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이 처한 상황(대부분 자처한 상황)과 그의 직업, 식민지 장소 등에 따라 그의 작품이 하나씩 탄생한다.

그의 다양한 경험은 사회주의자들의 소책자 대여섯 권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1. <버마시절>
에릭은 많은 동급생들과 달리 옥스퍼드 대학교에 가지 않고, 가족사 때문인지 몰라도 버마 주재 경찰이 되는 꽤나 이상한 선택을 한다.
여기서 소설 버마시절이 탄생한다.

태어날때부터 한쪽 뺨에 푸른 반점이 있는 주인공 플로리.
다른 영국인들에게 이 때문에 비웃음을 사고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영국인 엘리자베스에게 완곡히 버마인들을 옹호하면서 청혼을 했지만 거절당하고,
플로리는 자신의 개를 쏘아 죽인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제국의 질서는 카우크타다의 영국인 클럽을 계속 지배했다.


2.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1928년 그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포드페르로 로에 머물면서, 1933년에 펴낸 작품 제목처럼 파리의 밑바닥 생활을 했다. 가난한 이민자 프롤레타리아들 곁에서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생활을 하며 그는 에밀졸라와 잭 런던을 함께 떠올렸다. 파리에서 얻은 첫 일자리는 리블리로에 있는 큰 호텔의 접시닦이였다. 이미 반세기 전에 피에르부르디외의 사회학적 관찰을 예고한 셈이다.˝ - 42쪽




3. <목사의 딸>

저널리스트가 된 에릭은 켄트로 홉을 채취하러 가서 관련 글을 쓰게 된다.

˝하지만 거기서는 제 멋대로인 런던내기들, 위험한 집시들과 천막에서 잠을 자야 한다던데요!˝
˝바로 그런 점이 흥미로운 겁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장편소설 <목사의 딸>을 썼다.- 52쪽

이 소설의 주인공 도로시는 종교적, 사회적 순응주의에 완전히 짓눌려 있어 인생에 패배한 <버마시절>의 주인공 플로리의 여성 버전이라 할 수 있다



4. <엽란을 날려라>

<목사의 딸>을 쓰고 얼마 뒤 이 책을 쓰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 고든 콤스톡도 플로리와 도로시와 마찬가지다.

˝햄스테드에 위치한 어느 서점의 질투심 많고 의기소침한 판매원..헌 책방 ‘북러버스 코너‘에서 점원으로 일했던 에릭 블레어를 투영한 인물이다˝ - 53쪽



5. <위건부두로 가는 길>

노동 계급의 비참한 일상을 생생히 묘사한 이 책으로 오웰은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작가가 된다.
˝나는 노동자 계급의 삶의 조건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극단적인 경우들만 접했기 때문이다. ‘인간들 중 가장 하류의 인간‘이야말로 내가 가까이 지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그는 실직으로 황폐해진 광산 지역에서 자기 작품의 주제와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 꾸밈없이 정직한 문체를 찾아낸다.
우리는 여기서 계급차별의 비밀스러운 토대를 맞닥뜨린다...이것을 짧고 끔찍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저 사람들은 느낀다...‘
부랑자들과 교류하면서, 나는 내 사회적 질병을 치유하고 회복되었다.(...)
그는 비판적이고 강경한 사회주의자가 되기 위해, ‘토리당의 아나키스트‘라는 과거의 입장과 결별한다.(...)
노동자 가정-실직자 가정이 아니다-은 다른데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따뜻함, 진정한 품위, 깊은 인간미를 호흡한다.
육체노동자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보다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위건부두로 가는길>로 오웰은 다소간 신분을 감추고 현장에 잠입해 쓰는 글을 일컫는 ‘르포르타주‘의 선구자 중 한 명이 된다. - 60~61쪽

여기서 잠시 김지안 작가(북플 이웃 스텔라 K)님의 <네 멋대로 읽어라> 15장 르포문학이 주는 진정성 챕터에서
<위건부두로 가는길>의 감상평을 들어보자.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읽기가 쉽지 않고 솔직히 말하자면 거북했다. 차라리 문체가 어려운 것이라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문체는 감정을 거의 배제한 채 건조하다. 읽는 중간중간 조지 오웰 특유의 유머를 접할 수도 있다.˝ - 85쪽

난 이 책을 읽어보지도, 소장하지도 않고 있지만 오웰의 또 다른 르포문학 <카탈로니아찬가>를 읽다 포기했는데..
스텔라 K님이 언급한 느낌과 비슷한 이유에서다.

스텔라 K님이 이 책에서 발췌한 문장을 마지막으로 이 책 소개를 마친다.

˝어떤 사람에게는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괴감을 느낄 만하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나마 ‘지식인‘으로서 전반적으로 우월한 존재로서의 자기 지위를 의심하게 된다. 적어도 지켜보는 동안에는 우월한 인간들이 계속 우월하기 위해서는 광부들이 피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자각을 똑똑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건부두로 가는길 중> - 89쪽



6. <카탈로니아 찬가>

˝나는 보초 교대를 위해 초병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느낌이 왔다...그때 내가 느낀 것을 제대로 묘사하기가 매우 힘들다...
주위에서 요란한 굉음이 나고 눈부신 섬광이 비친 것 같았다...잠시 후 내 무릎이 꺾였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듯 했다...총알이 내 목을 완전히 관통했음을 안 순간, 나는 십중팔구 목숨을 잃을 거라 생각했다. -95쪽


7. <숨쉬러 나가다>

오웰은 1938년 9월부터 1939년 3월까지 모로코의 마라케시에서 요양하면서 소설 <숨쉬러 나가다>를 완성했다. - 118

* 마찬가지로 스텔라K님의 저서 <네 멋대로 읽어라>에 실려 있습니다.



8. <동물농장>

정말로 전쟁이 끝났다.
마침내 <동물농장>이 워버그에 의해 출간되었다. 이 책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오웰은 작가로서 좀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
아무도 돼지들이 앞발에 채찍을 쥐고 농장일을 감독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그가 총애하는, 물결무늬 실크 드레스 차림의 암퇘지를 동반한 채 검은 웃옷과 사냥용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돼지들의 생김새가 예전과 같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돼지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이 둘을 구별하기란 이미 불가능했다.˝ - 137쪽


9. <1984>

내가 손꼽는 책 중의 하나다.
3번 읽었다. 이 책은 현재의 상황과 대입해도 무리없을 정도로 그 비판적인 안목이 예리하다.

오웰은 아내가 죽고 그를 애타게 한 소니아 브라우넬과 재혼한 후 이듬 해 죽는다.
집필 당시의 제목 <유럽의 마지막 남자>를 쓰기 위해 스코틀랜드 한복판 헤브리디스 제도의 주라섬의 반힐에서 허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정원일과 목공일에 열정을 쏟고 늘 동물상과 식물상에 열광했다.

1948년, 그는 오래전부터 작업하던 소설 원고를 완성했다. 그는 이 연도의 숫자를 뒤집었다. 그래서 소설 제목이 <1984>가 되었고, 이 소설은 오웰을 20세기의 위대한 견자 중 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 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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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20-11-09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키님 덕에 <죠지오웰>도 희망도서로 주문해야겠네요 그래픽노블 좋아요 ㅎㅎ

북프리쿠키 2020-11-11 11:28   좋아요 1 | URL
오히려 카치님 덕분에 김금숙님의 <나목> 잘 읽었는걸요.
와이프도 함께 읽었는데 눈물을 흘리더라구요.
박완서님 작품 이 책으로 애정할 것 같습니다. 이게 그래픽노블의 힘이네요^^;
 

책이 보통 책 크기의 2배라 허벅지가 다 가리네요~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으로 받아서 시작합니다.

오웰의 자서전격인 만화같네요~
에릭 아서 블레어(오웰의 본명)의 삶을 읽다보면 그간 읽어 왔던 그의 작품들을 거꾸로 되새겨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은 작가의 삶을 들여다 볼때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참 ‘오웰‘은 에릭 블레어가 어른이 된 뒤 자주 낚시하러 갔던 강들 중 한 곳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H.G 웰스, 올더스 헉슬리, 찰스 디킨스, 레프 톨스토이, 잭 런던 등 자신이 경탄하는 작가들의 책을 탐독했다˝ -28쪽


˝그 시절, 나는 제국주의 자체가 악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제국주의 경찰이라는 더러운 직업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빨리 그만둘수록 더 좋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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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1-08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 글자의 크기도 두 배입니까?

북프리쿠키 2020-11-08 18:13   좋아요 1 | URL
ㅎㅎ 아닙니다. 글자크기는 두배가 아니네예^^

얄라알라 2020-11-08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마을 도서관은, 이 책, 그래픽 노블이라는 이유로 제 희망도서 신청을 취소해버렸어요...북프리쿠키님 마을 도서관 좋네요^^

북프리쿠키 2020-11-09 12:47   좋아요 0 | URL
아하..그렇군요. 도서관마다 담당자 판단이 조금씩 다른 모양입니다. 저도 1권은 구입안해주더군요. 그것도 그래픽 노블인데 김산의 아리랑을 그린 책이었는데..다시 한번 신청해볼까 합니다. 네 희망도서 너무 좋으네요..신간중에 읽고 싶은거 크게 욕심내지 않고 한달에 1-2권 정도 신청해서 받아보는게 넘 행복합니다..^^
 

불행했던 시대였다.
가슴 언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씨가 숨을 할딱거리며 틈을 노리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폭풍같은 내 젊은 날의 초상이다. 그 시절 알았던 어느 화가에 대한 기억이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그냥 화가‘ 박수근은 나의 소설속에서 다른 이름을 가질 것이다. 물론 나도.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수근의 그의 방식대로
나는 나의 방식대로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을 사랑했다. -14~15쪽

지금 생각해보면 지난날 옥희도의 작업실에서 봤던 그림 속의 나무는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슬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떨군 나무이기에 어쩌면 봄의 향기가 애달프고 절실하다.
하지만 나목에겐 봄을 기다리는 믿음이 있다. 때문에 나목은 굳건하게 서서 의연하게 버티고 있다.
나는 옥희도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고, 우리 모두가 암담했던 시절, 그는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다.
- p 297


이 책은 난생 처음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 받은 책이다.
한달에 2-3권 신청할 수 있는데,
이번에 조지오웰 그래픽 노블과 이 책을 신청해서 빌려 읽는다.
다음 번 신청은 그래픽 노블 <시녀이야기>와 <앵무새이야기>를 신청해 뒀는데 구입해 줘야 할텐데..
아마 앞으로는 책 구입 비용이 점점 줄어들 것 같다. 공부하는 것도 있고.

더군다나 소비자의 의견따위는 아랑곳 없이 출판사끼리 시위하고 압박해서 도서정가제가 또 큰 변화없이 지속된다 하니..에효..돈 굳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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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1-07 2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서정가제 계속 한다는 소식 뉴스 하단에 짧게 지나가는 것을 보았어요.
북프리쿠키님 좋은주말 보내세요.^^

북프리쿠키 2020-11-22 11:3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잘 계시지예~~이제사 댓글남깁니다 ㅎ 늘 건강하시고 예쁜 나무, 꽃 사진 많이 올려주세요^^
 

이번에 도서관에서 빌린 만화
평화발자국 시리즈입니다.
용산참사, 재일동포가 겪는 실상, 삼성 이야기 입니다.

정확하되 폭넓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사회비판의 날은 날카로워지지만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마련이라
섣부른 비판은 자제하게 되지요.
그리고 양쪽을 아우르는 눈을 갖게 됩니다. 제대로된 사람이면요.
이 책들은 정확한 실상과 그 정보를 습득해 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누군가는 보고 싶지 않은 책이기도 하지요.
정치적 이념의 잣대는 개인마다 다를 수 밖에 없지만 우린 늘 스스로 이념에 매몰되지 않기를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하지 않나요.

우리가 알고 있는, 느끼고 있는 것은 그저 추상적이지만 만화로 그려진 그 실상은 구체화되어 체감하는 바가 참 좋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실감하는 것은 가슴저릿한 일이지만 그 누군가는 바로 내 자신이 될 수도 있기에, 아니 꼭 내 자신이 아니어도 그 아픔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기에..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가 불행한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는 못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분노로 한쪽귀를 틀어막는 극단적 사고는 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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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시간 - 김근태, 남영동 22일간의 기록 평화 발자국 12
박건웅 만화 / 보리 / 201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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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간의 지옥

김근태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1983년 9월 4일부터 9월 26일까지
22일간 지옥같은 고문을 당한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남영동에서 나오던 날을 빼고는 처음으로 감옥에서 나와 차를 타고 구치감에 도착했을 때,
희안하게도 법원과 검창청 밑은 땅굴로 이어져 있었다.
고문을 철저하게 숨기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단 한차례 결정적인 실수로 김근태의 고문은 세상에 알려진다.
검창철 승강기에서 내리는 순간 거기에 아내 인재근을 만나 변호인의 도움으로 어두운 계단 밑에서 아내에게 아래 사실을 모두 말하게 된다.
아래는 김근태가 그때 아내에게 전달한 남영동에서 받은 고문의 종류와 횟수, 총 시간이다.



1. 고문의 종류와 횟수

9월 4일 : 전기고문 및 물고문(총10시간)
9월 5일 : 전기고문 및 물고문(총5시간)
9월 6일 : 전기고문 및 물고문(총5시간)
9월 8일 : 전기고문 및 물고문(총10시간)
9월10일 : 전기고문 및 물고문(총5시간)
9월13일 : 전기고문 및 물고문(총10시간)
9월20일 : 전기고문 및 물고문(총5시간)

지독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을 <남영동 1985>영화를 보고 체감했지만, 그 횟수와 시간은 상상을 초월한다.
물고문 같은 경우는 수건 or 거즈를 코와 얼굴에 딱 붙이고 콧구멍으로 샤워기나 주전자를 들이붓는 것이다.
몇분 동안이 아니라, 그 짓을 5시간 이상씩 고문자 4-5명이 땀을 흘려가며 했다하니
기절하지 않고 버틴 김근태도 대단하다.

전기고문은 발가락에 붕대를 감고 전극을 발가락 사이에 넣고 전기를 통하게 한다.
물고문 뿐만 아니라 전기고문도 칠성판에 천을 씌워 돌돌 말아 5군데를 묶어 꼼짝못하도록 한다.
전류의 세기는 우리 몸에서 가장 먼저 실핏줄이 터지는 회음부를 고문기술자(장의사)가 살펴보며 터지기 직전에 멈춘다. 두 가지 모두 외상을 입지 않아 고문의 흔적이 남지 않는 방법이다.




2. 지옥의 칠성대(칠성판)

두께는 남자 팔뚝 정도인 나무판이 사람 키보다 약간 큰 일이로 펼쳐져 있다.
머리쪽이 세면대쪽으로 뒤로 젖힐 수 있게 한쪽은 세면대에 갖다 붙힌다.
칠성대 위에 담요를 깔고 사람이 누우면 담요로 싼 다음에 그 바깥을 군대 허리띠 같은 줄로 꽁꽁 묶어 버린다.
담요로 몸을 감싸는 것은 몸에 상처가 날까 봐서다. 고문 당하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담요 바깥을 줄로 묶는 것도 상처 자국을 남기지 않으려 그런 것이 분명하다.
발목, 무릎위, 허벅지, 배, 가슴까지 다섯 군대를 묶는다. 완전히 묶이면 꼼짝할 수가 없다. 그러나 머리는 움직일 수 있다.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면 고문의 증거인 상처가 날테니 말이다.
머리의 절반 내지 3분의 2정도는 받침대가 없어서 뒤로 젖힐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물고문할 때 효과적으로 고통을 주기 위해서이다. 기를 쓰고 움직이면 발목 아래 부분과 팔꿈치를 약간씩 비틀 수 있다. 물론 눈은 가려진 채로.


3. 김근태가 느낀 고문의 고통


- 물고문

˝이를 갈면서 견디었습니다.
짧은 시간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지요.
숨을 몰아쉬고 안 쉬고 또 몰아쉬고 하면서요. 하지만 처음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고, 꺼져 가는 생명의 마지막 안간함일지도 모르는 그 순간이 덮쳐 왔습니다. 둘레는 신 냄새 나는 짙은 깜깜함으로 뒤바뀌고, 속은 메스꺼워지다가 완전히 뒤집히고 콧속으로는 노린내가 치솟고 물이 쏟아지는 그 속에서 불길이 치솟고요.
온몸을 바둥거리고 혼신의 힘으로 뒤척거리니 칠성대도 기우뚱했습니다.
몸은 완전히 땀으로 젖어버리고,
담요도 땀으로 물컹해졌지요.(...)
아득한 절망감, 질식해 버릴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170~176쪽 첫번째 5시간 물고문


-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동시에

˝물고문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짧고 약하게, 그러다 몸에 땀이 나게 되면 그때부터 전기 고문을 시작했습니다. 짧고 약하게 하다가 중간에 다시 약하게, 가끔씩은 발등에 순간적으로 전기를 대기도 했지요.
그래서 발등의 살가죽이 꺼멓게 타버렸습니다. 김수현과 백남은은 뒤에서 지켜보면서 전기고문은 고문기술자가, 물고문은 김영두가 직접 집행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전기고문, 그것은 한마디로 불고문이었습니다. 외상을 남기지 않으면서 치명적으로 내상을 입히고 극심한 고통과 공포를 가져오는 고문이었습니다. 물고문과 불고문의 조화라고나 할까. 그 상승효과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어요. 물고문이 밑바닥에 닿지 않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질식해 가는 것이라면,
전기고문은 불에 달구어 뜨거워진 인두로 지져서 바싹 말려 바스러뜨리고, 둘둘 말아서 불테 튀기는 그것이었습니다.
핏줄을 뒤틀어놓고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마침내 마디마디를 끊어버리는 것 같았지요. 머리가 빠개질 듯한 통증이 느껴지고 죽음의 그림자가 독수리처럼 날아와 파고드는 것처럼 아른거리는 공포가 몰려왔습니다. 온몸이 저리고 칙칙해져서 끈적끈적한 외마디를 계속 질러 댔습니다. 전기가 발을 통해서 머리끝까지 쑤셔 댈 때마다 어두운 비명을 토해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온몸 마디마디가 해체되어 나가는 중이었어요. 오직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비명뿐이었습니다. 온몸에 시퍼렇게 핏줄이 솟고 목은 쉬어가는데 이것은 멱이 따진 돼지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 같았습니다. (...) 미친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온통 휘감고 그 희번덕거리는 눈동자가 내 눈 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환상이 공포와 광란의 소용돌이로 닥쳐 왔습니다. 이것은 슬픔이라든지, 외로움이라든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잔인한 파괴 그 자체였어요.˝. 206쪽~214쪽

˝격렬한 전기 고문을 길게 아주 길게 가하여 온몸이 고문대 위에서 오그라들어 버리는 것 같았고, 핏줄은 물론 모든 살이 마침내 다 타버려 살가죽과 뼈만 남아 버린 것 같았습니다.(...) 고통에 못 이겨 소리소리 질러댔기에 목에서는 피냄새가 역하게 올라오고, 콧속에서는 단내가 계속 피어올랐습니다. 물고문 때문에 속이 빈 위는 계속 헛구역질만 했습니다.˝
- 244쪽


- 물고문과 전기고문,
그리고 소금과 고추가루

˝고문자들은 세수수건 대신 코와 입 위에 거즈를 덮고 물을 쏟아부었습니다.
세수수건을 덮고 고문할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숨을 못 쉬게 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날은 중간에 한번 입을 벌려서 고춧가루를 쳐넣었습니다. 곧 뱉어 버리긴 했지만 입안이 얼얼하고 고문대 위 담요에 고여 있는 땀과 물에 떨어진 고춧가루 때문에 등 전체가 따갑기고 했습니다.
무슨 화학약품이라고 겁을 주면서 거즈 위에 한움큼을 집어다 놓고 물로 녹여서 입, 귀, 코로 녹아들게 했습니다.
이런 일을 세 번 했는데,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약간 찝찔한 것으로 봐서는 소금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는 고문할 때 심리적 압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전기고문할 때 몸에서 전류가 더 잘통하도록 하기 위해 피의 전리도를 높이려는 계산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날 고문은 더할 수 없이 잔인했습니다. 목이 완전히 붓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연거푸 비명을 질러 댔기 때문에 목이 쉬어 버렸습니다.
팔꿈치와 발뒤꿈치는 이미 헤어져 상처가 심하게 깊어지기도 했습니다. - 260~266쪽




4. 고문기술자(장의사) 이근안

김근태가 느낀 첫인상은 아래와 같다.

˝델시 상표가 붙어 있는 사무용 가방을 들고 건장한 사내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거리 구석에 있을 듯한 깡패, 누가봐도 조직폭력배 같은 사내였습니다.
몸무게는 거의 90킬로그램에 이를 것 같고 키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으며
눈은 불안정하고 걸음걸이는 뻐기는 듯한, 그야말로 인간 백정 같았습니다.
<잃어버린 전설>에 나오는 뒤뜰에서 식칼을 가는 그런 사람 같았습니다.
이 사람에게 그래도 빛이 있다면 눈동자에 어리는 장난기 같은 그림자, 그것뿐이었습니다. -199~200쪽


이근안은 1988년 군사 정권이 붕괴한 뒤 수배를 받았고, 11년 동안 도망다니다가(비호를 받지 않고서는 힘든) 1999년 검찰에 자수하고 구속되어 징역 7년형을 받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그제서야 자수한 것은 범죄 시효를 계산한 것이다.
2006년 감옥에서 나온 뒤 2008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개신교 목사가 되었으나 2011년 김근태가 사망한 뒤 책임과 논란이 불거지면서 목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은 지금도 살아있다. 인근 주민에 의하면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배우자가 폐지를 주워 연명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김근태가 자수한 이근안을 한번 만났고, 그 이후 이근안은 또 한번 김근태를 농락한다.

중형을 받을까봐 고문범죄의 시효가 지난 시점에서야 비로소 자수하여 울면서 무릎 꿇고 사죄한 이근안에게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왔던 김근태이지만 아마 용서하기 어려웠을것이다. 아니 용서는 못했을 것이다. 고문받은 사람이 고문을 한 자를 용서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이 쥐새끼는 목사가 되어 한 언론사에서 특급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대목을 들어보자.
˝시간을 돌려 과거로 간다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요?˝
˝하하하.아닙니다.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입니다. 그때는 고문이 ‘애국‘이었으니까 말이에요.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기 고문은 사실 내가 취미 삼아 만든 모형 비행기 모터에서 뺀 AA건전지 2개를 이용해 겁을 준 것 뿐입니다. 허허 그건 전기 고문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말로 겁을 주고 건전지 두 개를 맨 발바닥에 댔는데.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논리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이와 이를 깨려는 수사관은 항상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문도 하나의 예술입니다.˝ -556~557쪽

이 인터뷰는 유튜브에 찾아봐도
많이 나온다. 과연 그 누가 이 놈을 용서할 수 있을까?



5. 한국의 천재건축가 김수근

김수근은 1976년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을 설계했다. 원래 5층 건물에서 전두환 집권 시기 증축하여 7층으로 올렸다. 지금은 경찰에서 이 곳을 인권센터로 내놓아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김근태가 고문을 받은 5층 끝방에서 조금 떨어진 509호가 바로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받고 사망한 방이다.
물고문..김근태가 받은 물고문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저 얼굴에 물을 몇번 붓다가 죽은 실수가 아니라 김근태가 느낀 아득한 지옥의 고통과 공포를 느끼다 질식사 한것이다. 얼마전 TV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김종민 어머니의 당뇨를 관리해주시는 주치의로
당시 박종철 사망 후 왕진을 갔던 오연상 전 중앙대 전문의와 전화로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의 상황에서 오연상 교수님은 양심을 저버릴 수 없는 용기 있는 행동을 했고, 그 결단이 6.29민주화 운동의 마중물이 되었다.
이 건물에 올해 4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하여 직접 509호실을 보고 설명을 듣고 헌화했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이 곳을 인권센터로 바꾸고, 개방함으로써 이 땅의 모든 경찰이 이 비극의 공간을 다시 한번 추념하고 다시는 이런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대통령앞에서 했다.


다시 김수근 건축가 이야기로 돌아가자.

˝김수근. 그이는 공간의 정서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섬세하게 잘 알고 있는 빼어난 건축가입니다. 대표작으로 88올림픽 주경기장, 워커힐 힐탑바, 남산의 자유총연맹, 세운상가 현 아르코미술관...한국 건축사에 큰 성과를 낳았습니다. 김수근이 설계하고 지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은 심문과 취조, 고문의 효과, 그리고 고문하는 자와 고문당하는 자가 놓인 처지를 세심하게 처리한 건축물입니다.
7층짜리 대공분실 건물을 바깥에서 바라보면, 5층 창문만 유달리 아주 작고, 좁은 직사각형인 것이 바로 눈에 뜨입니다. 이는 건축설계자가 처음부터 이 건물을 정상이 아닌 비정상적인 용도로 쓸 것이란 사실을 미리 계산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설계입니다. 따라서 ‘건축가가 짜 놓은 초기 설계를 실무자가 바꾸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건축계의 가설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김수근은 벽돌 하나, 창문 배치 하나하나까지 직접 관여할 정도로 굉장히 꼼꼼하고 치밀한 건축 설계자라는 것은 건축계에서는 익히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취조 고문을 당하기 위해 강제로 끌려온 이들은 양팔이 묶이고 억센 손아귀에 이끌려 건물로 들어섭니다. 이윽고 나선형 철제 계단을 오르거나 승강기에 갇혀 5층으로 올라갑니다.
나선형 계단은 끌려온 이들이 빙빙 돌며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공포심을 느끼도록 의도한 것입니다. 계단에는 층 표시를 하지 않아 자신이 몇 층에서 고문당하는지 모르게 합니다.
문을 어긋나게 배치한 것은 문이 열렸을 때 고문당하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치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을 처음부터 차단하기 위한 처리였습니다. 또한 이곳에 끌려 온 이들에게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더욱 극대화시킵니다.
여기에 고문당하는 사람의 비명이 복도에 울려 퍼집니다. 방안의 전등 불빛을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는 조사실 밖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안에서 밖을 보기 위해 만들어진 투시경이 이곳에서는 반대로 밖에서 안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되었습니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은 약 3평 정도 크기인데 전구와 형광등은 철망으로 둘러쳐 있고 철제 가구와 침대는 붙박이로 설치되어 바닥에 단단하게 박혀있습니다.(* 침대는 잠을 재우지 않고 고문하기 때문에 수면욕에 대한 심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갖다둔 것)
이는 자살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 천장에는 폐쇄회로 카메라를 달아 배변의 존엄성도 보장받지 못하게 하여 취조 효과를 높였습니다. 내부 벽은 모두 방음 처리를 해 고문당할때 나는 비명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하였고 다른 방에서 나는 소리 또한 들리지 않게 해서 완전히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사람 머리도 채 내밀 수 없을 만큼 좁은 직사각형 창은 이 건물을 마치 미술관이나 고급 호텔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볼 때에는 이곳이 어떤 건물인지 전혀 알수가 없습니다..(...)
이 건물은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로 불렸던 김수근이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담아 설계한 살아 있는 건물입니다.˝ -280~290쪽



6. 타인의 고통

근 30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고문만 없어졌을 뿐이지, 고문 빼고는 세상의 부조리는 여전합니다.
여전히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된 세상을 강요당하는 지금, 어쩌면 고문보다 더 끔찍한 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우리들 자신이며, 지금 우리 사회는 남영동 건물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 시대의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진실에 침묵하고 안전한 다수의 편에 서는 바로 우리, 변절자 우리들이었습니다.
누군가 할일이지 바로 이것이 내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없었던 겁니다.
돼지를 잡아 보지 않은 사람들은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직접 잡거나 본 사람은 고기를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이야기처럼, 그저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아 너무 잔인해~˝하며 ˝난 그런거 원래 싫어~˝하고 그 사실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우리 현대사는 안과 밖의 풍경이 그렇게 달랐습니다.
하지만 우린 참혹한 역사를 희망의 역사로 만들어가는 유전자가 우리 사회에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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