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02 - 멋진 신세계, 2021.1.2.3
문지혁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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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의 글을 제외한 모든 글의 밀도와 수준이 높다. 읽는 내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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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0 가을.겨울호 - 68호
계간 미스터리 편집부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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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읽다 보니, 최근에 읽었던 《오늘의 SF》가 떠올랐다. 미스터리와 SF 장르의 대표 잡지답게 자연스럽게 둘을 비교하게 되는 것 같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라면 역시 독자 개방성을 들 수 있겠다.


《계간 미스터리》는 독자를 확보하려는 목적의 잡지이기도 하지만, 신인 작가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더 강한 잡지다. 미스터리 팬들의 창작과 투고를 독려하는 부분들이 눈에 많이 띈다. ‘한국 추리문학의 세대교체’를 주제로 다룬 호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수시로 투고를 받고, 신인상을 주고, 해당 작가들을 인터뷰하거나 해당 작품을 실어주는 모습이 확실히 그렇다. 결국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데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아무래도 추리/미스터리 독자층이 있긴 하지만 해외 작품에 쏠려있기 때문에 국내 작가에게 더 힘을 실어주려는 게 아닌가 싶다.


​(...)


작가들이 많이 겹친다는 느낌도 비슷하다. 《오늘의 SF》는 아무래도 새로운 작가를 영입하는 쪽은 아니다 보니까 더 심하게 겹친다. 여태껏 두 권의 잡지가 나왔는데, 창간호에서 인터뷰를 했던 배명훈 작가가 2호에는 중편소설을 실었다. 창간호에 단편을 실었던 듀나는 2호에 서평을 썼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가 주축이 되어 꾸려진 필진이다 보니 더욱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계간 미스터리》에도 서미애와 송시우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워낙 판이 좁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나는 위의 두 가지 공통점을 보며 이 잡지들이 일종의 동인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들이 스스로 너무 좋아서 만든, 혹은 해당 장르를 알리려는 목적으로 만든 느낌. 물론 출판사의 입장은 그 이상일 것이다. 이 잡지를 통해 SF의, 혹은 추리/미스터리의 붐이 일어나기를 꾀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 정도의 수준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인다. 주류에 편입하려 애쓰는 마음이 느껴져 짠해지면서도 그것을 위태롭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장르문학 잡지들은 팬덤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라기보다는, 없는 팬덤을 만들어 보려고 펴낸 것이기 때문이다. 장르 잡지는 언제쯤 동인지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팬덤을 얻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 장르가 정말 재밌다는, 한번 읽어보라는 수준의 설득을 해야 하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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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SF #2
정세랑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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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를 읽다 보니, 최근에 읽었던 오늘의 SF가 떠올랐다. 미스터리와 SF 장르의 대표 잡지답게 자연스럽게 둘을 비교하게 되는 것 같다.


(...)


두 잡지의 공통점이라면 각 장르의 매력을 독자들에게 설득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SF가 아무리 붐이라고 해도, 아직까지 자발적인 독자층이 그렇게 두텁지는 않아 보인다. 오늘의 SF 서평을 검색해 보면 대부분이 무료로 책을 제공받은 서평단들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피상적인 수준의 서평들이 많다. 거의 보도자료에 가깝다) 어느 정도 팬덤에 근거해 만들어진 잡지임은 틀림없지만, 아직도 장르에 대한 설득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던 정세랑 작가는 오늘의 SF 2호에서 이렇게 말한다.



∥SF 작가들은 반 이상의 리뷰가 “SF는 싫어하지만…”으로 시작되는 것에 유감을 가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 그 과정을 조금이나마 축약하기 위해 이 잡지가 만들어졌다. ∥ p. 5, 오늘의 SF #2》 인트로


이 글의 제목은 ‘당신은 사실 SF를 싫어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이다. 이 글을 시작하는 위의 문장이 독자가 아니라 작가들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오늘의 SF의 사정도 실은 《계간 미스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반증하는지도 모른다. 두 잡지는 쉴 새 없이 장르 자체를 홍보하기에 바쁘다. ‘이 장르, 정말 매력적입니다. 한 번 써보시죠. 혹은, 한 번 읽어보시죠.’


(...)


​나는 위의 두 가지 공통점을 보며 이 잡지들이 일종의 동인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들이 스스로 너무 좋아서 만든, 혹은 해당 장르를 알리려는 목적으로 만든 느낌. 물론 출판사의 입장은 그 이상일 것이다. 이 잡지를 통해 SF의, 혹은 추리/미스터리의 붐이 일어나기를 꾀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 정도의 수준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인다. 주류에 편입하려 애쓰는 마음이 느껴져 짠해지면서도 그것을 위태롭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장르문학 잡지들은 팬덤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라기보다는, 없는 팬덤을 만들어 보려고 펴낸 것이기 때문이다. 장르 잡지는 언제쯤 동인지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팬덤을 얻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 장르가 정말 재밌다는, 한번 읽어보라는 수준의 설득을 해야 하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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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
모치즈키 이소코 지음, 임경택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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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비범함은 사실 배운 대로 행하는 우직함에서 나온다. 학창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던 그녀는 신입시절부터 지금까지 선배들이 가르쳐준 기자정신을 충실히 따르는 성실한 직업인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회에는 공개적으로 배우는 것과는 다른, 눈치껏 배워야 하는 비공식적인 지식이 많다. 그것은 일하는 요령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단순한 꼼수, 편법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러다 비공식적인 교육이 공식적인 것을 압도해 버릴 때, 그 사회는 상식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정례회견에서 질문을 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질문을 했을 뿐인데 튀는 행동이 되고 말았다. 현(現) 관방장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는 질문 공세 때문에 궁지에 몰리자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답하고 만다. “(…) 여기는 질문에 대답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1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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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뉴스저널리즘 홈페이지로 (http://www.nget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2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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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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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책 말미의 해제에서도 지적했지만 상당히 전체주의적인 면을 보여준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조지 오웰의 『1984』는 놀랄 만큼 닮아있다. 이것이 두 번째 역설이다.


유토피아라는 이상향은 만장일치의 사회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게 하나의 결로 일치할 수 있겠는가. 

코로나가 창궐하는 시대에도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이 떨어져도 어떻게든 모이는 사람은 있기 않은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일에서도 그렇게 일치시키기가 힘든데, 하물며 이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서 일치 단합을 시킨다는 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일까.


코로나로 모두가 고통 받은 2020년. 교수신문이 교수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가 뽑혔다고 한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이중 잣대를 표현한 말로, 

요즘 말로 하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어쩌면 토머스 모어가 사회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했던 사유재산이 아니라, 

이런 이중 잣대가 사회 문제의 진짜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모두의 머릿속에는 서로 전혀 다른 모습의 유토피아가 존재한다.



토머스 모어는 공화국을 지향하는데, 공화국은 라틴어로 ‘공공의 것(res publics)’을 뜻한다. 왕정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한 나라를 공공의 것으로 바라본 개념이다. 토머스 모어가 꿈꾸었던 유토피아는 오늘 날 이루어졌는가 생각해 보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토머스 모어가 꿈꾸었던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아직도 존재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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