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명연설 모음 고전 필사다이어리-북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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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있다. 아끼는 내 책이다. 절판이라 더욱 그렇다. 양주군 광릉내에 있는 봉선사 주지 스님을 지내고 지금은 당신 말씀대로 '뒷방 늙은이'로 지내신다는 월운 큰스님의 수상집. 달 월(月) 구름 운(雲)을 법호로 따라 수상집 이름은  <달처럼 구름처럼>(대원사 펴냄)이다. 한때 큰스님이 매월 한 꼭지씩 글을 쓰시게 하고, 담당기자임을 빌미로 한 번이라도 더 뵙기 위해 교통 불편을 감수하며 광릉내 봉선사를 찾곤 했다. 그리고도 오랜 세월을 흘렀다.

언급한 책에「<반야심경>은 왜 독송하는가」라는 글이 있다. 서당을 떠올리면 "하늘 천 따 지..." 하듯 불경 가운데 하나이면서 그것도 너무 짧은 경전을 예불을 드릴 때, 독송하곤 하는데, 왜 그렇게 하느냐 상당히 곤란한 주제의 글을 청탁 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답을 찾는 글이다. 좀 길지만 부분부분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반야심경은 왜 독송하는가」
위의 제목으로 글을 쓰라는 청을 받고 좀 겸연쩍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반야심경을 독송해야 할 긍정적인 이유를 표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여 붓을 들었다. 이 물음에 대해 똑떨어지게 대답할 수 있는 자료는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반야부경전들이나 일반 경전에 있는 말씀들에 근거하여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단일 경전으로서 극히 짧다는 데 있을 것이다. <기신론>에 “혹 어떤 사람은 짧은 문장에 많은 뜻이 들어있는 것을 좋아하여 그것에 의해 깨달음을 얻으려한다” 하였으니 간결한 경전을 좋아하는 근기는 언제나 있기 마련인 것이다. 요즘도 모든 모임에서 다같이 심경 1편을 독송하는 것이 거의 보편화된 데는 가장 짧은 단일경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심오한 진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심경이 반야부에 속한 경전임은 이미 다 아는 바이지만 그 내용이 방대하여 분량이 600부에 이른다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반야부의 주된 사상은 모든 사물에 집착된 상(相)을 여의고 반야 지혜를 터득하여 완전한 열반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의 이치를 터득해야 되고, ‘공’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실상(實相)·관조(觀照)·문자(文字)의 세 가지 반야에 의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심오하고 방대한 내용이 불과 260여자의 짧은 경 속에 수록되어 있으니, 어찌 압축된 경전이 아니겠는가. 당(唐)의 규기(窺基)는 그의 저서 <반야바라밀다심경유찬>에서 모든 사물을 ‘공’으로 보고 많은 문장에서 비유를 추려내니, 그래서 심경(心經)이라 한다고 했다. ..나아가서는 대승의 심오한 이론이 모두 들어있다니 이 한 권의 경을 읽을 때 그 많은 경을 읽은 공덕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즐겨 독송한다고 본다.
셋째, 공덕의 부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경전은 참된 말씀을 전달하는 면과 공덕을 이루어주는 면의 두 기능이 있다. 그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강조되는가에 따라 골경(骨經)이니 육경(肉經)이니 하는 말이 있다. 사실 특수한 경학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인원들은 그 경전을 수지독송하는 데서 얻어질 공덕에 대하여 더 관심이 가는 것이다. 아니면 조건없이 믿는 데서 얻어지는 공덕에 대하여 더 관심이 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뜻을 관하면서 독송하면 그 공덕은 성불에 이르거니와 그냥 독송만 해도 복덕이 헛되지 않다고 미륵송(彌勒頌)에서는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경을 수지하는 공덕은 죽은 이에게도 미친다고 풀이하였으니 누군가 말씀하시기를 “반의 ‘공’ 사상에는 다섯 가지 공덕이 있으니 집착을 비우고 업장을 소멸하고 원한을 풀고 복이 늘어나고 악도가 소멸한다‘고 하였다.

다음은 스님이 소개하는 <반야 심경>의 에피소드다.
-또 현장 법사가 17년 동안 인도의 138개국을 순방하고 돌아왔는데 그간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반야심경을 독송했기 때문이 일이 가능했다고 한다. -또 <반야심경>은 아니지만 내용이 비슷한 <금강경<을 독송하고 지옥문을 연 이야기도 있다. 당의 청허 스님은 젊어서부터 금강경을 독송했다. 그후 어느날 ...(생략) ...이렇게 해서 경전을 독송한 공덕은 이승과 저승에까지도 두루 나타난다고 하셨으니, 왜 독송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명한 것이다.  ...(생략) ... 부처님이 떠나신 지 오래인 말법에는 오품법사(五品法師)가 그 신행을 떠맡고 나가게 되었으니 5품이란, 경전의 내용이나 공덕에 대하여 믿고(1) 받아지니고(2) 읽고(3) 쓰고(4) 설법하는(5) 등 다섯 가지 일을 말한다. 즉 이 다섯가지 방법으로써만이 부처님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이 독송해야 한다.

끝으로, 수행의 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위의 여러 가지 사유에 의하여 착실히 독성하는 그 행위 자체가 공덕이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망상을 재우는 수행이 된다. 그러므로 삼업을 순화시키는 한 방법으로도 독송해야 한다. -<법륜> 1987. 2.


'절판'이란 언급도(알라딘의 경우도) 없는 책이라 좀 길지만 상당 부분을 인용하였다. '독서'의 한 방법으로 오래된 '필사'가 과연 어떤 의미? 어떤 효과가 있을까? '힐링'이니 '치유'니 여러 가지를 거론할 수 있으리라. '불경'을 필사하거나(이 부분은 따로 얘기할 필요가 있다) <성경>을 봉독하는 일은 주일마다 이뤄지고 있다. <성경>을 필사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인데, 어쨌거나 '필사'를 얘기할 때 필사는 '종교적인' 일종의 '수행' 차원과 연관이 깊은 듯하다. 그래서 긴 인용을 하였다, 번역 문장의 필사라~ 조금 말설여질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공을 들여 갈고 다듬은 문장에 대한 나름의 자신감이 있어, 서양고전 번역을 필사함으로써 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하자는 제안을 책으로 펴낸 것 아니겠는가?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 가까운 어느 강의실. 언젠가 월운 큰스님이 법문하시는 가운데 농을 섞어서 하신 말씀이 있다. 정부 지원이 들쑥날쑥이라 역경 사업이 역경이다(<한글대장경> 번역사업=역경사업)이라고. "(말이 씨가 된다고) 역경(飜經)사업이라 그런지 늘 역경(逆境)이다". 그런데, 천병희-숲의 서양 고전 원번번역에는 정부 지원이란 일절 없다. 나라의 기간산업과도 같은 번역사업에 국가지원은 어느 정도일까? 오로지 독자들의 호응과 사랑이 역경을 딛고 한 발 한 한 발 내딛게 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남다른 의미다.

거두절미,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고 거론되는, 페리클레스의 추도사(연설문)를 포함한 명연설을 모은 텍스트를 필사하는 과정에서, 말을 잘하기 위한 하나의 훈련과정 중 하나로, 이 책을 필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자주 읽은 책이기에, 여기 선정한 연설문들이 어떤 배경에서 한 것인지,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연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수준 이하의 정치인들의 연설을 듣고 있으면, 그 보좌진들부터 쓰면서 읽기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국가가 이분들의 자녀를 어른이 될 때까지 국비로 부양할 것입니다. 이것이 고인이 이런 시련을 겪은 데 대한 보답으로 고인과 그 자녀들에게 국가가 바치는 상(賞)이자 영관(榮冠)입니다. 용기에 가장 큰 상을 주는 도시에는 가장 훌륭한 시민들이 살기 때문입니다.” -이 책 <펠리클레스의 추도사>(아테나이인 전몰자들을 위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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