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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친구와 나란히 누운 어느 날 밤, 때때로 혼자일때 떠올리는 바보같은 생각 같은 걸 두서없이 이야기하다 누가 먼저 갈지는 모르지만 먼저 죽은 사람 유품 중에 남들 모르게 처분해야할 것이 있느냔 질문이 나왔다. 외장하드는 너도 열어볼 생각하지 말고 불태워 줘. 일기장 태워, 아니 그냥 둬도 돼. 지인 중에 누구는 부르지도 마. 누구 알렸는데도 안오면 어떡할까, 계좌라도 보낼까. 하는 대화가 가장 최근의 '죽은 다음'에 대한 논의였다. 책에서 강조했듯이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앞선 실없는 대화에서 느껴지듯이 그것이 나에게 오리라고는 크게 생각치 않고 살아간다. 그래서 '죽은 다음'을 읽기로 마음 먹는 것은 약간의 고민이 필요했다. 이 내용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 혹은 겁먹지 않을 수 있을까? 소설 같은 이야기 속의 죽음이 아닌 현실 속의 죽음과 장례를 다루고 있는 내용이라는 점이 막연한 두려움을 주었다. 터부시 되는 행동을 한 것 마냥 어색히 책 표지를 바라보다 띠지에 적힌 소개글(죽음과 장례에 관한 혁신적이고 탁월한 시선이 벼려낸 사유와 기록 -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에 홀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읽기 시작했다.
'죽은 다음'은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훑어가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느낀 것은 건강검진 센터에서 주는 표를 따라 시력, 채혈, 내시경 같이 정해진 과정을 하나씩 통과해나가는 과정을 떠올리게 했다. 상황과 감정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보면 그 둘은 내가 모르는 절차를 전문가들의 지시에 따라 이리저리 퀘스트를 깨듯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닮아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떠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책을 읽고 나니 생각이 비워지고 멍해졌다. 수면내시경을 마지막으로 검진을 끝내고 난 뒤와 비슷한 느낌, 경험이 부족하고 미숙하여 알지 못했던 장례 문화와 절차를 단기간에 속성으로 단단히 채워 넣어 벼락치기로 쪽지시험을 준비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죽음과 그 이후의 정리 과정을 담은 휴먼드라마 같은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읽고보니 장례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은 생활 정보라 해얄지, 기사를 쓰기 위해 직접 몸을 던지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모 기자의 '체헐리즘'이 떠오르는 현실감 넘치는 취재 내용을 만나게 되었다. 보내는 것과 정리하는 것, 장례의 현실과 실전을 담아 새로웠다.
어찌보면 의미보다 절차가 더 강조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책은 그런 뒤바뀜이 반드시 본질의 훼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충분히 짚어준다. " 소비자가 된 사별자가 그 순간에 해야 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울음과 회한 가득한 장례식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사별자가 해야 하는 일이 상품 선택과 문상객 맞이뿐이라는 것도 쉽게 수긍되진 않는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생산품(노동)에서만 소외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애에서 소외되고 있다. 나는 내 죽음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았다. p233" 장례식장에서 슬픔에 빠진 상주를 매번 판단의 순간으로 불러내고, 수많은 빈객들을 맞아야만 하는 상황들은 '우아하지 못할지도(81)' 모르지만 감정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누군가를 깨우고 환기시키는 장치가 되어줄 수는 있겠다.
전에 여성이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르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는 이런 문제에서까지 남녀를 엮어내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자주 겪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남성' 중심의 문화가 장례에 존재하고 있었다. 내 가족의 장례에 여성이란 이유로 책임과 결정의 권한에서 매번 밀려난다는 생생한 경험담을 읽으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상을 치르는 와중에 낯설고 경황없이 절차를 잘 모르니 원래 이런 것인가보다 하고 넘긴 것들이 고정관념(가부장제-정상가족 규범이 지배하는 사회 p289)의 틀에서 의심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책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한두장 넘어갈만 하면 여성이 장례와 관련된 직종에서 일을 하며 겪는 고충과 여성이 상을 당해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겪을 어려움이 나온다. " 여자 장례지도사를 찾기도 어렵고, 여자 장례지도사가 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여자가 무슨"이라는 말부터 들었다.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만류했다. 68", " 여성이 상주를 획득하는 과정도 경합이지만, 이후 장례식장에서 '상주의 자리'를 올곧이 지키는 것은 투쟁에 가까운 일이다. 장례식장에서 여성 상주를 맡은 이들의 경험을 분석한 오지민은 이들이 "순수한 상주"로 인정받지 못한 경험을 따라간다. 207 " 그래도 요즘은 전보다는 인식이 나아졌다, 달라지고 있다는 말이 붙지만 관례라는 형식 아래 뿌리박힌 차별과 허례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 당신의 장례는 어떠하길 바라나요? 언제가 됐든 장례인들과의 대화는 이 질문으로 맺었다. 인생의 마지막에 품는 기대와 바람, 그건 장래 희망을 묻는 일과 비슷했다. 바라는 대로 이뤄질지는 모르는 일. 돌아보면 좀 허망한 그런 희망. 타인의 '장례 희망'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따스하면서도 바스락거렸다. 277" '장례 희망'이란 말을 책을 읽으며 처음 봤지만 금방 원래 알던 표현처럼 익숙하게 이해되었다. 살면서 미래를 꿈꾸고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 미래에 반드시 포함된 죽음도 계획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장래 희망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많은 것처럼, 장례 역시 망자가 품은 희망이 산 사람들의 몫으로 매듭지어지면서 뜻대로만은 되지 않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장례 희망이란 표현이 잘 들어맞는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더니, 지금에 와서야 자신이 보인다. 내가 언젠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덮어두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아직도 굳이 덮어둔 것을 펼쳐보고 싶지 않은 기분이지만 '유한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인지하고 나면, 오늘이 아닌 내일을 생각하느라 하지 못한 일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느라 지금껏 하지 못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195)'는 말처럼 어떤 죽음이 될 것인가를 통해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