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츠드렁크 - 행복 지수 1위 핀란드 사람들이 행복한 진짜 이유
미스카 란타넨 지음, 김경영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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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츠드렁크란 무엇인가.


팬츠드렁크의 어원인 핀란드어 ‘칼사리캔니’는 속옷을 뜻하는 ‘칼사리kalsari’와 취한 상태를 뜻하는 ‘캔니känni’의 합성어이다. 이 함축적인 단어에 팬츠드렁크의 본질이 담겨 있다. 쉽게 말해, 팬츠드렁크는 어디도 나가지 않고 오직 집에서 속옷 차림으로 술을 마시는 행위를 의미한다. p. 31


간단히 말해서, 집에서 편한 속옷 차림으로 (보통 혼자서) 술 마시면서 쉬는 거다. 

한국의 혼술 문화나, 미국의 ‘넷플릭스 앤 칠’과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된다.


따지고 보면 도시생활을 하는 세계 어디에나 흔한 개념이다.

이것은 마치 ‘정(情) 문화’가 한국에만 있다고 주장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다.

‘핀란드의 자랑스러운 문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보편적이어서 조금 민망하다는 말이다.



책에서는 ‘팬츠드렁크’만의 특성을 부여하려고 계속해서 시도하고는 있지만 끝까지 모호하고 두루뭉술한 개념으로만 남는다. 


처음에는 달콤하게 들리기도 한다. 사회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당신 맘대로 해도 되는 자유’를 선사하는 것 같다. 현대인들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주는 최고의 방법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지만,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 하나쯤 가지지 않은 직장인이 있던가.

게다가 집에서 팬티만 입고 술 먹는 거라니! 

그것보다 창의적인 방식이 수도 없이 많을 것 같은데!


이것만 가지고 한 국가와 북유럽 지방의 철학이니 라이프 스타일이니 논하는 건 무리라고 본다. 그나마 자유로워 보이던 첫 이미지는 계속해서 강조하는 ‘절제하라’는 말 때문에 증발된다. 막판에 가서는 일부 사람들에게 팬츠드렁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강조한다. 


질문: 매일 팬츠드렁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괜찮을까요?


답변: 괜찮지 않습니다. 매일 술에 취해 스트레스를 날리고 스스로에게 보상을 하는 건강한 욕구라기보다는 고질적인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증거입니다. 한낮에 술을 마시고 싶다면 분명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겠죠. 당연히 모든 사람이 가끔씩 위기를 겪기도 하고 자기만의 고유한 성격이나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만, 팬츠드렁크가 일상이 되고 만족감을 주지도 않는다면 자기 발전을 위한 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지 말되 너무 관대해지지도 마세요. 위험한 상태에 처했다는 걸 깨달았다면, 외부의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p. 186


정리해 보면, 팬츠드렁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술을 잘 절제할 수 있으며, 가끔씩만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애초에 팬츠드렁크가 필요 없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저녁에 집에 와서 술 먹고 텔레비전 보는 건 비만과 운동부족, 알코올 중독의 위험을 키운다.


이것은 도리어 핀란드라는 나라가 얼마나 환경이 열악한지(얼마나 춥고 어두우면 할 게 집안에서 혼자 술 먹는 것 밖에 없단 말인가!)를 드러내 보이는 것밖에 안 된다. 

환경적인 열악함만이 문제가 아니다. 사상적, 문화적 빈곤을 드러내고 있다는 게 더 문제다.


팬츠드렁크는 틀림없이 이 우울하고 어두침침하고 눈비 날리는 계절에 생겨났으리라. 집을 나서는 일이 태산 같은 장애물을 넘기는 것 같은 때 말이다. 핀란드에서는 그런 날이 1년 중 9개월 보름 정도라는 놀라운 사실. p. 34


길고 춥고 어두운 겨울과 서로 멀찌감치 떨어진 집들을 보면 핀란드에서 팬츠드렁크가 생겨나고 유행한 연유를 알 것 같다. 그거라도 없으면 견딜 수가 없으니까. p. 36


핀란드 정부는 팬츠드렁크를 장려한다. 핀란드에 헤비메탈, 휴대폰, 사우나만 있는 건 아니다. 소파에서 뒹굴며 술을 마실 자유가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p. 157



그나마 핀란드 전통주도 아니고, 그냥 ‘맥주’라니! 

누구나 어디서나 즐길 수 있어서 보편적이고 평등하다는 말로 포장하려 하지만 그냥 밋밋한 느낌만 남는다.


심지어 팬츠드렁크라는 단어 자체는 생겨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칼사리캔니, 즉 팬츠드렁크라는 단어는 2000년대까지 우리 학회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은 말이었어요. 하지만 그 용어가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된 까닭에 2014년에 우리 온라인 사전에 실렸죠.” 에로넨의 설명이다. 

칼사리캔니라는 용어는 1990년대에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몇 차례 인쇄물에 등장했고, 2000년대 초반에 온라인에서부터 점차 사용 빈도가 높아졌다. p. 58


핀란드 내에서도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 세대마다 그 단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요. 우리 학회에서도 젊은 직원들은 팬츠드렁크를 중성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반면 더 나이가 있는 직원들은 서글프고 외로운 삶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 p. 61


이 모호한 개념에 핀란드라는 국가의 이미지를 입히는 것보다 더 나쁜 문제는 ‘쿨함’의 이미지를 뒤집어쓰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억지로 ‘쿨하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안 쿨한’ 것도 없다.


일본이 ‘쿨 재팬’을 국가 이미지로 삼은 것을 떠올려보자. 그 단어를 쓰는 순간 쿨함은 사라져버린다. 일본이 롤모델로 삼은 영국의 ‘쿨 브리타니아’는 어떤가. 스파이스 걸스와 텔레토비를 남긴 그 정책 말이다. 그것은 여전히 쿨한가?


쿨함은 정부 주도로 생기지 않는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는 심지어 주한 핀란드 대사의 ‘추천사’다)

싸이나 방탄소년단이 국가가 주도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라.

강남역에 서 있는 ‘강남스타일 말춤 동상’ 같은 게 정부의 한계다.


결국 이 책은 일련의 ‘북유럽 스타일’ 붐을 타고 나온 또 하나의 팬시상품이다. (책 표지와 본문 중에 삽입된 삽화와 인포그래픽들은 전형적인 ‘북유럽 스타일’을 보여준다) 심지어 북유럽 스타일의 유행이 지난 지도 꽤 됐다.


북유럽 스타일에 대한 로망을 현실적으로 충족시켜 준다는 면에서 일종의 ‘보급판 북유럽 스타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헐렁한 속옷과 맥주는 그다지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그냥 구질구질한 방구석에 처박혀 있어도 북유럽 스타일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북유럽의, 핀란드의, 헬싱키의 판타지에 젖기에는 그나마도 너무 빈곤한 방식이다.



조한혜정의 『선망국의 시간』에 보면 유럽(특히 북유럽)이 대한민국과 얼마나 다른 환경을 구축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세월호 사건을 같이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 많지는 않아도 어떤 ‘코어’가 생긴 것 같아요. 울리히 벡이 20대들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동아시아 청년들의 현실 인식 정도가 가장 첨예하게 높았다고 합니다. 똑똑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현실이 굉장히 모순적이면서 극화된 형태이기 때문 아닐까요? 그에 비해서 미국 청년들은 어차피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고, 또 유럽 청년들은 ‘왜 세상이 이런가?’라는 질문을 잘 안 한다고 해요. ‘컴포트 존Comfort Zone’이라고 하는, 공동체의 안락함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지요. 한국 청년들에게서는 ‘세상이 왜 이런가?’하는 질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p. 102-103


북유럽이 좋은 모델이 되고 있지만 사실 북유럽은 1, 2차 대전 이후 세계 패권 따위와 상관없이 자국민을 보호하는 지역 국가가 되기로 결정했기에 (…) p. 197


우리의 혼술 문화와 팬츠드렁크가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우리는 어쩌면 북유럽 스타일로 도피할 때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사회는 전혀 ‘컴포트’ 하지 않은 곳이니까.



이 책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면 오히려 혼자 있을 용기에 대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도 혼자서 멍하게 있는 시간을 두려워한다.

외로우면 누군가를 만나서 그 감정을 해갈하려고 한다.

젊은이들은 모두들 ‘아싸’가 되지 않으려고 신경 쓰며 ‘인싸’를 꿈꾼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 이성친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난리들이다.


우리에겐 혼자서도 편안하고, 즐거움을 누릴 용기가 필요하다.

혼자 있다고 해서 우울해하지 않을 자존감이 필요하다.


인간은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깊은 생각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하면서 재충전하기도 한다.

그건 ‘루저’나 ‘아싸’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다.

핀란드 사람들이 외부 환경 때문에 강제로 할 수밖에 없었던 ‘혼자만의 시간’을,

우리는 자발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다.

진짜 문화적, 사상적 빈곤은 혼자서도 제대로 있을 수 없는 사회에서 훨씬 심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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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언니 2019-02-27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고 책이 아니라 감상평쓰신 분 글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Bookbuff 2019-02-28 09:52   좋아요 0 | URL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