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놈들아, 제발 작작 좀 해라! [그린란드 이어 스발바르… 美·러 ‘북극 패권 경쟁’에 휘말리나] https://v.daum.net/v/20250113050151409


'50개의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이야기'(김민주)로부터 옮긴다.




스발바르가 처음부터 이렇게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것은 아니다. 이 섬은 17~18세기에는 고래를 잡는 포경 기지로 이용되었지만, 곧 쓸모 없다고 여겨져 버려졌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접어들어 석탄 탄광이 발견되면서 땅의 가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때는 이 섬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노르웨이와 러시아가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1920년 베르사유에서 체결된 스발바르 조약에 따라 노르웨이는 스발바르 제도의 주권을 얻었고, 1925년 스발바르 법이 제정되어 스발바르 제도를 완전히 소유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 온 그린란드, 자연에 매료돼 아예 눌러앉았죠”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100&key=20190930.22025013020 저자 인터뷰

그린란드 대학교 By EhC 89 - 자작, CC BY-SA 3.0







그린란드는 아이슬란드와 캐나다 사이에 있다. 지리적으로 북미에 속해 있지만,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으로는 북유럽, 특히 덴마크와 밀접하다.

런던에서 문화유산학 석사 과정을 밟을 때의 일이다. 내 석사 논문의 주제가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은 그린란드의 문화 및 자연 유산’이었는데, 하루는 박사과정에 있던 영국인 조교가 그린란드에 사람이 사냐고 물었다. 영국은 그린란드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편이고, 심지어 스코틀랜드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 영국이 북극과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나 보다.

2015년 9월 나는 그린란드 대학교에서 북서유럽학West Nordic Studies으로 또 하나의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1987년 그린란드 대학교 개교 이래 첫 외국인 정규 학생이었다. 그리고 현재(2019년 7월)까지 그린란드에 거주권을 가진 유일한 한국 국적 소지자이다. 넓게 보자면 유일한 한국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국에서 입양된 덴마크 국적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을 만나면 서로 애틋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럼프가 돌아왔다. ["독립 원하지만 대화는 가능"... 그린란드, 트럼프 2기 대응책 고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1216040005917?did=DA 


아래 글의 출처는 '그린란드에 살고 있습니다'(김인숙) - 그린란드에 사는 한국인인 저자는 그린란드 연구자이다.

누크(그린란드) - 사진: UnsplashBogomil Shopov - Бого


[네이버 지식백과] 누크 [Nuuk]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34954&cid=40942&categoryId=40770





미국 입장에서 그린란드는 소비에트 북극 지역과 대서양 사이를 통제하기 좋은 군사 전략 요충지였다. 연합군의 승리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덴마크에 그린란드를 1억 달러에 사겠다고 제안하지만 덴마크가 이를 거절했다.

1953년 덴마크는 그린란드를 식민지가 아닌 덴마크 왕국 안으로 병합한다. 그 후 1979년이 되어서야 그린란드 내정 자치Home Rule가 인정되고, 다시 30년이 지난 2009년에 자치 정부Self Rule를 인정받았다.

2019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한 번 그린란드 구매 의사를 밝혔다. 덴마크와 그린란드로부터 말도 안 되는 농담이자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비난을 받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셀 서양철학사' 중 '로크의 정치철학'으로부터 옮긴다. 로크가 지금의 한국을 본다면......


[Tin glazed earthenware charger depicting Charles I, made in London about 1660. Part of the Henry Willett's Collection of Popular Pottery exhibition at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2024] By 14GTR - Own work, CC0


찰스 1세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0c1681b





로크의 주장에 따르면 입법부는 공동체community의 요구로 해산될 경우를 제외하면 최고 권위를 가져야 한다.

1628부터 1640년 사이에 찰스 1세는 의회를 소집하지 않은 채 나라를 다스리려고 했다. 로크의 생각으로 이러한 일은 필요하다면 내전을 일으켜서라도 막아야 한다.

찰스 1세가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선박세를 징수하려고 했을 때 반대자들은 ‘정의롭지 못한 불법적’ 힘을 행사했다고 선언한 반면, 찰스 1세 자신은 정의롭고 합법적인 처사라고 선언했다. 찰스 1세와 의회가 맞선 내란(1642~1649)으로 빚어진 군사적 충돌이 찰스 1세의 헌법 해석이 그릇된 것임을 입증했을 뿐이다. - 견제와 균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을 계속 읽는다.

감자꽃 (사진: UnsplashJael Coon)






1889년 7월 24일에 서리가 내려 데르빈스코에 마을의 감자 꽃이 해를 입었고 8월 18일에도 전 지구가 영하의 추위로 감자의 잎과 줄기가 냉해를 입었다. - X. 르이코프스코에 마을, 이곳 교도소, M. N. 갈킨-브라스키 관측소, 팔레보 마을, 미크류코프 마을, 발즈이 마을과 론가리 마을, 말로-트이모보 마을, 안드레예-이바노프스코에 마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