화편들이 으레 그렇듯이 대담자(참가자)와의 농담 섞인 편안한 대화가 펼쳐지지만, 연설은 무한정 길어질 수도 없고, 정해진 시간에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그 분량이 짧다. 때문에 번역은 하되 한 권의 책(단행본이라고 하면 흔히 요구되는 볼륨)으로 펴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정호의 번역은 정암학당 플라톤전집 시리즈가 그렇듯이 연구논문이라고 할 적잖은 분량의 작품해설을 앞세우고, 디테일한 후주가 대미를 장식하며, 그 중간에 본문(텍스트)을 배치하는 형식이다. 해서 <메넥세노스>만으로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었다. 물론 부록에는 이 대화편과 연관되어 있는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수록된 유명한 연설, '페리클레스가 전몰자를 위한 장례식에서 한 추도연설' 전문과 해설이 실려 있다. 아직 박종현의 역주(『고르기아스/메넥세노스/이온』(서광사, 2018년 12월)는 읽지 못한 상태이고, 좀 늦었지만 이정호의 번역은 읽은 상태이다. 두 버전의 번역을 읽어보아야 <메넥세노스>의 본문(텍스트)에 대한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박종현의 신간은 앞서 간행된 천병희의 (『고르기아스/프로타고라스』(숲), 『이온.크라튈』(숲)와 더불어, 독자들의 선택 폭을 넓히며 풍요로운 독서가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메넥세노스에서 소크라테스가 행한 연설이 (이하 '소크라테스의 추도연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수록된 '전몰자들를 위한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과 어떤 식이건 비교되면서 '대립각'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크라테스-플라톤(플라톤이 대화편들에 소크라테스를 내세움으로써, 실제 소크라테스의 말인지 구분할 수 없기에 그 자체가 '문제'로 끊임없는 논쟁거리이다. 이런 복합적인 의미에서 이렇게 표현한다)이 이 대화편의 필자가 분명한가 하는, 곧 위작논란과 관련해서 진위를 가리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 결정적인 근거(진품임을 확신하는데)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므로, <메넥세노스>는 후학들의 흥미로운 논제(論題)이자 관련된 논문(論文)과 토론의 논재(論材_조합이다)로 텍스트 자체와 집필 배경들이 사용되었고,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논란에 숟가락 하나 더 얹고 싶은 마음도 그럴 ‘내공’도 없다. 그럼에도 대표적인 소재들을 중심으로 관련 근거들을 대강이나마 살피는 일이 숙제처럼 다가온다. 문제를 해결이 아니라, 스스로 숙제를 내는 일에 머물게 될지라도.

 

플라톤의 대화편들 대부분은 '소크라테스-플라톤'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이 대화편은 존재 자체에서부터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분리해서 살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곧 플라톤이 비극시인이라면 그의 비극 무대에는 소크라테스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대화편 제목에 이 주연급 배우가 등장하는 것은 단 한 편, <소크라테스의 변론>뿐이다. 그것도 다른 대화편들처럼 그냥 <소크라테스>도 아니고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그러므로 여느 대화편들에서 소크라테스의 역할이 있듯이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도 그러한가, 난데없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세히 살피면,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사실 상당수 ‘변론’을 거론하는 글들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듯하다. 다만, 대놓고 이렇게 얘기하지 않을 뿐(그런 논문이 왜 없겠는가).  실제로 플라톤은 상당수의 대화편(구성 형식)에서 '인간적인' 소크라테스를 내세우기 위해 애를 쓴 흔적들이 보인다. 그런데 어딘지 어색하고 '작위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옛날이야기의 도입부처럼, "그렇게 오래오래 잘 살았단다."로 대미를 장식하는 것처럼. 그렇고 그런 설정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줄 알고 본론에서 발언하는 소크라테스의 '입'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며, 그러라고 하는 듯하다. 

 

무엇이 A인가, A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때에, 무엇이 A가 아닌가, A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이 더 쉽다면, 그렇게 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A가 '인간'이라면,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통해 그들이 창안한 특유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대화를 통해 숱한 발견을 할 수 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을 인용할 때 쓰는 통례적인 방식을 따른 것이다. 오늘날 의미에서 A를 '철학자'로 대입하자. '철학자(A)'를 정의하기 위해, 무엇(어떤 것)이 철학자가 아닌가(~A) 그 사례를 자주 드는데, 동네북처럼 소환되는 ~A가 수사학자이다. 그리고 수사학을 기술의 일종인 '수사술'로 취급하는 등 이 분야에 대한 '소크라테스-플라톤'의 태도는 늘 시종일관 근엄하다. 어떤 대화편은 '수사술'의 한계를 입증하는데 거의 전부를 할애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대화편에서는 '수사학'을 조금은 유연하게 '인정'하기도 한다. 전자가 <고르기아스>라면 후자는 <파이드로스>라고 할 수 있으려나.

이것은 철학자(라고 하자) 혹은 철학(이라고 하자)이라고 그 범주(範疇: 동일한 성질을 가진 부류나 범위)를 획정(劃定: 어떤 범위나 경계 따위를 명확히 구별하여 정함)하는데 수사학과 수사학자의 존재가 늘 걸림돌이 되어서였을까? 철학자와 수사학자, 철학과 수사학의 경계가 모호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 정치에서는 때로는 목숨, 나아가 목숨보다 소중한 명예가 훼손되는 일이 우려되고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희생양'이 소크라테스인 것이다. 

'수사술'에 능할 뿐만 아니라(오늘날의 성공한 연설가≒말도 잘하는 정치가라고 하자), 그 기술을 가르침으로써 생계를 해결하는 사람들, 그것을 배우려는 젊은 수강생들이 많아 나름의 교육시장(사교육)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이끄는 선생님들을 '소피스트'라고 불렀다. 아테나이 시민들이 보기에 소크라테스는 그런 사람 가운데 대표주자일 뿐더러, 제일 ‘잘나가는’ 소피스트였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두 가지 중 하나인) '소피스트 혐의'로 기소된다. 때문에 소크라테스-플라톤의 ‘변론’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입증한다. 그렇게 나는 (시민들이 생각하는) 소피스트가 아님을 변호한다. ‘변론’을 읽어보면 그런 대목들이 적지 않아 일일이 인용하기가 벅찰 정도다. 어쩌면 이를 입증하기 위해 신탁을 끌어들이는데, 그러다가 문득 또 하나의 기소 이유(아테나이인들의 신을 섬기지 않았다는)까지도 변론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양수겸장 (兩手兼將)의 변론을 펼친 셈이다. 젊은이들을 선동했다는,  소피스트 협의야 말로 그를 죽음으로 이끈 진짜 이유로 보인다. 젊은이들을 선동했다고? 나는 결코 그들로부터 (금전 혹은 물적인) 대가를 받지 않았어, 강조할수록 배심원들은 ‘그렇다면 왜, 무엇으로’ 촉망받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느냐, 더욱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아테나이 시민들의 고정관념은 그렇게 견고했고, 플라톤-소크라테스는 절망하였지만, 바로 그런 상태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 열망이 있고, 그것을 실행하며 살았으므로 그런 이유로 기소되는, 딜레마에 (적어도 그의 육신은) 사로잡힌 것이다.

 

플라톤은 그 법정에서 스승의 재판과정을 지켜보았다. 전언(傳言)에 의존했다는 ‘설정’가 필요 없는, ‘필요해서도 안 되는’ 유일한 대화편이다. 대화가 아닌 형식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시종일관 소크라테스의 말씀으로 일관한다. ‘배심원 여러분 좀 조용히..’, 변론 중 한마디를 통해, 배심원들의 반응을 엿볼 뿐이다. 어쩌면, 소크라테스는 여느 ‘수사술’에 능한 그들처럼(소피스트) 변론하지 않았기에, 배심원들은 낯설고 우리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본 것 같다. 다름은 때론 무서운 결과를 부른다. ‘다름’이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서는 그렇다. 소크라테스는 ‘다르지 않음’을 역설하는 동안 ‘다름’을 변론한 셈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에 따르면(‘변론’), 소크라테스-플라톤 문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행한 변론이라는데, 어느덧 엄혹한 세월은 갔고, 변론은 '작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연인 소크라테스를 만나는 한 방법으로 크세노폰을 잠시 소환한다. 그가 스승을 나름의 방식으로 추모하는 <소크라테스 회상록>에는 (한 반에 명예와 권력과 부를 획득하는) 현실정치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전공필수’과목으로 수사학을 꼽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친형(글라우콘)이 그런 정치 현장에 투신하려는 것을 말리고(3권 6장), 플라톤의 외삼촌(카르메데스)는 정치가로 나서라고 떠밀기도 한다(3권 7장). 크세노폰의 저작은 요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노량진 학원가를 찾아야 하듯(신림동 고시촌의 요즘 풍경은 잘 모르겠다), 그런 아테나이 젊은이들의 취업현장을 스케치한다. 당시 법정에 있지 않았고 사형수에게는 오래 수감돠었지만 면회할 수도, 스승의 최후를 지켜볼 수도 없었다. 때문에 전언(傳言)에 따라, 당시의 스승을, 그가 아는 당신을 '회상하였을 뿐인데, 거기에 문득 소크라테스의 초상화 한 점이 걸려 있다. 무엇 때문일까?
『메넥세노스』와 『수사학』,  『메넥세노스』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관련하여, 시작한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는 박종현의 <메넥세노스>까지 살펴야할 것 같다. <메넥세노스>는 작품 안팎의 배경들, 작품 안에도 수수께끼가 산재하여 신중함을 요구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크세노폰, 투퀴디데스, 로마의 키케로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저작뿐만 아니라, 전기들도 감안해야 한다. 플라톤에게 수사학(수사술)은 스승을 죽음으로 이끈 것으로 평생 동안 불편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크세노폰은 정치에 입문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플라톤의 친척들 얘기까지 거침없이 다룬다. 플라톤 자신이 정치지망생이었다는 점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수사학』을 저술 가운데 하나로 추가하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민은 깊었으리라(물론 그 자신의 생전에 출간되지는 않았다. 현존하는 그의 저술들은 필사본만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1세기 뤼케이온 학원의 원장이던 안드로니코스에 의해  로마에서 출간되었다.) 잠시 숨고르기를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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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은 이동순 시인의 시집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가짜 뉴스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너무나 그럴 듯해서 속는 경우도 있고, 특히, 유투브라는 플랫폼을 타는 상당수 ‘●●●TV’들의 범람과 활동이 이런 어지러운 질주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비단 유투브만이 아니고 인터넷 환경에는 이미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가 일상이 되었다. 특정 네티즌의 관심사가 반영된 검색 환경이 제공되는 것이다. 각종 인터넷쇼핑몰은 말할 것도 없다. 해당 영상을 올린 매체(게시자)를 ‘구독’하지 않아도 한두 차례 본 영상들에 대한 흔적(기록)이 저장되고 분류되어 그것과 관련된 영상들이 첫 화면에 ‘메인’으로 노출되어 유사한 주제의 관련 영상들을 자주 보게 되는 ‘쏠림’이 일어나는 것.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흐르면 단편적인 앎에 머물지 않고 교양의 ‘깊이’를 더하는 데 더없이 좋은 도구가 될 것이나, 악성 루머가 휘발성이 더 강하듯이, 정보의 진위도 문제지만 그러한 정보의 쏠림은 편견을 낳고 편견은 고정관념으로 굳어지고, 결코 바람직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회악을 잉태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아는 것이 힘이다.’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이 남긴 말이다. 그는 영국 경험론이라고 부르는 유파의 시조가 된 사람이다. 베이컨은 연역, 즉 일반화된 법칙에서 개별의 결론을 추론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오히려 오류를 야기하기 쉽고, 올바른 지식은 항상 실험과 관찰이라는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해서 생기는 오류, 베이컨은 경계해야 할 네 가지 유형의 ‘우상’을 제시했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 그것이다.

 동굴의 우상(개인 경험에 의한 우성)은, 각 개인의 고유하고 특수한 본성이나 자신이 받은 교육과 타인과의 교류에 의해서 생기는 우상을 동굴의 우상이라고 명명했다. 자신이 받은 교육과 경험이라는 편협한 범위의 자료를 바탕으로 단정해버리는 오류로 한마디로 ‘독선’이다. 다음은 시장의 우상(전문轉聞의 의한 우상)이다. 언어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생기는 우상, 커뮤니케이션의 오류다. ‘전해들은 말’을 진실이라고 믿고 현혹되는 것. 한마디로 거짓말인데, 오늘날 ‘가짜뉴스’가 얼마나 위험한지 미리 ‘경계’한 듯하다. 극장의 우상(권위에 의한 우상)은 저명한 이의 주장 등 권위와 전통을 아무런 비판 없이 믿는 데서 생겨난 ‘편견‘을 뜻한다. TV나 신문에 등장하는 전문가의 주장은 무조건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인데, 오늘날은 이러한 ’미디어의 우상‘에서 특히 자유롭지 않다. 또 하나, 종족의 우상(자연 성질에 대한 우상)은 인간이란 종족이 가진 한계성 때문에 ‘착각’하는 것으로, 앞선 네 가지 우상들에 우선하기도 하고, 이 때문에 이러한 우상들에서 쉽게 빠져들고 쉽게 헤치고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이상은 최근에 발간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라는 책의 40번째 ‘도구’, <오해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우상> 편을 요약하면서 필자의 ‘의견’을 덧붙인 것이다.  일본 저자인 야마구치 슈(지은이)의 저작을 번역한 책(김윤경 옮김, 다산초당(다산북스), 2019. 01.)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이 18년 동안 유배지에 머물며 집필한 책들 상당수가 제자들과 협업한 ‘편저’이고 보면, 그 정신을 계승한다는 면에서 이 출판사(다산초당)의 정체성에도 맞는다고 해야 할까? 넓게 두루 살피면서 핵심을 뽑아내는 것도 그렇고, ‘실시간’의 세계를 읽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는 책이다.

특히, 오래전에 읽고서 잊고서 지내던 철학자의 세계를 상기(想起)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내게는 베이컨의 제시한 ‘우상’에 관한 기억이 그랬다. 그리고 앞서 정리한 대목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가짜뉴스’가 극성을 부르는 최근 상황에 대한 ‘경계(警戒)’가 맞춤한 것처럼 정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앞서 거론하였거니와 특히, 유투브 시청의 쏠림 현상 때문에 시청자들은 우물 안에 갇혀(동굴의 우상),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폐해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데서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전 대통령 전두환 씨가 광주광역시의 법원까지 ‘강제구인’되어 재판정에 섰거니와, 진상규명과 인정 ‘투쟁’을 거쳐 이미 국립묘지까지 조성되어 안장된 5.18 희생자와 유족들을 모욕하는 세력들의 ‘준동’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때다.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도저히 그들을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 어쨌든 가짜뉴스와 유투브의 시청시의 편향성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더욱'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싶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 가운데 이동순 시인이 있다. 이 시인의 제5시집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된 해는 1992년 봄이었다.(알라딘에 ‘품절’로 분류된다) 앞서의 현상들을  ‘이것 참 문젤세’하며 지켜보면서 떠올린 시집이다. 이 시집의 표제시가 동명의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이다. 시집들이 모인 서가에서 오랜 만에 이 시집을 찾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와, 검색을 통해 모처럼 시를 읽었다.(인용한 시에 오탈자가 있다면 책을 찾은 다음에 수정할 계획이다)  

“저 풀꽃들은/ 어디서 아침을 맞지/ 어떤 모습으로 기지개를 켜지// 밤비에 젖어/ 글썽이는 속눈썹으로/ 그들은 함초롬히 실눈도 떠볼 거야// 사랑아 어둠 속에서/ 깊이 뿌리를 박고 선 풀꽃의 아침처럼/ 흩어질 듯 맺혀 있는 내 사랑아// 마음이 아픈 풀꽃은/ 어떤 표정을 짓지/ 궂은 비 나리는 가을 저녁// 풀꽃의 아랫도리가/ 서늘하게 젖어올 때면/ 저절로 알게 될꺼야// 풀꽃 언저리에/ 송글송글 맺혀 동그마니/ 작은 어깨를 떨고 있는 이술방울// 두 볼이 서서히/ 다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저 가을 들판의 수줍음을//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 -시 전문. 

 

이제 이 시를 읽으려면 도서관에 가거나 이동순 시선집 『숲의 정신』(산지니, 2010)을 구매해야 할 것 같다. 시의 내용과 제목을 연결 짓기가 좀 낯설다고 할까,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이고, 설명이 간단치 않으며 길어질 것이다. 때문에 이 시집이 출간되었을 때 한 신문의 ‘출간단신’으로 대체할까 한다. 단지 이 한 편의 시만이 아니라 이 시집에 수록된 상당수의 시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표제시로 압축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동순 시집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 = "이제 세상은 어느 틈에 `어리석은 지혜자'의 무리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한탄하는 이시인은 삶의 가난함, 고통으로 얼룩진 민족의 역사, 그러한 것들이 뒤엉켜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정황을 담백하게, 그러나 읽는 이의 가슴에 쓸쓸함이 깃들게 하는 어조로 노래한다.”

사법농단으로 마음을 놓고 재판을 받을 수 있나, 의구심이 커지는 요즈음 주목하는 책 한 권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다. <수사학>은 『정치학』과 뗄 수 없는 관계일 뿐 아니라 『시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저자는 수사학에서 이미 언급한 부분들이 있어 <시학>을 간명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저작들을 (원전)번역한 천병희의 『수사학/시학』을 제1원전번역(텍스트)로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안보-군사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전략가들에게 국내외를 막론하고 오래된 전쟁 교과서 역할을 하듯이, <수사학>은 정치인(연설), 법조인, 그리고 작가에게 필독 교과서 중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변론을 하거나(변호사) 기소장을 쓰거나(검사) 판결문을 내는데(판사), <수사학>은 참으로 쓸모가 많은 책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연설문을 작성하는데, ‘그렇게 보이는 것으로’ 함으로써 ‘그런 것으로 여기게’ 하는데 노하우를 집대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던가! 기왕 가짜뉴스로 대중들의 마음을 현혹하는 일을 일처럼 일로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정독하여 노하우를 습득하시기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를 때라고 하지 않는가, 완벽에 가까운 거짓말은 작품이 되어 예술의 경지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니까. KBS1의 <저널리즘 토크쇼J>를 꾸준히 보는데, 가짜뉴스를 비롯하여 특정 언론들의 무소불위의 횡포를 견제하는 몇몇 착한 콘텐츠들이 언론인의 자정과 자성의 메시지를 생산하고 있어 다행이다. 이런 프로그램의 애시청자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힉>을 꼭 챙겨 읽기를 바란다. 보다 깊이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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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푸른시원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양운덕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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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중인 연극 <오이디푸스>의 대본 일부와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해당 텍스트 비교를 포함하고 있는 글입니다.

변이나 해수욕장, 혹은 유치원 야외 놀이터 등 모래가 있는 곳이면 할 수 있는 놀이가 있다. 그러나 ‘모래성 쌓기’와 같이 이 놀이에 알맞은 이름을 간명하게 붙일 수가 없다. 해서 ‘거 있잖아’라는 말로 시작하거나 ‘말하자면 일종의 보드게임인데’로 설명하는 놀이.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은 작은 모래성 한가운데에 막대기를 꽂고 참가자들이 모래를 한 움큼씩 원하는 만큼 덜어내다가, 막대를 쓰러뜨리는 이가 꼴찌를 하는 놀이 말이다. 물가에서 하는 놀이라는 교육 관련 게시물에 이 놀이를 ‘막대 쓰러뜨리기’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는데, 적절하다고 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있다.

일단 이 놀이 설명은 다음과 같다. ‘여러 명이 모래밭에 앉아 젓가락 길이의 막대기를 세우고 번갈아 가며 모래를 자기편으로 모은다. 막대를 쓰러뜨리면 탈락한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규칙은 여기까지였다. 지는 사람은 한 사람이고, 나머지는 어쨌든 이긴 자들이 된다. 그런데 ‘나머지 사람 가운데 모래를 더 많이 모은 사람이 이긴다.’가 더 있다. 이 한 문장을 적용하면 이 놀이에서 꼴찌만이 아니라 1등에서 꼴찌까지 서열화가 가능한 것이다. 딱히 참가자 중 누구 한 사람의 전적인 책임이 아닌데, 그러한 과실의 책임을 서열화할 수 있다는 것이 좀 씁쓸하다.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원인은 개인에게도 있고, 그것을 도운 사람에게도 있고, 알면서도 모른 체 방관한 사람, 사회가 나아가 나라가 제 때에 조치하지 못한 기관의 책임까지 따지고 보면 가해의 주체는 복합적이기 마련이다. 저마다가 “나 때문이야”라고 과실을 인정하면서 발생한 문제에 접근한다면 그 해결은 원만하고 완전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너 때문이야’로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쪽으로 흐르고, 그러다가 유사한 사건일 재발되는 것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대부분의 이솝우화(전체 258편)마다 따라 붙는 ‘교훈’처럼 한마디 하자묜, 이 놀이 이름을 ‘내 탓이야 놀이’쯤으로 붙렀으면 한다.

얼마 전에 연극 <오이디푸스>를 보았다. 관람 전 예습으로 번역가 천병희의 최근 번역 <오이디푸스 왕>을 읽었다. 2500년 전 비극경연에서 상연될 때도 이 작품은 작품이 다루는 사건들(스토리)과 관련된 배경을 시시콜콜히 설명하지 않았다. 가령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가 낸 어떤 수수께끼를 풀어 테바이(카드모스 성)를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구했는지를 작품은 얘기해주지 않는다. 특히, 그 수수께끼가 무엇이었는지를. 그 괴물이 스핑크스였다는 것도 오이디푸스의 처남 크레온의 대사에서 딱 한 번 언급될 뿐이다('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가'[129행]). 대신 스핑크스는 '가혹한 여가수'(35-36행), '저 날개 달린 소녀'(508행)와 같이 암시될 뿐이다.

이 비극의 원전번역(‘텍스트’라 하자)을 기억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연극의 실제 대본(희곡보다는 ‘대본’이라고 하자)과 많이 다름을 곧바로 느겼다. 출판 과정의 중 교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교정(校訂)과 교정(校正)이다. 전자는 오탈자를 바로잡는 과정이고, 후자는 그 과정을 거친 1차 교정지와 교정을 반영한 2차 교정지를 비교(比較)하면서 지적한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처럼 교정(校正)하듯 ‘텍스트’와 ‘대본’의 해당 부분을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둘은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각색 정도에 따라 그 차이는 비례할 것이지만. 비극의 최초공연과 지금의 연극 상연까지 2500년가량의 시간차가 있을뿐더러, 번역을 통해 원작을 재현한다는 점에서(누가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발생하는 차이도 크기 때문에) 이중삼중의 굴절과정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개봉영화로 치면 기자 시사회에 해당하는 '연극 <오이디푸스>의 연습실 공개' 영상(3~6장)이 유투브에 올라 있었다. 한 부분을 골라 공연 대사를 입력한 것(대본)과 옮긴이가 최근에 '언어란 끊임없이 바뀌기도 하거니와 예전 작업의 오류를 바로잡을 때가 되어 새롭게 번역을 손을 본"(옮긴이 서문) 원전번역 텍스트(『<오이디푸스 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일대일 비교를 해보았다. (이러한 비교에 따른 고려사항 등을 실제 사례에 맞게 정리했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상식 차원에서 짐작하는 선에 맡기고 실제 사례를 소개하는 데 집중하기로 하자) 다만 한 가지, 그리스 비극은 비극경연에서 공연된 상태라야 비로소 ‘썼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공연용 대본이었고, 지금 공연 중인 연극의 대본도 마찬가지이다. 연극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기원이 바로 그리스 비극이라는 점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또한 그리스 비극도 상연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알맞은 ‘길이’(특히 공연시간)라는 제한을 받았다는 사실도 덧붙여야겠다.

연극 <오이디푸스> 대본(대사 중심으로 그대로 타이핑한 것으로, 비극 <오이디푸스 왕> 텍스트를 기준으로 707-734행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오카스테-IO/ 오이디푸스-OI/ 코러스장-CO)

 

IO(배해선 분): 그런 일이라면 마음 상하지 마세요. 지금부터 제 말을 들어주세요. 테이레시아스가 언젠가 라이오스 왕과 제게 신탁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OE(황정민 분): 신탁.
IO: 신탁으로 포장한 저주였어요. 끔찍한 저주, 그 저주는 라이오스 왕이 자신의 아들 손에 살해당할 운명이라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라이오스 왕께서는 엉뚱한 곳에서 도둑들에게 목숨을 잃으셨어요. 스핑크스한테 당했을 수도 있지요.
OI: 또 스핑크스.
IO: 스핑크스가 자주 노리던 곳은 라이오스 왕이 죽은 삼거리였으니까요.
OI: 삼거리.
CO: 삼거리, 세 갈래 길이 하나로 만나는 곳, 하나의 길이 세 개로 나뉘는 곳, 삼거리.
IO: 왜 그러시죠?
OI: 나는 마차가 다닐 수 있는 삼거리에서 라이오스 왕이 살해되었다는 말을 지금 당신에게 들은 것 같소. 대체 어디였소. 왕이 죽은 그곳은.
IO: 델포이와 포키스와 다울리아로 나뉘는 삼거리.(까악~)
CO: 세 갈래 길이 하나로 만나는 곳.
IO: 나뭇잎 줄기처럼,
CO: 하나의 길이 세 개로 나뉘는 곳.

 

다음은 원작, 비극 <오이디푸스 왕>(천병희 옮김)의 원전번역(해당 부분)이다. 파란색으로 지정한 부분은 대강 위 대본과 텍스트가 일치하는(음절 단위) 부분이다. 

 

(이오카스테-IO/ 오이디푸스-OI

IO: 그런 일이라면 조금도 염려 마세요. 그대는               [707]
말을 듣고 명심해두세요. 필멸의 인간은
어느 누구도 미래사를 예언할 수 없어요.
이에 대해 내가 간단한 증거를 보여드리지요.                  [710]
전에 라이오스에게 신탁이 내린 적이 있었어요.
아폴론 자신이 아니라 그분의 사제로부터 말예요.
신탁이란 운명이 그를 따라잡아 그이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손에 그이가 죽게 되리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소문대로라면 라이오스는 마차가 다닐 수 있는      [715]
세 길이 만나는 곳에서 어느 날 다른 나라 도적 손에
살해당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들은 태어난 지
사흘도 안 돼 라이오스가 두 발을 함께 묶은 뒤
하인을 시켜 인적 없는 산에다 내다 버렸어요.
그리하여 아폴론께서는 아이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720]
라이오스는 아들의 손에 죽는다는, 그이가 두려워한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셨답니다. 
그렇게 되도록 신탁이 미리 정해놓았던 거예요.
그러니 신탁이라면 염려하지 마세요. 신께서 필요해서
구하시는 것이라면 몸소 쉬이 밝히실 거예요.                    [725]
OI: 여보, 이제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내 마음 갈피를 잡지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는구려.
IO: 무엇이 그리 불안하고 두렵단 말예요?
OI: 나는 마차가 다니는 세 길이 만나는 곳에서
라이오스살해되었다는 말을 당신에게 들은 것구려.   [730]
IO: 그런 말이 떠돌았고, 지금도 떠돌고 있어요.
OI: 그 사건이 일어난 곳이 대체 어디요?
IO: 그 나라는 포키스라고 불리며, 델포이에서 오는 길과
다울리아에서 오는 길이 서로 만나는 곳이지요.                 [734]

 

대본(연극이 원전을 많이 벗어났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이오카스테의 대사를 주고받는(대화) 효과를 내기 위해 잘라내고, 코러스까지 개입해서 구두점을 찍듯이 그러해야 하는 부분을 강조하기도 한다. 삼거리가 '나뭇잎 줄기처럼' 세 갈래로 나뉜다는 비유까지 덧붙였다. 삼거리는 스핑크스가 출몰하는 우범지대였다는 설명도 새로운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공연 시간은 100분이다. 2500년 전 비극경연에서 <오이디푸스 왕>의 상연시간은 이보다 길었을까, 짧았을까? 천병희의 번역기준으로 비극 텍스트는 1530행으로 연극보다는 길었을 것(코러스는 합창 곧 노래로 가사를 전달하니까)이다. 현대의 대본은 제한시간에 맞춰 특히 원작의 앞뒤를 가리지 않고 어떤 대사는 배제(선택)하고, 위치를 옮기고, 주제에 ‘집중’하기 위해 설명용 대사를 추가할 수밖에 없다. 선택과 집중이다.
이번 연극(대본)에서 두드러지는 ‘집중’은 오이디푸스의 ‘트라우마’를 작동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대사를 재구성하고 배사의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관객들을 (오이디푸스의 트라우마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시간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사건 현장인 ‘삼거리’(2), 거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범죄(근친상간)으로 자신을 초대한 수수께끼를 낸 ‘스핑크스’(3), 그리고 ‘부은 발의 오이디푸스’(0)라는 그의 이름 자체에 깃든 비극의 시작이 그것이다. 연극에서 오이디푸스는 누군가 이 말들을 문득 언급해도 움찔하고 무너진다.

 

결론은 대본은 대본이고 비극은 비극이라는 것이다. 연극 또한 그리스 비극이 그러하듯 행동의 모방이고, 대사는 행동의 모방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주재료이다. 어쨌든 대사 위주로 비교한 것이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앞서 글머리에서 ‘막대 쓰러뜨리기’ 놀이를 언급했다. “네 탓이야!”라는 말을 듣는 게임에서 꼴찌를 면하려면 아무리 원전 비극을 재구성하더라고 건드리면 안 되는 ‘핵심 포인트’가 있기 마련이다. 인용한 부분에서는, 라이오스 왕 일행을 살해한 살인범이 ‘한 사람’인가 ‘여럿’인가 하는 점이다. 두 번째 이오카스테의 대사에서 "도둑들에게"는 반드시 '도둑에게'로 대체될 수 없다. 그 살인자가 '혼자'이냐 '여럿'이냐는 오이디푸스가 범인이 될 수도 있고('도둑'이라면), 혐의를 벗어날 수도 있는('도둑들'이라면) 이 비극의 ‘발견’(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오이디푸스 자신이 그 범인임을)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연극(대본)이 무너뜨릴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에 따라 대본은 삼거리 를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도그 위치에 대해서는 대강 언급하는데, 텍스트에 집중하면 상황은 다르다. 텍스트에서 오이디푸스는 "마차가 다니는 세 길이 만나는 곳"이 어디냐 묻고, 이오카스테는 (삼거리가 있는 곳은) "그 나라는 포키스라고 불리며, 델포이에서 오는 길과 다울리아에서 오는 길이 서로 만나는 곳"이라고 한다. 물론 전해들은 이야기므로 그 지점을 특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연극) 대본에서 이오카스테는 "델포이와 포키스와 다울리아로 나뉘는 삼거리."라고 한다.
이제, 그 지점이 어디이며, 어떤 의미인지 문학기행을 떠나보자. 구글지도를 따라 가는 인터넷 기행이다.(사진은 펠포폰네소스전생사 부록, 일대의 고지도> 그런데 해당 삼거리를 끝내 특정할 수 없었다. 델포이(델피) 다울리아(=다우리스?), 포키스(현대 그리스어로 Foks), 등 지명들이 혼재되어 장소 검색이 힘든 경우가 있다. 왜 이런 ‘답사’를 하나, 그만하자 하면서도 끝까지 가보았다. 결국 그 시대를 전후하여 저술된 그리스 저작들과 위키백과(다음)의 도움을 받았다.

델포이는 그리스의 포키스(Phocis) 협곡에 있는 파르나소스 산(해발 2457m)의 남서쪽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만약 델포이를 등지고 정남향으로 걷는다면 코린토스만 바다와 만난다. 건너편이 코린토스이기는 하나 코린토스 지협에서부터 코린토스는 시작된다. 오이디푸스가 양부 슬하에서 자란 나라다. 델포이에서 코린토스만을 끼고 동쪽 아테니아 방면으로 가면 오른편이 코린토스지협이다. 배로 아테나이와 살라미스 섬이 있는 만(灣)에서 코린토스만으로 가려면 펠로폰노소스반도를 돌아가야 했는데, 당시에는 배를 지상으로 올려 육상에서 코린토스 지협을 통과하기도 했다.) 델포이는 포키스(나라)에 속하는 곳이다. 그 '삼거리'도 포키스라는 나라의 어느 지점으로 델포이에서 멀지 않다. 그런데 (텍스트와 대본에서) 포키스라고 할 때는 ‘포키스라는 도시’를 지칭하는 것이 되는데 델포이를 기준으로 할 때 포키스(수도/시)는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파르낫소스 산기슭에 위치한 델포이에서 해변(코린토스만, 남쪽으로)으로 내려와 우측으로 난 길로 접어들어야 포키스(시)로 갈 수 있다.

문제는 다울리아의 위치다. 다울리아는 아테나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정도로 위치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델포이에서 해안(코린토스만)으로 내려오다 좌측 길(동쪽)로 접어들어야 갈 수 있는 어디쯤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다울리아 쯤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테바이(카드모스 성이 있는)고, 직진하면 아테나이이며, 아테나이 방면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코린토스지협에 이르면 코린토스다. 다시 정리하면 그 ‘삼거리’는 파르낫소스 산의 남서쪽 산자락에 위치한 델포이보다는  낮은 곳이며, 해안으로(코린토스만의) 가다가 세 갈래로 나뉘는 길인데, 우회전하면 포키스(시)이고 좌회전하면 다울리아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신탁을 들은 이후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로는 가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다. 코린토스의 왕(폴뤼보스) 곧 아버지(실제는 양부)를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거리'에서 라이오스 왕(사실은 친부)을 죽이고 그가 도착한 곳이 테바이(카드모스 성)다. 그러므로, 그 삼거리에서 오이디푸스는 델포이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남은 길은 포키스시 쪽이 아니면 다울리아 방면이다. 그런데, 그 삼거리도 다울리아도 포기스(나라)에 속한다. 라이오스 왕은 테바이를 떠나 델포이(신탁)를 찾아가던 길에서 죽음을 당한다. 사건 현장은 '삼거리'이지만 마차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길은 두 대의 마차가 교행(交行)할 수 없는, 마차의 폭 정도의 길이다. 때문에 시비가 붙었고 살인까지 저지른 것, 라이오스 왕은 그 '삼거리'에 진입하기 직전이고,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오이디푸는 그 '삼거리'를 막 벗어나 다울리아 방면으로 진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바꾸어놓은 지점은 이 삼거리 부근만이 아니다. 살해를 하고 다울리아 방면으로 가다가(혹은 지나서) 코린토스(시)로 가지 않기 위해 택한 좌측 방면에 테바이(카드모스)가 있었던 것. 두려운 신탁을 피하기 위해 코린토스만 아니면 어디든 찾은 곳이 테바이(사실은 자신의 진짜 고향)였다.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하는 제2의 가해와 그녀와 낳은 그 자식들(2남2녀)의 아버지가 되는 제3의 가해가 이어지는 곳이니까. 오이디푸스가 친부를 살해한 그 삼거리는 비극의 시작일 뿐이었으며, 그러므로 또 다른 '운명의 삼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울리아'가 정확히 어디쯤일까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권 29장 참조)를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일종의 ‘인문지리’를 따르는 기행이다. 전설적인 아테나이 왕 판디온의 딸 프로크네가 테레우스와 결혼하는데, 테레우스는 '지금은 포키스라고 하지만 그때는 트라케인들이 살곤 하던 다울리아'의 왕이었다. 결혼한 테레우스는 처제인 필로멜레가 탐나 범하게 되고 그 범행이 탄로날까봐 그녀의 혀를 잘라버린다. 프로크네는 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이튀스를 죽여 그 고기(요리)를 테레우스에게 먹인다. 이 사실을 안 테레우스가 두 자매를 쫓아가 죽이려 하자 제우스가 그는 '후투티'로, 프로크네는 '밤꾀꼬리'로, 필로멜레는 '제비'로 변신시켰다고 한다(아폴로도로스의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신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도 나온다). 여인들이 이튀스에게 범행을 저지른 곳이 이곳 다울리아이고,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밤꾀꼬리를 언급할 때 '다울리아의 새'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한 판디온 왕이 딸을 테레우스에게 시집을 보낸 것은 다울리이가 아테나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사시 상호원조를 고려한 전략적인 선택인 것. '역사' 등 관련 저작에 따르면 '삼거리'는 포키스 영역 안에 있으면서, 동쪽으로 가급적 아테나이에 가까운 곳에 있다.

 

사는 동안 선택은 불가피하고, 세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듯이 그렇게 살아간다. 어쨌든 연극에서처럼 그런 인생의 ‘삼거리’만을 강조하는 데서 비극(텍스트) 읽기는 멈출 수가 없다. 삼거리의 세 길 중 하나를 선택하여 끝까지 가면 만나는 지명(나라)이 어느 곳인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곳이 테바이라거나 코린토스라면 사정은 다르다. "세 길이 만나는 곳"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 그 선택지 가운데 하나는,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 발생 시점(삼거리 부근)과 오이디푸스가 델포이에서 신탁을 받고 산자락을 내려왔을 때와는 시간차가 있다.

 

"오이디푸스: (신탁을 듣고) 난 뒤 나는 코린토스로 돌아가지 않고
별들을 보고 멀리서 그곳의 위치를 재면서
내 사악한 신탁이 정해준 치욕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않게 될 곳으로 줄곧 떠돌아다녔다오.
그렇게 방황하던 차에 나는 왕이 살해당했다고
당신이 말하는 그곳에 이르렀소." (<오이디푸스 왕> 794-799행)

 

‘부은 발의 오이디푸스’가 델포이(신탁)에서 내려와 향한 곳은 서북쪽 포키스(시) 방면일 수 있다. 그러다가 문득 델포이 부근을 다시 지나게 되었고, 문제의 그 삼거리(사건 현장)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거기서 그는 다울리아로 가는 길을 선택했고, 곧이어 친부를 살해했으며 그 길을 곧장 가다가 또 하나의 삼거리를 만난 것. 그리고 그가 선택한 '(돌아)가지 않은 길'(코린토스 행)은 신탁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선택한 길이 '신탁을 따르는 길'(테바이행)이 돠었는데,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리스 비극을 원전으로 하되 연극은 연극일 뿐이다. 그러나 비극(텍스트)은 비극대로의 고유한 독서의 대상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이 책에서 만나는 천병희의 「오이디푸스 왕」은 최소한 네 번째 오류를 바로잡고 현재의 어감(말 느낌)에 맞게 다듬은 번역이다(개정판이거나 새로운 책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창작자가 아닌 번역가가 져야 할 고역이다. 우리말로 오롯이 그 시대에 맞게 텍스트를 옮기는 것이 이러하거늘 연극 대본과 원전 텍스트를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연극을 잘 이해하기 위해 원전 번역을 읽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텍스트는 텍스트대로 고유한 영역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세 갈래 길이 하나로 만나는 곳. 하나의 길이 세 개로 나뉘는 곳, 삼거리"란 연극의 대사가 맴돈다. 사는 동안 끊임 없이 선택하는 인생을 길(road/way)로 시사점이 있다. 그러나 텍스트로 만나는 삼거리에는

도 다른 본래의 길(road/way)의 의미가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서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때론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도 또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연극 <오이디푸스>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비교하면 발견한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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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역사'에서 다룬 그 전쟁이 발발한 진짜 원인은 따로 있어요, 그는 속삭이듯 그러나 세 차례나 강조한다(이 글에는 인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쐐기를 박는다. 최대한 객관적인 자료에 따라 현대의 사가들에게도 역사기술의 모범을 제시한 그가 조심스럽게 덧붙이는 '의견'이다.

"그러나 과거사에 관해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1권 22장 3절.  그의 예감은 이후 역사, 특히 전쟁의 역사에서 예언이 되었고 적중했다. 인류의 전쟁은 갈수록 첨단무기에 의존하지만, 끝내 핵을 사용하여 공멸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전쟁이 없는 인간의 역사는 없다. 해서 전쟁은 무역전쟁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회적인 전쟁인 것 같지만 전쟁은 자금없이 행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피를 흘리지 않을 뿐이지 예나 지금이나 경제력의 대결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삶은 전쟁이라, 일상의 인간이 마주한 삶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투퀴디데스의 '역사'는 지금도 작동한다.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가 환기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새로운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패권 국가가 두려움을 느끼고 무력을 통해 두려움을 해소하려 하면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것. 그러나 간단치 않은 개념이다. 

 

FT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s trap)을 2018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FT는 파이낸셜타임스로 영국의 경제 전문지다. 2019년에도 올해의 단어가 될 수 있을까, 전망은 그럴 것 같다. (오늘은 베트남 하노이 제2차 북미정삼회담 첫째날, 두 정상들은 지금 회담 첫날 일정인 만찬을 하고 있다.) 2018년의 미중무역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어 특히 주목을 받은 이론이다. 이러한 흐름과 한반도의 평화프로세스가 묘하게 맞물렸다. 제1차 북미정상회담(싱가폴),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오랜 기다림 끝에 '실시간으로' 진행중이다. 이 정상회담이 열리는 곳이 왜 하필 베트남(하노이)일까? 패전국의 대통령이 그 현장에서 승리라고는 할 수 없는 전쟁의 또 다른 상대, '불편하기 짝이 없는' 나라의 정상을 만나고 있다. 북한과 베트남. 제2차 세계대전(특히 태평양전쟁)의 승전국 미국이 아시아 변방의 그렇고 그런 나라쯤으로 여기고 참전했다가 쓰라린 패배를 맛본 전쟁의 상대국이다. 두 차례 연이어 패배한 전쟁, 아픈 손가락이다.

 

한국전쟁이야 객관적으로 시작 전의 균형(대립) 상태로 돌아간 것이니 '비긴' 전쟁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16개국이나 참전한 UN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면서도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러므로 미국으로서는 '실패한' 전쟁이다. 실제로 미국은 오래된 전쟁의 종지부를 찍느니 마느니 평화선언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지금까지도 한국전쟁의 결과를 두고 미국은  전승기념행사를 단 한 차례도 연 적이 없다고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도 그때그때 곳곳에서 격돌한 세력들이 저마다 승리했다면서 승전비를 세우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전쟁의 종지부를 찍고 한반도에 평화의 이정표를 찍는다면, 이야말로 그들의 전승기념행사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운운하면서 그리는 밑그림은 우리의 바람과는 다른 것 같다. 그간 오랜 세월 동안 '한미동맹'을 굳건히 유지해 온 까닭은 무엇일까, 궁극적으로 태평양에서의 제해권(制海權)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며, G2 운운하며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또한 미국이 원망(怨望) 관계인 베트남을 안고 가는 것도(2차 북미회담 장소가 그곳인 것도) 중국 견제의 일환이라고 읽는 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작년 이맘때 특별한 번역서 한 권이  '조용히' 발간되었다. 『예정된 전쟁』(세종서적, 2018.1.31.)이다. 부제에서 언급하는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이 국제 정치판에서 전문가들의 입에서, 그것을 다룬 언론에 회자되먼서 주목받기 시작한 책이다.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이란 용어를 만든 그레이엄 앨리슨의 저작이다. 원제는 <Destined for War: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인데, 한글판 부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이다. 원서의 부제를 직역하면 "어떻게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혹은 '미·중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방법' 쯤으로 정리할 수 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한반도의 평화무드가 조성되면서 번역서의 부제에 '한반도의 운명'이 추가된 것이다.
앞서 그런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비핵화 프로세스는 2018년 1월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로부터 촉발되었다.『예정된 전쟁』은 신탁이라도 받은 듯 기다렸다는 듯이 출간되었다. 예정된 전쟁처럼 '준비된 출판'이었다. 해외의 저자와 출판계약을 하고, 번역자를 섭외하고 번역하고 그 원고를 받은 이후 한 권의 책을 펴내기까지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이 있다. 이를 감안할 때,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대단한 변화의 조짐으로 보고, 실제로는 2018평창동계올림픽(2018.2.9~25.)을 전후한 시점에야 한반도의 평화가 무르익었음을 감안하면 이 책의 출간 시점은 미묘하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영문판 원저는 2017년 5월(5.30.)에 출간되었다. 원전이 출간된 이후 우리말 번역본 출간까지 8개월이 소요되었다. 원서와 번역서가 동시출간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끄는 주제를 다룬 책은 아니었다. 어쨌든 저작권이 있는 책의 번역출판에 주어진 8개월은 결코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번역의 아쉬움을 지적하는 소리가 들린다. 출간 일정을 너무 서두른 결과인 듯히다. 세계 유수의 지도자들, 유명인들의 찬사가 추천사에 담겨 있다. 무엇보다 번역본이 출간된 2018년 한 해, 국내외 언론은 '투키디데스 함정'을 인용한 기사를 마구 쏟아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이러한 국내외 정세와 맞물리고 매스컴의 요란한‘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판매량은 그에 비례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전적으로 추정이다). '예정된 전쟁'은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개정판을 낸다면, 저자와 협의하여 ‘투키디데스 함정’을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새로운 언어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깊이 읽는 가운데 탄생했다. 오래된 새로움이다. 그런 발견이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 있는 발견이려면 대중(독자)들의 독서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건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당사자 중 하나인 우리(국민 독자들은)는 과연 '투키디데스 함정'을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예정된 전쟁'에 대한 국내에서 반응이 시들하다면 그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숙독한 독자들이 그리 많지 않음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작년과 올해 '전쟁사'의 판매 부수에는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개략적인 내용을 숙지하는 딱 그 지점에서 생각도 행동도 멈춘 것은 아닐까? 원전 텍스트를 제대로 읽은 독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으리라, 현상은 그런 짐작을 하게 한다. 사실, 전자책을 포함하여 종이책 읽는 독자층이 줄어든 시대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원인은 늘 보다 근본적인 데에 있다. 이러다가 대학입시나 입사시험을 위해 달달 외우는 시사용어쯤 하나로 '투키디데스 함정'이, 투퀴디데스의 '역사'까지도 가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오이디푸스 콜픔헥스나 플라토닉 러브처럼.

 

"투퀴디데스(기원전 460~400년경)는 상류계급 출신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에 장군으로 선출되어(야전사령관으로) 참전하지만 작전에 실패한 전투(기원전 424년)의 때문에 장군직에서 해임되고 추방되어 무려 20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다. 그 동안 스파르테를 비롯한 펠로폰네소스 지역을 여행하면서 사실(事實)을 수집하고, 확인했는데 이런 자료가 '전쟁사' 집필에 밑바탕이 되었다."

 

"깊은 산 작은 연못 예쁜 붕어 두 마리~" 『펠로폰네스 전쟁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김민기가 노래한 <작은 연못>의 멜로디와 가사가 떠오른다. 저자는 이 전쟁의 주인공들, 아테나이인들과 라케다이몬인들의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제3의시선으로 살핀다. 이들 그리스 세력을 제압하려던 두 차례의 쓰라린 전쟁에서의 패배를 딛고 지중해의 주도권을 쥐려는 영원한 제국 페르시아가 있다. 그들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으로 양대 세력 모두의 몰락을 부추긴다. 전쟁자금이 고갈된 라케다이몬인들에게 군자금을 지원하면서, 용병처럼 부리며 '밀당'을 한다. 그러나 어부지리(漁夫之利)를 하는 세력은 따로 있으니 필립포스2세와 알렉산드로스의 제국 마케도니아다. 그들 또한 가만히 기회만 엿본 것이 아니었다. 이 전쟁 시기에 아테나이인들과 스파르테인들 사이에서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작업'을 하였다. <전쟁사>는 대충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껏 나타난 역사가들 중 가장 위대한 역사가", 이렇게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머콜리는 투퀴디데스를 평가한다. 19세기 독일의 랑케 등은 투퀴디데스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역사가의 이상으로 추앙했다. "나는 주워들은 대로 또는 내 의견에 따라 기술하지 않고,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이든 남에게 들은 것이든 최대한 엄밀히 검토한 다음 기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투퀴디데스는 자신이 참가한 전쟁임에도 객관적인 제3자의 시선으로 서술했다. 함축적인 문체와 날카로운 분석으로 역사의 교과서를 썼다. 그는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를 주제에서,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사료를 취사선택하는 방식에서 극복하였으며 너무도 일찍 '역사의 완성자'로 자리매김했다. 절제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역사가의 '의견'까지 담아 역사 저널리스트의 면모도 보이는데, 그의 예언과도 같은 메시지는 섬뜩하다.


 

"헤로도토스는 두 차례 치른 그리스의 대(對) 페르시아전쟁을 중심으로 '역사'를 쓴다. 헬라스(희랍:그리스)인들로서는 두 차례 비헬라스인(페르시아제국)들의 거센 침공을 막아냈다. 그러나 저들의 힘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의문을 풀기 위해 발품을 팔면서 탐사하고 기록한다."

 

두 차례(기원전 480/489)의 '위대한' 그리스인들의 전쟁이 끝났을 때, 한 편의 ‘특별한’ 비극이 경연무대에 오른다. 아이스퀼로스(기원전 525/4~456/5)의 「페르시아인들」(472년)이다. 비극의 배경은 살라미스해전에 패배한 페르시아 궁전, (승리자인 그리스의 입장이 아니라) 패배자인 페르시아 인들, '전범'인 그들의 왕이 전쟁에서 겪은 불행을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오만’했다. '교만' 때문에 자제하지 못하였고 전쟁을 일으켰으며 끝내 쓰라린 패배를 안게 된 것이라고. 이 작품이 헤로도토스에게 끼친 영향(집필 동기와 <역사>(전반부에서)에 담은 내용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투퀴디데스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보여주었고, 배웠으며, 그리 실행했다. 투퀴디데스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역사'를 통해 아테나이인들에게 인류에게 경계하고자 한 바가 그렇다. 아이스킬로스(비극 시인)와 헤로도토스(역사가) 같은 선배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만 투퀴디데스는 차분하게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가급적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또 하나의 비극 작품(역사)을 쓴 것이다.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25)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터진 해(기원전 431년)에 『역사』를 쓰기 시작한다. 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53세인데 처음 몇 년 동안 전쟁을 체험한다.  『역사』는 기원전 424년에 이미 간행되었고, 그는 곧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한다."

 

팝콘 영화와 같은 일회용 읽을거리가 아니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채 서가에서 장기투숙중인 역사는 더욱 아니다. 세계는 왜 지금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 에 주목하는가? 2018년 그레이엄 앨리슨의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이 국제사회에 울린 '경종'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인 것 같다. 당동행 전용열차에 오른 김 위원장이 중국 변방에 위치한 한 역사에 잠시 내려 담배 한 개비를 피웠다는데, 그 답뱃불을 라이터로 붙였든 성냥으로 붙였든 그것이 그리도 대단한 뉴스가 되어 전파낭비를 일삼는 것일까? '전쟁사'의 한 대목이나 그 고전을 깊이 읽는 가운데, 우리가 당면한 비극을 예견하는 텍스트를 이야기하면서 김 위원장의 구상이나 트럼프가 쥔 카드를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일까?

『펠로폰네스 전쟁사』를 제대로 읽었다면 그 경고('투키디데스 함정')가 사전이 아니라 사후에 보낸 재난문자에 지나지 않음을 절감할 것이디.『펠로폰네스 전쟁사』정독한 국내 독자들이 많다면 그와 비례하여 번역서인 『예정된 전쟁』의 판매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펠로폰네스 전쟁사』를 제대로 읽어야, 드센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당사자인 남한이나 북한이 한반도 평화의 길을 탄탄하게 다질 수 있다. 그에 필요한 살아있는 팁(Tip)을 ‘득템’할 수 있으리라. 청와대를 비롯하여 관련 부처의 고위공무원들, 국정을 입안하는 이들부터 읽어야 할 책이다. 세종대왕처럼 독서휴가라도 줘서 읽게 해야 할 고전인데, 이런 얘기까지 꺼내는 것이 좀 슬프다. 과도한 기대는 금물! 그럼에도 내일의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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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19-02-28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글을 오늘 올리고 보니,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마무리된 모양이다. 강자는 논리는 늘 정의라는 이름으로 펼쳐진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통용되는 논리다.
 
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푸른시원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양운덕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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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의 공연연대를 기원전 430~425으로 추정한다. 소포클레스는 '그 해' 비극경연에서 2등을 차지한다. 그리스 비극의 최고봉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 작품이 2등(엄선하여 출전한 3인 중)이라니, 좀 아쉽다. 그만큼 작품의 주제가 충격적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그렇게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왜 공연 시기를 특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6년 중 어느 해의 가을이나 봄일 텐데, 추정되는 이 시기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당시 그리스의 ‘역사’를 펼쳐야 할 때다. 공연연대로 추정하는 기간은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 초기에 해당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참고하자.

 

무려 27년에 걸쳐 진행된 전쟁이지만 트로이아 10년 전쟁(『일리아스』가 다루는)이 그랬듯이 전쟁 기간 내낸 치열한 전투만이 이어진 것응 아니다. 당시 항구를 낀 아테나이시에는 거의 모든 아테나이인들이 도시를 성(城)으로 삼아, 변두리 농촌지역의 시민들이 파란을 온 상태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전쟁 초기부터 거의 대부분의 전쟁기간을 그들은 그렇게 버텼다. 해군력에서 우위에 있는 그들은 넓은 바다가 피란처였고, 그들의 전쟁자금원인 식민시들이 지중해 곳곳, 특히 페르시아 연안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수많은 함선에 올라 떠나면 되는 것이다. 그들이 육상전에서 우위인 라케다이몬인들(펠로폰네소스동맹의 주도국)에 맞서 싸우는 전략이었다. 그러므로 어지간한 천재지변이 아니고는 아테나이 시 안에서는 일상적인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으리라. 봄가을 두 차례의 주요한 축제 기간에 열리는 비극경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극이 시작되기 전에 발생한 역병(疫病)으로 테바이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러나 당시 왕은 지혜롭기로 인류 최고로 추앙받는 오이디푸스였다. 그는 몇 해 전 테바이를 위기로 내몬 괴물 스핑크스의 위협으로부터 수수께끼를 풀어냄으로써, 도시를 위기에서 구한 사람이다. 때문에, 시민들은 왕을 찾아와 그때처럼 이번 위기에서도 도시를 구해주기를 바란다. 비극의 초반 상황을 주목한 학자들은, 이처럼 역병으로 위기를 맞은 상황이 극 중 상황이, 비극경연이 이뤄지던 당시의 아테나이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27년 전쟁' 2년차(기원전 431)에 발생한 역병으로 아테나이인들은 전의를 상실한 상태다. 전쟁 기간 동안 라케다이몬인들은 수시로 아테나이를 침공하여, 노략질을 일삼으며 ‘도시라는 요새’를 박차고 나온 그들과 일전을 겨루기를 바란다. 역병이 창궐하던 당시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우외환, 아테나이는 안팎으로 위기 상황이다. 그해 여름이다.

 

"처음에는 무슨 병인지 몰라 의사들은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다. 환자들과 접촉이 잦으니 실제로 의사들이 가장 많이 죽었다. 인간의 그 밖의 기술도 전혀 소용없었다. 신전에 가서 탄원을 해도, 신탁에 물어도, 그 밖에 그와 비슷한 행위를 해도 소용없기는 매일반이었다. 마침내 사람들은 불행에 압도되어 그런 노력마저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2권 47장)

 

이 나라에서는 대지의 열매를 맺는 이삭에도,
목장에서 풀을 뜯는 소 떼에게도, 여인들의 불모의
산고에도 죽음이 만연해 있나이다. 게다가 불을
가져다주는 신이, 가장 사악한 역병이 도시를 뒤쫓으니

(『오이디푸스 왕』5~8헹, 전체 1530행 중)


아테나이를 휩쓴 역병은 기원전 429년까지 이어져 그해 여름, 당면한 전쟁뿐만 아니라 아테나이의 황금시대를 지휘했던 페리클레스가 사망하는데, 역시 역병 때문이었다. 그런데 앞서 소포클레스는 테바이를 배경으로 한 「안티고네」(441년 공연)로 비극경연에서 수상한 바 있다. 이즈음 앞선 작품과 내용상 연결되는 <오이디푸스 왕>을 구상하고, 초안을 써놓았을 수 있다. 그러나 비극경연에 참가하여 발표되지 않으면 그것은 쓰이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공연연대가 곧 집필연대인 것이다. 그만큼 그리스에서 비극의 공연은 아무 때나 어디서나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민 모두가 엄선한 그 해의 필독서 몇 권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경우랄까, 시민들은 기꺼히 관객으로 참여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기원전 430~425년에 해당하는 6년 가운데 어느 해의, 봄이나 가을에 공연된 것일까? 


역병이 그해 여름에 발생했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하면 기원전 431년 가을(비극경연은 봄가을 한 해 두 차례 열림) 이전일 수는 없다. 역병 발생 초기의 어수선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듬해인 430년 봄쯤으로 공연 시기를 늦춰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기원전 430~425년 가운데 어느 해라고 하면 그 범위가 넓다. 그만큼 이 시기에 축제도 비극경연도 정기적으로 열리지 않았다는 얘기인가, 그 어수선함을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이디푸스 왕>의 공연 시기는 페리클레스의 죽음 이전일까, 이후일까? 단지 역병만이 아니라---. 테바이에서 ‘오이디푸스 왕’이 그랬던 것처럼, (비극이 공연되던) 아테나이인들에서 페리클레스의 존재감은 무척 컸으리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의 죽음이 가져온 아테나이인들의 상실감과  <오이디푸스 왕>은 어떤 연관이 있어 ‘보인다’. 공연 시기가 그가 사망한 기원전 429년(여름) 이전일지 이후일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이 물음 하나를 가지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초입 부분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작품은 작품이고 현실은 현실, 또한 비극은 비극이고 전쟁은 전쟁, 역사는 역사일 뿐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속수무책으로 번지는 메르스를 제압하지 못하던 몇 년 전을 기억한다. 질병 확산을 막지 못해 온 나라가 뒤숭숭하였고, 지자체의 크고 작은 축제들이 연기되거나 끝내 열리지 못하였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전쟁 중인 아테나이의 상황 또한 축제(비극경연)을 열기에는 '불편한' 상황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한편으로 역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전에 가서 탄원을 해도, 신탁에 물어도” 해법을 찾지 못했다는 ‘역사’ 기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와 비슷한 행위'는 또 무엇일까? 오히려 그런 방편으로 <오이디푸스 왕>은 무대에 오른 것은 아닐까?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개최한 축제에서 당시 시민들의 염원을 반영한 작품을 소포클레스는 쓴 것이 아닐까?  

 ‘왕의 부덕한 소치’로 가뭄, 홍수와 같은 천재지변은 일어나고 나라는 위기에 처한다. ‘오이디푸스 왕’을 희생양으로 삼아 역병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던 것은 아닐까? 희생 제의로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을 해석하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고전학자 베르낭(Vernant)이 대표적인데, ‘신들의 응징으로 집단이 위기에 빠질 때 규범적인 해결책은 왕을 희생시키는 것’이 한 방법이다. 『일리아스』는 역병(疫病)이 창궐하여 전멸 위기에 처한 그리스연합군 진영에서 시작된다. 신탁에 따라 역병의 원인을 밝히고 역시 신탁에 따름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지만, 역병의 원인제공자는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 인간들의 왕의 교만 때문이다. 이 일로 하여 아가멤논의 리더십은 복구 불가할 정도로 훼손되며, 참혹한 비극이 이어진다. 일종의 응징이다.
베르낭은 ‘왕을 희생양 삼기’라는 점에서 그리스의 오스트라시즘(ostracism; 도편추방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기원전 6세기 아테나이에서 실행되던 이 제도는 독재자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추방하기 위한 제도였다. 공정한 재판과정을 거치지도 않았다. 아고라에서 공동집회가 열리면 시민들은 질그릇조각(도편:陶片)에 자기가 생각한 사람의 이름을 적는다. 그렇다고 시민들이 그렇게 지목된 사람을 비난하지 않으먀, 지목된 사람은 방어할 수 있는 절차도 없다. 떠나야 하고 떠나는 것이다. 아테나이의 입법자 솔론은 이러한 관행을 “한 도시는 그 도시의 가장 위대한 사람들을 파멸시킬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살라미스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도 그렇게 아테나이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페르시아 왕을 찾아가 말년을 의탁하고 이국땅에서 인생을 마감한다. 뒤이어 아테나이를 해상제국으로 이끈 사람이 페리클레스가 아닌가, 물론 아테나이가 역병(과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페리클레스를 제거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을 ‘희생양-왕’으로 해석할 때, 또한 관객(시민)들이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전쟁의 진짜 원인을 투퀴디데스는세 차례나 강조하는데 요지는 이렇다. 펠로폰네소스동맹이라는 육상세력의 주도국 라케다이몬인들(스파르테)이 해상 세력(델로스동맹)의 주도국 아테나이인들의 세력이 날로 확산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라고 단언하는 투퀴디데스의 진단을 저버릴 수 없다. 사망하기 반 년 전 초겨울 페리클레스가 행한 '아테나이인 전몰자들을 위한 추도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수록된 40여 편의 연설문 중에서도 백미(白眉)로 꼽히며 가장 빈번하게 인용된다.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업적에 관해 들으면 샘이 나서 연사가 과찬을 한다고 생각할 테니 말입니다.' , ’남들에 대한 칭찬은 각자가 자기도 들은 대로 할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선까지는 용납되지만, 일단 그 선을 넘어서면 시기와 불신을 사게 됩니다.(이 책, 2권 35[2] 살아있을 때는 누구나 경쟁자들의 시기를 사지만 죽은 자들에게는 누구나 경쟁심이 없어져 따뜻한 경의를 표하기 때문입니다.’(2권 45[1])

 

페리클레스가 스스로에게 하는 당부처럼 들린다. 리클레스는 이 전쟁이 터지고 2년 6개월을 더 살다 죽었다. 그거 남긴 유언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은인자중하며 함대를 증강할 것, 전쟁동안에는 제국을 확장하지 말 것, 도시를 위험에 빠뜨릴 모험을 하지 않는다면 승리할 것임." 아테나이인들은 이런 경고를 묵살했고, 전쟁을 멈추지 않았으며 끝내 멸망의 길에 접어든다. 소포클레스가 말년에 쓴 또 하나의 명작「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 왕은 오랜 기다림 끝어 '마침내' 추방되어 방랑하지만 곧 신의 구원을 받고 신적인 존재가 될 뿐만 아니라 콜로노스의 수호신이 된다. 그가 영면하게 되는 그 땅을 그 도시를 그가 지킬 수 있는 일종의 선물을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투퀴디데스는 기원전 5세기 중엽 페리클레스의 주요 정적을 배출한 귀족가문출신이고 스스로가 민주제의 열렬한 지지자가 아니었음에도, 아테나이의 민주제를 확립한 페리클레스를 열렬히 찬미자하였다. 미처 하지 못한 얘기가 있는 것은 아닐까?  (‘희생양-왕-오스트라시즘’ 부분은 이 책 말미에 수록된 철학자 양운덕의 해설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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