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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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리아스다. 『일리아스』에서 발견하는 숫자 이야기를 하다, 열두 척의 배 이야기를 시작했고, 문득 정유재란 당시 충무공에게 주어진 미션을 단편소설 분량으로 헉헉 '구성'했다. 『일리아스』를 읽다보면 대체로 2권 함선목록 부분에서 위대한 고전읽기의 희망찬 항해의 닻을 내린다지만 그래도 인내하며 읽는 동안 보이는 것이 있다. 그런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 중 하나다. 『일리아스』에는 열두 척 함선과 관련된 세 인물(혹은 영웅)이 등장한다. 오뒷세우스가 그렇다. 그 다음은 아이아스다. 세 번째 인물은 누구일까? 아직은 말하지 않겠다. 호메로스가, 장렬히 전사하는 순간에야,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연민을 자극하지만 (살아)있을 때 좀 잘해주시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호메로스는 인류 최초의 부고(부음)전문 기자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01]어떤 아이아스요?

하는 질문을 자주 접하다 보니 ‘큰’ 아이아스가 된 사람이 있다. 덩치의 크고 작음으로 구분한 것 같은데, 실제로 공적에서도 그러니까(영웅들의 서열에서도) 앞서는 큰 아이아스는 큰 아이아스이다. 그는 열두 척의 함선을 몰고 원정에   참여한 사람이다.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 그만큼 크지 않은 그보다 훨씬 작은 아이아스는, ‘오일레우스의 아들’인데, 서사시는 '오일레우스의 날랜 아들' 작은 아이아스라고 하여 구분한다. 몸집이 작으면 좀 날랜 것 아닌가? 어쨌든 '큰 아이아스'는 살라미스 섬의 지휘관인데('왕'이라는 의미 포함), 살라미스는 영화 <300>2의 배경인 바로 그 섬이다. 페르시아 전쟁 당시에도 아테나이의 부인들과 노약자들을 피란시킨 섬, 그것을 교두보로 삼아 해전은 승리한다.

'교두보'는 은유다. 펠로폰네소스전쟁 이전부터 이후에도, 양대 세력 사이 긴장감이 안개로 상주하는 섬이 살라미스다. 그런데, 함선목록은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가장 잘 싸우는 용장을 단 두 줄로 소개한다.

 

"아이아스는 살라미스에서 열두 척의 함선들을 이끌고 와서
아테나이인들의 대열이 서 있는 곳에 세웠다." -2권, 557~558행.
 
참전하면서 동원한 함선 수는 곧 전사들의 수, 병력의 규모이기도 하다. 때문에 함선 몇 척이라고 할 때의 숫자는 전사들의 숫자이기도 하기에,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호메로스의 '공정의 선지자'라고 할 정도로 한정된 텍스트 안에서, 숱한 인물들을 다루면서 '공정'과 '균형'을 유지하기에, 아이아스가 '일당백'을 하는 영웅이기에 이렇게 인색구나,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하긴 배만 많다고 무엇을 하겠나, 아테나이와 코린토스지협의 메가라 사이, 코딱지만 한 섬에 인구(전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한다. '전투파업'으로 『일리아스』의 전체 분량에 비해 영웅 아킬레우스의 등장 분은 그리 많지 않다. 해서 디오메데스가 용장으로 활약이 돋보이는데, 이 친구는 시인의 설정으로, 아킬레우스 부재 시(時,) '용장' 아킬레우스의 대역 역할을 한다. 일종의 카게무샤(かげむしゃ ‘影武者’ 그림자무사)다. 하지만, 큰 아이아스는 실세로서 용장 No2다.

 

[02]어떤 아이의 아버지요?
또 한 사람 섬 출신 영웅이 있다. 이타케 섬의 오뒷세우스다. 우선 2권 함선목록에서의 언급을 살피자. 그도 그 유명한 열두 척을 배를 몰고 참전했다.

 

"지혜가 제우스 못지않은 오뒷세우스가 지휘했는데,
그와 함께 이물에 주홍색을 칠한 함선 열두 척이 따라왔다." -2권 636-637행.

 

그가 동원한 함선 또한 열두 척이지만. 이 지휘관을 소개하는 분량은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우호적이라 큰 아이아스와 구분된다. 『일리아스』 텍스트(작품 그 자체)에만 집중하자. 오뒷세우스의 지혜가 '제우스 못지않은'가에 대해 다들 의심한다. 그가 이 서사시의 시인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임기응변, 언변에 능한 '소통의 전도사'였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오뒷세이아』의 오뒷세우스는 본래 의미의 '지혜'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그러나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소통을 이뤄내는 사람, 갑과 을 사이에서 조율하는 능력 그 자체만으로 그는 또 하나의 '일당백'이 아니겠는가! 시인에 의해 설정된 『오뒷세이아』의 오뒷세우스가 한층 『일리아스』에서보다 진화한 인간형을 제기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인간 모습은 이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나서지 않고 그렇다고 거리 운운하면서 침묵하지도 않고, 아직까지의 성공하는 ‘비지니스 모델’로서 그는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어쨌든 그는 『일리아스』 영웅 군(群)에서는 지장(智將) 1순위다. 큰 아이아스나 오뒷세우스는 (다른 뜻은 없다) 섬 출신이라는 공통점, '겨우’ 혹은 '비록' 열두 척의 배들만을 동원했지만 한 사람은 손에 꼽히는 '용장'으로, 다른 한 사람은 '지장'으로서, 정정당당 그리스연합군 내부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03]어떤 아이요?
굳이 셋으로 세팅하려고 또 하나의 '함선 열두 척'으로 참전한 지휘관을 찾아야 했다. 확증편향인가? 고생 끝에 찾아내고야 말았다. 의외로 수비 진영은 트로이아 측 참전자 가운데, 그 대상을 발견했다. 2권 함선목록 후반부 트로이아 진영 참가자들이 소개되지만 거기에는 없는 인물, 이피다마스다. 아가멤논이 명불허전을 증명하려는 듯 전투 씬의 분량을 좀 소화하는 데가 11권이다. 거기서 시인이 묻는다.

 

"이제 말씀해주소서, 올륌포스의 궁전에 사시는 무사 여신들이여!
트로이아인들 자신과 이름난 동맹군들 중에서
맨 먼저 아가멤논과 대전한 자는 누구입니까?"  -11권: 218-220.

 

그가 트로이아의 전사 이피다마스다. 생소한 인물이므로(필자에게는) 인용에 좀 지면을 할애하자. 앞의 인용에 이어지는 부분이다.

 

"그것은 안테노르의 아들 이피다마스였다. 그는 당당하고 큰
사나이로 작은 가축 떼의 어머니인 기름진 트라케 땅에서
자랐으니, 볼이 예쁜 테아노를 낳은 그의 외할아버지 킷세우스가
어릴 적부터 그를 자기 집에서 길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마침내 영광스런 성년이 되었을 때
킷세우스는 그를 그곳에 붙들어두려고 자기 딸을 아내로 주었다.
그러나 그는 갓 결혼한 신랑의 몸으로 신방을 뛰쳐나와
아카이오이족의 소문을 좇아 부리처럼 휜 함선 열두 척을
이끌고 왔다. 하나 균형 잡힌 함선들은 페르코테에 남겨두고 
그 자신은 걸어서 일리오스까지 왔다.
바로 그가 이때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과 대전했다." -11권: 221-231.

 

1)그는 트라케(작은 가축 떼의 어머니인 기름진)에서 자랐다.

2)외할아버지 킷세우스가 어릴 때부터 그를 길렀다(킷세우스와 혈연일까, 아닐까?).

3)(볼이 예쁜) 테아노는 킷세우스의 딸이다.

4)이피다마스의 아버지는 안테노르이고 어머니는 테아노다.

4행까지는 그렇고 그런 가족 소개로 보인다. 문제는 5번째 행부터다. 5~6행이 따르면, 이피다마스와 킷세우스는 혈연이 아니며, '주워서'라는 말은 없지만, 킷세우스 나이 차이도 있고 하여 자신의 친딸 테아노(와 사위 안테노르)의 양아들로 삼아 기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성년이 되어 떠날까봐 '두려워서' 킷세우스가 자기 딸을 (주어) 결혼하게 했다는 것인데, 그 딸(이피다마스의 아내)은 이피다마스의 어머니(티아노)와 자매간이고, 이피다마스는 이모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좀 부담스럽지 않은가? 이피다마스가 이처럼 주워서 기른(입양은 보류) 아이였는데(테아노를 친엄마라고 생각하고 지내렴, 또한 친정집에 나이차가 모자뻘인 귀여운 사내아이가 함께 살게 되어 어머니 역할을 하였을 수는 있다). 어느덧 청년이 되니 이제 내 갈 길을 가야겠다.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고, 나는 어차피 남남이니 일가를 이뤄야겠다, 이렇게 자랐던 집을 떠나려 했나? 또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킷세우스도 알고 있고 때문에 맘에 드는 그를 가족으로 붙잡는 방식으로 (무리해서) 딸과 혼인시켰다는 얘기인가?

 

<잠시 주로를 벗어나 조선으로> 우리 역사에도 이런 사례가 없지는 않다.

이상의 추리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면 조선의 압구정(호) 한명희는 그리스의 킷세우스가 된다. 수양대군을 왕(세조)으로 옹립시킨 일등공신인 그에게는 '손 안에 세상의 모든 것은 쥔'이 그를 수식하는 '공식구'('일리아스'처럼)가 될 것인데, 그는 자신이 성취한 권세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두 딸을 왕에게 시집을 보내 부원군의 지위를 거듭 유지하면서 지속가능한 권력을 꿈꾸었다.

세조를 잇는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 한씨(1445~1461년)가 첫째 딸이다. 그녀는 17세에 사망하는데, 세조가 사망하고 예종(해양대군, 19세)이 즉위하던 1968년에는 세상에 없다. 그런데, 예종이 재위 13개월 만에 세상을 뜬다. 그런데 해양대군(예종)은 세조의 둘째아들로, 먼저 세자로 책봉되었던 형 의경세자(1438~1457, 추존 '덕종')가 비명횡사하자, 8세에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즉위한 것. 이 예종(1450~1469,세종32~예종1)이 죽었을 때, 후위로 떠오른 사람은 1)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원자, 5세)과 2)예종의 형 의경세자의 장남 월산군이었다. 그런데, 의경세자와 한확(韓確)의 딸 소혜왕후(昭惠王后) 사이에는 월산군 말고도 차남 자산군이었다. 그 사람, 차남 자산군이 예종을 이어 왕에 오르는데 그가 성종으로 당시 13세였다. 당시 그도 어리기는 하였지만 원자와 친형을 제치고 제위에 오른 것은 의외였다. 여기에는 당대 두 사람의 막강한 실력자의 ‘조정’이 있었다.

1)남편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할 때부터 수렴청정(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이다)을 하는 정희대비가 힘을 썼다. "월산군은 어릴 때부터 병이 잦았고, 세조가 생전에 자산군의 칭찬이 남달랐던 점"이 이유다. 또 한 사람.

(2)자산군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이번에도 한명회다. 자산군(성종)은 한명회의 막내딸과 결혼(1467년, 세조13년)에 결혼한 상태였던 것. 세조가 죽고 예종(큰사위)가 즉위하기 불과 1년 전 한명회는 막내딸을 자산군에게 시집을 보냈으니, 결과적으로 후사도모다. 불안정한 상황을 읽은 후 처방한 것이다. 어쨌든 성종의 정비가 공혜왕후다. 그녀는 언니(장순왕후)의 뒤를 이어 정비의 맥을 잇는다. 그러나 그녀는 성종 즉위 5년 만(1474년)에 사망하였고, 자식이 없었다. 이후 성종은 윤기무의 딸 숙의 윤씨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고, 그녀가 아들 하나를 낳으니 연산군이다. 성종으로선 어쨌든 자신의 숙모(아버지의 동생의 아내)의 여동생과 결혼하게 된 셈. 친이모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한명회의 '권력 집착'을 엿존다. TV 사극과 영화에서 자주 접했던 그렇고 그런 왕실의 계보다. '성종이 자신의 막내이모와 결혼을 했다고?' 희미한 기억을 확실히 했지만 그렇다고 킷세우스와 한명회의 아버지로서의 닮은 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리아스』에서 안테노르는 프리아모스의 왕과 함께 트로이아성의 스카이아이에서 전세를 관망하는(메넬라오스와 파리스의 일대일 대결 중) 원로 중 1인이다. 당시 양군의 책임자가 맹세를 위해 만날 때, 프리아모스를 호위하여 결전 현장을 다녀오는 이가 그이고, 안테노르의 부인으로 되어 있는 '볼이 예쁜' 테아노는 <일리아스> 6권, 전투 중 갑자기 성안으로 돌아온 헥토르가 청하여 어머니 헤카베가 도시의 아네네의 신전에 청원할 때 이 신전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부분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성채 위에 있는 아테네의 신전에 이르자
킷세우스의 딸로 말을 길들이는 안테노르의 아내인
볼이 예쁜 테아노가 그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었으니,
트로이아인들이 그녀를 아테네의 사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통곡하며 두 손을 들어 아테네에게
기도했고, 볼이 예쁜 테아노는 옷을 받아
머릿결 고운 아테네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위대한 제우스의 딸에게 기도하고 빌었다." -일:6권 297~304행

 

여기에도 앞의 인용처럼, '킷세우스의 딸', '안테노르의 아내', '볼이 예쁜' 테아노는 그 여인이다. 다만 '아테네의 사제'라고 하면 될 것을 '트로이아인들이 그녀를 아테네의 사제로 삼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임명은 의외이며 외지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녀의 고향은 해협 건너 트라케, '작은 가축 떼의 어머니인 기름진 트라케 땅'이며 그곳은 친정아버지 킷세우스가 살고 있다. 두 권 두 부분(인용)만으로는 일관성은 있다. 확실한 것은 킷세우스의 친딸(혈육)이 (볼이 예쁜) 테아노라는 것 말고는 확정하기 힘든 대목들이 『일리아스』에는 등장한다. 안테노르와 동명이인은 작품 속 어딘가에 있는 듯한데, 안테노르의 아들들(친아들들로 추정)이 몇 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그가 그인가, 그가 그가 아닌가!

 

1)‘스카이아이의 원로’ 안테노르에게는 세 아들이 있고, 이들은 트로이아군의 주요 장수로 활약한다.

 

"트로이아 백성들에게서 신처럼 존경 받는 아이네이아스
그리고 안테노르의 세 아들인 '폴뤼보스', 고귀한 '아게노르',
불사신과도 같은 젊은이 아카마스를 둘러싸고 있었다." -일: 11권 58~60행

 

'아이네이아스'에 이어 거론됨에 주의해야 한다. 이외에도 이들 관련 인용은 더 있다. 특히, 2권(후반 함선목록) 트로이아 진영의 지휘관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다르다니에인들은 앙키세스의 당당한 아들 아이네이아스가
지휘했다. 고귀한 아프로디테가 앙키세스에게서 그를 잉태했으니,
그녀는 여신이면서도 이데 산의 골짜기에서 인간과 동침했던 것이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 안테노르의 두 아들 아르켈로코스와 아카마스가
함께했는데, 이들은 둘 다 전투에 관해서는 무소부지였다." -일: 1권 819~823행)

 

여기서 안테노르의 아들은 위와 '아카마스'만 일치한다. 트로이아의 원로 안테노르의 아들이 맞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거기다가 3권에서는 아프로디테의 명을 받은 이리스가 헬레네를 파리스가 머무는 침소로 데려갈 때, 라오디케의 모습으로 변장하는데, 라오디케는 '안테노르의 아들 통치자' 헬리카온의 아내이며 '프리아모스의 여러 딸들 가운데 가장 미인'으로/ 당시 헬레네에게는 시누이다.(일: 3권, 121~125행) 안테노르와 프리아모스는 사돈 관계임을 알 수 있고 둘 사이를 연결한 아들이 헬리카온인데, 새로 등장하는 아들이다.
 
2)혈연 여부를 떠나 앞서의 인용(11권) 후반에 따르면 이피다마스는 가장 먼저 아가멤논에게 대항하여 나서는 트로이아의 용감한 전사다 하지만 그는 아가멤논에게 죽는다. 그런데, 이를 복수하기 위해 나선 전사들 가운데 코온이 나섰다가 곧이어 죽는다. 그런데, 이 코온이 안테노르의 맏아들이란다.

 

"그러나 이때 전사들 중에서도 이름 높은 코온이 그를 보았다.
코온은 안테노르의 맏아들로 아우가 쓰러지는 것을 보자
크나큰 슬픔이 그의 두 눈을 덮었다.“  _일:11권 248~250행.

 

코온은 안테노르이 맏아들이며, 이피다마스의 형이다. 이어지는 대목을 보면, "이때 코온은 같은 아버지에게서 난 아우 이피다마스의 발을 잡고/ 열심히 끌고 가며 자기 편 장수들에게 큰 소리로 구원을 청."(일: 11권 257~258행)하다가 죽는다. 앞서 코온은 아가멤논 팔꿈치 아내를 찔러 부상을 입히지만 아가멤논은 그의 동생 이피다마스의 사지 위에 코온의 목을 쳐서 떨어뜨린다. 형제들이 함께 죽는 경우는 더 있지만 장렬한 최후다. 어쨌든, 여기에도 안테노르의 두 아들이 등장하는데, 이피다마스는 코온의 '같은 아버지에게서 난 아우'다. 

 

이제 그리고 일단 세 번째, '열두 척의 배'의 의미를 마무리해야겠다.

약간 미스테리한 결론이다(앞의 11권 인용 참고). 그가 갓 결혼한 신랑으로 몸으로 신방을 뛰어나온 것은 임박한 전쟁에 참여하기 위한 전사의 출전인가, 이를 빙자한 (결국은) '가출'인가? 트라케에서 트로이아로 가려면 가깝지만 배를 이용해야 한다. 해서 '부리처럼 휜 함선 열두 척을 이끌고' 간다. '갑자기 뛰쳐나왔다'고 좀 그런 보기에는 준비된 출정이다. 킷세우스(길러준 외할아버지)는 그가 이렇게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전쟁에 참전하면 죽을 것인데, 그것을 막고 싶어 급했던 것일까? 그러나 안테노르(트로이아 사람)와 테아노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어려서부터 자란 곳이 트라케였다고 할 때, 그리고 이모(혹은 친이모)와 결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이상한 결혼을 그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육지에서 수성하는 트로이아 군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배가 필요 없다. 뿐더러, 전세를 볼 때 그리스군은 그런 배들은 가장 먼저 파괴될 것이 자명하다. 해서 이피다마스는 '균형 잡힌 함선들은 페르코테에 남겨두고' 걸어서 일리오스(트로이아 군에)에 합류한 것이다. 아마도, 이때 또 하나의 안테노르의 아들은 코온은 동생 이피다마스와 동행하였고, 거의 동시에 죽음을 맞이한 것 같다.

몇몇 의문점(이 부분을 명확히 제기하려면 또 하나의 글이 필요할 것이다)을 살피는 동안, 이피다마스가 하필 인간들의 왕, 그리스연합군 최고사령관 아가멤논이라는 '골리앗'에게 맞서는 제1주자가 된 데는(아무리 아가멤논이 종이호랑이처럼 여겨지더라도) 자초한 죽음, 곧 자살공격에 가깝다. 한 번의 떠남으로는 씻지 못하는 뭔가 찜찜한 것이 있다. 해서 그는 영원히 떠나는 길을 자초한 것일까? 필자는 그가 페르코테에 남겨 놓고 온 '부리처럼 휜 함선 열두 척'을  일종의 보험으로 본다. 그것이 최선이었든 차선이었든. 그가 자주적인 삶을 위해 그 배들을 몰고 떠났다면 현존할 리 없겠지만 『오뒷세이아』에 앞서 조금 일찍(10년쯤) 항해를 떠난 서사 『이피다마스』의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 또 하나, 당시 트라케에서는 뭔 일이 있었던 듯한데, 이피다마스 주변에 어른거리는 오이디푸스의 고뇌랄까, 그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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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3-28 0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리아스>에 나오는 인물들은 너무나 여러 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눈 밝은 독자가 아니고서는 전후관계를 도저히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등장하기 때문에,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누가 누구의 할아버지인지를 따져보는 것조차도 쉽지 않을 때가 많은 듯합니다. 가령, 트로이아의 프리아모스 대왕만 하더라도 아들이 무려 50명이나 되고, 딸이 12명이나 될 정도니까,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프리아모스의 아들 이름만 다 밝혀내는 것마저도 쉽지 않을 정도지요.

말씀해주신 ‘안테노르‘도 하도 여러 곳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이 사람의 실체를 <일리아스> 만으로는 규명(?)하기 쉽지 않을 듯합니다. 다행히(?), 네이버 지식백과에 들어가 보면 이 사람에 대한 아주 자세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게 있더군요. 그는 ‘트로이 전쟁‘ 이전에도 ‘헬레네 납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트로이로 찾아왔던 사절단이었던 오뒷세우스와 메넬라오스를 극진히 대접하고, 화평을 극구 주장했던 인물로 나오더군요.

그리고, 네이버 백과사전을 살펴 보면 안테노르 역시(!) 아들이 꽤나 여럿 있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안테노르는 트라키아 왕 키세오스의 딸인 테아노와 결혼하여 아르켈로코스, 아카마스, 리카온, 글라우코스, 라오도코스, 아게노르, 이피다마스, 라오다마스, 히폴로코스, 에우리마코스, 헬리카온 등 여러 명의 아들을 두었다.>

또한, 안테노르의 아들인 이피다마스는 외할아버지 밑에서 양육된 후 친이모와 결혼한 게 (신화학적으로) 맞는 듯한데, 킷세우스가 여러 명의 딸을 두었다면 큰 딸(?)의 아들, 즉 외손자와 나이 어린 친딸을 결혼시킬 수도 있었지 않았겠나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또한, <일리아스>에 나오는 내용을 보더라도 그가 ‘못마땅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전쟁터로 달려온 건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 * *

그리하여 그는 가엽게도 결혼한 아내의 곁을 멀리 떠나 도성의 백성들을 도우려다가 그곳에 쓰러져 청동의 잠을 자게 되었던 것이다. 그 아내를 위해 그는 재미도 못 보고 구혼 선물만 잔뜩 주었으니, 먼저 그는 소 백 마리를 주고 나서 그가 수없이 갖고 있던 염소와 양을 합쳐 천 마리를 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일리아스>, 11권 240-245행)

timeroad 2019-03-28 09:09   좋아요 2 | URL
섬세한 댓글 감사합니다. 간력하게 12철 배와 관련된 것, 3개를 묶어보자는 취지인데, 자꾸만 눈에 들어와서 또한 글이 길어지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서둘러 정리한 면이 있습니다. 이래저래 언급하다보면 끝이 없어서요. 감사합니다.

oren 2019-03-28 0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헬레네 납치 사건을 ‘전쟁‘이 아닌 ‘회담‘을 통해 해결하고자 애썼던 흔적들이 <일리아스>에서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안테노르와 달리 그들 사절단들을 죽여버리자는 의견들도 없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

* * *

이렇게 두 사람은 울면서 부드러운 말로 왕에게 빌었으나, 그들이 들은 것은 무자비한 목소리였다.

˝너희가 진실로 현명한 안티마코스의 아들들이라면
바로 그자가 전에 트로이아인들의 회의석상에서
신과 같은 오뒷세우스와 함께 사절로 간 메넬라오스를
그곳에서 죽여 아카이오이족에게 돌려보내지 말라고 권했다니,
이제 너희 아비의 수치스런 행동의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라.˝
(<일리아스> 11권 136-142)

timeroad 2019-03-28 09:12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안테노르는 트로이아 진영에서 그리스군이라면 네스토르와 유사한 역할을 한달까, 그런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ransky 2019-05-11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면 이순신은 조선의 오뒷세우스? ㅎㅎ

timeroad 2019-05-12 00:40   좋아요 0 | URL
오뒷세우스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