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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평점 :
총평: 두 남자를 두고 저울질하는 주인공이 밉지 않은 건, 작가의 순박한 필력 덕분인 걸까?
재미뿐만 아니라, 서사와 구조도 훌륭한, 20~30대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알 수 있는 작품.
(재미-상, 난도-하)
1978년에 데뷔한 소설가 양귀자의 대표작이자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2015년 이후로 절필한 것으로 보인다.
저작으로는 『원미동 사람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천년의 사랑』 등이 있다.
(줄거리) 25살의 어느 날, 주인공 안진진은 문득 인생을 바꿔보기로 결심한다.
만나고 있는 두 명의 남자, 김장우와 나영규를 저울질하며 본인의 미래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고민한다.
집을 나간 자유로운 영혼의 무책임한 아버지, 조폭 놀이에 빠진 불량 남동생, 그리고 가정을 지탱하는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와 일란성 쌍둥이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모.
그 사이에서 안진진의 1년이 흘러간다.
🚨스포 있습니다🚨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베스트셀러로 손색없는 작품이다.
양다리를 걸치고 두 남자 중에서 누구와 미래를 함께할지 재는 주인공을 보는 건, 재미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서정적이고 부드럽게 그려내는 방식은 결코 자극적이지 않다.
모든 등장인물을 일차원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긍정적인 점을 찾아내려는 안진진의 시선 역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안진진이라는 렌즈를 통해, 거칠고 부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인물들도 사연이 있는 감성적인 캐릭터로 보게 된다.
(문장) 작가가 인생에서 깨달은, 곱씹을만한 깊이 있는 것들을 안진진의 입을 빌려 쉴 새 없이 보여준다.
재독하면서 본인의 인생에 필요한 격언을 얻어 가기에도 충분한 책이다.
(21)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188)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229)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다.
개인적으로는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와닿았다.
타인의 행복은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타인의 불행에서는 안도와 위안을 얻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로맨틱) 진지하고 깊이 있는 문장만 있는 건 아니다.
안진진이 저울질하고 있는 두 명의 남자 중, 순수하고 자유로운 남자 김장우의 담백하고 솔직한 멘트는 로맨틱하기 그지없다.
내가 설렐 일이냐고... 글 참 잘 쓴다.
안진진이 이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서도 왠지 모를 따뜻함과 상냥함이 글을 읽는 나에게 전달된다.
(엄마와 이모, 그리고 모순)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엄마와 이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자.
안진진의 엄마와 이모는 일란성 쌍둥이로 굉장히 유사한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결혼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인생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불행은 모두 엄마에게로, 행복은 모두 이모에게로.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실상이 꼭 그렇지는 않다.
불행해 보이는 엄마는 힘겨운 인생에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기운차게 인생을 살아가는 한편, 행복해 보이는 이모는 굴곡 없는 순탄한 인생에서 답답함과 무기력함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잃어간다.
그리고 이야기 말미에 이모는 자살한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소설의 끝을 날린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굳이 왜 이모를 죽게 하지? 꼭 이렇게 해야만 했나? 방금 전까지 이모와 안진진의 풋풋하고 따뜻한 이야기에 내 마음도 녹고 있었는데...
하지만 결말 부분에서 ‘모순‘을 위해 작가가 의도한 장치임을 알 수 있었다.
행복해 보이기만 하던 이모의 불행을 극대화해서, 작가의 뜻을 확실히 전달하기 위함이다.
모진 풍파가 몰아치는 인생을 살아내는 엄마가 고난을 원동력으로 활기차게 헤쳐가는 모습과 대비되도록 말이다.
안진진은 이모부와 함께 살아가면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이모를 바로 옆에서 봤지만, 모순적이게도 이모부를 닮은 나영규를 선택한다. 이모의 끝을 알지만 말이다.
이로써 작가의 의도가 보다 명확해졌다.
(아쉬움) 그래도 꼭 이렇게 극단적이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은 여전하다.
죽은 것만 같이 정형화된 평탄한 삶이 싫었다면, 기계 같은 이모부의 뜻을 거스르고 본인의 의지를 강하게 관철하거나 즉흥적으로 작은 일탈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시도와 과정이라도 보여줬다면, 보다 납득할 수 있는 반전이 되지 않았을까?
아쉽다면 아쉬운 전개이기도 하다.
(추천)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일상적인 소재의 장점을 잘 살린, 서사적으로도 재미가 충분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본인의 삶을 개선하고자 다짐하고, 실천하는 안진진을 응원하면서 읽었다.
이모가 자살하기 전까지는 안진진과 비슷한 시대를 살아간 나의 엄마에게 이 소설을 추천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