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예술, 가짜 예술 - 우리를 조종하는 것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들
장 프랑수아 마르텔 지음, 김기상 옮김 / 서스테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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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정말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고 읽었다. 책에서 주장한 작가와 예술의 분리, "예술이 뿜어내는 신비로운 광채는 작가의 도덕적 흠결은 물론이고, 보는 사람의 삐딱한 편견마저 모조리 녹여버린다. 45"는 문장에서, "인공물이 지배하는 사회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작가만을 요구하기에 진정한 예술은 더욱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44"는 문장에서 저자가 대체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세상의 그 모든 규율과 도덕, 양심, 정신의 뿌리 같은 것들 위에 예술이 존재할 수 있을까? 결과물이 좋다면 배경은 흐린 눈으로 지워내고 그 가치에 집중해 수용해도 되는 것일까? 도덕성 요구하는 것과 진정한 예술 사이에는 어떤 반비례가 존재한다는 것일까? 고대 그리스적(112) 사고방식이겠지만 예술의 이름으로 희생되는 것이 있다면, 선을 넘어 자행되는 행위가 있다면 결과가 어떻든 마땅히 거부와 배척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 '사람다움'보다 상회하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지난 6월에 종료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데이미언 허스트>전시가 감당해야 했던 논란과 비판은 이에 대한 응답이라 여겨진다. 

읽는 동안 이것은 가짜 예술이다,하고 고발할 수 있는 범위의 결과물은 어떤 기준을 두어야 할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바타>를 가짜 예술(93)로 드는 것은 얄팍하지 않은가. 일반 관객마저 이런 오락 영화를 예술의 범주로 두지 않는다. 다만 로만 폴란스키나 김기덕 같은 감독들의 영화가 그 '모호함'을 품고 있다고 해도 이를 진짜 예술로, 또 찾아볼 가치가 있는 영화로 목록 위에 남겨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솔직히 남성의 사고를 거쳐 내놓은 영화에 남성이 올려놓은 평가로 추앙받는 과거의 산물들에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는가 싶다. 마찬가지로 왜 인공물, 특히 교훈적 인공물, 공익광고 같은 것들에서 '진짜 예술의 경지'를 논하는지 알 수 없다. 메시지와 함께 누구의 이목이라도 집중시킬만한 의미와 상징이 내포되어 있다면 좋겠지만, 아바타와 마찬가지로 마약, 술, 음주운전을 규제하는 인공물에서 누구도 모호한, 왜 안되는가/나쁜가에 대해 논쟁적으로 사고할 여백을 원하거나 기대하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하고 인식하고 싶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주입되지 못하는 판에 '진짜 예술'이 되어 개개인에게 직접 사고하고 판단할 여지를 둘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아름다움에 대해 숨을 헐떡이게 만드는 면(126)이 있다 했는데, 전에 사람은 어떤 것에 경이로움/압도감을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했을때 오래된 것, 거대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 품게 되는 경외/두려움(116)을 꼽은 적이 있어 공감됐다. 다만 생각이 갈리는 부분은 마치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재해와 같은 폭발, 압도적인 위력의 파괴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원자폭탄 투하를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강력한 충격을 남긴 '미적 사건'(241)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자행되어 온 식민지배, 말살 정책의 치밀하고 집요한 파괴와 죽음을 두고도 같은 감상을 가지고 있을까? 오히려 이런 의문에 대해 <아바타>처럼 선과 악으로 구분 지어 도덕적 정답을 향해 질주(94)하게 만든다고 여기지 않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원자폭탄이라는 사건이 '인간을 이전보다 더욱 소외(251)'되게 만드는 인류에게 더 깊은 상처일지,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 저지른 전쟁범죄들이 더 치명적이고 깊은 상처일지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 그렇다면 우리가 창의성이라고 부르는 성질이 사실 인간의 뇌에 담긴 고유한 능력이라기보다는 어떤 목적을 지닌 거대한 힘이 인간을 통로로 삼아 발현되는 특성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창의성은 우리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188" 

예술을 행하는 주체자가 일종의 통로(186)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특히 작가들이 많은 후기로 언급하고 있다. 작품에 몰입하게 되었을 때, 어느 순간 인물들이 작가의 의도나 정해놓은 흐름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현상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작품의 흐름과 결말은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에게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 경험의 순간들이 '통로'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인지, 겸손의 표현일 뿐인지 궁금해졌다. 이 통로의 개념이 연결되어 예술이 가진 예언적인 힘을 이야기할 때 그 안에 내포된 보편적 가치를 통해 시대를 초월해 사회 현상을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꿰뚫어보는 메세지를 전달한다는 것(<지하 생활자의 수기>가 20세기 허무주의를 예견 200)은 동의하지만-그런 것들이 결국 걸작이 되고 고전이 되는 것이고-, 영화 속 출입 금지 구역이 10년도 안되어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해 현실이 되었다거나(201) 한 록밴드의 파멸적 노래 가사가 911테러로 재현되었다(202)는 류의 신탁설로 예언적인 힘을 강조하는 방식은 전체적인 내용까지 의심하게 만들만큼 아쉬웠다. 

책의 내용에 의문을 품으며 읽는 동안 나의 의식을 조종하고 있는 것들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인지 계속해서 물어보게 되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나의 판단일까, 이런 의문이 필요한 영역이 맞을까, 예술이 작가로부터 독립된 고유한 존재(45)라면, 예술은 도덕적 잣대의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어도 통로일 뿐인 예술가는 마땅한 판결을 받아야 하는게 아닌가, 그 과정에서 작품만 남고 통로는 지워져 아무런 기록도 영광도 얻지 못한다면 '진짜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남아있을까도 궁금했다. 왜 도덕적 흠결에 대하여 이렇게 집요하게 의문을 가지게 될까 생각해보니, 사회 전반에서 추구하는 다른 가치를 위해 도덕을 버렸을 때 그 사회와 문화는 천박하게 무너져내렸다. 예술은 '도덕적 가치로 판단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가치를 무시하면 결국 천박해지고 마는 아이러니 앞에서 막혀 방황했던 것 같다. 아쉬움도 품고 있었지만 이 '투박한 흠집이 결국 균열(173)'을 품고 있었으니 괜찮은 도발 아니었나 싶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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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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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기대가 높은 작가의 신간이라 책을 앞두고 야무지게 읽어야지,하는 각오 비슷한 것이 생겨났다. <혼모노>를 읽었을 때 마치 장면이 보이는 듯 해 영상으로 만들어지기 좋은 이야기라는 감상이 먼저 찾아왔었는데, 기담집인 '인비인'에 작가의 그런 장점이 잘 녹아있다면 얼마나 무섭고도 재미있을까 싶었다. '사람의 마음'은, 그래서 참 보는 입장마저 민망하게 하던 속내는 <혼모노>에서 더 진하게 느껴졌다면 '인비인'은 읽고나면 소금으로 입을 헹구고 삼베주머니에 팥과 결명자를 넣어 따뜻하게 데워 눈을 씻어내고픈 생각이 드는 불온함이 컸다. 단순히 기담을 만들어내기 위해 기괴하거나 섬뜩한 소재를 끌어온 것이 아니라 '인비인', 인간 아닌 인간으로 기술의 산물, 영적인 존재 그리고 사람일 수도 있는 시대와 현실을 담아내려 장기간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점이 좋았다. 그래서 오독의 소지를 다소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독자의 몫으로 확장될 감상의 여지를 닫을 수 있는 작가의 말이 매 단편 뒤에 이어지는 것도 그 의도를 충실히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로 보였다. 다만 그것이 답으로 받아들여질지 질문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왜 이 답과 질문에 대한 의식을 하게 되었냐면, 책을 읽다 뭔가 걸리는 듯해 보니 중간을 조금 넘긴 부분에 엽서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뭘까,하고 들여다보니 한면은 사람 형상인데 사람은 아닌 덩어리(34)들이 나뭇가지에 얽힌 그림이었다. 주변엔 온통 벌레 같은 것이 작게 그려져 있는데 요즘 슬슬 러브버그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탓에 엽서에도 그게 반영되었나 싶게 러브버그 떼로 보였다. 엽서의 뒷면에는 '사랑하는 독자님께'로 시작하는 짧은 인사말이 적혀있었는데, 그 중 작가가 어느 독자에게서 전해들었다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말*은 메가박스 상영관 통로에 종종 붙어있는 문구였다. 워낙 인상적이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역시 그 문장을 사진으로 찍어둔 적도 있어 익숙했다. 그 문장을 전해들었다는 말에 '인비인' 단편들 안의 주요 인물 직업을 영화 감독으로 두곤 했는데 영화관을 자주 찾지는 않으신가 싶었다. 어쩌면 씨지비나 롯데시네마를 주로 이용할지도 모르고. 넷플릭스 보는 대신 <혼모노> 읽으면 된다는 말로 큰 반향이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확고한 넷플릭스 이용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요즘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위기에 처한 메가박스중앙의 상황이 궁금해지는 책이 '인비인'이다. 

"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결연했고,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그게 부끄러웠다. 그들의 비슷한 외양이, 깨끗한 두루마기와 수치를 모르는 태도가 견딜 수 없었다. 79"
처음 시작엔 조급하게 왜색이 짙은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을수록 큰 오해였고 문제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작가구나 싶었다. 특히 요즘 사회 전반으로 수치를 모르는 군상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듯해 심란하던 차에 이렇게 대놓고 '예민하고 어렵겠지만 이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하는 면이 좋았다. 너무 내면으로 골몰해 들어가지 않고, 말초적인 관심만 자극하지 않으면서 세상과 교류하고 있다는 균형이 보인다. 장면이 그대로 펼쳐지는 듯한 특유의 감각과 이런 소재, 이런 주제로 틈틈이 써왔다는 기담집을 흡족하게 읽고 나니 그가 우리에게 찾아온 새로운 이야기꾼이 아닐까 싶어졌다. 예전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1999>를 읽고 난 뒤에 느꼈던 강렬한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 감독님, 감독님은 소속이 어디예요? 어리둥절해진다. 소속. 내게 소속이 있던가. 한참 고민하는데 큐가 말을 잇는다. 모르겠죠? 근데 사람들은 매번 물어보잖아요. 소속이 어디냐? 학교는 어디 나왔냐? 직장은 다니냐? 소속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근데 속해보니까 그래요. 찐따들이어도요, 모이면 단단해져요. 그리고 되게 웃긴 게 그 안에 있으면요. 나도 조금 쓸모 있어지는 것 같아요. 186 윤회 (당한) 자들"
이 단편을 쓸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쓸모를 느끼기 위해 서울의 한 지점으로 모여드는 일이 생길 것이란 걸 알았을까. 수치(79)를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이 어딘가에 속해있고, 그 소속이 그들의 무지성에 가까운 비논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조롱과 혐오마저 오락거리로 소비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걸. 하다못해 학생들마저 상대방을 조롱하기 위해 혐오 표현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거리낌없이 사용하던 날에, 저들 스스로가 주변의 어른들마저 아무도 이를 지적하거나 계도하지 않은 채 함께 단단해져 갔다는 현실이 참담하고 차가웠다. '인비인'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지, 모여 있을 곳을, 제 쓸모를 그런데서 증명하는 행위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또다시 어제를 모욕하고 오늘은 기만하며 내일은 훼손하는 게 아닐까. 

의도와 다르게 감상이 뻗어나갔을지 모르지만, 그가 내놓은 문장 안에 현실을 꿰는 시각이 담겨 있어 가능했던 감상일테다. 기담집을 몰입해서 흥미롭게 읽은 것도 있지만 현실도 괴담 같아서 자꾸만 서로 얽혀갔던 것 같다. 또 보고싶겠지, 다음이 기다려지겠지 싶은 작가의 매력과 재미가 넘치는 신간 '인비인'이었다.


 *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때 비로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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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불안 - 나는 왜 사소한 거절에 상처받는가
박한선 지음 / 김영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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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지 의학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이 얼마나 부끄럽고, 서툴고, 어설픈 존재인지, 그러면서도 그걸 얼마나 열심히 포장하며 살아가는지에 관한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61" 

최근 다른 나라들에 비해 특히 한국사회에서 연인 사이에 높은 빈도의 연락을 유지한다는 특징을 꼬집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연인 간 하루에 몇 번이나 연락을 하는지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된 그 문제제기는 처음엔 결과에 놀라게 되고, 다음엔 문화 차이라며 부정하게 되고, 마지막엔 건강한 관계란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인사를 건네고, 점심에 뭘 먹었는지 이야기하고, 퇴근 무렵 사소한 일상을 나누다 잠들기 전 잘자라는 말을 하는 것이 일상적이라 여겨졌었는데, 누군가를 아끼고 애정을 쏟고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연락빈도로, 상대방이 일상을 공유하고 답을 해오는 것에 예민한 통제형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 있음을 알게되자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마침 김영사의 신간 '거절불안'에서 [읽씹이 내 존재에 대한 거부로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란 질문을 통해 읽씹과 관계집착 같은 핵심어가 눈에 들어와 어떻게 하면 건강한 관계를 쌓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었다. 더불어 거절에 상처받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제안과 나 자신을 분리하기, 다른 사람의 제안을 거절할 때 겪게되는 부담과 회피를 마주하여 거절이 관계 끊기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지고 생각을 환기하는 계기로 삼아보고 싶었다. 

인류학과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진화의 관점에서 탐구하는 '진화인류학자'라고 한다. 생소한 분야여서 진화인류학이란 것이 뭘까 생각해보다보니 인류가 경험과 시간을 통해 진화해 온 결과물이 인간의 현재인지, 추구하던 방향에 이르기 위해 진화해 온 과정이 현재인지 궁금해졌다. 마음과 행동 양식을 전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이해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기대되었다. 다행히 '거절불안'은 재밌다. 책머리에 앞서 "전문가들이 보기에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6)"임을 밝혀두는데 반박과 지적 불안에 대한 방어 심리가 나타난 것은 아니신지 생각하고는 웃었다. 사실 잘 모르는 일반 독자 입장에서 봤을때 "복잡한 이론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유머와 비유, 단순화를 적극 사용"한 '거절불안'은 때로는 조금 깊이 들어가나 싶기도 하지만 대체로 웃으면서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교수인데 강의도 이렇게 재미있게 할까 궁금해질만큼 낄낄 웃으며 읽다보니 어느새 책이 후루룩 넘어가 있다. 보통 이렇게 심리를 다루는 책을 읽을 때 종종 내가 이런 유형 아닐까? 의심하고, 맞아! 몇 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 마음은 이랬구나! 마음 읽기를 하는 등 과몰입에 바빠지는데 그럴 틈이 없이 살짝살짝 치고 들어오는 농담이 웃겼다. 생각하기로는 강의도 이렇게 하신다면 졸거나 딴짓하는 학생이 없을 것 같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한 일이겠지. 몸 담고 계신 학교에 들어갔다면 열심히 수업을 들었을텐데 받아주지 않아서 못갔으니 아쉽다. 

어쨌든 과몰입을 할 틈이 없다고 하긴 했지만 '나'에 대해서 집중하는 것이 또 인간의 특성이라 체크리스트 만들 듯이 회피형 기질이 없다곤 말 못해, 분리불안이라고 하는게 연락빈도수와 겹치는 게 아닐까? 그래도 난 저정도는 아닌데, 하고 진단내리기 당연히 해봤다. 변명하자면 연락 집착에 대해 궁금했던 것이 "성인 분리불안장애(102)"와 연결되는 면이 있어서 더 유심히 보고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예상했던 상대방의 일상을 다 파악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런 경우도 있겠구나 싶었다. 
다른 하나 '거절하기'에 대한 어려움이 이 책을 마주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는데, 체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의외였다. " 체면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거절할 때다. 한국인들은 거절을 못 한다고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우리는 거절의 예술가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을 뿐이다. 누군가를 모임에 초대하지 않는 것으로 거절하고, 메시지를 읽고도 답하지 않는 것으로 선을 긋는다. 145" 이 은근한 표현이 통하지 않을 때, 상대방이 기어코 확실한 거절의 말을 들어야만 물러설 것 같을 때 이 거절은 당신을 공격하거나 차단하려는 것이 아니란 신호를 보내기 위해 "거절은 하되 관계는 유지하는 고난도 정서적 줄타기(190)" 위에서 얼마나 노력해야 했는지, 한국인은 그냥 거절이 아니라 소리 내어 해야 하는 거절을 못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테다. 

" 거절불안은 현대 사회의 특이한 현상이나 최근에 발견된 일시적 문제가 아니다. 인간적 본성의 일부다. 인류는 수백만년 동안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받아들여지길 원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거절당할까 봐 항상 두려워하기도 했다. 덕수궁 돌담 앞에서도, 유리 건물 회의실에서도, 새벽 두 시 이불 속에서 단톡방을 확인할 때도, 장소와 시대는 바뀌었지만 떨리는 심장은 같다. 209"
다수와 함께 있는 상황에서 나만이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무시로 인한 민망함과 뭔가 실수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지나고나면 공격 당해 상처 입었다는 분노와 고통이 남는다. 이 경험이 두고두고 우리를 거절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게 하는데, 책 초반에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실험한 극악무도한 과학자 부부의 사이버볼 게임(13)이 나온다. 소외를 경험할 때 우리 뇌의 ACC(전측 대상피질) 신체적 고통에 반응하는 부분에서 이 사회적 고통을 동일하게 처리하는 현상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타이레놀(진통제)을 먹은 사람들이 훨씬 유하게 반응(240)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니, 정신적 고통, 소외감, 외로움, 무력감이 갑자기 밀려올 때 인터넷에 괴롭습니다 쓰지말고, 갑자기 누구 나랑 만날 사람 구하지말고, 먼저 진통제 하나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어졌다. 

" 그러나 여기에 놀라운 역설이 숨어 있기도 하다. 거절불안은 상처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더 깊은 인간으로 만드는 통로다. 거절의 쓰라림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의 외로움을 알아본다. 배제의 아픔을 겪은 사람만이 주변부에 선 이들의 침묵을 들을 수 있다. 인정받지 못한 갈증을 품어본 사람만이 무조건적 사랑이 얼마나 급진적인지 깨닫는다. 만약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완벽하게 받아들여졌다면, 수용이라는 단어조차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373"
인류가 오래도록 새겨온 이 생존 본능이 여러 요인들로 인해 심각해지고 지나친 몰입으로 증상화되는 부작용도 있지만, 저자는 완치해야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함께 가야하는 명암으로 보았다. 내 불안, 내 고통을 해결해주고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해답을 주길 원했다면 이 평화로운 대답에 실망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찾았어요! 해결법 찾았어요!'하고 소리치는 영상에 <거절불안 극복하는 5가지 방법> 제목을 붙여 그럴싸한 몇가지 방법을 내놓는 것보다 더 솔직했다고 느껴졌다. 무엇보다 웃으면서 읽는 과정에서 얻은 재미가 그럴수도 있는거구나,하는 받아들임의 범위를 넓혀준 것이 좋았다. 우리가 겪는 사소하고도 질긴 불안 앞에서 섣불리 이 책을 거절하지 말고 읽어보길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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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그 너머로 - 지구와 태양계, 그리고 블랙홀까지 우주를 가로지르는 아찔하고 흥미로운 지적 모험
닐 디그래스 타이슨.린지 닉스 워커 지음, 김소정 옮김 / 현암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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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험과 탐사가 불러오는 필연적인 결과는 아는 것과 아직 발견 하지 못한 것을 구분하는 미지의 경계가 점점 더 넓어진다는 것이다. 현재 인간은 우주 깊숙한 곳에 머물고 있다. 그 우주를 다채로운 내용물과 완전히 텅 비었다 말할 수 없는 공간이 채우고 있다. 그러나 그 우주 밖에 있는 광활하고 경이로운 미개척지에는 여러 기이함과 함께, 인간이 모의실험 중인 우주에서 살고 있는지, 우리 우주가 무수히 많은 다중 우주 가운데 하나인지 같은 질문에 대답해 줄 지식이 있다. 수수께끼는 계속 늘어가고 이 미개척지에는 경계가 없다. 우주로 가는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279"

 
누군가 나를 붙잡아두고 가르쳐주지는 않지만 영화나 텔레비전의 강연 등을 보면서 접하게 되는 알듯 말듯한 우주의 세계는 언제나 매혹적이었다. 끝이 없이 광활한 공간을 조금씩 개척하고 파악해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 그럼에도 앞으로 더 밝혀내야할 미지가 남아있다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우리는 우리가 내놓은 오답을 수정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 좋았다. '무한 그 너머로'는 어려운 이론은 애초에 포기했지만, 이 매혹에 빠지기를 주저하지 않는 문과들에게 '천체물리'를 떠먹여 주기 위한 입문서임을 밝히고 있다. 마치 날 위해 준비해놓은 상차림 같아 마음에 든다. 문과여도 가능한, 문과의 속도에 맞는 지적 모험이 '무한 그 너머로'에 담겨 있다.
  
책은 재밌다. 읽다보면 술술 다음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과학적인 내용이 줄줄 이어지면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겠지만, 흥미를 일으키고 마음을 움직이는 소재들과 함께 풀어내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정보를 접하게 된다. 사소하게는 열기구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하고(모든 열기구에는 더는 올라가지 못하는 한계 고도가 있다. 44), 어린 시절부터 태양을 노랑과 빨강으로 그렸었는데 사실 흰색이다(110)는 내용에 깜짝 놀라고 만다. 고래들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먼 곳에 있는 친구에게 닿을 수 있는 이유(221)를 읽다보면 음파가 공기 속보다 물속에서 이동할 때 4배 정도 빠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과 친구들이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우주와 과학이야기가 좋았으면 이과를 갔어야하지 않느냐는 의심에 대해 항변하자면, 이 문과 출신 과학좋아 성향의 사람들은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낭만'에 빠져드는 것이다. 태양의 둘레에는 이제 여덟 개 행성이 남았다(111)는 문장에 20세기를 함께 했던 아홉 개 행성 시절이 막을 내렸음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라이카- 우주로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난 이름을 불러보기도 하고, 각국의 언어로 인사말을 담아 미지의 문명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려 한 황금 레코드판(96)의 어색하게 녹음된 목소리를 떠올려보기도 하는 인프피 성향은 차가운 이성만 가득할 것 같은 과학 안에 담긴 쓸쓸함에, 시공간을 이동하는 이론이 품고있는 환상에 매료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한 그 너머로'에서 천왕성과 해왕성은 묶어서 소개되고 명왕성이 따로 한 단락을 차지해 분량 싸움이나마 이긴듯해 위로를 받기도 하고, 목성은 행성으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음을 칭찬해 주어야 한다(178)는 말에 시기질투를 하기도 한다. 책에서 "시간 여행을 계산할 때는 지구의 자전 효과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315" 달인 비법 같은 시간 여행 계산법이 나와서 분위기를 깰 때도 있지만, 시간선을 바꾸는데 결국 실패*하게 되는 예로 소개해준 영화 <타임머신>을 두고 작년에 보았던 영화 <첫 번째 키스>가 떠올리며 안타까웠지, 떠올리는데에 그 즐거움을 둔다. 다세계 해석 가설(364)에서 왜 에에올이 소개되지 않았지 궁금해하기도 하고, 우주와 건포도 머핀(255)의 비유를 보며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마음 속에 품으며 즐기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요즘 미래를 위한 두 키워드를 꼽으라면 AI와 우주가 아닐까 싶은데, 진행중인 26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AI에 대비해 창작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인간선언>으로 다루고 있었고 마침 우주에 관한 새 책 두 권이 눈에 띄여 반가운 마음으로 '무한 그 너머로'부터 읽어보았다. 어렸을 적부터 반짝이는 것들을 좋아했는데,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들도 까마귀 성향의 좋아하는 것들 목록에서 빠질 수 없었다. 지금이야 밤하늘에서 별 몇개 헤아려보기 어렵지만(246) 어린시절 살던 집 옥상에는 넓다란 평상이 있었고 모깃불을 피운 여름밤 그 위에 누워 하늘을 보면 요즘 도심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은 별들이 보였다. 빛나는 별을 바라보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어른이 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우주에 대해 알게 되는 불가해한 이론들이었다. 이런 낭만과 공상의 기대를 품고 우주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은 독자에게 '무한 그 너머로'는 다정한 인도자가 되어주었다. 


*부트스트랩 역설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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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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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떠날 수 없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숨 쉬는 것뿐이다. 숨을 내뱉는다. 지금 내가 뱉어내야 하는 것은 숨만이 아니다. 그 숨을 꼭 쥐고 있으려 하는 '나'라는 자아, 그것을 함께 비워야 한다. 내 안에서 내가 천천히 빠져나갈 때까지.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텅 빈 나는 폐허가 아니다. 모든 것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 '투명한 방'이다. 51" 

이상한 책이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따져보니 진짜 생각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동안 해왔던 생각들은 지금 이렇게 가벼운 것들, 그날 밥은 무엇을 먹을지, 미리 준비해두어야 할 것은 없는지, 어디를 가고 싶다거나, 누가 보고 싶다거나 하는 일상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끔은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나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조금 먼 미래에는 이런 점을 고치고 더 먼 미래에는 어떤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깊지는 않다. 그런데 '나를 균열내기' 속의 생각은 다르다. 저자는 이런 생각들을 평소에도 하면서 살고 있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달랐다. 그동안 내가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던 것들은 대부분 잡생각이고, 뭔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고의 흐름에 붙여야 했구나 싶었다. 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까, 마치 내일 점심은 뭘 먹을까 같은 생각은 좀처럼 해본 적도 없을 것처럼 멋있게. 

'나를 균열내기' 안에서 어떤 사람과는 부엌에서 마주하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누군가와는 옷장을 뒤져 방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하고 프랑수와즈 사강, 함께 외국어를 배우기도 아고타 크리스토프, 집도 나가고 아니 에르노와 에두아르 루이, 같이 늙어가는 처지도 되고 다니엘 페나크, 지금도 좀 더 책의 매력을 잘 살리는 '전략'적 글쓰기를 염두에 두게 되기도 밀란 쿤데라, 연극을 관람하고 장 뤽 라가르스, 사강과 함께 어질렀던 집 안을 둘러보며 정리하기도 하고 조르주 페렉, 내가 왜 그녀 대신 그라고 쓰기를 하고 있는지 설명해주기도 하고 엘렌 식수, 얼마 전 읽었던 바바라 몰리나르의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를 다시 찾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왜 이렇게 늘어놓냐면, 이 중에 당신의 마음을 흔들 주제나 이름이 분명 튀어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이 만남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왜 사강을 사랑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한번은 모어를 두번은 적어(외국어 64)를, 말을 가르치는 곳에서 일을 했던 경험 탓인지 아고타 크리스토프를 통해 들여다 본 언어가 인상적이었다. 당연한 수순처럼 모어는 미성년을 대상으로 했고, 적어 분야는 성인이 대상이었다. 재밌게도 미성년들은 모르는 모어의 단어를 적어를 이용해 물어보는 일이 잦았는데, 물론 모어를 통해 문학적 감각을 배우는 곳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네들에게 있어 내가 규정하는 모어와 적어의 경계나 구분이 매우 흐릿해져 있었다. 프랑스어를 배운지 20년이 넘은 저자가 그럼에도 적어가 자연스럽지 않고, 그 기간만큼 모어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있음을 고백할 때(65) 그 아이들을 떠올렸다. 모어와 적어를 그들이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동시에 쌓아가던 잘 교육받은 아이들은 어느 한 곳에 속한다는 감각을 느낄까? 그 안에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상처없이 확신된 존재의 증거가 될까? 

잘 돌보아지는/교육받은/만들어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다보니 '돌봄'과 내 안의 불씨에 대해 화두를 던졌던 레일라 슬리마니(123)의 질문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 안의 불씨를 확인하기 위한 체크리스트 132]의 질문들을 들여다보면 생각에도 말문이 막히는 순간들이 온다. 내가 외면한 것들, 미적지근한 삶의 온도는 타인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이만하면 됐다'는 태업을 미필적 고의로 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고개를 돌렸던 자리에는 양심이 죄책감과 뒤엉켜 부채를 쌓아두고 있었다. 더불어 언제나 어려운 이해보다 쉬운 비난이 가깝도록, 사건의 한 면만을 보는 일에 익숙해진 시선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는 점이 불편하게 다가오는만큼 매혹적으로 느껴져 <달콤한 노래>에 대한 궁금함이 커졌다. 

<달콤한 노래> 안의 루이즈가 품은 두려움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일원이 아니라 언제든 같아 끼울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하다는 사실(125)"이다. 마치 무대 위에 오른 배우가 "마지막 대사를 내뱉고 나면, 온 마음을 다해 연기한 인물이, 그의 세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 두려워 도망치고 싶(136)"어지는 것처럼, 루이즈도 자신이 이 가정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이 교체/삭제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단적으로 방어한다. 이은경의 <어른이 되는 법>에 "어른다운 관계 형성은 상대방이 너무 멀어지면 버림받을까 봐 두렵고 상대방이 너무 가까워지면 빠져들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어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관계에 헌신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언뜻 보기에는 이런 두려움이 상대방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사실 이런 두려움은 망상이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것은 이미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우리를 자극한다." 는 내용이 있다. 루이즈가 품은 두려움 중에는 극복되지 못한 상처도 섞여있었으리라. 

" 막을 쓰고, 나를 접어두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 나에 대한 평가, 물론 그런 것들도 두렵지만 내가 진짜 두려운 건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얼마큼 울퉁불퉁하고 모난 사람인지 스스로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모르는 것만을 두려워한다. 6" 

저자에게 있어 생각은 스스로를 균열내는 자극의 과정이었다. 이 균열은 낡은 의식을 벗어내 새 의식의 몸으로 다시 성장하는 탈피와 같다. 타인의 내면에서 퍼올린 조각들이 단단히 다져진 것을 보고 자신을 돌이켜보니 그동안 성숙된 사고를 위해 내면을 닦기는 커녕 몸의 살을 찌우려는 생각 밖에 하지 않았던 셈이라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에서 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 길을 좇다보니 거기엔 먼저 자신이 있었다. 나를 알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익숙하지 못해 어색한 시작에 따라해보기라도 하고 싶어서 저자는 그동안 스스로와 어떤 식으로 마주했을까 궁금해졌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만나는 과정이 자신을 마주하기 위한 것과 다르지 않았겠구나 싶었다. 깊게 생각하는 것이란 무엇인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따라해보고 싶은 나를 균열내는, 균열내보자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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