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적나라한 민.낯. - 야동 끊은 한 남자의 진솔한 고백
허상 지음 / 에테르니(AETERNI) / 2019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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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30대 중반의 기혼남으로 추측된다. 애도 있고, 적당히 페미니스트 같다.

독자로 상정된 대상은 20~30대 미혼 여성으로 짐작된다.

이 구도 자체가 갖는 태생적인 맨스플레인의 약점이 있다. 이것이 첫 번째 단점이다. 그래도 남자들의 민낯을 보여준다니 꾹 참고 읽었다.

하지만 같은 시간과 노력이라면, 그 나이대의 여성 독자들은
차라리 리베카 솔닛이나 우에노 지즈코 책을 읽는 게 훨씬 생산적일 것 같다.

왜냐면 이 책은 대단히 비전문적인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책이 가지는 두 번째 단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얄팍한 지식에 의지해서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대단히 위태로워 보인다. 프로이트 이론이나 에로티시즘 개념을 자신감 넘치게 가져오는 부분들이 특히 그렇다.

심지어 뻔뻔하다. 어쩌면 ‘적나라한 민낯’이라는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저자가 쓴 내용보다는 이런 저자의 태도에서 더 드러나는 것 같다.

|| 물론 그래 봐야 주관적인 의견에 불과하겠지만, 설령 이에 대해 어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객관적인 조사를 한다고 해서 나보다 정확한 사실을 파악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어차피 이런 조사도 없겠지만). 공신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내 이야기를 믿든 안 믿든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 || p. 59


이런 뻔뻔한 태도를 내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공신력이 떨어지는 저자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면, 이 책 자체는 성립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이 책이 전문가가 아닌 저자의 개인적인 의견에 기대고 있는 바가 지나치게 크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싫으면 읽지 말던가’하는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차라리 공신력 있는 ‘척’을 하지 말고, 솔직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책을 구성했다면 어떨까 싶다. 프로이트만으로 남성의 심리를 설명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많다.

그리고 상당 부분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는 게 세 번째 단점이다.

이제는 통념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트위터에 널리고 널린 남자에 대한 분석이 너무 많다.

일베를 분석하면서 여성들의 사회진출로 인한 위기감을 이유로 드는 것이라거나,
유흥업소에 출입하거나 성관계 동영상을 찍는 남자들은 열등감/우월감이 강하다거나,
남자들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사실 관계만으로 맥락을 판단해 버린다던지.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논의했고, 거의 상식이 되어버린 내용들이 상당수다.

너무 늦게 도착한 해석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맨스플레인의 혐의는 더욱더 짙어진다.

남성의 행동 패턴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너무 성적인 부분에만 집중돼 있다는 게 이 책의 네 번째 단점이다. 사회학적인, 혹은 심리적인 모든 면이 성욕으로 설명된다.

아마도 저자가 프로이트에 깊이 경도된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프로이트에 대단히 공감하고 있는 집단인 건가. 텍스트 밑에 흐르는 ‘적나라한 민낯’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면이다.

그 적나라한 민낯의 절정은 소설 형식으로 된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난다. 거의 90년대 싸구려 연애 소설 같은 느낌이다.

첫 키스 장면을 묘사하며 ‘물컹함’, ‘말캉했다’라거나 ‘결국 뚫어냈다’ 같은 표현은 꽤나 거북했는데, 신체 접촉을 묘사하는 저자의 어휘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름대로 ‘민낯’을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굳이 내가 이걸 왜 읽어야 하지’ 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저자가 어느 정도 페미니스트 같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에 저자는 한 번도 본인을 가리켜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한 적이 없다.

책에서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는 ‘남녀 혹은 여남’이라는 표현이 무색해지는 지점이다. 익숙한 느낌이다. 굳이 페미니즘을 거부하며 ‘양성평등’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닮았다.

|| 그런데도 모든 남자가 문제인 양 모두를 비판하려 드는 일부 여자들의 무차별적인 태도 또한 우리는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태도는 분명 남녀 혹은 여남 간의 공생이 아닌 공멸의 결과만을 가져올 뿐이며, 결국 모두의 손해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 p. 8


결국 여성 혐오, 혹은 남성 혐오의 문제에 있어서 그 문제 근간에 있는 가부장제의 억압적인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그 시스템 아래에서 어떻게 고통받고 있는지는 이 책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남자들을 골라내는 방법’(p. 67) 같은 거나 가르쳐주는 책이라면 문제가 있다.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그런 남자를 만나는 건 여자들의 잘못도 있어’라는 태도다.

|| 따라서 만약 당신이 그런 남자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면, 무조건 남자 탓을 하기에 앞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은연중에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지, 경차 타는 남자들을 무시하고 있진 않은지, 자신의 외모, 상대방의 외모 등 평소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삶을 살고 있진 않은 지에 대해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 p. 66-67


더 중요한 문제는 사실 그게 아니다. 아무나 만나도 위험하지 않고, 상식이 통하며, 혹여 그들에게 공격을 받더라도 사회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것들은 남자의 민낯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긴 하다. 가뜩이나 공신력도 없는데.

책은 시종일관 자신의 목표인 남자의 민낯(이 책에 의하면 ‘남자의 성욕’)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인다. 그런데 저자가 남자의 성욕을 여자 독자에게 이해시켜서 관철시키려는 것은 도대체 뭘까?

|| 그러나 수연과의 관계의 경우, 그녀와 우연히 정서적 교감이 먼저 형성될 수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수연의 작은 관심에서 비롯한다. 그의 말을 귀담아듣고 반응해준 작은 노력들이, 그로 하여금 그가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다 그에게 여러모로 심정적인 충격을 전달하기까지 하면서 수연은, 그가 엄마와 교감하던 그때처럼, 수연 자신과 교감하고 싶은 내적 충동을 그에게서 끌어낼 수 있었다. || p. 218

|| 그가 엄마 품에 안겨 엄마를 욕망하던 그 시절의 경험과 흡사한 형태로 다시 사랑이 재완성된 것이다. 육체적, 정서적으로 상대방과 하나의 존재처럼 연결된 느낌, 그는 수연을 그렇게 사랑할 수가 있었다. || p. 219

이것은 또다시 문제의 해결을 남성의 변화가 아니라, 여성의 이해에서 구하는 것은 아닐까?

목적이 그것이라면, 여자들은 더더욱 남자의 민낯을 살펴볼 필요가 없다. 그것은 가부장적인 남자의 태도를 이해하고, 위험한 남자는 피하고, 위험한 남자가 아니라면 그 사람에게 여자가 맞춰주는 것밖에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자들이 자기들의 민낯을 객관적으로 보고, 현실을 직시하는 게 더 급하다.

어쨌거나 이렇게 상당한 양의 단점을 참으면서 읽어낸다면, 익히 봐오지 못했던 새로운, 그러면서 꽤나 솔직한, 그리고 내밀한, 남자들의 속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단지 너무 드물게 나타난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텍스트에 드러나지 않은 더더욱 내밀한 민낯은 그 아래 깔려 있는 저자의 욕망을 읽어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 전체는 민낯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단지 그 텍스트 전체에 흐르는 가치관이 꽤나 위태롭다는 게 문제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가장 무해한 말은 프롤로그가 나오기 전 첫 장에 이미 나온다.

|| 우리는 본래 동물이지만, 동물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당신은 ‘생각’을 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해졌다. ||

남자들에게는 아직도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남자 스스로의 민낯을 살피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한 번 더 반대로 뒤집어 생각하고, 다시 뒤집어 그것을 검토해봐야 한다. 남자가 무해한 텍스트를 쓴다는 건 그렇게나 어렵다. 가부장의 역사는 그렇게나 길고 깊었다. 그나마 몇 년 전에 비하면 이런 책이 나온다는 건 대단한 발전이긴 하다. 하지만 더 나은, ‘진짜 민낯’을 말하는 책이 나올 때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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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드 2022-03-25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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