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잡스(1955~2011)의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연설이다. 2005년 6월, 이 대학 졸업생들에게 그는 자신이 사는 동안 깨달은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번째는 인생의 전환점(connecting the dots), 두 번째는 사랑과 상실(love and loss), 세 번째는 죽음(death)에 대한 것. 이 연설을 하고 6년쯤 지나 그는 세상을 떠난다. 세 번째로 이야기한 그 병, 췌장암 때문이다.

* 필멸의 존재로 태어난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다 간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을 이해하는 것과 나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대체로 부모 두 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내 순서가 되었음을 비로소 인정하는 거다. 그는 죽음의 문턱을 밟고 돌아왔다. 그의 경험담은, (스티브 잡스에게는 좀 모질지만) 그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비로소 인정한 사례로 남다른 경험이라 하겠다. (대체로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은 저승을 한번쯤은 다녀와야 그 영웅 반열에 오른다. 헤라클레스, 테세우스가 그랬으며, 오뒷세우스가 그랬다.) 해서 그 경험은 공유하는 이들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된다. 그 ‘때문에’ 힘들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삶의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그런 소회쯤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바로 그 병 때문에 결국 작고했다. 그래서 세 번째 이야기는 물론이고, 연설문 한 문장 한 문장을 숙연한 느낌으로 읽게 된다.

* 이 연설문은 그 자체로 그와 관련된 책이나 수많은 언론보도, 그를 언급하는 강연들과 각종 책에서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였으므로, 나는 이 연설에서 그가 언급하거나 인용한 대목들의 본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출처를 추정하고 ‘의견’을 덧붙이려 한다. 연설문의 우리말 번역은 웹서핑으로 무작위로 수집한 두 종인데, 이들 번역을 비교할 것이나, 결코 번역의 옳고그름, 나음과 그렇지 않음을 비교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미리 밝히며 양해를 구한다.

 

<<<필자가 이 글에서 인용한 연설문 번역은 이 책의 텍스트와 무관함을 밝혀둡니다. 

 

* 그는 우선 자기 인생의 전환점(connecting the dots)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가 지금 세계적인 명문대 학생들의 졸업식장에 와서 연설을 하고 있네요. 그런데 저는 여러분과 달리 대학을 중퇴한 사람입니다. 진솔한 또는 낯선 고백으로 시작되는 연설은 곧이어 드넓은 삶의 바다로 항해를 시작할 학생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사실 그는 유난히 등록금이 비싸다는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중퇴했다. 이후 18개월 동안 학적 없는 상태로 대학에 머물면서 듣고 싶은 강의를 청강한다. 정확히는 도강이다. 졸업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더 이상 학사 일정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음에 끌리는 강의를 들었던 것이, 훗날 누구나 인정하는 성과를 거두는데 적시적절한 자양분이 되었다. 미혼모 대학원생인 생모에게 잉태된 순간부터 일정한 성공을 거두기까지 그의 인생에는 숱한 변곡점이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는 문장은 이렇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1)첫 번째는 점들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첫 번째 이야기는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것입니다.

 

전자(1)는 직역에, 후자(2)는 의역에 가깝다. 이후의 인용문들도 이런 특징들이 유지된다. 사는 동안 어쩔 수 없이 혹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전과는 다른 변화된 삶을 살기 마련이고, 그 순간들을 그는 점들(dots)이라고 한다. 그러나 ‘점들을 연결하는 것’이란 번역은 모호하고, 다분히 또는 역설적이게도 철학적인 뉘앙스를 가진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인생의 변곡점들이 내게는 있다. 그땐 몰랐지만, 10년쯤 흘러 그 지점들을 연결해보니, 뭔가를 깨달음이 있더라. 나는 오늘 그 이여기를 여러분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그런 얘기다.

 

생모에게 잉태되는 순간부터 입양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생모가 끝내 관철한 입양 조건이 대학 졸업이었음에도 아이는 끝내 대학을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날의 고단했던 삶……. 하지만 호기심과 직관을 믿고 행동한 많은 일들이 결국에는 값을 매길 수 없이 소중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한 가지 예는 이렇다. "(내가) 만일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결코 이러한 캘리그래피(calligraphy) 강좌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처럼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소회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말할 수 있는 , 당시에는 그 지점들이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그 의미를 결코 알 수 없었다. 와 닿는 이야기다. 지금(현재) 지난 삶의 결정의 순간(點)들을 연결해보니 그 순간이,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을 바꾼 전환점이었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런 얘기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1)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점들을 앞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2)물론 내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지금 청중들인 졸업생들은 갈 길이 정해진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청년실업이 10%대에 가까워지는 우리나라 대학의 졸업생들을 생각해보라. 진로가 분명하건 불분명하건 새로운 세상과 만나야 하는 청중들에게 졸업은 중요한 인생의 변곡점이다. 걱정 반 설렘 반일 수밖에 없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1)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뒤를 돌아보니 모든 것이 명료해졌습니다.
(2)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 돌아보면 모든 것이 매우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다음 대목이 중요하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1)다시 말하면, 앞을 보면서 점들을 연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단지 뒤를 보면서 점들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점들이 어떻게든 당신의 미래에 연결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다시 말하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익숙한 사자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 네 글자로 대치할 만 이야기 아닌가. 그리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때는 불행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 그런 것이 참 다행이었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시점이 언제이냐 하는 거다. 바로 지금 할 수 있는 말이고, 지금에는 현재(상태)와 이전인 과거의 경험이 포함된다. 미래를 얘기할 수도 없으려니와 미리 이럴 것이다, 라고 예단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인생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세 시기로 나뉜다. 그러나 ‘과거-현재’와 ‘미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큰 강(江 )이 놓여 있음에 대한 인정, 그 발견이 소중한 것이다.


세네카의 철학에세이 『인생이 왜 짧은가』(이하 '인생 짧음')에는 이와 맥락이 닿는 대목들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허둥지둥 살며 미래에 대한 기대에 젖어 현재에는 싫증을 내지요.(인생 짧음 8-8) 그렇지만 순간순간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쓰고, 하루하루를 마치 자신의 전 인생인 양 꾸려나가는 사람은 내일을 바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지요.(인생 짧음 8-9)“

 

내일(미래)이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도 없으려니와, 오늘 이 순간(현재)도 잠시 후면 어제(과거)가 되지 않느냐. 하루하루 알뜰하게 쓰면서 담담하게 살아가라. 그런 얘기다. 세네카는 좀 더 구체적으로 유사한 주장을 펼친다. 

 

세네카의 <행복한 삶에 관하여>,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가 필사책으로 나와 있다.

 

“세상에 자신의 선견지명을 자랑하는 자보다 더 어리석은 자가 또 있을까요? 그들은 더 잘 살려고 정신없이 분주하지요. 그들은 인생에 대비하기 위해 인생을 보내고 있지요. 그들은 먼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을 세우지만, 인생에서 가장 큰 손실은 뒤로 미루는 것이지요. 뒤로 미루는 것은 다가오는 족족 하루하루를 앗아가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약속하며 현재를 낚아채가지요. 기대(期待)야말로 내일에 매달리다가 오늘을 놓쳐버리게 하니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이지요. 그대는 운명의 여신 수중에 있는 것을 탐내다가 그대 수중의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오. 그대는 무엇을 원하며, 어디로 향하고 있지요? 미래는 모두 불확실한 법이오. 현재를 살도록 하시오!”('인생 짧음' 9-1 전문)

 

현재를 살라! 많이 슬프고 도저히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현재가 그런 것일지라도 그것은 당신에게 주어진 당신의 시간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혹은 과도한 혹은 조급한) 기대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목표나 희망 없이 살라는 얘기? 그건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의 나를 그리며 흘러가는 현재의 시간들을 놓치지 말라는 얘기다. 또한 나의 과거는 누구의 것도 아니며 고정불변이고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나만의 자산이라는 다음 인용에서 세네카의 메시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하지만 과거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이미 봉헌된 신성한 부분이며,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우연을 초월하여 운명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어요. 과거는 궁핍에도, 두려움에도, 질병의 엄습에도 동요하지 않지요. 과거는 방해받을 수도 빼앗길 수도 없지요. 과거는 지속적이고 근심 걱정 없는 재산이지요. 현재의 날들은 하루씩 다가오며, 그 하루는 순간순간으로 다가오지요. 그러나 과거의 날들은 그대가 명령하기만 하면 모두 한꺼번에 다가와서는 마음대로 관찰하고 붙잡도록 내버려둘 것이오.“(인생 짧음 10-4)

 

과거는 흘~러갔다! 대중가요의 한 자락처럼 과거는 이미 마침표가 찍힌 문장이며, '불가역적인' 것이다. 아름답고 달콤한 것이든 쓰라린 아픔이든 과거는 내가 잊고자 해서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아픈 기억일수록 당장 쉽게 잊히지 않고, 자신을 오래 괴롭힐 것이다. 그 오랜 앓이를 통해 우리는 단련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 순간의 점들을 반추할 수 있을 때, 연결지어 볼 때 보이는 뭔가가 있단다.

* 스티브 잡스에게 그 기간은 10년가량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무엇을 Y축의 기준으로 하건 X측을 흐르는 시간으로 할 때, 그때그때 찍히는 좌표(점)들이 있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동안 오늘의 내가 누구인지 성찰할 수 있으며,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자산(資産)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명령하기만 하면 모두 한꺼번에 다가와서는 마음대로 관찰하고 붙잡도록 내버려“두는 과거라는 경험 자산을 살피는 대신에 내일과 미래의 내 모습을 그리워하는데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는 것이다.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1)그래서 그 점들이 어떻게든 당신의 미래에 연결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당신(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니 귀에 솔깃하지 않느냐, 그렇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고, 그들에게 인생은 잔혹한 기억으로만 남을 뿐이라고. 이런 얘기에는 ‘내 상관할 바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세네카의 주장은 단호하다.  “인간의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수명을 짧게 만들었고, 수명이 넉넉지 못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명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세네카(BC4년경~AD65년)는 1세기 중엽에 활동한 로마의 대표적 지성으로, 네로 황제 재위 초기인 54~62년에 동료들과 함께 로마의 실질적 통치자였다. 오늘날 그는 인류의 고전으로 널리 읽히는 철학에세이들을 상당수 집필한 저술가로 살아 있다. 예수의 탄생으로 기원전과 기원후가 나뉘는데. 생전의 세네카는 자신의 일생 또한 기원 전과 후로 나뉠 것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어쨌든 그는 인류의 연대기에서 가장 확연한 구분점을 포함한 그 시기를 살다 갔다. 그 종교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구약과 신약 『성경』은 인류 최대의 베스트셀러일 뿐이다. 또한 스테디셀러,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필독서일 뿐이다. 오늘날의 성경으로 집필되고 출간되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이 필요했지만, 세네카는 예수가 지상에 머문 시간을 포함하는 인생을 살면서 인간의 삶을 성찰한 글들을 남겼다. 오늘날 『명상록』의 저자로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는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더불어 그는 숱한 명언이나 격언들, 곧 말들의 원 저작권자로 후세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철학에세이라고 분류하기는 하나, 오늘날 우후죽순으로 태어나고 도처에서 난전을 형성하는 ‘자기계발서들의 원조’라고 불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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