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에서 간절히 원하는 것들 - 상처로 남지 않을 죽음을 위하여
태현정 외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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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병동. 이제야 우리에게 생경한

단어가 아니지만 그래도 설마 내가 혹은

우리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면

바로 내일 죽음을 맞이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이제는 드물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란?

환자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유지하도록 돕기 위해 통증과 증상을

조절하며 정서적, 영적, 사회적

지지를 병행하는 일을 말한다.

우리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 "죽음"이란 것을

염두에 두고 산다면 사람에 대한 원망, 미움,

용서하지 못한 태도의 높이를

조금은 줄일 수 있다.

한 사람이 치열하게 살았던

너무나 소중했던 생을 마무리하는 곳.

그곳이 바로 호스피스 병동이며

그 곳에 근문하는 많은 의료진들은

환우들과 환우들의 또 다른 가족인셈이다.

노을은 품은 하늘은 아름답다.

해 지는 노을을 품은 하늘의 깊이와 품위는

마치 저물어 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말해주고 있다.

지는 해의 아쉬움과 잠이라는 선물로

우리에게 휴식을 선물하는 것처럼

생의 마지막_죽음은 열심히 살아낸

사람들에겐 휴식이다.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인절할 때

가장 빛이 나는 법.

그렇게 각자의 삶을 품고

우리에게 위로와 휴식을 주는 노을품은 하늘.

참으로 많은 생각과 먹먹함을 주는 날이다.

사회적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 사람의 생에 마침표 찍을 준비를 하는 순간.

이 순간은 그 어느 순간보다 중요한 순간이다.

이런 순간은 환우들의 가족보다는

어쩌면 의료진들이 더 잘 견디고 잘해내는 것 같다.

적지도 않은 나이, 그렇다고 아주 많지도

않은 나이에 나는 마침표 찍는 순간을

세 번 경험하였다.

처음 맞은 마침표는 유년시절

친할머니를 보낼 때였다.

그때는 우는것조차 챙피하다고 생각하여

몰래 할머니 옷장에 들어가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고시절.

매주마다 주초고사를 치르고

매달 월말고사를 치르던 대한민국 고3.

하숙을 하던 나는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엄마를 보러 집으로 갔다.

마침 병원에서 엄마를 집으로 모셔왔기에.

다른 주말과 다를 것 없이 엄마의 잠든 모습을

뒤로 하고 나는 일요일 저녁 다시

하숙집으로 복귀하였고...

월요일 주초고사가 끝난 뒤 나는 엄마의

마침표 소식을 들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고 나는 콜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내 사고는 정지된 느낌이였다.

집에 도착해서 장례를 치르는 내내 그랬고

산소에 어머니를 모시고 난 순간에도 그랬다.

그러나, 슬픔이란 게 아무렇지도 않은 순각

울컥울컥 올라온다.

아주 심한 차멀미를 하는 것처럼.

세 번째 경험한 마침표는 5년 전,

나랑 성격이 똑같은 아버지와 나는 전생에

분명 원수가 아니였나 싶을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위급하여 부산으로

달려갔다.

내가 도착하고 5분이 지나서야

아버지는 완전히 모든 마침표를 찍으셨다.

하지만 이별에는 연습이 아무소용없고

내성도 생기지 않는 법이다.

본문을 읽으면서 나는 환우 가족들의 모습에

자연스레 나를 투영해보기도 하고

의료진에 투영해보기도 했다.

햇살방으로 옮겨가는 임종대기 환자의

귀에 대고 경건하게 전하는 위로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이어폰엔 아무리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큰 맘 먹고 책을 읽어내려가도

소용없는 일이다.

바람처럼 왔다가 다시 바람이 되어

돌아가는 우리.

잠시 한 곳에 머물 듯, 우리는

어디선가 다시 바람으로 만날것이다.

그렇게 우리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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