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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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 오버스럽고 작위적이기도 하지만, 단점을 커버할 만큼 재밌게 잘 읽히는 사변 소설.

테드 창의 SF 걸작에 이어, 또 다른 SF 소설을 읽었다.
테드 창과 같이 중국계 미국인으로, 미국 사회에서 엄청 잘나가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시대 SF계를 호령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소설의 주제나 내용 등의 큰 부분에서 차이점을 보여준다.
테드 창은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켄 리우는 중국 문화를 소재로 사용하거나 민감한 과거 역사를 적극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테드 창의 소설은 사유적이고, 켄 리우의 소설은 사회참여적이다.

총 14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원작 단편집에는 15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분량 상의 문제인지 1편은 제외했다고 한다. (재밌고 가독성 좋은데, 그냥 다 넣지...)

★★아래에는 스포 있습니다★★

가장 좋았던 단편은 <시뮬라크럼>이다.
특정 인물의 대화/행동 방식을 바탕으로 홀로그램 영상물을 만들어서 프로젝터로 실행할 수 있다. 해당 영상 속의 홀로그램 인물은 사용자에게 능동적으로 반응한다. (엄청 발달한 3D 버전 심심이, 이루다로 생각해도 될 듯하다.)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구성과 완성도도 굉장히 훌륭하다. 테드 창 소설 같았다! (극찬)
독서모임에서 난 시뮬라크럼이 실제로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다른 한 사람은 이에 반대했다.
- 반대 의견 : 현실과의 경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딸과의 관계가 틀어진 아빠가 현실 속의 딸과 적극적으로 화해를 하거나 대화를 시도하지 않고, 7살 딸의 홀로그램 영상을 하루 종일 반복 재생하여 대화한다는 점이 싫다고 했다. 작중에서도 이런 아빠의 모습을 알게 된 딸이 아빠에 혐오감을 나타냈다.
- 내 의견 : 안 그래도 1인 가구가 늘어가는데, 시뮬라크럼이 있다면 특히 독거노인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돌을 시뮬라크럼으로 만들어서 판다면...? 상상만 해도 좋다. 카리나가 내 말동무를 해준다고? 그것도 능동적으로? (물론 가동시간에 한계가 있어서, 리셋되면 내가 한 이야기들을 까먹겠지만..)

<송사와 원숭이 왕>도 좋았다. ‘손오공‘과 ‘양주십일‘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양주 대학살의 존재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표제작 <종이 동물원>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SF 3개 상을 받은 최초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 정도의 깊이를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미국 사회에서 중국인으로 받는 차별과 슬픔을 말한다. 작위적이고 직접적인 표현법이 아쉬웠다.

작위적이고 오버한다고 느꼈던 단편이 더 있다.
<즐거운 사냥하길> Good Hunting. 중국 특유의 요괴 관련 문화로 시작하여, 근대사회로 넘어간다. 존경받던 옛것이 근대화로 인해 잊히고, 그 자리를 기계가 대신한다는 구성을 참 잘 만들었다. 근데, 무슨 트랜스포머냐,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나무꾼이냐. 마지막에 왜...ㅋㅋㅋㅋ
<파자 점술사> 단어를 풀어서 점을 봐주는데,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공산당을 때려잡는다고 무고한 사람까지 죽이는 대만의 역사를 개인적인 관점에서 잘 보여준다. (주인공의 아빠에 의해 주인공의 절친들이 죽게 된다.)
<파> ‘세포 열화 방지 및 노화 중지‘가 가능해진 우주선, 그리고 더 먼 미래의 이야기. 영생을 얻고 인간이 기계화되는 것까지는 이해했는데,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건 다소 억지스러웠다..

AI가 인간 사회에서 필수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AI 회사의 불순한 의도를 파악한 사람들의 이야기 <천생연분>, 영혼이 물체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상태 변화>, 이퀼리브리엄이 생각나던 <레귤러>, 소행성 충돌 전 일본과 우주선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모노노아와레>, 대체 역사 + 중일미를 잇는 지하 통로를 소재로 제국주의 시대 역사를 건드리는 <태평양 횡단 터널 열차>, 과거를 볼 수 있는 기계로 일본제국의 731부대의 만행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주면서 논쟁하는 소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등의 좋은 단편들이 많다.

켄 리우의 작품을 좀 더 찾아볼 것 같다! 좋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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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 1 만화중국고전 29
채지충 지음 / 대현출판사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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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총평 : 문구점에서 팔던 미니북 (베리베리 올드 차이나 피플 버전)

오랜만에 다시 채지충의 만화를 읽었다.
먼저 세설신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자면, 여러 인물들과 관련된 짧은 옛날이야기들 모음집이랄까. 장르는 깨달음, 지혜, 소소한 유머이다.
단편 소설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예전에 문방구에서 팔던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B급 책자에 나오는 길이의 이야기들이다. 기승전결 중에 ‘기승!‘까지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읽고 있었는데, 동생이 이 책을 보더니 무슨 이런 별 내용도 없는 책을 읽냐고 했다. 할 말이 없었다. (나 역시도 이 책을 그냥 심심풀이용, 권수 채우기 용으로 읽고 있으니ㅠㅠ)

화흠, 왕랑, 조조, 조비, 조식, 등애, 양수와 같은 삼국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들도 있다.
기존의 사고방식과 관념을 뒤틀어주거나 다른 시선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야기들도 조금 있다.

가볍게 한 번 쓱- 보기에 나쁘지 않은 책이다. 가끔씩 다시 생각을 하게 해주는 이야기들은 보너스..
2권은 다음 주말에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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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숨 : EXHALATION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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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읽기 전) 왜 그렇게들 테드 창에 열광하는 거야?
(읽은 후) 테드 창! 테드 창! 테드 창!

사람들이 테드 창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던 단편집. 9개의 단편 모두 걸작이다.
전작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등장인물들의 서사와 드라마와 감정적 연계가 완전히 보완된다.

★★스포 있습니다★★

첫 단편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부터 끝내준다.
타임슬립을 해서 과거와 미래의 나를 알게 되더라도, 과거와 미래를 바꿀 수 없다, 다만 좀 더 잘 알게 된다는 설정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실로 오랜만에 소설을 통한 드라마적인 감동까지 느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분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짧은 일생이었지만 함께 보낸 시간 덕분에 행복했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20년 전 또는 후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은 보너스.

표제작인 <숨>은 그다지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결론 부분이 급 교훈적이라서 의아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초단편 소설이라서 쉬어가는 느낌으로 읽었다. (자유의지가 없다고 해도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이 즈음에서 테드 창이 이 단편집을 통해 공통적으로 말하고 싶은 바를 알 수 있다.
내 나름의 언어로 풀어보자면, Keep Being Good, 즉 외부 상황이 어떻든 어떤 일이 있었든 있을 예정이든 Keep Calm and Just Keep Going이다.

중편으로 분류할 수도 있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개인적인 취향을 건드려주는 소설이었다.
자아가 있고 소통까지 가능한 사이버 펫 ‘디지언트‘들과 만들어가는 관계와 가능성에 대한 드라마를 읽으며, 과거의 나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사이버 존재 자체를 상상하기 쉽지 않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생각이 많아진다.
독서모임에서 한 분이 ‘디지언트‘를 사회에서 소외된 장애인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그 의견에 감탄했다. 학습 능력에 한계를 보이는 디지언트들을 보면, 지나친 발상도 아니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역시 엄청나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우리의 모든 일상을 브이로그처럼 저장할 수 있고, 원할 때마다 특정 과거를 영상으로 재생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아니, 테드 창 당신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뻗어나갑니까? 게다가 그 상상력을 이렇게 잘 버무려내다니..

마지막 단편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반가웠다. 종종 평행세계의 수많은 나를 생각하고 위안 삼으며, 멘탈을 조금이나마 부여잡는 나 자신의 얕은 상상을 정교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평행세계의 나와 소통까지 할 수 있다면...? 다양한 캐릭터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이 소설은 한 번 읽고 끝낼 책이 아니다. 단물이 빠지지 않는(오래가는) 껌 같은 단편집이다. 단편 하나하나를 충분히 음미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맛봐야 한다. 그럴수록 테드 창 소설의 진가를 더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한 권의 책을 읽으면 다른 책을 읽는 편인데, 이 소설집은 아까워서 그럴 수 없겠다. 충분한 사색과 상상을 하면서 조금씩 다시 읽어볼 예정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도 다시 읽어봐야 하려나..? 이 책이 더 좋다는 사람들도 꽤 많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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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 시바 료타로
산케이신문사 지음, 이한수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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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작가 ‘시바 료타로‘ 前 신문기자 ‘후쿠다 데이이치‘가 궁금하다면

약 1년 전 한국에 번역 출간된 책.
현재까지 내가 인정한 3명의 작가 중 1명인 시바 료타로에 대한 책을 팬심을 가지고 읽어보았다.
그에 대해 좀 더 알아보는 것이 그의 소설을 좀 더 즐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다.

전업 작가 전에 약 16년 정도 신문기자 생활을 했던 청년 시바 료타로(본명 후쿠다 데이이치)의 삶을,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기록, 그리고 시바 본인이 남긴 글을 바탕으로 그의 지난 삶을 돌아본다.

이 책을 읽은 나의 인간 시바 료타로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는가- 하면 아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이미지와 비슷했다.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무상無償의 공명주의, 즉 기자는 권력과 거리를 두며 익명으로 공익을 이상으로 삼는 시바의 바람직한 신문기자상에 그의 됨됨이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쓴 소설 <올빼미의 성>의 ‘쓰즈라 주조‘, <세키가하라 전투>의 ‘이시다 미쓰나리‘와 ‘시마 사콘‘, <타올라라 검>의 ‘히지카타 도시조‘는 시바가 말하는 신문기자상과 유사한 등장인물들이다.
시바 본인도 평생을 그러한 삶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멋있어 보일 따름이다. (아래 사진 참고)

책 후반부에는 그가 기자 시절에 쓴 칼럼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역시 잘 쓴다. (본문보다 재밌다!)

시바 료타로의 삶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였다. 그의 유쾌함과 인간미에 미소 짓고, 지성과 통찰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기자 은퇴 이후 소설가 시절의 일화도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마음에 쏙 들었던 두 문장을 옮겨 쓰며 간단한 리뷰를 마무리 짓는다.

˝회사가 지켜주는 신분이나 생활권에 안주하지 말게. 언제나 승부 정신을 잊지 말고, 회사는 자신의 재능을 표현하기 위해 빌리는 장場이라고 여기게.˝ (36쪽, 마쓰요시)

누구에게나 결점은 있다. 그 결점에 위축되면 안 된다. 오히려 결점 위에 가부좌를 틀고서 자라나는 그것이 예술이라고.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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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역사 무식자도 쉽게 맥을 잡는 단박에 조선사 - 역사 무식자도 쉽게 맥을 잡는
심용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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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조선사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필요한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언젠가부터 믿고 보는 역사학자 유튜버 심용환의 저서를 읽어보았다.
그가 집필한 조선사는 이때까지 읽었던 조선사 서적들과 달랐다. (역사 서적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왕조 순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 후기 공민왕 재위부터 철종 재위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시선으로 여러 사건들과 생활상 등을 조명한다. 조선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입문서로 적절하다.
균형 잡힌 관점에서 적절한 근거와 함께 당대의 사건을 해석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를 다시금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특정 사건과 인물을 미화하거나 깎아내리지 않고, 사료를 바탕으로 현대의 관점과 당대의 관점을 비교하며 객관적으로 해석한다. 이 책의 큰 강점이다. 우리가 과거의 사건과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판단해야 할지, 그 근본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힌트를 준다.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한 잘 알려지지 않은 한계점과 의의를 알려주는 것도 좋았다.
- 세종의 한계(사대주의와 성리학), 영조와 정조의 한계(개정은 있지만 개혁은 없는 왕권 강화), 실학의 한계, 정도전의 개혁 정신, 한글의 의의와 한계, 성리학이라는 학문을 바탕으로 한 조선의 의의 등

책 자체는 훌륭하고 가독성도 좋았지만, 책을 읽는 내 감정의 대부분은 안타까움과 답답함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약간의 희망과 가능성을 단발적으로 보여주면서 희망고문을 한다. 세종과 영조, 정조와 같은 군주의 치세를 이어가지 못한다. 뛰어난 인재가 있어도 뛰어난 정책이 있어도, 결국은 권태의 시대에 묻혀버린다.
특히 연산군의 폭정으로 인한 후폭풍, 두 번의 전쟁을 겪은 후에도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 상황을 볼 때는 한숨만 나왔다. (연산군 폭정 이후 조일전쟁 전후로 새 나라가 들어섰어야...)

조선! 중요한 찬스를 살리지 못하는 축구팀 같다. 찬스를 만들어도 골대 앞에서 볼을 다시 뒤로 돌리거나 빌빌 슛을 쏴 대기만 한다. 처참하게 골을 먹히고 패배하면 리빌딩을 할 것이지, 선수들과 코치들은 파벌을 나눠서 싸우기만 하고 감독은 자신의 자리 지키기에만 골몰해있다. 간혹 승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권태에 빠져 있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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