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기원전 427~347)은 <향연>을 기원전 381년에 쓴 것으로 추정하는데(집필 시기), 비극작가 아가톤이 기원전 416년 레나이아 제(祭)의 비극경연에서 처음 우승한 것을 자축하기 위해 베푼 술잔치(symposion)가 배경이다.
크세노폰(기원전 428년경~354년경)도 플라톤과 동일 제목의 대화편을 남겼다. 크세노폰의 <향연>은 기원전 421년 대(大)판아테나이아 축제 때 칼리아스가 자기 집에서 베풀었다는 '가상의' 만찬회에서 있었던 일을 (크세노폰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비록 ‘설정’이라 해도 작중 ‘향연(대화)’ 시점을 크세노폰이 명기한 것은 당시의 소크라테스의 생각(철학)을 추정하는, 단초가 된다. 당시의 소크라테스라면 이런 식으로 발언했을 것이라는, 제자의 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향연>과는 달리 크세노폰이 이 대화편을 쓴 시점은 특정할 수가 없다.
한 작가가 특정 작품을 ‘언제’ 썼을까, 하는 문제를 푸는 데는 그의 전기적인 기록을 살핌으로써 가능하다. 크세노폰의 대표작 중 하나인 『페르시아 원정기』(이하 ‘원정기’)에 고스란히 담긴 그의 ‘원정(용병 참여)’은 그가 직업군인이자 저술가로 생을 일관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크세노폰은 이 원정을 떠나기에 앞서(기원전 401년 3월 이전) 소크라테스를 만나 상담한다(‘원정기’에 수록). 만 2년에 걸친 원정이 일단락되었을 때는 기원전 399년 봄으로, 그해에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는 사형을 당한다. 원정이 끝났음에도 크세노폰은 곧바로 귀국하지 못한다(그리고 잠시라도 언제쯤 아테나이에 들렀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지켜볼 수 없었고, 멀리서나마 비보에 애통해하였을 것이다. ‘원정기’는 여느 저술보다 크세노폰의 자전적인 저술이기에 '전기적' 관점에서 크세노폰을 추적하는데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이력을 따라가는 글은 별도로 다루기고 하고) 크세노폰에게 <향연>은 어떤 의미였을까, 관련된 저작들을 살피면서 생각을 펼쳐볼까 한다.
크세노폰이 아테나이에서 추방된 시기(기원전 394년)를 기점으로 이후 시골에서 살며 집필활동에 전념했다는 20년을 계산하면 기원전 374년까지가 된다. 또한 그가 코린토스(펠로폰네소스반도의)로 거처를 옮기기(기원전 371년) 전까지 20년을 집필에 전념한 시기(기원전 391~370년)라고 볼 수도 있다. 아테나이에서 추방당한 그가 스파르테가 준 (올룀피아의) 영지에 정확히 언제부터 머물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추방령이 철회되어 기원전 366년 조국(아테나이)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나이는 62세쯤이 된다. 그렇다면 그는 집필에 전념한 시기에만 집필을 했을까? 다산(정약용)이 유배지에서 18년을 그리 살았던 것처럼.
그런데 그의 사망 시기 또한 특정할 수 없어 (그의 다른 저작인) 『그리스 역사』에서 그가 다루는 마지막 사건을 근거로 추정하고 있다. 『페르시아 원정기』(다른 원정기들에 반론을 제시하는 데서) 또한 말년에 쓴 것으로 보는 점 등(천병희의 옮긴이 서문)에 따르면, 크세노폰은 죽는 순간까지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그가 <향연>을 언제쯤 쓴 것일까, 그 시기를 특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다만 그 집필 시기가 플라톤의 <향연>(기원전 381년)보다 앞서는 것일까, 그 이후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답할 수가 있을 듯하다.
크세노폰이 쓴 일련의 글들(<소크라테스 회상록>, <향연>,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거의 같은 시기에 쓴 '소크라테스 회상‘ 모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회상록>에서 그는(당시 자신은 페르시아에 머물렀고, 이후에도 한동안 아테나이에 올 수 없었기에) 소크라테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본 이에게 듣기도 하고, 관련된 기록들을 살폈음을 밝히고 있다. 관련 기록물에는 플라톤의 관련 대화편들이 당연히 포함되었을 것이다. 또한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고'에 속하는 글들은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소크라테스-플라톤'(플라톤에 의해 재구성된 소크라테스의 삶과 철학) 문제를 감안하고 쓴 것으로 보인다. 아니 누구보다도 먼저 플라톤의 ’권위에 의한 논증‘ 작업에 이의제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련의 다른 글들보다 (크세노폰의) <향연>에서 그런 흔적(집필 동기)이 두드러진다.
"나는 진실로 훌륭한 사람들의 행동은 진지한 것뿐 아니라 장난삼아 한 것도 언급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경험을 했기에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 밝히고자 한다."
크세노폰의 <향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물론 플라톤의 대화편들에서도 소크라테스는 특유의 '산파술'에 의거한 대화의 진행방식(언어유희처럼 보이기도 한다)이나 곳곳에서 재담을 즐길 뿐만 아니라 밉지 않게 짓궂은 장난을 행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크세노폰은 그런 정도로는 평소의 소크라테스의 진면목을 제대로 담았다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향연'이 열렸다는 기원전 421년, 대(大)판아테나이아 축제 때 칼리아스가 자기 집에서 베풀었다는 가상의 만찬회라는 '설정' 자체에서부터 뭔가가 있다.
그리고 그 ‘뭔가’는 플라톤의 <향연>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고 플라톤(<향연>)을 본격적인 패러디했다고 보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서두에서부터 패러디적인 요소를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다만 크세노폰은 자신의 <향연>을 통해(‘의해’가 아니라), 자타가 공인하는 소크라테스의 적통 제자인 플라톤에게 '이의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집필 시기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뉘고, 후기로 나아갈수록 소크라테스의 영향에서 벗어나 플라톤 자신의 철학(혼불멸론이나 이데아론 같은)을 설파하고 있다. 하지만 대화편 전체에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소크라테스-플라톤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향연>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에 속하는데, 적어도 크세노폰은 <향연>을 비롯하여 그 이전에 쓰인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섭렵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제 좀 스승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라고!" (‘절제, 절제, 절제’ 스승을 앞세운 마케팅에도 '절제'가 필요함을) 크세노폰은 플라톤에게 일침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플라톤의 <향연>은 기원전 416년의 일을 다룬 것이고, 크세노폰의 <향연> 기원전 421년의 일을 다룬 것이니, 플라톤이나 크세노폰이나 어려서 그 '향연' 자리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토론 주제로 두 번의 ‘향연’은 불과 5년 차이인데 소크라테스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다는 말인가? 또한 플라톤의 <향연>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는 이가 상기(想起)한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설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단한 발언들이 쏟아진 자리였다고 하자. 그러나 기억을 재구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필요에 따라 덧붙여지고, 재구성을 하였을 것이다. 크세노폰은 플라톤 당신도 그 자리에 참석한 당사자가 아니면서 너무 '진지하게' 술잔치에서(나) 나눴을 법한 얘기를 무겁게 전개하는 것 아냐, 반문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나의 스승이기도 했어!' 비록 직업군인으로서 전선을 누비고, 추방당해 오랜 기간을 고국(아테나이)을 떠나 있(었)지만, 크세노폰은 플라톤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초상에 '불편함'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나만 불편한가?’ 크세노폰의 독백이 행간에서 읽히는 것이다.
플라톤의 <향연>에 대한 패러디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로저 스크루턴(1944~ )의 『프뤼네의 향연』(김재인 옮김, 민음사, 1999)을 우연히 읽었다. 소설이라고 해서 ‘그렇고 그런’ 책이다 싶어 서가에 꽂혀 있을 뿐이었던 책이다. 비록 철학자가 쓴 철학소설이지만, 플라톤의 <향연>에 대한 본격적인 (그리고 노골적인) 패러디로, 플라톤주의자들은 금서(禁書) 목록의 1호로 지정하고 싶은 책일 것이다. 본래 『프뤼네의 향연』은 저자의 『크산티페의 대화』(한 권으로 엮은)이란 저서에 수록된 대화편(철학소설) 가운데 하나인데, 한국어판에서 독립시켜 한 권으로 펴냈고, 나머지는 대화편들은 『크산티페의 대화록』이란 별권으로 출간되었다.
『프뤼네의 향연』의 주제도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향연>이 그렇듯이 '사랑'이다. 그런데 저자는 책 뒷부분에에 수록한 글(<‘프뤼네의 향연’과 그 안에 묘사된 인물들>)에서 의미 있는 언급을 한다. ['향연'은,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것 이외에도 몇몇 예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4세기 아테네의 정착된 문학형식이었다.]라는 대목이다. 출처는 J. 마르틴 <심포지움: 한 문학적 형식의 역사>(Paderborn, 1931)다. 아마도 '기원전 4세기'를 말하는 듯한데, 인용에는 '4세기'라고만 되어 있다. 앞서 기원전 얘기를 하고 있으므로, '기원전'을 생략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인용에서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것 이외에도'라는 대목이 중요하다고 나는 보았다.
『프뤼네의 향연』은 플라톤의 <향연>과는 대조적으로 등장인물이 모두 여인들이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의 역할을 담당하는 이는 그의 미망인 크산티페다.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라는 용어의 의미는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서 기원한다.(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 하나로 다 알았다고 하는 것과 비교할만한 이야기다) 어쨌든 '위키백과'에 따르면, '플라톤 사랑은 순수하고 강한 형태의 비성적(非性的)인 사랑'이다. 그러나 『프뤼네의 향연』에서는 육체적인 사랑의 가치를 폄하하고 시종일관 근엄한 플라톤의 이미지는 심하게 훼손된다(물론 소설이다). 『프뤼네의 향연』에는 플라톤의 누이와 그 누이의 딸이 ‘향연’에 참석하여 나름의 주장을 필치고, 플라톤마저 간접적으로 등장하여 <향연>(플라톤) 패러디의 임계점을 넘나든다. 크산티페의 우정 어린 변호에 힘입어 플라톤 또한 ‘트라우마’에서 해방되기는 하지만, <19금>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위험한’ 발상을 이 소설은 서슴지 않는다.
'더 이상의 패러디는 아마도 없다'라고 해야 할까? 절판되어 도서관에서나 구해 읽어야 할 상황이라(알라딘 정보) 아쉽지만 말이다. 로저 스크루턴은 그 자신이 철학자이기도 하지만, 크세노폰의 <향연>에서 용기를 얻어, 이런 철학소설을 쓰지 않았나 싶다(움베르토 에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장미의 이름』을 구상했듯이). 로저 스크루턴에 비하면 크세노폰의 <향연>은 플라톤의 '작품'을 점잖게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또래이면서 집필 시기도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의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크세노폰의 '용기'가 돋보인다. 사랑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플라톤이 합리적인 논증 형식을 고집했다면, 크세노폰은 철학적 '직관直觀'에 따라 시원스럽게 가상의 '향연' 한마당을 펼친 것이다.
-천병희의 (원전번역) <향연>은 세 편의 대화편들과 함께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2012년, 양장본)이란 이름으로 출간되었다(현재는 2017년 개정판이 나와 있다). (아마도) 개정판을 펴내면서 ‘푸른시원 시리즈’로 『향연』(2016.9.)을, 이어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다룬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2017.3.)을 반양장본으로 펴내, 새롭게 다듬은 번역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하였다. 특히, 『향연>에는 철학자 양운덕의 해설(<사랑의 진리를 찾아서_<향연>읽기, 사랑의 향연에서 진리의 향연으로>)을 곁들여 사랑의 탐구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고 있다.
"철학적 에로스는 '주체의 금욕'을 바탕으로 함께 '진리로 상승하는 길'을 찾는다. 이처럼 지혜를 추구하는 사랑은 새로운 사랑방식을 제시하고, 사랑을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는 '새로운 연예술이자 새로운 '생활양식'이다."
해설의 끝부분 언급은 이렇다. 이 해설은 자신의 책 『문학과 철학의 향연』(문학과지성사) 제4장, 『사랑의 인문학』(삼인) 제2장을 수정·보완한 원고라고 한다. 원전번역과 함께 이처럼 고전 자체가 함유한 ‘미덕’을 읽는 데 도움을 주는 ‘후속작업’에 박수를 보낸다.
-천병희가 원전번역한 크세노폰의 「향연」은 『소크라테스 회상록』에 「소크라테스 회상록」,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절판되었지만 『프뤼네의 향연』(로저 스크러턴, 김재인, 민음사, 1999)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프뤼네의 향연>을 읽으면(철학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플라톤의 『향연』을 다시 펼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비로소 크세노폰의 『향연』(의 가치에도)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프뤼네의 향연』과 세트로 동시에 출간된 『크산티페의 대화』(1999, 절판)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크산티페의 대화』에는 <크산티페의 국가>, <페릭티오네의 파르메니데스>. <크산티페의 법률>까지 세 편의 대화편(철학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들만 보면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법률><파르메니데스>(박종현/천병희/정암학당 필진들에 의해 [원전]번역되어 있다)들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크산티페의 대화』는 플라톤의 주요 대화편들에 대한 패러디로 플라톤 대화편 전편과 관련된 '소크라테스-플라톤'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한다. 어쩌면, 인간 그리고 스승 소크라테스의 미덕을 플라톤이 여러 대화편에서 설파하려 한 것을 한 권에 담아낸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과 『크산티페의 대화』는 저마다의 역할을 하면서 상당수 난해한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접근하는 가이드 역할을 하게 되리라, 필자는 그렇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