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연의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로부터 옮긴다.

Rhythm 0, 1974 - Marina Abramović - WikiArt.org
'예술가의 초상 - 세상의 틀을 깨고 삶에 영감을 주는 여성 예술가들과의 대화'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나온다.

〈리듬 0〉(1974) 퍼포먼스에서 자신을 ‘사물’로 선언하고 관람객에게 자신의 몸을 온전히 내맡겨요. 그는 탁자 위에 장미꽃, 깃털, 펜, 꿀, 포크, 톱, 가위, 채찍, 망치, 도끼, 권총 등 72가지 사물을 늘어놓고 사람들에게 아무것이나 골라 원하는 대로 자신의 몸에 사용하게 했어요. 관람객들은 처음에는 구경만 하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점차 대담해졌습니다. 그를 칼로 베고 상처를 내는가 하면, 옷을 벗기거나 심지어 총으로 머리를 겨누기도 했죠. 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지만 여섯 시간 정도가 지난 뒤 관람객들은 작가의 안전이 염려된다며 퍼포먼스를 중단하기를 요청합니다. 퍼포먼스가 끝나고 호텔에서 혼자 하룻밤을 보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다음 날 아침 자신의 머리카락 중 한 움큼이 하얗게 변한 것을 발견했다고 해요. 퍼포먼스가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주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작가는 이 퍼포먼스에서 스스로 행위의 주체가 되지 않고 관람객의 행위를 수동적으로 감내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관람객이 선택한 사물이 작가의 신체에 어떤 방식으로 접촉하느냐에 따라 작가가 느끼는 감정이 달라집니다. 그만큼 관람객의 행위나 심리가 퍼포먼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죠. 제약이 없는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공격적이고 잔인할 수 있는지 확인한 퍼포먼스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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