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산문선 열린책들 세계문학 256
조지 오웰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Orwell pictured in 1943

얼마 전 스타북스 출판사에서 조지 오웰에 대한 신간인 『동물농장』에 대한 책을 보게 되었다.

눈에 딱 뛰는 돼지 그림이 표지를 장식하면서 무언가 강렬하게 독자들에게 말을 걸어 오는 것을 느꼈다. 책 소개에 따르면 동물농장은 20세기 영미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가인 조지 오웰의 대표작이라고 말한다. 오웰의 작품 중 유일하게 유머가 가득한 작품으로서 간결한 문체와 예리한 풍자가 돋보이며 소설을 통해 사회 비판적 역할을 풀어내고 있는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최초의 문학작품이며 정치 풍자소설로는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의 산문집이 열린책들 출판사를 통해서 나오게 됨으로 그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그가 쓴 에세이 중에 냉철한 통찰을 보여주는 빼어난 산문들을 분야별로 골고루 엄선한 선집을 보게 되는 기회가 생겨 기쁜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오웰의 최고 걸작은 바로 에세이들이다" -『데일리 텔리그래프』

<오웰의 글은 에세이에서 시작하고, 그의 에세이는 경험에서 시작한다>라는 평이 있다.

그만큼, 오웰의 에세이에는 그의 사상과 문학을 이루는 기초가 된 단상들을 넘어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경험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음을 보게 된다. 실제로 오웰은 에세이들을 발전시켜 여러 장편소설을 완성하기도 했으며, 자신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친 체험들과 사회 이슈들에 대한 생각을 에세이로 솔직하게 기록하였다고 그에 대해 평가한다. 그러므로 그가 남긴 에세이들은 그의 실제적인 내면 세계의 모습을 확연히 필체로 남기고 있어 소설 속에서 볼 수 없었던 오웰 자신의 사상을 면밀히 곁에서 지켜보는 시간이 되어 진다.

특히 이번 책에 세번째 나오는 「코끼리를 쏘다」의 글은 맨 처음 읽은 부분이면서 이 부분을 읽고 그의 팬이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너무나 재미있게 보고 많은 생각의 이념들을 남긴 에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에세이는 그가 버마에서 제국 경찰로 살았던 일의 경험을 쓴 에세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며 마치 빨려들어가듯 읽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이었다. 그는 5년간 버마 제국 경찰로 일할 당시 자신의 관할구역 내에 발정 난 코끼리가 사슬을 끊고 시장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다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이 코끼리는 방금 말했다시피 야생 코끼리가 아닌 버마인들이 길들이는 코끼리였다. 큼직한 사슬로 묶어 두었지만 발정이 났기에 한 번에 끊어버렸다. 코끼리는 이미 대나무 집을 한채 부수고 암소 한 마리를 죽인 상태이다. 그리고 쓰레기차와 맞닥뜨렸을 때 그 차를 뒤집어 버리는 괴력을 보여줬다. 이윽고 그 코끼리는 인도인중 피부가 검은 드라비다인 '쿨리(하층 노동자)'를 무참히 뭉개 버렸다. 즉 사망케 하였다. 이에 오웰이 총을 들고 오자 동네 사람들은 그에게 코끼리의 행방을 적극적으로 알려주며 코끼리를 처리해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코끼리를 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마치 살인행위처럼 느껴졌고, 게다가 이 짐승의 주인도 생각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군중은 그가 그 코끼리를 죽이고 어서 빨리 자신들에게 그 고기를 제공해 주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그는 코끼리 상태를 보니 이미 발정기가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코끼리는 매우 평화롭게 풀을 뜯어 흙을 털고는 입에 넣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날뛰지 않는지 조금 지켜보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자신 뒤로 이미 적어도 2천 명의 군중이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1분마다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분명 집에 갔어야 했는데 그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등을 떠미는 2천명의 의지가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무기력하게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사람들이 그를 비웃을까봐 코끼리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인도인들은 그 모습을 보며 마치 극장의 커튼이 올라갈 떄처럼 숨죽이며 행복한 모습으로 지켜보았다. 코끼리는 총 다섯 번의 총소리와 함께 무너졌으며, 이후 그는 죽지 않는 코끼리를 향해 소총으로 코끼리의 심장과 목구멍에 수없이 발사를 하게 된다.

마취총에 맞는 모습이다. 하지만 인간이하의 짓임을 보게 된다

지켜보던 군중은 코끼리의 숨이 멎자 단숨에 달려들어 뼈만 남긴 채 해체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그는 "왜 코끼를 쏘았는가?"이다. 마지막 부분에 그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나는 오로지 바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내가 코끼리를 쏘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종종 생각했다." p40

오웰은 이 작품에서 "저자의 판단 아닌 외부의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분명 그는 코끼리를 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코끼리를 쏘기 전 그는 분명 죄의식, 균열, 망설임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총을 쏘지 않으면 비겁하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리라는 상상을 하는 순간 이미 코끼리는 총을 맞고 죽어 버렸다. 단지 바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한 행동이 자신이 굳게 지켜야 할 중요한 생명을 하찮게 여기게 만든 것이다. 그건 생명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그가 주체적으로 지켜내야 할 '자기 주관적 가치'였다.

그는 코끼리를 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자유'를 쏜 것이다. 분명 지켜내야 할 '윤리'가 있고, 인간이 가진 '삶의 기준'이 있것만 그는 그 모든 것을 단지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살인자가 된다.

이후 그는 1972년 5년 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영국 경찰 제복을 벗어던지게 되는데 그 뒤 그는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다. 이 행보는 무수한 함의를 지닌다고 하는데 그것은 이러하다. 즉 그는 언뜻 보면 제국주의의 실상과 폭압을 폭로하는 것 같지만 이 작품에서 그는 지배자 또한 피지배자의 모습을 갖추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코끼리를 쏠 때 무언의 압박을 보내어 백인(그 자신) 폭압자의 소임을 다할 것을 종용한 것은 지배 계급이 아닌 피지배 계급인 군중이다. 다시 말해 군중이 원하는 지배자의 모습이란 “그 자신의 자유”마저 피지배자의 욕망에 할당하는 것, 끊임없이 서로를 식민화시키고 지배하고 있음을 이 책은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정리하면 "피지배 국가의 주민들뿐 아니라 지배자인 백인들의 자유와 인격마저 파괴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코끼리를 쏘다라는 에세이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온 오웰은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사회 극빈 계층의 삶을 똑바로 인식하기 위해 일부러 런던과 파리의 빈민가를 떠돌며 부랑자와 막노동자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늘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실상을 보고자 하였다.

이렇게 선별된 오웰의 산문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닌 사회 문제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냉철한 진보적 지식인이며 우리 시대의 삶을 깊이 있게 사고하게 만들어 인간이 주체적인 존재로 살아가길 바란다. 무엇보다 그는 시대적으로 양차 대전과 제국주의, 전체주의, 히틀러의 등장과 횡포 등을 생생하게 목도한 경험자로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학살하는 야만성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항거하고자 한 사상적 작가이다. 그 과정 속에서 오웰은 어떤 경우에도 압제자가 아닌 피압제자의 편에 서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리며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 나간다. 이러한 생각은 이번에 나온 책에서 첫번째 쳅터인 「나는 왜 쓰는가」(1946)에 잘 담겨 있다.

이 책의 한 문장

"작가가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고 끊임없이 싸우지 않는 한 읽을 만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창유리와 같다. 나는 어떤 동기가 가장 강한지 단언할 수 없지만 어느 동기를 따라야 하는지는 안다. 내 작품들을 돌이켜 보면 항상 〈정치적〉 목적이 없을 때는 생명력 없는 글을 썼고 화려한 문단, 의미 없는 문장, 장식적인 형용사에 현혹되어 전체적으로 실없는 글이 되었다." p18

"책방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저속해지기 힘든 인간적인 장사이다. 기업 조합은 식품점이나 우유 배달부를 압박하여 없애 버렸지만, 소규모 독립 책방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근무 시간이 아주 길고 ─ 나는 시간제로 일했지만, 책방 주인은 책을 사러 끊임없이 원정을 떠나는 시간을 빼고도 일주일에 70시간씩 쏟아부었다 ─ 건강에 좋지 않은 삶이다. (...) 그러나 내가 책 장사에 평생 몸담고 싶지 않은 진짜 이유는 그 일을 하면서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책 장수는 책에 대해서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러면 책을 싫어하게 된다. 더 나쁜 것은 끊임없이 먼지를 털고 책을 이리저리 옮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 그러나 나는 책방 일을 시작하자마자 책을 사지 않게 되었다. 5천 권이나 1만 권씩 되는 책을 한꺼번에 보면 따분해 보이고, 심지어 구역질까지 났다." p101-1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