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날씨는 창 안에서 볼 때 더 우울해 보인다."(J. K)
보통은 다른 컴퓨터로 지상파든 공중파든 뭐든 실시간TV나 라디오를 켜놓고 할 일 하지만, 유독 명절 즈음엔 그렇지 않게 된다. 명절 분위기에 편승하고 싶지 않은 것. 1인 가구가 나라 전체 가구수의 25%, 1/4에 이르렀다니, 왜 그런지 더 이상 설명은 필요없을 듯. 물론 나머지 75%, 3/4에 속하는 가구의 구성원들, 부모와 자식들의 삶도 마음도 명절이라고 마냥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는 것일까?
"독신으로 지내는 것보다 더 나쁜 게 있다.
독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B.S.)"
이라는. 그럼에도 추석 날 아침 창(WINDOW)를 잠시 벗어나기로 했다. 명절은 누가 뭐래도 영화 한 편. 그렇게 찾은 영화가 <사도>. 결정적으로 한 편 봐줘야지, 라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은 "잘 봤는데 추석에 보기엔 쫌..." "무거웠다" 등등의 멘트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창 밖으로 나가자. 그렇게 <사도>를 봤는데, 결론부터 얘기하면, 창 밖을 나가 다른 창을 만나 창 밖의 우울한 세계를 또 보았다는 거다. '창 밖의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 책 이야기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는 67세쯤이던 어느 날, 한 귀족 청년을 만난다. 이름은 메논. 훗날 크세토폰의 『페르시아 원정기』('아나바시스'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에서 (페르시아 권력 쟁취에 용역으로 나선) 그리스 용병을 지휘하는 장군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메논의 노예인 소년 일명,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이 아뉘토스다. 그는 아테나이의 민주제 지지자로 이 즈음 메논이 머무르던 집주인이다. 이렇게 플라톤의 『메논』의 대화자는 이들 네 사람이다. 그리고 이 대화편의 핵심 주제는 <'미덕'이란 무엇인가?>인데, 정작 미덕의 정의(定義)보다도 미덕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안 파생된, 미덕은 가르칠 수 있는가, 없는 것인가, 하는 논의 중 나온 질문이 흥미로우며 자극적이다. 머잖아 소크라테스가 고소되어(세 명의 고소인 중 하나가 아뉘토스다) 법정에 서게되는 한 계기가 이 대화편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모래 속에서 알의 껍질을 깨고 갓 때어난 거북의 새끼는 어떻게 어미가 길을 안내하는 것도 아닌데, 곧바로 물을 찾아 이동하는가? 동물의 세계를 다룬 다큐에서 자주 보여주는 모습 가운데 하나다. 소크라테스(혹은 플라톤은)는 오늘날 불교의 '윤회설'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미덕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지, 생후에 습득하는 것,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일관되게 피력한다. 이른바 상기(想起)론을 일관되게 주창한다. <상기하자 6.25.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표어가 지금도 시골 농협창고의 벽면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필자에게 '상기(想起)'라는 단어는 이런 표어나 반공글짓기, 궐기대회에 '동원되어' 참여한 함성으로 기억되어 있다.
이미 태어나기 전에, 전생의 흔적들(기억들)을 가지고 왔기에 그렇게 태어났고 사는 법도 안다는, 사는 데 필요한 정보도 어떤 계기를 만나 다시 기억해낸다는 얘기다. 그것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대화편 중간에 아뉘토스와 소크라테스는 일대일로 대화하는데, 마치 치킨게임처럼 한치도 물러섬이 없는 팽팽한 대결을 펼친다. 늘 그렇듯이 소크라테스의 완승이다. 소크라테스는 아뉘토스에게 자신들의 미덕을 남들에게 가르친 훌륭한 교사가 모두가 아는 인물 중에 있느냐고 근거를 댈 것을 요청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진 미덕을 자기 자식들에게 전수한 사람이 있느냐고.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미덕을 왜 숱한 재산과 여러 자질들은 자식에게 전수하거나 증여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는가? 메논과 소크라테스의 대화가 주를 이루지만 중간에 아뉘토스가 대화에 참여하여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는 부분, 『파이드로스/메논』의 188면에서 200면에 이르는 21면가량의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쫌' 있다.
아뉘토스가 내세우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테미스토클레스다. 영화<300>의 속편. <제국의 부활>에서 '대중적으로' 부활한 인물이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왜 자신의 삶은 화려했음에도(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뭔가 있었다) 자식에게는 그 '무엇'을 대물림하지(가르치지) 못하였을까를 제시한다. 이렇게.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우리는 테미스토클레스가 다른 분야는 아들에게 가르치기를 원하면서 자신이 지혜로웠던 분야에서는 아들을 결코 이웃보다 더 나은 인물로 만들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미덕이 배울 있는 것이라면 말일세." _『메논』93e
아리스테이데스, 투퀴디데스의 사례를 소크라테스는 또 다른 논거로 제시하고, 아뉘토스는 논박당한다. 결론은 '미덕은 배울 수 없는 것' 그러므로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라는 게 소크라테스의 주장이다. 우리 영화 <사도>를 떠올려본다.
"<사도>는 영조와 세자가 어떻게 해서 비극이 펼쳐졌는지를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인문학적인 메시지와 감동을 주려고 한다. 이준익 감독이 '사도세자'를 영화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인 것."
_<사도>, 폭넓은 감동으로 관객들을 이끌 수 있을까? '의미 있는 슬픔', 2015. 09. 22. <헤럴드경제> 소준환 기자
기자는 '왜'가 아니고 '어떻게'에 방점을 찍어야 하며, 그것이 인문의 기본 정신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어떻게'가 <뒤주에 가둬서 물 한 모금 주지 않은 채 굶어 죽게 했다>는 처형 방식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안에 '왜'가 포함되어 있다. 마치 그동안 장희빈 못지 않은 사극 소재로 영조-사도세자-정조, 3대 이야기가 충분히 다뤄져 왔고, 이미 관객들은 '왜'에 대하여 나름의 대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첫째 날 영조의 대사,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다. 나는 지금 가장으로서 애비를 죽이려고 한 자식을 처분하는 것이야” 넷째 날의 다음 “이 일은 궁궐 담장을 넘을 수 없는 내 집안의 문제다”라는 대사도 '왜'와 '어떻게'의 경계지음 못지 않게 말이 안 되는 말이다. 그 사건을 한 집안의 일일 뿐이라고 한정할 수 있다면, 왕조 조선의 신하들은, 백성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라는 말인가. 세자가 왕위를 물려받을 자식이기에 시작된 비극이 아니었던가. 권력을 남용하여 자식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상속세를 최소한으로 내려고 갖은 편법을 자행하는 재벌가의 편법상속을 우리는 비판할 수 있을까? 역사는 가정할 수 없다는 말처럼, 무의미한 또한 무자비한 '주문'으로 들린다.
부모가 자식에게 부와 권력을 물려주려는 것은 본능이다. '세습을 통해 완성되는 인간 고유의 욕망'에 의해 부모와 자식은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강한 유대를 가지는 것. 인간의 본능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이 그리고 물려줄 수 있는 것과 물려줄 수 없는 것을 분간하지 못한 데서 영조와 사도의 비극은 시작되는 것이다. 알게 되면 인간은 곧 누군가를 가르치게 되어 있다. 특히 아이보다 먼저 세상을 살았던 어른들, 그렇지만 모든 어른들이 후세대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또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플라톤의 『메논』의 사례에서 거론하였듯이, 특히 부모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집안 일일 뿐이라면, 아버지 영조는 아들 사도를 그렇게 사랑하고 기대하기에 실망하고 증오하는 일이 벌어졌을리가 없다. 세 개의 명언을 골라보았다.
(1)어른은 누구나 가르칠 아이가 필요하다. 그래야 어른도 배우게 된다.(F. C.)
(2)꾸지람 뒤의 격려는 소나기 뒤에 나오는 태양 같은 것.(요한 볼프강 폰 괴테)
(3)조숙한 아이보다 더 지겨운 존재는 그 아이의 어머니.(J. W. M.)
명언들 각각의 함의는 해설하지는 않으련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왜'를 품은) '어떻게' 영조가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잘 알 것이므로. 다만, 위 (3)과 관련하여 '애어른'을 등장시키는 TV쇼프로그램(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고)들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도한 기대는 골깊은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것이 아니라면 그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애어른 캐릭터를 소비한다는 것인데, 좀 웃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다시 대화편 얘기로 돌아와, 앞서의 논변에서 밀린 아뉘토스가 남긴 말이 예사롭지 않다.
"아뉘토스: ...선생님께서는 남을 헐뜯는 것을 쉬운 일로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하지는 나는 선생님에게 조심하라고 충고하고 싶어요. ...이 나라에서는 확실히 남을 이롭게 하기보다는 해롭게 하기가 쉬워요. .."
결국, 아뉘토스는 앞서 대화 참여자들 설명에서 언급하였듯이 3년후, 소크라테스를 고발하는 3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된다.[『소크라테스의 변론』참고]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그러므로 유죄판결을 받게 될 것인데,
"내가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밀레토스 때문에 아니고 아뉘토스 때문도 아니며,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 시샘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죄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게 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나와 함께 끝날 염려는 없습니다. "
=『소크라테스의 변론』28a~b
라고 소크라테스는 변론하지만, 그 구체적인 사례로서 .『메논』에서의 대화는 당시 아테나이 시민들의 정서를 감안할 때 '불온한' 의견이었던 셈이다. 더구나 재판정에 나와서도 소크라테스는 몇몇 고소인들만이 아니라 (배심원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플라톤은 스승의 행적과 사상을 보전하기 위해 대화편들을 쓴다. 일종의 가늘고 긴 '명예회복' 과정이며 일종의 '복수'다. 한 자연인이 인간들의 결정에 의해 사형판결을 받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잘 스케치하고 있다면, 『메논』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에 해당하는 그 밑그림에 색을 입힌 채색화로 비유할 수 있다. 테미스토클레스나 페리클레스 등 아테나이 시민들의 자부심을 소크라테스는 가차없이 무너뜨린 것이다.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결국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을 듯하다. 숱한 신하들이 곁에 있었지만, 누가 감히 나서서 이를테면 '미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배울 수도 없지요. 더구나 자식을 아비가 가르치는 일은 불가합니다, 라는 충언을 할 수 있었겠는가.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지만, 영조는 너무 오래 살았기에(왕위에 머물렀기에) 비극의 한 주인공이 된 것은 아닐겠는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뜻이고 그래서 부모에게 부모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부모에게 자신의 부모 역할을 계속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 세계가 계속 상징적 부모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성숙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차이(어떤 것의 대체물과 그것을 상징해아 하는 것의 차이)에 통달하고, 아무리 아쉬워도 성인에게 어울리는 대체물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로버트 노직,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2장 '부모와 자식'에서)
좀 어렵다. 역사는 가정할 수 없지만, 영화 <사도>에서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비극이 수습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순간은, 대리청정 즈음이 아니었을까? 사도세자 스스로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왕의 길을 실습할 수는 없었을까? 왜 그 거리 유지에 영조는 실패한 것일까? 정직원으로 채용하기 위한 인턴 과정이 아니었던 것일까? 영조의 출신 컴플렉스, 왕권 강화를 위해 탕평책을 쓰면서 신권과의 갈등과 타협의 살얼음판을 걸어온 사람, 늘 신중하고 또 신중하였던 영조로서는 자식이 자신과 같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갈 것에 대해 우려하고 또 우려했을 것이다. 천상 아비다. 어느때보다도 한 자녀 가정이 많은 우리나라, 정책적으로 인구억제책을 쓴 중국에서 자식을 향한 부모 역할의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자식보다 한 살만 더 살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완성되는 것일까?
"궂은 날씨는 창 안에서 볼 때 더 우울해 보인다." 설마 이런 심각한 영화였어! 영화 <사도>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영화 한 편을 더 보자고 상의하는 장면을 곳곳에서 목격했다. "아버님, 한 편 더 봐도 괜찮으시겠어요"(자식이 아버지를 걱정하는 소리다) 아마도 <사도>에 앞서 개봉한 <베테랑Veteran>이 천몇백만의 흥행성적을 거둔 데에는 '결정적'은 아니라도 <사도>의 우울모드가 '상당한' 역할을 했으리라. <베테랑>은 과연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였을까?
"
생각한다
눈 오는 섬진강과 지리산 사이에
남과 북 사이에
은서네 피아노학원과 종점세탁소 사이에
홍매화와 목련꽃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또 무슨
병은 없는지
"
=곽재구의 시 <사랑이 없는 날> 일부(『와온바다』에 수록). 인용한 시를 참고하여, 제목을 <사이에 슬픔은 없는지>로 미리 정하고 쓰기 시작한 페이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