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안 사회 - 제국과 식민지의 번안이 만든 근대의 제도, 일상, 문화
백욱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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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안의 과정과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는 재미가 상당한 책이다. 물론 현재의 우리와 연결고리가 분명할수록 더 재밌고, 번안의 결과가 우스꽝스러울수록 더 재밌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우선 『번안 사회』라는 제목과 ‘제국과 식민지를 거쳐 번안된 근대와 서양’이라는 주제는 단번에 내 시선을 붙들었다. 근대와 근대화에 대한 책은 꽤 읽어봤지만, ‘번안’이라는 키워드는 뭔가 막힌 곳을 뚫어주는 느낌이었다.  

 

 80년대 변두리 서울에서 자란 나는 나를 둘러싼 것들에서 괴이한 이질감을 느끼곤 했다. 레스토랑은 레스토랑이 아니었고, 햄버거는 햄버거가 아니었고, 핫도그는 핫도그가 아니었다. 조잡한 그림으로 덧그려진 불법복제 만화는 명백히 뭔가를 감추려고 했고, 캐릭터 상품들은 어딘지 모르게 엉성했다. 매스컴에서는 모두들 국산 제품이 좋다고 주장했지만, 실생활에서 국산을 구입하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런 것들뿐이었고, 뭔가 다른 것을 찾던 나는 결국 대안을 찾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예 모든 정보가 통제된 상태였다면 모르겠지만, TV에선 AFKN이나 더빙판 외화, 헐리우드 영화가 판을 쳤다. 팝송도 지금과는 다르게 가요의 일부처럼 인기가 많았다. 나는 모든 것을 불신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상품에 한정해서라면, 분명히 누군가 나를 속이고 있었다.  

 

 변두리긴 하지만 서울에서 자란 나에 비해 지방, 그것도 도시가 아닌 곳에서 자란 사람들의 경우는 훨씬 심했을 것이다. 어렸을 적에 시골 친척 집에 놀러 갔던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내 또래 사촌들이 즐겨보는 만화책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했던 기억이 난다. 모두들 자랑스럽게 그 만화책을 <드래곤볼>이라고 주장했지만,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드래곤볼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큐 점프>에 정식 연재 중인 ‘별책부록’ <드래곤볼>을 모으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만화는 <타이의 대모험>(<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중 하나)이라는 만화의 해적판이었다.  

 

 이런 혼란을 일시에 정리해준 것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1990년에는 번안의 영역이 점차 별 볼 일 없어진다. 번안을 거부하는 세대가 등장하고, 번안이 무력해진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소득 증대, 여행 자유화와 인터넷의 대중화를 통해 말 그대로 ‘지구촌’ 시대가 전개된다. 이제 근대적인 것은 일본적인 것, 서구적인 것, 미국적인 것을 넘어 ‘전 지구적’인 것이 되었다. (…) 이제 더빙이 필요 없는 자막의 시대가 되었다. p. 168-169

 

 비로소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무엇이 번안판이고 무엇이 원본인지를 구분할 정보처를 확보한 것이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고, 뭐든 그 근원이 무엇인지 파헤치고자 했다. 진짜가 뭔지 알고 싶었다. 왜곡된 형태가 아니라 원본 그대로의 본래 모습을 말이다. 나는 우뢰매의 디자인이 일본 애니메이션 <닌자전사 토비카게>에서 표절해 온 것을 알게 되었다. <후레쉬맨>의 아류로 알고 있던 <바이오맨>이 실은 후레쉬맨보다 먼저 나온 작품임을 알게 됐다.  

 

 우리는 어쩌다 이런 시기를 거치게 된 것일까. 왜 <슬램덩크>의 ‘쇼호쿠’는 ‘북산’이 되었을까. 왜 우리는 한일전에서 <마징가Z>의 주제가를 응원곡으로 부르게 된 것일까. 

 

 저자는 이런 대한민국의 특징을 ‘번안 사회’로 명명하고, 그 근원을 식민지 시대로까지 거슬러 가서 파헤친다.  

 

서양식과 원래 우리 것 사이에 일본식(왜식, 화식)이 하나 더 끼어든다. 일본도 서양의 힘으로 개항된 반식민지 체제를 경험했다. 그러나 일본은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흉내 내고, 베끼고, 자신의 것과 어떤 식으로든 결합시켰다. 일본은 그대로 베끼기도 하고 상황에 맞게 바꾸기도 하고, 자신의 목적에 따라 차용하기도 하면서 번안의 다양한 방식을 활용했다. 식민지 조선은 그런 일본을 다시 베껴 냈다. p. 271-272


 일본이 곧 근대였고, 일본이 건네준 서구 문물이 곧 원본이나 마찬가지였던 시대에 우리는 원본을 접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일본을 통해 한번 왜곡된 근대를 우리 식으로 다시 한 번 왜곡시킨다.


 

모방과 번안은 인류 역사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모방을 또 모방하면 원본의 윤곽이 흐려지고 알맹이가 빠져나가면서 원본이 자리 잡았던 사회·문화적인 배경과 맥락이 사라진다. 그래서 모방된 문화를 다시 모방하면 원본과 다른 ‘이상한 번안물’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탈맥락화가 번안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장점으로 작동할 수도 있겠으나, 번안은 대체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타인의 모방물을 모방하게 되기 때문이다. 탈맥락화의 장단점은 결국 번안물을 만들고 수용하는 주체의 취향과 행위, 문화적 역량에 따라 판가름 난다. p. 301

 

 식민시대 당시 그나마 원본을 직접적으로 수용해 우리 식으로 번안한 것은 기독교였다. 원본이라고 볼 수 있는 외국인 선교사가 직접 와서 전달했고, 번안 작업에 조선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당대 성경과 찬송가의 번안 수준은 상당히 높았고 이미 초기에 그 틀을 확립할 수 있었다.  

 

 전통문화가 아직 남아있던 시절이기 때문에 새롭게 들어온 근대문화(그나마 이중으로 왜곡된 근대문화)는 전통문화와 무분별하게 섞이는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고, 그 모습은 필히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잘못된 절충과 융합은 꼴이 말이 아니다. 맥락에 맞지 않아 모양새가 안 나오는 조잡한 흉내, 설익은 모방을 ‘키치’라고 부른다. ‘짬뽕’이나 ‘잡탕’이라는 일상용어도 막무가내 혼합과 융합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단어다. 서양의 산물과 동양의 문물, 근대의 산물과 전통의 유물이 만나고 충돌할 때 각각이 어떤 위치에 서는가에 따라 그 ‘꼴’이 만들어진다. 그 꼴이 자연스럽지 않거나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할 땐 ‘꼴불견’이 된다. p. 212

 

 폐쇄적인 사회는 저질 번안을 유지시키는데 한몫한다. 중국에는 정식으로 판권을 구입해 제작한 중국판 ‘프로듀스101’이 존재하지만, 아류 프로그램도 함께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그것의 원본이 일본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중국의 폐쇄적인 통제는 저질 번안을 유지시키긴 하지만 완전히 가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군사독재 시대에는 그것이 가능했다.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어이없는 부분이다. 우리는 해방 이후, 제대로 된 번안의 시기를 놓치고 만다. 경제부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일본제국주의를 번안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베트남 파병이 소개된다. 

 

식민지 시대의 외부로부터 강요된 모방은 신문물의 힘에 압도된 대중의 수동적 모방과 수용을 낳았다. 1960년대의 외부적 강제자 없이 진행된 자발적 모방은 자신이 모방한 대상을 철저하게 감추었다. 박정희는 식민지 조선에서 자신이 경험한 것을 1960년대 한국에 적용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모방을 감추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베트남 파병이 식민지 시대 징용·징병제의 또 다른 모방이자 변형이었던 사실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p. 116

 

 하지만 군사정부의 서슬 퍼런 통제에도 원본에 대한 열망을 막지는 못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참전을 통해서라도 외국에 나간다는 경험은 중요하다. 그만큼 원본을 접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파견된 장병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한복판에서 고국에 없는 풍요를 접하게 된다. 한국군 장병들에게 베트남전은 외국 문물을 직접 접하고 습득할 수 있는 기회였다. p. 120

 

 이미 세계화를 지나 우리는 21세기를 맞이했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의 정보는 왜곡 없이 우리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우리 문화는 아직 번안의 수준을 뛰어넘어 원본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문화적인 식민지 상태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직 근대를 완전히 소화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번안의 단계를 뛰어넘어 원본이 되려는 시도들도 이뤄지고 있지만 지름길은 없다. 그동안 청산하지 못한 번안들을 차근차근 다시 살펴봐야할 때다.

 

번안 기간을 줄일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에 답하기는 어렵다. 배경이 형태보다 빨리 변하면 쓸모없는 흉물이 남고, 형태가 배경보다 빨리 변하면 너무 전위적인 생산물이 된다. p. 103

 

 저질 번안이 용인되는 시기는 끔찍한 ‘짝퉁’의 시대였다. 자신이 짝퉁인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배나 더 비참한 시기다. 사실 짝퉁이란 단어는 ‘원본’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책에도 언급되지만, 과거에는 ‘나이롱’이라는 말이 쓰였다. 원본이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 원본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우리는 원본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부터 원본을 갈구해 왔다. 한 번도 짝퉁이 되기를 원했던 적은 없다. 그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열망이 우리를 분명히 원본의 자리로 올려놓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bouv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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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틈에 2018-08-31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네요.^^ 보관함에 넣어 봅니다.

Bookbuff 2018-08-31 22:08   좋아요 0 | URL
번안이라는 키워드로 새롭게 근대화를 바라볼 수 있었어요 ㅎ 감히, 조심스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