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무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 - 일본에 대한 체험적·역사적·인문학적 보고서
이규배 지음 / 시사일본어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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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규배, <일본, 아무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 시사일본어사. 2006.




규배 형이 책을 보내왔다. 책 안 표지엔 '사랑하는 영권에게'라고 글을 써서 보내왔다. 우리 마누라 왈 "왠 사랑하는, 킥킥킥". 그랬지만 사실 규배 형은 나를 솔찬히 챙겨준다. 고마운 사람이다. 주변에서야 이러저런 말을 많이 하지만, 암튼 지금까지 나 개인에겐 세심한 관심으로 살펴준다. 이 책을 받고 바로 읽은 것도 그런 애정과 관심에 대한 답일 수도 있다.

규배 형은 일본 유학파다. 그런 만큼 나름의 일본관이 있다. 전에도 일본 관련 책을 두 권 냈다. 이번이 세번째 책이다. 전에 언젠가 나보고 네가 벌써 3권을 냈으니 본인이 더 늦었다며 분발하겠다고 했다. 부끄럽게스리.

암튼 재미있게 읽었다. 규배 형도 이번엔 상당히 대중성에 신경을 쓴 모양이다. 서문에서도 그는"독자들이 가능하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문장의 손질에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 이런 공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라고 했다. 서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본문에서도 그의 그런 노력을 읽을 수 있었다. 어휘 선택에 있어서도 과감히 대중적 언어를 찾았다. 내 입장에서야 그게 별 문제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학자적 글쓰기만을 해왔던 그로서는 대단한 변화이자 의지였겠다 싶다. 그래서인지 글은 한 번 잡으면 끝까지 간다. 물론 깊이가 얕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식인 풍습이 한국에는 없었다고 했는데, 그건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도 굶주림이 심했을 때 죽은 자식을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건 일본만의 특징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일본을 다시 보게 된 게 적지 않다. 일단 그가 민족주의적 시각을 바탕에 깔고,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일본의 장점에 대해 담담하게 써 내려간 게 마음에 들었다. 일본은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어찌보면 저럴 수 있나 싶게 황당하고 괴씸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하나하나 작은 면모를 볼 땐 감탄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자기 잘못을 깨우치는 방식으로 교육을 하지 잘못의 탓을 남에게로 돌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예심과 수치심을 알게 하는 교육을 한다. 어찌 보면 할복 자살도 그 때문에 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슬퍼도 울지 않는 일본인의 특징은 워낙 슬픈 일이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무사도의 덕목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다. 또 그들의 질서 의식은 중세 때 조그만 범법을 해도 사형시켰던 공포와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적 준법 실천이 지금의 일본을 만들었다고 한다. 역시 공감할 대목이다.

메이지 유신 전까지 일본이 육식을 금했었다고 하는 건 신선한 지식이다. 그래서 키가 작아 왜놈이었다는 것이다. 메이지 때 유럽을 따라잡겠다고 육식을 강화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포악해진 것인가. 샤브샤브라는 음식도 그런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한국 말로 하면 '잠방 잠방'이라고 할까. 얇게 썬 고기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는 과정에서 나는 의성어. 그게 바로 샤브샤브라고 한다. 육식을 하지 않던 사람들이 육식을 하게 되면서 탄생한 새로운 요리법.

암튼 일본은 우리를 속속들이 잘 안다. 반면 우리는 그들을 잘 모른다. 온갖 편견 속에 숭배나 멸시, 두 종류의 시각이 강할 뿐이다. "일본의 모습은 아직도 두터운 외투 속에 감춰져 있다"고 이규배는 말한다. 알아야 한다.
언제부터였던가. 일본은 차근차근 내게 가까이 다가온다. 좋아함과 싫어함, 그런 감정과는 무관하게 일본은 한 발짝씩 다가온다. 한 때는 지긋하게 그곳에서 몇 년 동안 공부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왜 그런지 몇 년쯤은 생활해 보고 싶은 땅이다. 혹시 사람 일이 어찌 될 지 모르니, 차분차분히 일본에 다가가는 그런 책읽기도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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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외지사 1 - 우리 시대 삶의 고수들
조용헌 지음, 김홍희 사진 / 정신세계원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조용헌, <方外志士1>, 정신세계원, 2006.




"살고 싶은 대로 한 번 살아보자"
"직장에 얽매여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만 하다가 한 세상 끝나는 것인가? 고정관념과 경계선 너머의 삶이란 실현 불가능한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백수의 제왕에서 무림 고수까지 방외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우리 시대 삶의 고수 13인 방외지사들의 이야기에서 진짜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사람들은 항상 꿈을 꾼다. 특히 도회지 사람들, 그리고 샐러리맨들, 그 작은 봉급을 받으면서도 집착은 대단하다. 봉급이 끊기면 사람 구실 못할 것이라는 굉장한 두려움 때문이다. 아니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남과 다른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도 무시 못한다.

이 책은 평범한 우리 군상들이 꿈으로나 생각해 보는 '방외'의 삶을 소개한다. 아마 짐작컨데 책 장사 잘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만큼 현실 속의 삶이 팍팍하다는 증거다. 벗어나고 싶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벗어나지 못한다. 꿈만 꾼다. 그럴수록 책은 더욱 더 잘 나간다. 절묘하게 그런 심리를 파고든 출판기획이 얄밉다. 요즘 같은 세상엔, 처세술, 역경 극복기, 혹은 이 책과 같은 대리만족형 방외의 이야기가 잘 나갈 건 뻔 하다.
그런 얄팍한 출판 기획에 한편으로 질투도 나고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보통 사람들처럼 이들 방외지사를 보며 부러워 한다.

물론 언제까지난 꿈만은 아니라라 확신한다. 언젠가 벗어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은 삶의 모습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이 책에 소개된 이원규 시인처럼 날날이 같은 삶은 아니다. 그렇다고 손성구나 박청화, 이동호, 박사규와는 또 다르다. 그들은 굉장한 내공이 있는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이 감히 넘보지 못할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나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
평범하면서도 세속의 명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세, 이동호의 능력에는 못 따라가겠지만 그의 자세는 본받을 만 하다.
아마 가장 근접할 수 있는 삶이라면 '20년 공무원 생활 접고 드디어 고향집에 돌아온 사람' 박태후가 그 나마 모델이라면 모델이겠다. 나머지는 기괴하거나 대단한 능력 소유자거나 하기 때문에 그냥 흥미거리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뿜어주는 몇몇 메시지들은 끌어앉을 만 하다.
"소급해 보니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과 경쟁하는 것이 싫었다. 남을 이겼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았다. 자연도 모둠살이를 하고, 문명도 모둠살이를 한다. 전자의 모둠살이는 서로 상생하는 작용을 하지만, 후자인 문명의 모둠살이는 서로 간의 경쟁이고 죽임이다. 지금 생각하니까 문명의 속성인 경쟁과 죽임을 싫어했던 것 같다."
평소 나 역시 늘 이렇게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점수를 계산하는 축구가 싫었다. 친구들 중에 유난히도 승부욕을 불태우는 애가 있었는데 나는 공 차는 것 그 자체가 좋았다. 그런 심성이 있었나 보다.

"효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부모님과 함께 밥 먹는 일이었다."
동감이다. 이걸 실천해야 하는데......최소한 1주일에 한 번 만이라도.

"돈 안드는 귀족 취미는 산책"

손성구가 고대 중문과 82학번이라는 걸 우연히 알게 된 것도 이 책 덕이다.

"중생이 아프므로 나도 아플 수밖에 없다." 유마거사.

性在何處 性在作用, 성품의 본체가 어디 있는가. 알고 보면 그 본체는 작용에 있다. 아음의 본체를 따로 찾으려 하지 말고,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들과 번뇌망상 속에 본체가 있다는 말.

應無所住而生其心 <금강경>에서 ;상황에 응하면서도 집착이 없는 마음.

칠바라밀의 실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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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일기
목수 김씨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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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송, <목수 일기>, 웅진닷컴, 2001.




부럽다. 그의 감각을 알기에 그림만으로도 얻을 것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책을 구입했는데, 얻는 기쁨보다 부러움과 기죽음으로 오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

김진송, 그의 책을 여럿 봤다. 스스로를 목수라고는 하지만 단순한 목수가 아니다. 우선 그는 목수 이전에 인텔리다. 저자 소개에 어느 학교를 나왔다고 밝히지 않는 점도 특이하다. 글을 보면 공부가 보통은 아니다. 하긴 미술, 문화 평론가라는 소개만 보아도 단순한 글쟁이나 목수가 아님은 쉬 알 수 있다. 국민학과 미술사를 전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근현대 미술사와 문화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한다. 미술평론, 전시기획, 출판기획 등 다양한 일을 했다고 하며 저서도 적지가 않다.
그런 그가 목수 일을 한다. 그 과정을 책으로 낸 것이다. 나이 마흔에 시작했다는데 사실 보니까 집에서 어릴 적부터 해 본 솜씨다. 글보다 목수 솜씨가 더 뛰어나면 뛰어나지 못하지 않다. 그렇다고 글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그의 현대문화 비평엔 내가 혀를 내둘렀던 경험이 있을 정도이니까.

그러니 내가 기죽을 수밖에. 그의 붓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는데, 게다가 나무 다루는 솜씨라니, 더 할 말이 없다.

이 책은 그가 만든 목공예품의 사진들이 간간히 소개되고 그 작품을 만들면서 써두었던 일기들을 붙여 달았다. 문화 현상에 대한 평론적인 일기인 셈이니 만만히 읽혀지는 건 아니다. 글도 그렇지만, 그의 목공 작품들이 일품이다.

나도 저런 걸 만들 수 있을까. 못할 것은 없겠지만 우선은 작업실과 작업도구가 문제다. 물론 그의 감각은 영원히 못 따라가겠지만 그가 만든 것을 모델로 베끼기만 해도 작품이겠다 싶다.

암튼 책을 읽으며 앞으로 목공 작업을 함에 있어서 도움이 될 만한 글들을 옮긴다. 우선 산책을 할 때는 항상 톱과 손도끼를 들고 다닌다는 점이다. 차 트렁크에는 그보다 더한 작업 도구들이 있겠지. 차근차근 갖추고 다녀야겠다.

그 스스로를 규정하는 글이 재미있다.
"일상 속의 간단한 쓰임새조차도 산업적인 생산구조에 기대야 하는 삶에서 조금만 그럴듯한 걸 만들면 창작이니 예술이니 이름 붙이고, 그걸 업으로 삼으려면 직업적인 장이가 되어버리니, 그 한가운데 있으려면 나 같은 얼치기 목수가 제격이 아닌가 싶다."
그럼 나는? 하긴 나야 목수가 아니니까. 그냥 나무 만지는 걸 배우고 싶은 사람에 불과하니까.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다.

몇 가지 재주가 필요하다고 한다.
"먼저 형태에 대한 관찰력. 방금 본 물건도 그대로 옮겨내지 못하는 것은 형태를 관찰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형태에 대한 기억과 관찰은 거리, 깊이, 무게, 모양, 색채에 대한 공간 지각력을 바탕으로 하니, 그게 부족하면 그리기와 만들기 같은 재현은 매우 어렵다. 여기에 상상력이 보태어지지 않으면 또 재현은 불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유추하는 상상력이 없으면 그림은 단지 사진처럼 단순한 모사에 머무른다.
이 두 가지가 있은 다음에야 이른바 손재주가 필요하다. 그러나 손재주는 대개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반복과 연습을 통해 익힌 기술이 때로는 공간 지각력과 상상력을 높일 수 있으니, 역시 손과 머리는 따로 떨어진 게 아니다."
결국 생각하고 관찰하고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라는 것이겠다.

'목수와 먹물'이라는 꼭지의 글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지식인이라면 무불통지의 깊이를 갖춘 전문가가 되어야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데 사회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균형 잡힌 시각이 있어야 하며, 문화적 현상과 예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있어야 하며,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논리와 인식론을 바탕으로 한 철학적 판단의 근거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목수는 연장을 능숙히 다루는 기술, 나무에 대한 풍부한 지식, 물건의 기능과 꼴에 대한 미학적 기준과 판단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힘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이렇게 말해 놓고 자신은 목수가 되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 겸손을 떤다.
암튼 그건 중요치 않고, 그가 말하는 목수가 되기 위한 4가지 조건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결론은 그저 열심히 하자 뿐이다. 얼치기다. 나는.

농촌과 전원과 자연을 보는 그의 눈 역시 날카롭다. 흔히 웰빙 바람의 전원주택에 대한 비판이다. 농촌적 시스템과는 완전히 정반대인 가상적 공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도시적 모더니티의 실패를 전원이 보상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생태적 가치, 거기에다가 한국현대사의 모순이 집중된 지점으로서 농촌을 상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관념의 장난일 뿐이다.

그의 직업적 고민이 담긴 글 한 구절.
"따지고 보면 목수가 되려 한 것은 생계의 문제이기 이전에 품성 탓이다. 거친 품성은 도끼질하기에 알맞고 공격적인 성향은 연장을 드는 데 주저함이 없다. 조급한 성격으로는 물건을 빠르게 만들 수 있으며, 남들과 더불어 일하지 못하니 혼자 하는 일이 제격이다. 반복적인 일을 끔찍이 싫어하니 늘 새로운 걸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여간 대단한 사람이다. 어쨌거나 나는 여기서 다른 것보다 그가 만든 작품을 보면서 나름의 디자인 구상만 잘 해도 본전은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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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유홍준 외 / 학고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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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엮음, <금강산>, 학고재, 1998.




중국 문인들 가운데 '금강산이 있는 고려국에 태어나고 싶다'라고 노래한 가십이 종종 등장했다고 한다. 1894년부터 4차례 11개월에 걸쳐 한국을 방문하고 글을 남긴 영국의 작가이자 지리학자였던 이시벨라 버드 비숍마저도 "확실히 일본에서, 심지어 중국에서도 이토록 아름답고 장엄한 광경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래서인가 신라 최치원 이래 고려, 조선, 그리고 근현대에 걸쳐 금강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으며 그에 따라 그들이 남긴 글과 그림도 많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낼 순 없었나 보다. 書不盡畵不得. 글로도 다할 수 없었고 그림으로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여러 복잡한 심사 때문인가 금강산이 그저 그렇게 다가왔을 뿐이다. 아직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나, 아니면 금강산을 살짝 맛만 보았기 때문일까. 그냥 '괜찮은데' 이상은 아니었다. 19세기 <동행산수기>를 남긴 이상수는 "마음의 감동이 없는 자는 보는 바가 출중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그의 가슴 속이 옻칠한 듯이 캄캄한 때문일 것이다"라고 했다.
곰공히 생각하니 맞는 말이다. 내 마음이 캄캄해서 그렇다. 그 아름답다는 금강산에 돈으로 떡칠이 되어가면서 그 맑은 기운도, 그 곱던 마음도 모두 돈에 환장한 모습처럼 변하고 있는 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미 금강산도 예전의 금강산 같지가 않다. 죽어 박제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근데, 이런 나의 평가는 시대의 산물이겠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기행문엔 어떻게든 불교적 가치를 깎아내리는 모습이 종종 등장하는데, 그 역시 시대의 산물일 게다. 그렇게 본다면 위안이 되기도 한다. 금강산은 그냥 말 없이 앉아 있는데, 인간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은 금강산에 대한 기초적 상식을 적는다. 풍악산이라고 많이 불렸는데 가을 단풍을 강조하며 형상에 중심을 둔 이름이다. 특히 유학자들이 불교적 명칭인 금강산을 애써 무시하면서 강조했던 이름이다.
봉래산은 신선 사상의 발로다. 여기서 금강산 사람 양사언을 빼고 갈 순 없겠다. 16세기 인물로 자신의 호를 봉래라고 지었을 정도로 금강산을 사랑했던 인물이다. 개골산은 산 전체가 바위산으로 되어 있어 그렇게 이름 붙은 것이다.
금강산이라는 이름은 <화엄경>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4대 사찰은 유점사, 장안사, 표훈사, 신계사를 일컫는다. 여기서 유점사는 53불 동해 전래설과 관련이 있다. 커다란 쇠종을 타고 53불이 동해로 들어와 유점사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신라 남해왕 때의 일이라고 하니, 불교의 공식 전파보다 아주 이르다. 가야 허황옥 전설이나, 제주 영실 발타라 존자 전설과도 맥이 비슷하다. 이 53불은 본래 그 곳에 있던 9룡을 내쫓는다. 내쫓긴 아홉 용이 자리 잡은 곳이 구룡폭포라고 한다.
장안사는 고려 때 기황후가 중창불사를 적극 지원했다는 절이다. 제주 원당사가 떠오른다. 비슷한 모티브로 연결된다.

이 책은 금강산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아주 잘 마련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유홍준이 전체를 개괄했고 뒤에는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으로 나누어 현재 답사 가능한 지역을 중심으로 소개했다. 그리곤 옛 문헌 속의 금강산을 소개했으며 마지막엔 논문 두 편을 붙였다. 금강산을 다룬 문학과 미술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 만큼 앞 부분은 실용적으로 읽었고, 뒷 부분은 공부 재미로 읽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조선 성리학자들의 의도적인 불교 폄훼 발언들이었다. 또한 도교적 심취에도 빠지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산수를 보는 것은 좋으나 그 산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비숍은 금강산 승려들의 학식 낮음을 말하면서도 "그 꼴꼴난 공자의 후예들이 가진 교만함과 거만함, 오만방자함이나 자만심과 아주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하며 승려들의 비교 우위를 말했다. 동감이다.
청음 김상헌의 증손자인 17세기 사람 김창협의 <동유기>에서도 그가 만난 금강산 승려가 "오직 맑은 물 한 주전자와 솔잎 가루 한 주머니"로 살아가고 있더라며 그 공력을 높이 사기도 했다. 하긴 서쪽에서 금강산으로 처음 들어가는 고개 이름이 '단발령' 즉 들어가면 머리깎게 된다는 산의 입구 고개라는 데 더 말해 무엇하리.

근데 그렇게 고승을 높이 평가한 김창협도 금강산 기행을 할 때는 스님들이 멘 가마를 타고 등산을 했던 모양이다. "산세가 점점 가파르고 길이 또 미끄러워 남여를 메고 가는 중이 열 보에 한 번씩은 미끄러지므로"

과연 조선은 성리학 양반들의 세상이었다. 괴씸한 건지, 한심한 건지, 그런 좋은 산에 가서 가마를 타고 다녔으니. 물론 시대의 한계 때문이긴 하겠다. 그래도 지금 내가 보니 가엾다. 가마를 멘 승려보다 거기에 탄 양반 사대부가.

글 마치기 전에 그냥 눈에 들어왔던 표현 둘 만 옮긴다.

"더불어 술을 마시며 이별을 아꼈다." 17세기 김창협의 <동유기> 중에서

"구름이 실오리처럼 난간과 살창 사이를 날고 있었다."17세기 이만부의 <금강산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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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내 발바닥 - 김곰치 르포. 산문집
김곰치 지음 / 녹색평론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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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곰치, <발바닥 내 발바닥>, 2005, 녹색평론사




그의 글을 읽으며 기가 죽는다. 어쩜 표현이 저리도 초봄 돋아난 싹과 같을까. 섬세하다.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촉수가 발달해 있다. 그걸 풀어내는 글 맛도 예민하다. 이래저래 나는 기가 죽는다. 김곰치처럼 글 잘쓰고 싶다.

얼마 전부터 <녹색평론> 내외 표지엔 김곰치의 이 책이 소개되어 있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인가 하는 책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받았다는 정도의 정보는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를 모른다. 그의 글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이 책을 보니까 <녹색평론>에도 그리고 <한겨레>에도 제법 글을 실었던 모양인데, 내겐 그 기억이 없다. 그와의 감수성 차이 때문에 그의 간지러운(?) 감수성이 별로 와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과거 투박했던 나의 감수성을 생각해 볼 때, 충분히 그랬을 거라고 본다. 내가 <녹새평론>이나 <한겨레>는 제법 꼬박꼬박 읽었지 않는가. 근데도 그의 글을 본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분명 예전엔 그의 글이 내 코드와 화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다.

근데 이번에 읽어보니 그의 글에서 맛을 느낀다. 그 섬세한 맛을. 내가 달라진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연약하군" 아니면 "대책 없이 근본적 감성만 플어 놓으면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며 그냥 넘겼을 ,그런 취향이다. 책 이리 저리 뒤져 보니 부산 출생 학번은 88인덴 나이는 그보다 하나 더 작은 것 같다. 그러니 나보다는 4-5년 후배인 셈인데, 어디선가 섬세하고 여린 인텔리 냄새가 짙게 묻어난다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서울대 출신이다. 글에서 짐작이 되었다.

어쨌거나 그는 나를 기죽게 만든다. 사물을 대하는 그의 태도도 그렇지만 거기서 잡아내는 예리한 통찰력, 그리고 플어내는 글 재주.

난 그냥 팍팍한 글을 쓴다. 나도 저런 표현을 해 보고 싶다.

물론 글 재주만이 전부는 아니다. 속에 담긴 메시지가 더 중요하긴 하다. 생태 환경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근본적이다. 물론 그는 생태환경운동보다는 생명운동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맞다. 근본은 생명이다.

그를 근본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환경문제에 있어서 비타협적 자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사패산도, 천성산도, 새만금도 그렇다. 지율 스님이 이야기한 '대안은 없다'라는 말을 신뢰한다. '대체 노선'이라는 건 주류(서울, 가진자 등)를 중심으로 또 다른 비주류에게 피해를 끼치며 비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비겁한 행위에 불과하단다. 그런 점에서 그는 대화와 타협을 모색하는 소위 메이저 환경운동 단체에 강한 불신을 보인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좀 무대책이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다.

천성산 우회가 아니라 무조건적 공사중단이다. 고속전철 자체에 대한 반대다. 물론 정서적으로는 그 말이 맞다. 그러나 그것으로 어느 만큼 설득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세상을 너무 무시하고 있다는 우려도 조금은 있다. 지식인의 관념에서 나온 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인가 그는 더욱 더 현장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책 제목도 '발바닥'이다. 그 만큼 머리 굴리기가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고 썼다는 이야기겠다. 근본적 생태주의를 표방한다면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는 그에게서 영감은 얻지만 감동까지는 얻지 못한다. 현실을 너무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문제의식을 절대로 놓치면 안 되겠다.

사북사태를 진단한 시선도 그렇다. 그것이 운동이 되지 못하고 사태로 남아있는 건 너무도 즉자적인 사건이라서 그랬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분노가 너무(?) 험하게 표출되었다. 어용 노조 위원장의 처가 집단 린치를 당하고 거의 살해 위협까지 당했었다. 그래서 대국민 설득력을 갖기가 어려웠던 사건이다. 그러나 그 노동자들의 진정성 만큼은 이해 되어야 한다. 김곰치는 그 '폭도(?)'들의 행동을 '전율스런 생명운동'이라고 묘사했다. 본질을 보는 눈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그걸 보듬고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그의 입장에도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과격한 행위가 그대로 정당성을 얻을지는 의문이다.

그냥 재미있었던 표현 몇을 옮긴다. 그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에 부러움을 느끼며.

"언뜻 모든 것을 용서한 사람의 평온 같기도 하고, 용서하고 또 용서했는데 왜 아직 이리 용서할 게 많이 남았나, 하는 탈진의 표정 같기도 하다."
"불치병 환자들의 방자한 기세가 놀랍다."
"장내에 팽팽히 흐르는 기운은 돈독이 잔뜩 오른 사악한 종류의 것이었다."
"방금 카지노에서 아줌마의 이 싹싹한 친철 수십 그릇을 날리고 왔다."
"상투적 운동방식이 아니라 전존재적 결단"
"사랑에 대안이 없는 것처럼 생명에도 대안이 없다."
"축 발전, 발전이란 무엇인가, 언제까지 발전이 '축'하기만 하면 되는 일일까"
"사람만 놓고 볼 땐 성실하고 선량해 보이는"
"달님, 해님 말고 비님도"
"생명의 눈으로 이 문제에 답해 달라"
"토론이라는 이름의 끊임없는 회의는 말에 대한 건강한 감각을 잃게 하며 정신을 지치게 합니다."
"조직에도 이기주의가 흐르면서 조직이 활동가들의 생명 에너지와 감성을 탕진하며 조직 자신만 강해지는 경우는 없는지..."
"뭔가 음산한 고요는 더럽다는 느낌이 들기보다 알 길 없이 끔찍하다는 기분이 더 강하게 들던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들은 똥과는 관계 없다며 깔끔떨며 똥을 잊고 사는 별종의 존재로 안전할 수 있을까."
"권부의 귀하신 분들도, 어여쁜 여자 탤런트도, 목사님도 스님도 너도 나도 이 우리 모두가 누는 똥, 그것은 단지 한줌의 똥이 아니고 그 수백배 되는 엄청난 양이 똥물로 부풀려 버려지고 있다. 똥 누는 곳에서 똥냄새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인데 .."
"정보 속도전에 밀쳐지는 나"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 첫걸음은 내딛어져 버렸다. 첫걸음은 다음 걸음을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을 나는 안다."
"세상의 주류에 대한 반감"
"진정한 독자는 작가 자신뿐이로구나"

마지막 인용문, 진정한 독자는 작가 자신 뿐이라는 말에 공감과 비애와 위안과 냉소가 같이 일어난다. 대가마저 저렇게 생각하는데, 나야 당연하다 그러니 더 매진할 뿐이다. 내 글의 가치를 못 알아보는 세태를 통탄할 게 아니라.

그리고 뒤에 붙이는 글 하나. 김곰치의 글보이 아니라 그 글의 표사원고를 쓴 김종철의 글에서 인용한다.
"나는 인도 국가와 엘리트들에 의해 사랑받는 작가가 아니라, 인도의 강과 계곡의 기억 속에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인도의 작가 아룬다티 로의의 말이라고 한다. 나는 어떤 글쟁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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