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레이하 눈을 뜨다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 3
구젤 샤밀례브나 야히나 지음, 강동희 옮김 / 걷는사람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러시아의 신예 작가 구젤 샤밀례브나 야히나의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의 세 번째 작품집

이 책은 표지에서 주는 묘한 매력으로 인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찬사가 또한 책을 읽게 만드는 요인임을 말하고 싶다.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은 것만으로도 이런 책은 독서의 계절에 맞게 서재에 꽂혀 있어야만 하는 책이다. 그리고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면서 공동번역으로 출간했으니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보게 되었다.

저자인 그녀는 러시아의 신예 작가로서 '혜성'처럼 나타났다. 이 책 『줄레이하 눈을 뜨다』는 저자의 데뷔작이자 구소련을 대표했던 유배문학의 미덕을 갖춘 정통 소설로 평가받는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이 책의 서문을 쓴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현시대 문학의 필수 요건을 갖추었으며 제대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여주인공의 운명과 부농추방운동 시기의 타타르 농민들에 관한 이야기는 최근 몇 십 년간의 현대 산문들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사실적이고 진정성 있는 흥미로운 주제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한 마디를 더 했는데 "개인적으로 어떻게 젊은 작가가 지옥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연민을 통해 이토록 강렬한 작품을 만들어 냈는지 믿기 힘들 따름이다. 나는 진심으로 작가에게는 훌륭한 데뷔를, 독자들에게는 위대한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을 축하하고 싶다."

그는 이 신예 작가인 '구젤 샤밀례브나 야히나'를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잇는 ‘위대한 작가 대열’에 기꺼이 올려 놓는다.

이 책은 현재 베스트셀러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35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구젤 샤밀례브나 야히나 (ГУЗЕЛЬ ШАМИЛЕВНА ЯХИНА, 1977~)

책의 스토리

유배문학의 미덕을 갖춘 정통 소설 - “지옥에서 피어난 사랑의 대서사시”

『줄레이하 눈을 뜨다』는 1930년에서 1946년 사이 행해진 러시아 부농의 '시베리아 강제이주'를 배경으로 펼쳐진 이야기다. 매서운 눈보라가 치는 겨울, 타타르스탄의 척박한 시골마을인 율바시(러시아 바시키르 공화국 쿠가르친스키 군의 한 마을 지명)에서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주인공인 줄레이하는 숨죽인 발검음을 내딛고 있다. 조심스럽게 누군가 깰까봐 노심초사하며 한 곳을 향해 움직이는 긴장감을 처음부터 주면서 이 책은 한 여성의 인생으로 초대한다. 그녀는 열다섯 살에 나이 많은 부농 무르타자와 결혼하여 네 명의 딸을 낳았지만 모두 얼마 안 돼 죽어 버리는 아픔을 겪었다. 이런 경우 주변에 따뜻한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있다면 그래도 마음에 위안을 안고 살아가겠지만 줄레이하는 서른 살이 되도록 악귀 같은 시어머니 우프리하(타타르어로 잔인한 악귀 노파, 마녀를 뜻한다)에게 온갖 구박과 천대를 받으며 식모와 다름없는 결혼 생활을 하며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엄격하면서 무시를 일삼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이그나토프가 이끄는 공산주의(붉은군대)자들에게 남편이 살해 당하고 전 재산을 몰수당한 후, 태어나서 한 번도 떠나 본 적 없는 율바시를 떠나 강제이주의 장소인 머나먼 시베리아로 향하는 열차에 오르게 된다. 이때 그녀는 임신한 상태였다. 수 개월간에 걸친 수송 과정에서 이주자들의 대탈주가 벌어지고 안가라강에서 바지선의 침몰에도 최후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마침내 끝없이 펼쳐진 타이가 숲을 마주하고 있는 시베리아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곳에서의 정착은 쉽지 않았다.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 강제 노동으로 그들의 삶은 피폐했지만 이주민들은 혹독한 환경을 이기며 노동수용소를 짓고 이곳에 정착하게 된다. 얼마 후 유배지에 도착하자마자 아들 '유주프'를 낳게 되는데 이 여정을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와 글은 가을밤 나에게 문학의 행복을 일구게 하였다.

그 문장 가운데 특히 다가온 문장을 적어 본다.(특히 아들은 그녀 인생에서 처음으로 낳은 남자아이다. 그래서인지 더 애착적인 마음도 있음을 보게 된다.)

그녀는 아들과 상관없는 모든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딘가 먼 곳에 남겨진, 지난 삶의 무르타자(그의 씨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것을 잊기로 했다), 그녀에게 끔찍한 예언을 남긴 우프라하, 그리고 딸들의 무덤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이며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이고, 지금 이순간이었다. 어느 날 아침 옷 속에서 작은 숨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아들의 생이 멈춘다면 그녀의 심장도 곧바로 멎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그녀를 버티게 했고 힘을 충만하게 했으며, 어떤 알 수 없는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기도는 가끔, 그리고 일하는 사이사이에 빨리했다.... 갑자기 알라께서 다른 일로 바빠서 시베리아 밀림의 외딴곳에 머물게 되어버린 배고픈 서른 명의 사람들을 깜박한 걸까? (...)

고뇌에 지친 불쌍한 사람들을 못 보고 지나쳤으며 그들이 사라진 것도 잊어버린 걸까? 그녀는 기도의 끝을 맺을 수가 없었다(두려웠다!). 대신 조용히 기도했고, 하늘에서 알아듣지 못하도록 속으로 중얼거렸다. p392-393

그리고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인데 엄청난 시련 속에서 자신의 삶을 싸워나가는 중 남편 무르타자를 죽인 붉은군대의 간부이자 유배지의 감독자인 이그나토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사랑은 아들 유주프를 수용소 바깥으로 탈주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그 아들은 자신이 살지 못한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함으로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하고 있다.

이그나토프가 줄레이하를 보며 사랑에 빠지게 되는 시초를 적어 본다. 만일 책 표지에 나오는 여성이 주인공 줄레이하라면 나 또한 아마도 마음이 몹시 그녀를 향해 눈길을 줬을 것이다.

"괜찮은 여인이다. (...) 이그나프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그 여인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말에 올라탄 모습이 마치 왕좌에 앉아 있는 듯하다. 안장에 앉아 걸어갈 때는 몸이 사뿐사뿐 흔들린다.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흰색 털코트로 가려진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마치 고갯짓으로 '이그나프 동지, 있잖아, 응 자기야, 그래 .....' 하며 말을 하는 것 같다. p125

혹독한 세상을 마주한 여성이, 시베리아라는 춥고 황량한 불모지에서 한 여성이자 어머니가 돠어 세상을 어떻게 싸워 나가며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지 이 책은 매우 큰 스케일의 무게감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지옥 같은 노동수용소 안에서 따뜻하게 데워주는 모닥불 같은 ‘성스러운 모성’애를 여기서 보게 될 것이며 더불어 ‘사랑과 연민’이 빚어낸 강렬한 대서사시와 같은 깊은 묵직함을 이곳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화나 다큐에서 봤던 눈보라치는 황량한 시베리아가 눈에 그려진다.

책 속에서

신이여, 모든 것이 당신 뜻에 달렸습니다! 줄레이하가 깨진 창가로 가 몸을 숙인다. 무르타자가 셔츠를 열어젖히고,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도끼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도끼로 거칠어진 눈보라를 위협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다. 만약 누군가에게 잘못 휘두르기라도 했다면, 그는 마음의 죄책감을 느꼇을 것이다. p83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모두의 안에 숨어 있거나 바로 가까이에 있기도 하며, 고양이가 되어 발아래에서 애교를 부리고, 먼지가 되어 옷 위에 앉고, 공기가 되어 폐 속으로 침투한다. 죽음은 어디에나 있다. 늘 전투에서 패배하는 어리석은 삶보다 더 교활하고, 똑똑하며 강력하다. 죽음은 백 년은 거뜬히 살 것 같았던 강한 무르타자에게도 찾아왔고 그를 데려갔다. 이제 자신만만한 우프리하도 곧 데려갈 것이다. 새로운 농사를 기대하며 남편과 함께 딸들의 묘지 사이에 묻어두었던 곡물들 또한 비좁은 나무 상자에 갇혀 봄 동안 썩어 죽음의 제물이 될 것이다. (...) 줄레이하가 방 구석에 있는 크고 깊숙한 양청 양동이로 만들어 놓은 화장실에 갔을 때, 그녀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고, 그제야 아직 죽은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죽은 이는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 p19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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