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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지역과 어린 시절에 대한 회고, 겨울의 눈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고 김소진 작가의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도 떠오른다.

사진: UnsplashAaron Burden


눈사람 속의 검은항아리 - 김소진 l KBS WORLD Korean





한 십대 소녀가 계층을 인식해가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고요한 사건‘을 살펴보자.

성인이 된 후 돌이켜보았을 때 그날의 장면은 자신의 계층적 위치와 이로 인한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었을 테지만, 그때 ‘나‘가 흰 눈에 그토록 매혹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이를 ‘나‘의 미적 체험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열여섯에서 열아홉에 가까워질 때까지 ‘나‘가 소금고개에서 얻고, 잃고, 깨달은 것들을 고려해본다면 다음이 더 적절할 것이다.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경계선을 저 눈이 하얗게 덮어주기 때문이라고. (해설 황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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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가 수록된 김소진전집 4권 '신풍근배커리 약사'에 실린 문학평론가 손정수 교수의 해설 '소진의 미학'은 손정수 평론집 '뒤돌아보지 않는 오르페우스'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그로부터 일부 옮긴다. 


cf. 고 김소진의 부인이었던 함정임 작가가 고인의 마지막 나날들을 기록한 글 '동행'이 책 '서정시대'에 실려 있다. 







변두리 콤플렉스란 애초에 부여된 밑그림대로 삶을 살 수 없었던, 그 연필 자국 위에 끊임없이 짙은 색으로 덧칠을 하여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 덧칠에도 불구하고 더욱 선명하게 연필 자국이 돋을새김되어 있는 자기 삶의 어두운 밑그림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운명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글쓰기 의식의 유력한 근거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 P136

그런데 지금 산동네가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기억이 허구임을 증명하는 셈일 테고 나아가 아직 다른 차원으로 정립되지 못한 ‘나‘의 존재의 한 축을 허무는 것에 해당된다. ‘나‘가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의 눈사람 속에 들어 있던 깨진 검은 항아리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장석조네 사람들도 아닌 단지 그 사건. 그것은 곧 기억의 글쓰기의 막다른 골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가 기억의 글쓰기의 최종 지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 P141

삶의 종말을 통해 기억조차도 잊겠다고 말하는 이 순간 그는 기억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비로소 벗어나기에 이른다. 바로 이 지점에 모든 것을 쏟아내고 동시에 그것들이 관계하고 있던 현실조차도 일시에 초월하여 투명하게 빛나는 ‘소진의 미학‘이 놓여 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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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man, 2008 - Lisa Yuskavage - WikiArt.org



Snowman Daruma, 1921 - Nakahara Nantenbo - WikiArt.org







이 소설은 쓸 때보다 마치고 났을 때 찾아온 감정들 때문에 힘들었다. 마지막 장면을 쓰고 났을 때의 느낌이 아직 선명하다. 끔찍했다. (최은미)

열이 이동하고 물이 순환하듯 생은 반복된다. 이제까지는 비극으로, 이제부터도 비극으로. 형이상학적 접근을 요하는 지점이 조금도 없는 이 끝없는 순환에 ‘운명론’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는 것도 이제는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 황현경- 작은 신의 것들*, 아룬다티 로이, 작은 것들의 신 (작품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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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시간
나는 산파의 추출기를 돌리고 있었다,
내게도 꿀은 있다
자그마치 여섯 병이나 있다.
여섯이나 되는 고양이의 눈이 포도주를 넣어두는 지하실에 있다.

창문도 하나 없는 집
이 깊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겨울을 난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썩은 잼들
공허한 광채를 담은 병들......
그 누구의 것이라도 좋을 술병들과 함께

이런 방은 처음이다.
차마 숨쉴 수조차 없는 방
그 안에 박쥐처럼 웅크린 한 덩이 어둠,
빛은 없고
호롱불과 그 불빛 아래


https://hellopoetry.com/poem/729/wintering 원문 https://v.daum.net/v/2006011110441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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