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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세트 - 전7권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학교 수업을 빼먹은 프란츠가 모처럼 마음을 고쳐먹고 들판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교실로 돌아간다. 다시 학교로 가는 길, 면사무소 앞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게시판 앞에 모여 있다. 2년 전부터 패전, 징발 명령, 포고령 등 나쁜 소식들이 오르내리던 게시판이다. 교실로 돌아간 프란츠는 '어쩌다' 선생님이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에 참여한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마지막 수업 The Last Lesson)은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로이센(독일)에 넘겨준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해, 오늘 못한 일은 내일 하면 되지, 뭐!”, "프랑스어를 굳건히 지키면 남의 지배를 받더라도 영원히 빼앗기지는 않을 것, 마치 감옥에 갇혔지만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명대사를 날린다.
하루 종일 직접 재배한 유기재배(사양의) 땅콩을 까면서 향년 84세를 일기로 막 천상의 세계에 진입하신 고전번역가 천병희 선생님을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지막 수업>의 몇몇 장면들이 떠올랐는데, 그 이야기할까 한다. 소설의 이론 강의에서 이 작품을 인용할 때는 실제 전쟁의 참상은 등장하지 않으면서 어수선한 분위기, 전쟁으로 인한 혹은 전쟁 패배에 따른 변화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게시판 앞에 모여든 주민들의 불안한 분위기는 생활이다. 선생님이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은 학교 생활인데, 여기에서 전쟁의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빛나는 대목은 소설의 끝 부분, 멀리서 대포 소리가 쿵쿵 울린다와 같은 마무리다. 이 한 대목 때문에 이 소설은 전쟁소설 갈래에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인들의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의 속살을 엿보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해지는 풍경을 손에 쥔 모래알들이 흩어지는 것에 비유한 이도 있거니와 세상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해서 '마지막'이란 단어에는 아련한 뭔가가 함유되어 있다. 남원 광한루원 북동쪽에 자리한 춘향 사당의 뒤안 가득 핀 상사화를 볼 때의 느낌이랄까(성춘향과 이몽룡이 사랑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라는 상징일까)? 고전번역가 천병희 선생이 저세상으로 가셨다. 12월 21일, 23시 무렵. 그리고 24일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브에 고향 땅 고성의 한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천병희 선생이 한국어권 독자들에게 남기 마지막 번역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다 혹은 다행히 선생님의 80세 생일에 맞춰 완간된 플라톤전집(전5권) 중 하나, 위작임이 분명하다고 학자들이 판정한 작품 중 하나이지 않을까, 추정할 수 있다.
'이 분은 저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와 같이 플라톤이 쓴 플라톤의 대화편임이 확실한 <소크라테스의 변론>, <향연>, <국가> 이어 <법률>까지 , 굵직한 대작들, 그리고 상징적인 대화편들을 먼저 번역하여 세상에 내놓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위작들까지는 모조리 번역하여, 우리말로 그것도 한 번역가가 <플라톤 전집>을 완역하는 대역사를 천병희 선생님은 이루고 가셨다. 그것도 철학전공자가 아닌 독문학자 혹은 고전학자가 이룬 성과다.
하루 종일 글제목을 뭘로 뽑을까, 지루하기 짝이 없는 피땅콩을 알땅콩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면서 생각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독자들에게 천병희 선생께서 남기신 마지막 선물, 마지막 수업.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하나 번역의 고역을 행하는 중에 선생은 회의감이 일었으리라. 하지만 꾹 참아내시고 번역에 집중했다. 위작인지 아닌지도 반신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작품들까지 원전 번역을 하여 한국어 독자들도 위작 논란에 참여하게 해주셨다.
덧붙여 <마지막 수업>이란 단편소설을 떠올린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한국어판 플라톤 전집이 간행됨으로써, 한글이 모국어인 이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일인데, 소설 속 상황과 오버랩이 되는 이유이다. 아이스퀼로스비극전집, 소포클레스비극전집, 에우리피데스비극전집(전2권), 아리스토파네스희극전집), 이어 플라톤의 대화편전집(전7권)까지, 선생은 전집 완역에 노년을 고스란히 바치셨다. 특히 플라톤전집은 기존의, 평생 진행한 그리스와 로마 문사철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존의 번역과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또한 죽음이 이승에서 저승으로의 이주와 같은 것이 사실이라면 , 배심원 여러분,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 또한 여러분 가운데 누가 오르페우스, 무사이오스, 헤시오도스, 호메로스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대가로 얼마를 내겠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나는 몇 번이고 죽겠습니다."
-천병희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론> 후반부,
죽음(사형)이 결코 두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차라리 행복이라고 역설하는 <소크라테스의 변론> 중 일부입니다. 지금 천상에 갓 진입하셨을 천병희 선생께서 가장 먼저 만나보고 싶은 사람은? 플라톤일 것입니다. "당신 뭔 글을 그리 난해하고 난삽하게 쓰신 것이오! 집이 말씀대로 캐묻고 따지고 싶은 대목이 참 많읍디다. " 그런 하소연을 통역없이 번역도 없이 희랍어로 나누고 계시지 않을까? 고인의 명복을 빌며, 사는 동안 한국인들에게 서양 고전에 접근 가능한 지름길을 내어준 천병희의 플라톤전집(전7권)을 일독할 것을 권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