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원 - 가을의 환 / 탕자 또는 탕아
https://blog.aladin.co.kr/790598133/14099869 작년 가을 김채원 작가가 쓴'가을의 환'을 읽었다. 거기 언급된 앙드레 지드의 '돌아온 탕자(탕아)'에 관해 체크해 놓았던 게 떠올라 오디오북 '탕아 돌아오다'(배우 박중훈 낭독)를 듣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힘'(이어령)에 나온 내용을 옮겨본다.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36 - Rembrandt - WikiArt.org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http://www.simin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426
그런데 가족을 떠난다는 건 비단 학교로 향하는 길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성경에 나오는 탕자(탕아)의 예가 그렇지요. 가족을 떠나 세계를 방랑하는 자가 바로 탕자죠. 성경에선 그가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돼지먹이인 쥐엄열매로 연명하다 결국엔 부끄러움을 안고서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지요. 그래서 누군가는 그의 방랑을 실패로 간주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 탕아는 집을 떠나갈 때와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서 돌아온 것이니까요. 그의 방랑을 실패라고 간단히 말할 수는 없는 거예요. 예전의 자기, 아버지의 재산을 탐하고 함부로 흥청망청 인생을 낭비하며 만사를 우습게 여기던 그 어리석은 자의 껍질을 벗은 것이니 말예요. 이리 보면 일종의 탈출이 이뤄진 게 아닌가 말예요.
이 탕자의 이야기는 무수한 예술작품의 모티프가 되었지요. 그중에 앙드레 지드가 쓴 「돌아온 탕아」라는 작품이 있어요. 이 작품의 탕아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사이에 깃든 자유에의 갈증을 따라 아버지의 집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죠. 그러고는 수없는 고난을 겪은 후에 다시금 집으로 돌아옵니다. 헐벗고 누추해져 돌아온 그를 아버지와 어머니는 따뜻하게 반겨주지요. 잔칫상을 차리고 그 더러운 옷을 벗겨냅니다. 그런데 탕아가 누더기를 벗고 새 옷가지를 걸치려 할 때,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는 그의 아우가 그 누더기를 눈부시다는 듯 바라보죠. 집을 떠나던 탕아와 같은 나이인 아우, 시시때때로 언덕에 올라 성벽 너머의 세계를 그려보고, 이야기꾼이기도 한 돼지치기에게로 찾아가 날이 가도록 이방의 이야기를 졸라대는 이 아우에게 낯선 세계의 체취가 묻은 탕아의 누더기는 그야말로 자유의 상징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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