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은 이 작품에서 "저자의 판단 아닌 외부의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분명 그는 코끼리를 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코끼리를 쏘기 전 그는 분명 죄의식, 균열, 망설임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총을 쏘지 않으면 비겁하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리라는 상상을 하는 순간 이미 코끼리는 총을 맞고 죽어 버렸다. 단지 바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한 행동이 자신이 굳게 지켜야 할 중요한 생명을 하찮게 여기게 만든 것이다. 그건 생명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그가 주체적으로 지켜내야 할 '자기 주관적 가치'였다.
그는 코끼리를 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자유'를 쏜 것이다. 분명 지켜내야 할 '윤리'가 있고, 인간이 가진 '삶의 기준'이 있것만 그는 그 모든 것을 단지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살인자가 된다.
이후 그는 1972년 5년 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영국 경찰 제복을 벗어던지게 되는데 그 뒤 그는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다. 이 행보는 무수한 함의를 지닌다고 하는데 그것은 이러하다. 즉 그는 언뜻 보면 제국주의의 실상과 폭압을 폭로하는 것 같지만 이 작품에서 그는 지배자 또한 피지배자의 모습을 갖추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코끼리를 쏠 때 무언의 압박을 보내어 백인(그 자신) 폭압자의 소임을 다할 것을 종용한 것은 지배 계급이 아닌 피지배 계급인 군중이다. 다시 말해 군중이 원하는 지배자의 모습이란 “그 자신의 자유”마저 피지배자의 욕망에 할당하는 것, 끊임없이 서로를 식민화시키고 지배하고 있음을 이 책은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정리하면 "피지배 국가의 주민들뿐 아니라 지배자인 백인들의 자유와 인격마저 파괴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코끼리를 쏘다라는 에세이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온 오웰은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사회 극빈 계층의 삶을 똑바로 인식하기 위해 일부러 런던과 파리의 빈민가를 떠돌며 부랑자와 막노동자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늘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실상을 보고자 하였다.
이렇게 선별된 오웰의 산문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닌 사회 문제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냉철한 진보적 지식인이며 우리 시대의 삶을 깊이 있게 사고하게 만들어 인간이 주체적인 존재로 살아가길 바란다. 무엇보다 그는 시대적으로 양차 대전과 제국주의, 전체주의, 히틀러의 등장과 횡포 등을 생생하게 목도한 경험자로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학살하는 야만성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항거하고자 한 사상적 작가이다. 그 과정 속에서 오웰은 어떤 경우에도 압제자가 아닌 피압제자의 편에 서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리며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 나간다. 이러한 생각은 이번에 나온 책에서 첫번째 쳅터인 「나는 왜 쓰는가」(1946)에 잘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