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이것은 수기(手記)이다." 상하 두 권으로 펴낸 장미의 이름_서문 앞에는 으레 헌사(獻詞)가 놓일 자리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이 서문은 198015일에 썼다. 탈고 시점부터 39년이 흘렀다. 움베르토 에코는 2016219일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소설은 픽션(fiction)이다. 사실이 아니지만 독자가 사실처럼 받아들일 때(개연성 확보)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소설가는 서문에서조차 사실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려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장 위대한 거짓말은 서문에 있다다. 소설론 강의에서 들은 얘기다. 장미의 이름처럼 꼭 들어맞는 경우가 또 있을까?

에코는 작가이기 전에 볼로냐대학교 기호학과 교수(1971~ )였다. 어떤 의미가 생성되고 소비 되는 현상을 다루는 학문. 언어의 구조와 그 의미를 연구한다는 데서 언어학 분야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언어학과 다르게 기호학은 비언어 기호 체계도 연구 대상이다. 기호학(記號學)이 그렇다. 현대 사회의 세기말적 위기를 소설에 담고 싶다, 에코의 바람이었다. 마침 출판사에 근무하는 여자 친구가 추리소설을 써보라고 권유하고, 장미의 이름2년 만에 썼단다. 여자 친구, 고마우신 분이다.

장미의 이름은 일독만으로 의미 파악이 쉽지 않은 작품이다. 노년에 이른 화자가 7일 동안, 자신이 겪은 인생 최고의 경험을 회상하는 방식이다. 그래도 추리소설답게 끊임없이 일렁이는 호기심 덕분에 책은 읽힌다. 화자의 내레이션이야말로 독자의 눈길을 붙드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작가가 책머리에 "당연히 이것은 수기(手記)이다."라고 한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것이다.

장미의 이름은 웃음(희극, 코미디나 개그, 정치풍자)이 가진 강력한 힘을 역설한다. 말 그대로 민주주의가 실현된 국가일수록 정치풍자가 허용되고 권장되며, 풍자 대상에서는 예외가 없다.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웃음에는 서슬 퍼런 날이 서 있다. 비극에 이어 고()희극이, 비극과 동시에 희극이 축제 마당 연극 경연에 오르던 황금기의 아테나이가 그랬다. 그러한 맥은 오늘 미국의 정치문화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언론자유(지수)와도 비례한다.

이참에 장미의 이름을 다시 읽은(거의 처음처럼) 계기가 있다. <김현정의 뉴스쇼>(유투브)를 시청하는데 공중파 시간이 끝나고 앵커와 제작진들, 일부 게스트가 후일담을 나누는데(시청자들은 실시간에 댓글 참여, '댓꿀쇼')에서 누군가 희극이 가진 힘을 이야기하면서 장미의 이름을 언급했다. 한 권의 금서를 둘러싸고 살인사건이 이어지는데 그 책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다고 여기는 <시학> 2권이란다. 장미의 이름1(시학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그리스) 희극에 관해 다루고 있다는 것. ", 그랬지!, 그런 대목이 있었지."하고는 천천히 그리고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25장으로 구성된 시학의 핵심은 6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비극의 정의가 시작되는 것. 그 앞은 비극을 정의하는 데 필요한 기초를 다뤘고, 이어질 장들은 이에 대한 부연설명이 되는 것이다. 6장에서 비극은 '완결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전체적인 행동의 모방'이라고 정의한다. 7장에서는 '전체는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갖는다.'며 비극의 정의 중 '전체'에 대해 자세히 다루는 식이다.

"처음은 필연적으로 다른 것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에 필연적으로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되는 것이다. 반대로 끝은 필연적으로 또는 대게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다음에 다른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중간은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다음에도 다른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언어유희로 여길 수 있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당연하신 말씀을 왜 늘어놓는 것일까? 간결하고 명징한 문체로 예술론을 전개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나는 이 대목이 늘 궁금했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6장 첫머리에 바로 그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6절 운율에 의한 모방과 희극에 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먼저 비극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하자."

‘6절 운율에 의한 모방은 서사시다. "서사시에 관해서는 23·24·25장에서 거론하지만 희극에 관한 논의는 없다."(옮긴이 주석) 바로 이 대목에서 에코는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을 착안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소개한 '발견(무지의 상태에서 앎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의 종류 가운데 네 번째인 '추리에 의한 발견'을 주로 사용하면서 말이다. 희극에 관해 논한 후속편, <시학> 2권이 '없을 리 없다' 에코는 그런 심증에 기반하여 논픽션처럼 픽션의 세계를 펼친다.

희극시학6장 첫 대목의 언급 말고 시학의 어디 쯤에 숨어 있는 걸까? 앞서 언급한 '전체'에 대한 부연 설명에 있다고 본다. '전체는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갖는다.' 그런데 현존하는 시학의 끝부분은 파손되어 있다. "비극과 서사시의 일반적 본질과 그 종류, 구성 요소의 수와 성질, 성공과 실패의 여러 원인, 비평가들의 비판과 그에 대한 해결에 관해서는 이쯤 해두자……."로 끝나는 것. 옮긴이(천병희)도 이와 관련 "이 파손된 부분에서는 (최소한)비극과 희극의 비교론이 펼쳐졌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주석을 달았다.

(약간의 스포일러)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들까지 희귀한 장서(藏書: 책을 간직해 둠. 또는 그 책.)들을 소장하고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가상의, 공간 배경) 전체가 한 권의 장서(:감출 장) 때문에 불에 타 사라진다. 희극에 관해 논하였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스스로가 말한 시학의 전체 가운데 끝부분, "필연적으로 또는 대개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다음에 다른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을 감추려는 세력과 찾으려는 이들의 갈등(문제)이 소멸되는 즈음에, 수도원은 소실(燒失)되어 끝장을 보게 되는 셈이다. 발상도 그렇거니와 훌륭한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소설은 후반부에서 (가상의) <시학> 2권의 첫 대목을 소개한다.

"……1부에서 우리는 비극을 다루면서 이 비극이 연민과 공포를 야기함으로써 카타르시스의 창출을 통해... 이제 약속대로 희극을 풍자극, 광대극과 더불어 다루면서 이 희극이 어리석은 자들을 즐겁게 함으로써 비극과 같은 작용을 하는 과정을 검토해보기로 하자. "(장미의 이름831)

천병희 선생의 시학(원전번역, 문예춢판사) 초판은 1982년에 발행된다. 선생은 1975년에 처음 <시학> 그리스어 번역을 시도했다고 한다.(수사학/시학옮김이 서문) 이 책 이윤기 선생이 장미의 이름초판을 펴낸 해는 1986년이다. 움베르토 에코가(서문) 장미의 이름을 탈고한 해는 19801월 이전이다. 그래도 문학 전공자가, 창작을 고민하면서 천병희의 시학이 원전번역으로 나와 있음에도 너무 가볍게 읽지 않았나, 때늦은 후회다. 천병희 선생은 시학을 생활고로 힘들게 공부하던 시절에 옮겼다. 한 출판사에 매절(인세가 아닌)로 넘길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다. 근래에 이르기까지 그 출판사의 손에 꼽히는 스테디셀러였는데, 선생의 희랍어·라틴어 원전 번역서들을 꾸준히 펴내는 출판사에서 수사학/시학(2017)으로 묶어 발행하였다.'시학'은 고전번역가의 인생 역정을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에코는 희극을 다룬 시학 후속편이 집필되고 발행이 되었지만 너무 위험한 내용이라 극소수만 독점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설정(픽션)에서 장미의 이름을 썼다. 그런데 천병희 선생은 출간 당시, 그리고 십수 세기 동안 묻혀 있다가 발굴되어 세계사를 뒤흔들었던 사연 많은 금서(禁書)를 번역하기도 했다.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20123, ). 한 권의 책이 가져온 파장은 위험천만했으며, 순혈주의에 토대가 되어 유대인 학살의 근거가 되었다. 실제의 책(시학)과 관련한 가상의 책(에코의 경우) 때문에 벌어진 참사(장미의 이름)가 아니라, 게르마니아라는 책(논픽션)이 야기한 비극(논픽션)이 실제 일어난 것더불어 크리스토퍼 B. 크레브스가 쓴 가장 위험한 책-로마 제국부터 나치 독일까지 <게르마니아> 오독의 역사(20129, 민음인, 현재 절판)게르마니아(최초의 원전 번역)에 이어 번역·출간되어 입체적인 독서가 가능하게 되었다

장미의 이름은 책(시학)을 다룬 책일까? (시학)이 미처 다루지 못한 책을 다룬 책인 것은 분명하다. 움베르토 에코는 웃음(희극)이 가진 신비한 힘과 그 '파괴력'을 충분히 다뤘다, 그 안에 시학_희극편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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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22-05-22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9년 3월에 작성한 글을 2022년 5월 22일, 기존 글을 대폭 수정하여 별도의 카테고리에 올렸습니다.
 

 

*이타케의 108명이나 되는 사내들 중에 페넬로페의 마음을 흔든 이가 단 한 명도 없었을까? 오뒷세우스가 떠날 때 아들 텔레마코스는 갓 태어난 상태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돼지치기 막사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알아보지만 여신 아테네가 개입한 덕분이다. 피를 나눈 상태는 아니라서 그런가? 귀향하여 궁궐에 와 있는 남편 오뒷세우스를 페넬로페는 알아보지 못한다. 한 나라 왕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 남편의 부재, 그렇게 20년 세월이 흘렀다. 무엇보다 집을 떠나기 전 오뒷세우스가 아내와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 작년에 나온 개정판 <오뒷세이라>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주석을 해당 면으로 옮기는 변화만이 아니라, 날로 새롭고 다듬어지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석도 읽을 때마다 새롭다. 웨스턴 영화 <셰인>과 이 서사시의 주인공 오뒷세우스의 심리를 비교해보았다. 좀 길다.(글쓴이)

 

서부 영화의 고전 <셰인>, 1890년 초여름, 태양이 내리쬐는 어느 날. 초록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와이오밍 고원에 한 사나이가 말을 타고 나타난다. 단정한 몸차림에 침착한 태도, 눈매는 온화하면서도 예리함이 번뜩이며 뜨내기 카우보이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곳에는 동부에서 이주해 온 개척민들이 살고 있다. 개간한 토지는 그들 소유로 법률이 보장했다. 수수께끼의 사나이는 개척민의 한 사람인 죠 스타레트의 집에서 물을 얻어 마시고 저녁 식사까지 초대 받는다. 사나이는 스타레트의 호의를 받아들여 하룻밤 신세를 진다.

이 사내의 이름은 셰인, 그를 살갑게 맞이한 이들은 스타레트와 아내 마리안과 아들 조이, 단출하지만 단란한 가족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 지방에서 오래 전부터 목축업을 하고 있는 라이커 일당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라이커는 툭하면 개척민들을 못살게 들볶으며 이들의 모든 땅을 차지하려 한다. 스타레트가 부리던 일꾼들도 라이커의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린 상태다. 그러한 사정을 말한 스타레트는 셰인에게 월동준비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머물러 달라고 한다(신작 영화가 아니기에 스포일러에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이 글은 이 영화에 대한 디테일을 기억해야만 와 닿는 것이 있을 것이기에-필자)  
부탁을 받아들인 세인은 소재지에 물건을 사러갔다가, 라이커 일당에게 곤욕을 치르지만 말썽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스타레트의 당부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라이커 일당 때문에 소재지를 오갈 때는 단체로 움직이기로 한다. 이때 또다시 시비를 걸어오는 스타레트 일당과 싸움이 붙은 셰인은 물러서지 않고 적시적절한 스타레트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를 지켜보면서 자랑스러워하는 죠이... 소년의 간절한 요청에 셰인은 사격시범을 보이고, 어머니 마리안도 셰인에게 점점 더 깊은 호감을 느끼는데 셰인 또한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평화는 거기까지다. 마을 사람 하나가 라이커가 고용한 총잡이 잭 윌슨에게 사살되자, 겁을 먹은 마을 사람들은 떠나려 한다. 한 집씩 떠나면 공동체는 무너지고 모든 목장부지는 라이커의 소유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스타레트는 라이커와의 결투를 위해 집을 나서려 한다. 셰인은 이런 스타레트를 쓰러뜨리고 대신 싸우러 가는데, 죠인와 마리안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죠이는 셰인을 뒤쫓아간다. 처음으로 소재지에 총을 차고 나타난 셰인. 생사를 가르는 결투가 벌어지고 셰인의 총에 윌슨은 나자빠진다. 그리고 나머지 라이커 일당도 처치한다. 그리고 죠이 덕분에 마지막 한 녀석까지 처치하고 자신도 한 쪽 팔에 부상을 입는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그러나 그가 떠나지 말기를 간절히 요청하는 소년 죠이. 사람을 죽인 사람은 계속 머물 수가 없다고 눈물을 흘리는 소년에게 말하는 셰인에게 셰인이 당부한다.
"어머니에게 더 이상 이 마을에 총이 필요 없다고 말씀드려라"
그리고 셰인은 떠난다. "잭은 총도 뽑지도 못했어요! 돌아와요 셰인!" 하고 소리치는 소년의 메아리를 뒤로 한 채.

 

<셰인>의 줄거리다. 소년기에 TV(주말의 명화)로 보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전편에 흐르는 이 영화의 주제는 셰인과 소년의 우정이다. 나아가 스타레트와 그의 아내 마리안과 아들 조이라는 한 가정과 정처 없이 떠돌던 셰인 사이의 특별한 우정이다. 그러나 셰인이 이들의 오두막을 찾은 바로 그날부터, 마리안이 셰인을 대하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소년 조이는 셰인에게 기대하는 것을 말로 행동으로 표현하고 셰인은 그런 소년의 요청을 받아주는 등 둘의 호감이 표면으로 드러나지만, 셰인과 마리안 사이의 호감은 미묘하면서도 잔잔하게 배경처럼 깔리고 있다.
보다 놀라운 사람은 남편이자 아버지인 스타레트다. 처한 상황 때문에 셰인의 도움과 그의 머묾이 절실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필요 때문이라고만 단정하기에는 호의적인 태도로 셰인을 맞이하고 대한다. 내 가정을 지켜야 하기에 지금 라이커 일당에게 시달리고 있지만, 나도 한때는 좀 놀아본 적이 있는 총잡이였다는 것이, 라이커 일당과 결전을 위해 떠나려고 몸부림치는 그의 대사에서 드러난다. 이를 통해 이전에 스타레트가 셰인에게 가진 감정의 일단을 짚어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결투에서 죽게 되면) 아내와 아들을 지켜달라는 부탁까지 한다.
앞서 스타레트를 지도자로 한 정착민들의 독립기념일 축제에서, 자신과 아내의 춤에 이어, 셰인과 자신의 아내가 춤을 추는 장면을 담담하게 지켜본다. 특히, 마리안이 남편을 담장 밖으로 밀어내면서 셰인에게 춤을 요청하는 장면에서도 그저 부드럽게 바라볼 뿐이다. 셰인과 아들 조이가 가까워지는 상태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지만, 아내와 불과 얼마전까지는 이름도 존재도 몰랐던 떠돌이 총잡이 셰인은 너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그러므로 질투가 생길 것이고, 이를 표출할 것 같기도 한데, 결코 그러지 않는다. 아내와 자식을 공유하자는 것인가? 라이커 일당이 스타레트와 셰인 측을 자극하는 대사에서도 셋의 미묘한 상태를  언급한다. 영화 전편에 미묘한 '트라이앵글'이 설정되어 있다.

 

먼저 셰인의 입장에서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 오두막을 찾기까지 셰인의 삶은 한마디로 '길 위의 인생'이다. 단란한 가정을 만났다. 그 풍경 속에 한 사람이 되어 이제는 머물고 싶다. 그간 억누른 정착에 대한 욕망이 꿈틀댄다. 더구나 세 가족의 구성원들이 저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보여주는 호의를 뿌리치고 싶지 않다. 마당 한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거목의 그루터기를 제거하기 위해 도끼로 이를 찍어내고 있는 장면에서 스타레트가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데, 셰인과 스타레트 둘이 힘을 합쳐 거대한 그루터기를 드러내는 시점에서 둘의 혹은 셰인과 이 가족이 맺는 협력관계는 자연스럽다. 얼마나 머물게 될지 모르지만 있는 동안만큼은 내 역할을 하자. 더구나 떠도는 삶,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누군가를 살상하는 삶에도 염증이 나 있는 상태이기에 안정과 휴식이 필요하던 참인데 참 잘된 것이다.

 

반면에 스타레트의 입장에서는, 당장은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 그러나 한 발만 잘못 내딛으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 부숴질지 모르는 행복이다. 이 상태를 그는 잘 안다. 법적으로야 합법이지만 공권력이 그 권리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주지 않는다. 성질 같으면 라이커 일당과 한 판 겨뤄 내가 죽든, 네가 죽든 불안정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남겨질 아내와 자식, 이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머뭇거릴 수밖에. 그러한 때에 나타난 셰인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다. 어쩌면 최악의 상태에서 가장인 자신의 역할을 대신해줄 수도 있는 사람이다. 라이커 일당의 압력 때문에 떠나버린 기존의 일꾼들과는 다른 존재다. 셰인에게서는 그런 포스가 보인다. 

마리안의 남편, 곧 한 남자로서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당면한 상황을 냉정하게 살필 때, 만에 하나 자신이 잘못되어도 식구들은 살아야 한다. 스타레트게 셰인은 자신의 부재시를 대비한 남져질 가족들을 위한 일종의 종신보험이다. 젊은 날 자신도 셰인처럼 떠돌며 총잡이 생활을 했다. 정착하고 가정을 이루고는 있으나, 현재 셰인의 상태를 너무나 잘 안다. 그런 점에서도 동병상련, 동지애를 느낀다. 셰인은 부재시 자신을 대신해줄 수 있는 상태에 있음을 확신하는데, 이 점을 살피는 것도 이 영화를 새롭게 해석하는데, 관건이다. 가장으로서의 갈등과 냉정한 선택, 차선책이 필요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플라톤이 『국가』에서 주창한 도발적인 제안 처자공유제를 살펴보아야 할까? 어쨌든 집(가정)이 절실하게 그리운 한 남자와 행복하지만 그 행복을 지키느라 고단한 한 사내가 맺고 다지는 미묘한 우정이 이 영화가 간직한 함의이며, 해체를 위한 핵심키다.

이제 <오뒷세이아>를 살펴보자. 20년이 흘렀는데도 감감무소식인 남편을 기다리는 페넬로페, 참 대단하다. 한데 기나긴 세월의 풍상을 겪으면서도 집으로 돌아가는 오뒷세우스의 귀향도 집요함에서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부창부수다. 그래서 오랫동안 두고두고 읽히는 고전이겠지만,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에게 20년의 기다림은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 전쟁을 치렀다는 10년 세월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생사를 알 수 없는 이후 10년의 기다림은 기약이 없다. 이 정도면 전사했거나 귀향하다가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가장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밤이면 밤마다 가산을 축내는 파티를 하며 선택을 강요하는 108명의 구혼자들, 페넬로페에게는 108번뇌다.
아무리 지혜가 많은 오뒷세우스라지만 20년 만에 집을 찾으면서도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사전에 그럴만한 준비를 해놓고 떠났기 때문일까? 아들 텔레마코스의 양육을 절친인 멘토르에게 맡겼던 것처럼. [페넬로페에게나 오뒷세우스에게나 신혼 시절 맺은 맹세가 대체 무엇이었기에. 여러 평론가들이 지적처럼 <오뒷세이아>의 또 다른 주인공은 텔레마코스이며, 소년에서 성인으로 변신하는 성장이 또 하나의 주제이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아버지를 만나고, 그런 아버지가 제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면서 텔레마코스는 어른이 된다.]

<셰인>에서 가장인 스타레트는 가정을 지키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생활 기반은 안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뿐인 목숨을 걸어야만 그것이 기능하다. 나 하나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아! 그러나 내가 죽는다면... 아내와 아들이 겪을 고초가 눈에 밟힌다(<일리아스> 6권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이별 장면이 떠오른다). 보통의 사내라면 아버지이자 남편인 자신을 대신할 누군가 특히 다른 사내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셰인에게 남겨질 가족을 부탁한다. 그것이 스타렉트가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소년 조이에게 셰인은 관객들이 웨스턴 영화에서 만나고자 하는 그런 영웅이다. 그러나 아직은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다. 라이커와 그가 고용한 쌍권총잡이 잭 월슨을 모두 물리쳤다. 이제 조이네나 인근의 개척민들은 자기들이 개간한 땅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의 숙원을 이룬 셰인은 왜, 왜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잭은 총도 뽑지도 못했어요! 돌아와요 셰인!"
조이의 한마디가 긴 울림으로 남아 있다. 셰인은 결코 돌아갈 수가 없다. 자칫 자신이 대신할 수도 있었던 한 가정의 행복, 그런 아버지의 자리를 확인하였기에, 그 돌아갈 수 없다.
"어머니에게 더 이상 이 마을에 총이 필요 없다고 말씀드려라."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에게 전하란다. 전쟁은 끝났다. 이제 평화다. 그러나 셰인은 그 자체가 전쟁인 삶으로 복귀한다. 그러한 길 위에 다시 섰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를 쓰고 50년쯤 후에 『오뒷세이아>를 썼단다. 『일리아스』가 인간의 전쟁 이야기라면, 『오뒷세이아』는 평화와 안정을 찾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다. 오뒷세우스에게는 바다라는 막강한 적이 남아 있다. 아직 불법이 횡행하는 미국의 서부는 강한 자, 빠른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적자생존의 전장(戰場)이다. 셰인에게 서부의 사막은 오뒷세우스가 직면하여 각종 모험을 겪어야만 하는 바다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오뒷세이아』를 이끄는 힘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천병희 옮긴이 서문)이다. 정황상 다시 황야로 정처 없는 길을 떠나는 셰인에게, 10년이고 20년이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이나 가정이 있을 리 없다(그러나 이 기억은 쉽게 떨치지 못할 것 같다).  

오뒷세우스는 아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나우시카아를 떠난다. 그가 파이아케스 족의 나라를 떠나는(『오뒷세이아』 13권) 대목을 떠올려 보라. 물론 텍스트에서는 이러한 이별을 밋밋하게 다룰 뿐이지만, 지난 10년의 모험담이 사실은 파이아케스 족의 나라에서 오뒷세우스가 들려준 이야기라는 점. 사윗감으로서의 적합성을 심의한 심층인터뷰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이런 사람이요! 이야기보따리만이 아니라 오뒷세우스도 거기 주저않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얘기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고, 이전에 만나 한때 안주했던 여인(요정)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끌림을 주는 인간 여인 나우시카아가 있다. 그간의 여행에 지친 오뒷세우스는 하마터면 나우시카아라는 여인을 집으로 삼을 뻔 한 것이다.

 

그는 더운 물을 보자 반가웠다./ 머릿결이 고운 칼륍소의 집을 떠난 뒤로/  보살핌을 자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때 신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받은 나우시카아가/ 지붕을 튼튼하게 떠받치는 기둥 옆으로 다가섰다가/ 눈앞의 오뒷세우스를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그에게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손님! 고향땅에 가 계시더라도 이따금 나를/ 생각하세요. 그대에게는 누구보다 내가 생명의 은인이니까요."/ "나우시카아여, 고매한 알키노오스의 따님이여!/ 헤라의 크게 천둥 치시는 남편인 제우스께서는 내가 그렇게/ 고향에 돌아가서 이제 귀향의 날을 볼 수 있게 해주시면 좋으련만!/ 그러면 그곳에서도 나는 신께 기도하듯 그대에게 기도하겠소,/ 언젠까지나 날마다. 그대는 나를 구해주었으니까요, 아가씨!"(『오뒷세이아』 8권 450~468행)

 

나우시카아는 담담하게 오뒷세우스를 붙잡을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속마음까지 그럴 리는 없다. 헤라의 남편으로서의 제우스를 강조하는 오뒷세우스의 말 이면에 흔들림이 있다. 서사시에서 직접 언급한 두 사람, 오뒷세우스와 나우시카아의 이별 장면. 어쩌면 나우시카아를 만남으로써 한때 안정을 찾은 오뒷세우스는 그 때문에 고향, 곧 자신의 집을 간절하게 그리고 문득 그리워하며, 다시 귀향길을 이어가게 하지 않았을까?
영화 <셰인>의 마지막 장면, 소년에게서 자꾸만 멀어지는 말 위에 오른 셰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마터면 자신이 가장(家長) 역할을 할 뻔했던 마음의 집을 떠나는 그는 그는 어디선가 자신만의 홈 스위트 홈을 찾았을까? <셰인>이 어른들(만)을 위한 흔치 않은 웨스턴 영화로 평가 받는 까닭을 나름 살폈다. 잔잔하지만 머무름과 떠남 사이에 고뇌하는 오뒷세우스의 모습도 보았다.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그 말'을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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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2-25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셰인>과 <오뒷세이아>를 절묘하게 엮어주셨군요. 저도 그 영화를 까마득한 옛날에 아주 흥미롭게 봤었답니다. 이렇게 다시 그 영화 속 인물들을 글 속에서 만나고 보니 그 영화의 몇몇 장면들이 눈앞에서 다시금 살아 움직이는 듯합니다. 그리고, 오뒷세우스의 기나긴 모험 이야기도 여전히 흥미롭게 들리고요. 나우시카아 공주와의 이별은 사실 영화로 꾸며졌더라도 `결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가슴 아린 장면`이 될 수밖에 없었겠다 싶습니다. 사실 오뒷세우스가 천신만고 끝에 그 섬에 안착해서 그녀와 함께 보낸 `꿈같은 세월`이 결코 적지 않았는데, 그 두 사람의 `석별`이 생각보다 너무 밋밋하고 짧게 마무리되는 게 이상할 정도이긴 했다는 말씀을 듣고 보니, 저로서도 마음 한켠에 그런 느낌을 가졌던 터라 더욱 공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너무 `삶`을 `연연해` 하기에 그런 걸까요?
* * *
사람들은 오디세우스가 나우시카와 이별했을 때처럼, 그렇게 삶과 이별해야 한다. ㅡ 연연해 하기보다는 축복하면서.
- 니체, 『선악의 저편』



timeroad 2019-02-13 09: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렇게 댓글까지 써주시니. 퍼내고 또 퍼내도 마르지 않은 샘이라고 비유하는데,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글감을 줍니다. 님이 쓰신 여러 리뷰에서도 그 경지를 느낍니다. 사실 페넬로페가 집 안에서 벌인 전쟁이 더 참혹하지 않았을까,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한때 전북 남원에서 살았습니다. 시내에서도 40여 분을 가야 하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오일장을 보려면 시내까지 버스로 나가야 했습니다. 공설시장 부근에 광한루가 있는데, 사는 동안 두 번밖에 둘러보지 못하였네요. 광한루라는 건물 옆 유원지의 동북쪽에는 성춘향을 모신 사당이 있는데, 묘하게도 그 건물 뒷편으로 상사화가 참 많이도 피어있었어요.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평생을 혼자 사시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사찰 같은 곳에 심는 꽃이지, 여염집에서는 심지 않는다는 꽃 말이죠. 페넬로페와 춘향의 삶을 비교해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108명의 구혼자들은 오뒷세우스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죠. 나중에 거치 차림을 하고 춘향의 마음을 떠보는 이몽룡은 거지로 변장하고 페넬로페의 마음을 시험하는 것과 오버랩이 되고요. 춘향에게 러브콜을 던지 사내가 어찌 변학도뿐이었을까요? 어쨌든 페넬로페가 당면한 전쟁 같은 상황이 참혹하기에, 아우시카아와 오뒷세우스의 `사랑`이 행간을 읽어야 할 정도로 밋밋하게 처리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스티브 잡스(1955~2011)의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연설이다. 2005년 6월, 이 대학 졸업생들에게 그는 자신이 사는 동안 깨달은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번째는 인생의 전환점(connecting the dots), 두 번째는 사랑과 상실(love and loss), 세 번째는 죽음(death)에 대한 것. 이 연설을 하고 6년쯤 지나 그는 세상을 떠난다. 세 번째로 이야기한 그 병, 췌장암 때문이다.

* 필멸의 존재로 태어난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다 간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을 이해하는 것과 나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대체로 부모 두 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내 순서가 되었음을 비로소 인정하는 거다. 그는 죽음의 문턱을 밟고 돌아왔다. 그의 경험담은, (스티브 잡스에게는 좀 모질지만) 그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비로소 인정한 사례로 남다른 경험이라 하겠다. (대체로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은 저승을 한번쯤은 다녀와야 그 영웅 반열에 오른다. 헤라클레스, 테세우스가 그랬으며, 오뒷세우스가 그랬다.) 해서 그 경험은 공유하는 이들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된다. 그 ‘때문에’ 힘들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삶의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그런 소회쯤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바로 그 병 때문에 결국 작고했다. 그래서 세 번째 이야기는 물론이고, 연설문 한 문장 한 문장을 숙연한 느낌으로 읽게 된다.

* 이 연설문은 그 자체로 그와 관련된 책이나 수많은 언론보도, 그를 언급하는 강연들과 각종 책에서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였으므로, 나는 이 연설에서 그가 언급하거나 인용한 대목들의 본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출처를 추정하고 ‘의견’을 덧붙이려 한다. 연설문의 우리말 번역은 웹서핑으로 무작위로 수집한 두 종인데, 이들 번역을 비교할 것이나, 결코 번역의 옳고그름, 나음과 그렇지 않음을 비교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미리 밝히며 양해를 구한다.

 

<<<필자가 이 글에서 인용한 연설문 번역은 이 책의 텍스트와 무관함을 밝혀둡니다. 

 

* 그는 우선 자기 인생의 전환점(connecting the dots)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가 지금 세계적인 명문대 학생들의 졸업식장에 와서 연설을 하고 있네요. 그런데 저는 여러분과 달리 대학을 중퇴한 사람입니다. 진솔한 또는 낯선 고백으로 시작되는 연설은 곧이어 드넓은 삶의 바다로 항해를 시작할 학생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사실 그는 유난히 등록금이 비싸다는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중퇴했다. 이후 18개월 동안 학적 없는 상태로 대학에 머물면서 듣고 싶은 강의를 청강한다. 정확히는 도강이다. 졸업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더 이상 학사 일정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음에 끌리는 강의를 들었던 것이, 훗날 누구나 인정하는 성과를 거두는데 적시적절한 자양분이 되었다. 미혼모 대학원생인 생모에게 잉태된 순간부터 일정한 성공을 거두기까지 그의 인생에는 숱한 변곡점이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는 문장은 이렇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1)첫 번째는 점들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첫 번째 이야기는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것입니다.

 

전자(1)는 직역에, 후자(2)는 의역에 가깝다. 이후의 인용문들도 이런 특징들이 유지된다. 사는 동안 어쩔 수 없이 혹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전과는 다른 변화된 삶을 살기 마련이고, 그 순간들을 그는 점들(dots)이라고 한다. 그러나 ‘점들을 연결하는 것’이란 번역은 모호하고, 다분히 또는 역설적이게도 철학적인 뉘앙스를 가진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인생의 변곡점들이 내게는 있다. 그땐 몰랐지만, 10년쯤 흘러 그 지점들을 연결해보니, 뭔가를 깨달음이 있더라. 나는 오늘 그 이여기를 여러분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그런 얘기다.

 

생모에게 잉태되는 순간부터 입양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생모가 끝내 관철한 입양 조건이 대학 졸업이었음에도 아이는 끝내 대학을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날의 고단했던 삶……. 하지만 호기심과 직관을 믿고 행동한 많은 일들이 결국에는 값을 매길 수 없이 소중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한 가지 예는 이렇다. "(내가) 만일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결코 이러한 캘리그래피(calligraphy) 강좌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처럼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소회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말할 수 있는 , 당시에는 그 지점들이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그 의미를 결코 알 수 없었다. 와 닿는 이야기다. 지금(현재) 지난 삶의 결정의 순간(點)들을 연결해보니 그 순간이,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을 바꾼 전환점이었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런 얘기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1)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점들을 앞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2)물론 내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지금 청중들인 졸업생들은 갈 길이 정해진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청년실업이 10%대에 가까워지는 우리나라 대학의 졸업생들을 생각해보라. 진로가 분명하건 불분명하건 새로운 세상과 만나야 하는 청중들에게 졸업은 중요한 인생의 변곡점이다. 걱정 반 설렘 반일 수밖에 없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1)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뒤를 돌아보니 모든 것이 명료해졌습니다.
(2)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 돌아보면 모든 것이 매우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다음 대목이 중요하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1)다시 말하면, 앞을 보면서 점들을 연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단지 뒤를 보면서 점들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점들이 어떻게든 당신의 미래에 연결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다시 말하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익숙한 사자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 네 글자로 대치할 만 이야기 아닌가. 그리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때는 불행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 그런 것이 참 다행이었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시점이 언제이냐 하는 거다. 바로 지금 할 수 있는 말이고, 지금에는 현재(상태)와 이전인 과거의 경험이 포함된다. 미래를 얘기할 수도 없으려니와 미리 이럴 것이다, 라고 예단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인생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세 시기로 나뉜다. 그러나 ‘과거-현재’와 ‘미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큰 강(江 )이 놓여 있음에 대한 인정, 그 발견이 소중한 것이다.


세네카의 철학에세이 『인생이 왜 짧은가』(이하 '인생 짧음')에는 이와 맥락이 닿는 대목들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허둥지둥 살며 미래에 대한 기대에 젖어 현재에는 싫증을 내지요.(인생 짧음 8-8) 그렇지만 순간순간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쓰고, 하루하루를 마치 자신의 전 인생인 양 꾸려나가는 사람은 내일을 바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지요.(인생 짧음 8-9)“

 

내일(미래)이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도 없으려니와, 오늘 이 순간(현재)도 잠시 후면 어제(과거)가 되지 않느냐. 하루하루 알뜰하게 쓰면서 담담하게 살아가라. 그런 얘기다. 세네카는 좀 더 구체적으로 유사한 주장을 펼친다. 

 

세네카의 <행복한 삶에 관하여>,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가 필사책으로 나와 있다.

 

“세상에 자신의 선견지명을 자랑하는 자보다 더 어리석은 자가 또 있을까요? 그들은 더 잘 살려고 정신없이 분주하지요. 그들은 인생에 대비하기 위해 인생을 보내고 있지요. 그들은 먼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을 세우지만, 인생에서 가장 큰 손실은 뒤로 미루는 것이지요. 뒤로 미루는 것은 다가오는 족족 하루하루를 앗아가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약속하며 현재를 낚아채가지요. 기대(期待)야말로 내일에 매달리다가 오늘을 놓쳐버리게 하니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이지요. 그대는 운명의 여신 수중에 있는 것을 탐내다가 그대 수중의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오. 그대는 무엇을 원하며, 어디로 향하고 있지요? 미래는 모두 불확실한 법이오. 현재를 살도록 하시오!”('인생 짧음' 9-1 전문)

 

현재를 살라! 많이 슬프고 도저히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현재가 그런 것일지라도 그것은 당신에게 주어진 당신의 시간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혹은 과도한 혹은 조급한) 기대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목표나 희망 없이 살라는 얘기? 그건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의 나를 그리며 흘러가는 현재의 시간들을 놓치지 말라는 얘기다. 또한 나의 과거는 누구의 것도 아니며 고정불변이고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나만의 자산이라는 다음 인용에서 세네카의 메시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하지만 과거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이미 봉헌된 신성한 부분이며,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우연을 초월하여 운명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어요. 과거는 궁핍에도, 두려움에도, 질병의 엄습에도 동요하지 않지요. 과거는 방해받을 수도 빼앗길 수도 없지요. 과거는 지속적이고 근심 걱정 없는 재산이지요. 현재의 날들은 하루씩 다가오며, 그 하루는 순간순간으로 다가오지요. 그러나 과거의 날들은 그대가 명령하기만 하면 모두 한꺼번에 다가와서는 마음대로 관찰하고 붙잡도록 내버려둘 것이오.“(인생 짧음 10-4)

 

과거는 흘~러갔다! 대중가요의 한 자락처럼 과거는 이미 마침표가 찍힌 문장이며, '불가역적인' 것이다. 아름답고 달콤한 것이든 쓰라린 아픔이든 과거는 내가 잊고자 해서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아픈 기억일수록 당장 쉽게 잊히지 않고, 자신을 오래 괴롭힐 것이다. 그 오랜 앓이를 통해 우리는 단련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 순간의 점들을 반추할 수 있을 때, 연결지어 볼 때 보이는 뭔가가 있단다.

* 스티브 잡스에게 그 기간은 10년가량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무엇을 Y축의 기준으로 하건 X측을 흐르는 시간으로 할 때, 그때그때 찍히는 좌표(점)들이 있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동안 오늘의 내가 누구인지 성찰할 수 있으며,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자산(資産)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명령하기만 하면 모두 한꺼번에 다가와서는 마음대로 관찰하고 붙잡도록 내버려“두는 과거라는 경험 자산을 살피는 대신에 내일과 미래의 내 모습을 그리워하는데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는 것이다.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1)그래서 그 점들이 어떻게든 당신의 미래에 연결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당신(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니 귀에 솔깃하지 않느냐, 그렇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고, 그들에게 인생은 잔혹한 기억으로만 남을 뿐이라고. 이런 얘기에는 ‘내 상관할 바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세네카의 주장은 단호하다.  “인간의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수명을 짧게 만들었고, 수명이 넉넉지 못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명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세네카(BC4년경~AD65년)는 1세기 중엽에 활동한 로마의 대표적 지성으로, 네로 황제 재위 초기인 54~62년에 동료들과 함께 로마의 실질적 통치자였다. 오늘날 그는 인류의 고전으로 널리 읽히는 철학에세이들을 상당수 집필한 저술가로 살아 있다. 예수의 탄생으로 기원전과 기원후가 나뉘는데. 생전의 세네카는 자신의 일생 또한 기원 전과 후로 나뉠 것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어쨌든 그는 인류의 연대기에서 가장 확연한 구분점을 포함한 그 시기를 살다 갔다. 그 종교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구약과 신약 『성경』은 인류 최대의 베스트셀러일 뿐이다. 또한 스테디셀러,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필독서일 뿐이다. 오늘날의 성경으로 집필되고 출간되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이 필요했지만, 세네카는 예수가 지상에 머문 시간을 포함하는 인생을 살면서 인간의 삶을 성찰한 글들을 남겼다. 오늘날 『명상록』의 저자로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는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더불어 그는 숱한 명언이나 격언들, 곧 말들의 원 저작권자로 후세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철학에세이라고 분류하기는 하나, 오늘날 우후죽순으로 태어나고 도처에서 난전을 형성하는 ‘자기계발서들의 원조’라고 불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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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명연설 모음 고전 필사다이어리-북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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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있다. 아끼는 내 책이다. 절판이라 더욱 그렇다. 양주군 광릉내에 있는 봉선사 주지 스님을 지내고 지금은 당신 말씀대로 '뒷방 늙은이'로 지내신다는 월운 큰스님의 수상집. 달 월(月) 구름 운(雲)을 법호로 따라 수상집 이름은  <달처럼 구름처럼>(대원사 펴냄)이다. 한때 큰스님이 매월 한 꼭지씩 글을 쓰시게 하고, 담당기자임을 빌미로 한 번이라도 더 뵙기 위해 교통 불편을 감수하며 광릉내 봉선사를 찾곤 했다. 그리고도 오랜 세월을 흘렀다.

언급한 책에「<반야심경>은 왜 독송하는가」라는 글이 있다. 서당을 떠올리면 "하늘 천 따 지..." 하듯 불경 가운데 하나이면서 그것도 너무 짧은 경전을 예불을 드릴 때, 독송하곤 하는데, 왜 그렇게 하느냐 상당히 곤란한 주제의 글을 청탁 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답을 찾는 글이다. 좀 길지만 부분부분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반야심경은 왜 독송하는가」
위의 제목으로 글을 쓰라는 청을 받고 좀 겸연쩍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반야심경을 독송해야 할 긍정적인 이유를 표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여 붓을 들었다. 이 물음에 대해 똑떨어지게 대답할 수 있는 자료는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반야부경전들이나 일반 경전에 있는 말씀들에 근거하여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단일 경전으로서 극히 짧다는 데 있을 것이다. <기신론>에 “혹 어떤 사람은 짧은 문장에 많은 뜻이 들어있는 것을 좋아하여 그것에 의해 깨달음을 얻으려한다” 하였으니 간결한 경전을 좋아하는 근기는 언제나 있기 마련인 것이다. 요즘도 모든 모임에서 다같이 심경 1편을 독송하는 것이 거의 보편화된 데는 가장 짧은 단일경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심오한 진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심경이 반야부에 속한 경전임은 이미 다 아는 바이지만 그 내용이 방대하여 분량이 600부에 이른다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반야부의 주된 사상은 모든 사물에 집착된 상(相)을 여의고 반야 지혜를 터득하여 완전한 열반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의 이치를 터득해야 되고, ‘공’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실상(實相)·관조(觀照)·문자(文字)의 세 가지 반야에 의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심오하고 방대한 내용이 불과 260여자의 짧은 경 속에 수록되어 있으니, 어찌 압축된 경전이 아니겠는가. 당(唐)의 규기(窺基)는 그의 저서 <반야바라밀다심경유찬>에서 모든 사물을 ‘공’으로 보고 많은 문장에서 비유를 추려내니, 그래서 심경(心經)이라 한다고 했다. ..나아가서는 대승의 심오한 이론이 모두 들어있다니 이 한 권의 경을 읽을 때 그 많은 경을 읽은 공덕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즐겨 독송한다고 본다.
셋째, 공덕의 부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경전은 참된 말씀을 전달하는 면과 공덕을 이루어주는 면의 두 기능이 있다. 그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강조되는가에 따라 골경(骨經)이니 육경(肉經)이니 하는 말이 있다. 사실 특수한 경학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인원들은 그 경전을 수지독송하는 데서 얻어질 공덕에 대하여 더 관심이 가는 것이다. 아니면 조건없이 믿는 데서 얻어지는 공덕에 대하여 더 관심이 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뜻을 관하면서 독송하면 그 공덕은 성불에 이르거니와 그냥 독송만 해도 복덕이 헛되지 않다고 미륵송(彌勒頌)에서는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경을 수지하는 공덕은 죽은 이에게도 미친다고 풀이하였으니 누군가 말씀하시기를 “반의 ‘공’ 사상에는 다섯 가지 공덕이 있으니 집착을 비우고 업장을 소멸하고 원한을 풀고 복이 늘어나고 악도가 소멸한다‘고 하였다.

다음은 스님이 소개하는 <반야 심경>의 에피소드다.
-또 현장 법사가 17년 동안 인도의 138개국을 순방하고 돌아왔는데 그간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반야심경을 독송했기 때문이 일이 가능했다고 한다. -또 <반야심경>은 아니지만 내용이 비슷한 <금강경<을 독송하고 지옥문을 연 이야기도 있다. 당의 청허 스님은 젊어서부터 금강경을 독송했다. 그후 어느날 ...(생략) ...이렇게 해서 경전을 독송한 공덕은 이승과 저승에까지도 두루 나타난다고 하셨으니, 왜 독송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명한 것이다.  ...(생략) ... 부처님이 떠나신 지 오래인 말법에는 오품법사(五品法師)가 그 신행을 떠맡고 나가게 되었으니 5품이란, 경전의 내용이나 공덕에 대하여 믿고(1) 받아지니고(2) 읽고(3) 쓰고(4) 설법하는(5) 등 다섯 가지 일을 말한다. 즉 이 다섯가지 방법으로써만이 부처님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이 독송해야 한다.

끝으로, 수행의 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위의 여러 가지 사유에 의하여 착실히 독성하는 그 행위 자체가 공덕이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망상을 재우는 수행이 된다. 그러므로 삼업을 순화시키는 한 방법으로도 독송해야 한다. -<법륜> 1987. 2.


'절판'이란 언급도(알라딘의 경우도) 없는 책이라 좀 길지만 상당 부분을 인용하였다. '독서'의 한 방법으로 오래된 '필사'가 과연 어떤 의미? 어떤 효과가 있을까? '힐링'이니 '치유'니 여러 가지를 거론할 수 있으리라. '불경'을 필사하거나(이 부분은 따로 얘기할 필요가 있다) <성경>을 봉독하는 일은 주일마다 이뤄지고 있다. <성경>을 필사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인데, 어쨌거나 '필사'를 얘기할 때 필사는 '종교적인' 일종의 '수행' 차원과 연관이 깊은 듯하다. 그래서 긴 인용을 하였다, 번역 문장의 필사라~ 조금 말설여질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공을 들여 갈고 다듬은 문장에 대한 나름의 자신감이 있어, 서양고전 번역을 필사함으로써 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하자는 제안을 책으로 펴낸 것 아니겠는가?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 가까운 어느 강의실. 언젠가 월운 큰스님이 법문하시는 가운데 농을 섞어서 하신 말씀이 있다. 정부 지원이 들쑥날쑥이라 역경 사업이 역경이다(<한글대장경> 번역사업=역경사업)이라고. "(말이 씨가 된다고) 역경(飜經)사업이라 그런지 늘 역경(逆境)이다". 그런데, 천병희-숲의 서양 고전 원번번역에는 정부 지원이란 일절 없다. 나라의 기간산업과도 같은 번역사업에 국가지원은 어느 정도일까? 오로지 독자들의 호응과 사랑이 역경을 딛고 한 발 한 한 발 내딛게 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남다른 의미다.

거두절미,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고 거론되는, 페리클레스의 추도사(연설문)를 포함한 명연설을 모은 텍스트를 필사하는 과정에서, 말을 잘하기 위한 하나의 훈련과정 중 하나로, 이 책을 필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자주 읽은 책이기에, 여기 선정한 연설문들이 어떤 배경에서 한 것인지,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연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수준 이하의 정치인들의 연설을 듣고 있으면, 그 보좌진들부터 쓰면서 읽기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국가가 이분들의 자녀를 어른이 될 때까지 국비로 부양할 것입니다. 이것이 고인이 이런 시련을 겪은 데 대한 보답으로 고인과 그 자녀들에게 국가가 바치는 상(賞)이자 영관(榮冠)입니다. 용기에 가장 큰 상을 주는 도시에는 가장 훌륭한 시민들이 살기 때문입니다.” -이 책 <펠리클레스의 추도사>(아테나이인 전몰자들을 위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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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 날씨는 창 안에서 볼 때 더 우울해 보인다."(J. K)

보통은 다른 컴퓨터로 지상파든 공중파든 뭐든 실시간TV나 라디오를 켜놓고 할 일 하지만, 유독 명절 즈음엔 그렇지 않게 된다. 명절 분위기에 편승하고 싶지 않은 것. 1인 가구가 나라 전체 가구수의 25%, 1/4에 이르렀다니, 왜 그런지 더 이상 설명은 필요없을 듯. 물론 나머지 75%, 3/4에 속하는 가구의 구성원들, 부모와 자식들의 삶도 마음도 명절이라고 마냥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는 것일까?

 

"독신으로 지내는 것보다 더 나쁜 게 있다.

독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B.S.)"

이라는. 그럼에도 추석 날 아침 창(WINDOW)를 잠시 벗어나기로 했다. 명절은 누가 뭐래도 영화 한 편. 그렇게 찾은 영화가 <사도>. 결정적으로 한 편 봐줘야지, 라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은 "잘 봤는데 추석에 보기엔 쫌..." "무거웠다" 등등의 멘트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창 밖으로 나가자. 그렇게 <사도>를 봤는데, 결론부터 얘기하면, 창 밖을 나가 다른 창을 만나 창 밖의 우울한 세계를 또 보았다는 거다. '창 밖의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 책 이야기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는 67세쯤이던 어느 날, 한 귀족 청년을 만난다. 이름은 메논. 훗날 크세토폰의 『페르시아 원정기』('아나바시스'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에서 (페르시아 권력 쟁취에 용역으로 나선) 그리스 용병을 지휘하는 장군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메논의 노예인 소년 일명,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이 아뉘토스다. 그는 아테나이의 민주제 지지자로 이 즈음 메논이 머무르던 집주인이다. 이렇게 플라톤의 『메논』의 대화자는 이들 네 사람이다. 그리고 이 대화편의 핵심 주제는 <'미덕'이란 무엇인가?>인데, 정작 미덕의 정의(定義)보다도 미덕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안 파생된, 미덕은 가르칠 수 있는가, 없는 것인가, 하는 논의 중 나온 질문이 흥미로우며 자극적이다. 머잖아 소크라테스가 고소되어(세 명의 고소인 중 하나가 아뉘토스다) 법정에 서게되는 한 계기가 이 대화편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모래 속에서 알의 껍질을 깨고 갓 때어난 거북의 새끼는 어떻게 어미가 길을 안내하는 것도 아닌데, 곧바로 물을 찾아 이동하는가? 동물의 세계를 다룬 다큐에서 자주 보여주는 모습 가운데 하나다. 소크라테스(혹은 플라톤은)는 오늘날 불교의 '윤회설'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미덕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지, 생후에 습득하는 것,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일관되게 피력한다. 이른바 상기(想起)론을 일관되게 주창한다. <상기하자 6.25.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표어가 지금도 시골 농협창고의 벽면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필자에게 '상기(想起)'라는 단어는 이런 표어나 반공글짓기, 궐기대회에 '동원되어' 참여한 함성으로 기억되어 있다.

  

이미 태어나기 전에, 전생의 흔적들(기억들)을 가지고 왔기에 그렇게 태어났고 사는 법도 안다는, 사는 데 필요한 정보도 어떤 계기를 만나 다시 기억해낸다는 얘기다.  그것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대화편 중간에 아뉘토스와 소크라테스는 일대일로 대화하는데, 마치 치킨게임처럼 한치도 물러섬이 없는 팽팽한 대결을 펼친다. 늘 그렇듯이 소크라테스의 완승이다. 소크라테스는 아뉘토스에게 자신들의 미덕을 남들에게 가르친 훌륭한 교사가 모두가 아는 인물 중에 있느냐고 근거를 댈 것을 요청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진 미덕을 자기 자식들에게 전수한 사람이 있느냐고.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미덕을 왜 숱한 재산과 여러 자질들은 자식에게 전수하거나 증여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는가? 메논과 소크라테스의 대화가 주를 이루지만 중간에 아뉘토스가 대화에 참여하여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는 부분, 『파이드로스/메논』의 188면에서 200면에 이르는 21면가량의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쫌' 있다.

아뉘토스가 내세우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테미스토클레스다. 영화<300>의 속편. <제국의 부활>에서 '대중적으로' 부활한 인물이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왜 자신의 삶은 화려했음에도(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뭔가 있었다) 자식에게는 그 '무엇'을 대물림하지(가르치지) 못하였을까를 제시한다. 이렇게.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우리는 테미스토클레스가 다른 분야는 아들에게 가르치기를 원하면서 자신이 지혜로웠던 분야에서는 아들을 결코 이웃보다 더 나은 인물로 만들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미덕이 배울 있는 것이라면 말일세." _『메논』93e

아리스테이데스, 투퀴디데스의 사례를 소크라테스는 또 다른 논거로 제시하고, 아뉘토스는 논박당한다. 결론은 '미덕은 배울 수 없는 것' 그러므로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라는 게 소크라테스의 주장이다. 우리 영화 <사도>를 떠올려본다.

 

"<사도>는 영조와 세자가 어떻게 해서 비극이 펼쳐졌는지를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인문학적인 메시지와 감동을 주려고 한다. 이준익 감독이 '사도세자'를 영화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인 것."

_<사도>, 폭넓은 감동으로 관객들을 이끌 수 있을까? '의미 있는 슬픔', 2015. 09. 22. <헤럴드경제> 소준환 기자

 

기자는 '왜'가 아니고 '어떻게'에 방점을 찍어야 하며, 그것이 인문의 기본 정신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어떻게'가 <뒤주에 가둬서 물 한 모금 주지 않은 채 굶어 죽게 했다>는 처형 방식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안에 '왜'가 포함되어 있다. 마치 그동안 장희빈 못지 않은 사극 소재로 영조-사도세자-정조, 3대 이야기가 충분히 다뤄져 왔고, 이미 관객들은 '왜'에 대하여 나름의 대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첫째 날 영조의 대사,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다. 나는 지금 가장으로서 애비를 죽이려고 한 자식을 처분하는 것이야”  넷째 날의 다음 “이 일은 궁궐 담장을 넘을 수 없는 내 집안의 문제다”라는 대사도 '왜'와 '어떻게'의 경계지음 못지 않게 말이 안 되는 말이다. 그 사건을 한 집안의 일일 뿐이라고 한정할 수 있다면, 왕조 조선의 신하들은, 백성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라는 말인가. 세자가 왕위를 물려받을 자식이기에 시작된 비극이 아니었던가. 권력을 남용하여 자식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상속세를 최소한으로 내려고 갖은 편법을 자행하는 재벌가의 편법상속을 우리는 비판할 수 있을까? 역사는 가정할 수 없다는 말처럼, 무의미한 또한 무자비한 '주문'으로 들린다.

부모가 자식에게 부와 권력을 물려주려는 것은 본능이다. '세습을 통해 완성되는 인간 고유의 욕망'에 의해 부모와 자식은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강한 유대를 가지는 것. 인간의 본능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이 그리고 물려줄 수 있는 것과 물려줄 수 없는 것을 분간하지 못한 데서 영조와 사도의 비극은 시작되는 것이다. 알게 되면 인간은 곧 누군가를 가르치게 되어 있다.  특히 아이보다 먼저 세상을 살았던 어른들, 그렇지만 모든 어른들이 후세대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또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플라톤의 『메논』의 사례에서 거론하였듯이, 특히 부모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집안 일일 뿐이라면, 아버지 영조는 아들 사도를 그렇게 사랑하고 기대하기에 실망하고 증오하는 일이 벌어졌을리가 없다. 세 개의 명언을 골라보았다.

 

(1)어른은 누구나 가르칠 아이가 필요하다. 그래야 어른도 배우게 된다.(F. C.)

(2)꾸지람 뒤의 격려는 소나기 뒤에 나오는 태양 같은 것.(요한 볼프강 폰 괴테)

(3)조숙한 아이보다 더 지겨운 존재는 그 아이의 어머니.(J. W. M.)

명언들 각각의 함의는 해설하지는 않으련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왜'를 품은) '어떻게' 영조가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잘 알 것이므로. 다만, 위 (3)과 관련하여 '애어른'을 등장시키는 TV쇼프로그램(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고)들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도한 기대는 골깊은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것이 아니라면 그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애어른 캐릭터를 소비한다는 것인데, 좀 웃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다시 대화편 얘기로 돌아와, 앞서의 논변에서 밀린 아뉘토스가 남긴 말이 예사롭지 않다.

 

"아뉘토스: ...선생님께서는 남을 헐뜯는 것을 쉬운 일로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하지는 나는 선생님에게 조심하라고 충고하고 싶어요. ...이 나라에서는 확실히 남을 이롭게 하기보다는 해롭게 하기가 쉬워요. .."

결국, 아뉘토스는 앞서 대화 참여자들 설명에서 언급하였듯이 3년후, 소크라테스를 고발하는 3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된다.[『소크라테스의 변론』참고]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그러므로 유죄판결을 받게 될 것인데,

 

"내가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밀레토스 때문에 아니고 아뉘토스 때문도 아니며,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 시샘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죄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게 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나와 함께 끝날 염려는 없습니다. "

=『소크라테스의 변론』28a~b

라고 소크라테스는 변론하지만, 그 구체적인 사례로서 .『메논』에서의 대화는 당시 아테나이 시민들의 정서를 감안할 때 '불온한' 의견이었던 셈이다. 더구나 재판정에 나와서도 소크라테스는 몇몇 고소인들만이 아니라 (배심원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플라톤은 스승의 행적과 사상을 보전하기 위해 대화편들을 쓴다. 일종의 가늘고 긴 '명예회복' 과정이며 일종의 '복수'다.  한 자연인이 인간들의 결정에 의해 사형판결을 받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잘 스케치하고 있다면, 『메논』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에 해당하는 그 밑그림에 색을 입힌 채색화로 비유할 수 있다. 테미스토클레스나 페리클레스 등 아테나이 시민들의 자부심을 소크라테스는 가차없이 무너뜨린 것이다.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결국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을 듯하다. 숱한 신하들이 곁에 있었지만, 누가 감히 나서서 이를테면 '미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배울 수도 없지요. 더구나 자식을 아비가 가르치는 일은 불가합니다, 라는 충언을 할 수 있었겠는가.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지만, 영조는 너무 오래 살았기에(왕위에 머물렀기에) 비극의 한 주인공이 된 것은 아닐겠는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뜻이고 그래서 부모에게 부모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부모에게 자신의 부모 역할을 계속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 세계가 계속 상징적 부모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성숙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차이(어떤 것의 대체물과 그것을 상징해아 하는 것의 차이)에 통달하고, 아무리 아쉬워도 성인에게 어울리는 대체물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로버트 노직,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2장 '부모와 자식'에서)

좀 어렵다. 역사는 가정할 수 없지만, 영화 <사도>에서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비극이 수습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순간은, 대리청정 즈음이 아니었을까? 사도세자 스스로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왕의 길을 실습할 수는 없었을까? 왜 그 거리 유지에 영조는 실패한 것일까? 정직원으로 채용하기 위한 인턴 과정이 아니었던 것일까? 영조의 출신 컴플렉스, 왕권 강화를 위해 탕평책을 쓰면서 신권과의 갈등과 타협의 살얼음판을 걸어온 사람, 늘 신중하고 또 신중하였던 영조로서는 자식이 자신과 같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갈 것에 대해 우려하고 또 우려했을 것이다. 천상 아비다. 어느때보다도 한 자녀 가정이 많은 우리나라, 정책적으로 인구억제책을 쓴 중국에서 자식을 향한 부모 역할의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자식보다 한 살만 더 살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완성되는 것일까?   

 

"궂은 날씨는 창 안에서 볼 때 더 우울해 보인다." 설마 이런 심각한 영화였어! 영화 <사도>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영화 한 편을 더 보자고 상의하는 장면을 곳곳에서 목격했다. "아버님, 한 편 더 봐도 괜찮으시겠어요"(자식이 아버지를 걱정하는 소리다) 아마도 <사도>에 앞서 개봉한 <베테랑Veteran>이 천몇백만의 흥행성적을 거둔 데에는 '결정적'은 아니라도 <사도>의 우울모드가 '상당한' 역할을 했으리라. <베테랑>은 과연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였을까?

 

     "

  생각한다
  눈 오는 섬진강과 지리산 사이에
  남과 북 사이에
  은서네 피아노학원과 종점세탁소 사이에
  홍매화와 목련꽃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또 무슨
  병은 없는지

     "

=곽재구의 시 <사랑이 없는 날> 일부(『와온바다』에 수록). 인용한 시를 참고하여,  제목을 <사이에 슬픔은 없는지>로 미리 정하고 쓰기 시작한 페이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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