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어느 30대 캥거루족의 가족과 나 사이 길 찾기
구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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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볼 때 요즘 화두가 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내용일거라 생각했는데 그 안에 담긴 것은 그저 사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가끔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거지 싶기도 하고, 불분명함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친구들과 마라탕 그릇을 앞에 두고 약속하는 나중이 마흔 정도인 것을 보면 이 불분명함은 서른이란 나이에서 기인한 것도 같다.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는 아쉬움이 남았다. 기대했던 바와 달라서였을까 끌어당기는 이야기의 힘이 약해서 였을까 단숨에 금방 읽었지만 한 세계에 빠져들어가지는 못했다. 

 이상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아파트 쓰레기장, 재활용수거함에 관한 것이었다. 채워진 분리함을 정리해두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쌓여 넘치는 쓰레기들을 보면 살아간다는 것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종이컵, 비닐봉투, 포장, 물티슈 같은 것들이 지금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데 나로써 살아가는 것의 가치가 내가 만들어내는 쓰레기와 플라스틱만큼의 손해보다도 못하면 어떡하지 싶다. 내가 이렇게 땅을 파는 동안 지구의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소비하고 버리며 다함께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버렸겠다. 넓게 보면 인간도 지구에서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뉴스에서 '캥거루족'이란 단어가 점점 더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다 큰 성인이 독립하지 않고 지내는 곳은 없다며 이는 부모 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미성숙한 행태라 지적하고, 어떤 사람들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미혼 자녀가 독립하는 문화가 있었느냐며 안그래도 살기 힘든 젊은 세대를 가스라이팅 해 방값 받아내려는 기성세대의 프레임 씌우기라 했다. 각자의 삶이 있으니 누구의 말이 옳다고 할 수 없는 문제인데, 개인적으로는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독립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는 편이다. 

 캥거루족이란 말이 자주 들리기 전에는 빈둥지증후군이란 말이 있었다. 가끔 부모님 집에 갔다가 두 분만 남은 집을 새삼스럽게 볼 때가 있다. 네 개의 방이 부족할 때가 있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던 오래된 집에 지금은 단 두 사람만이 남았다. 두 사람의 생활은 어떨까. 30대의 독립을 말하는 책에서 노년의 독립이 오히려 궁금해졌다. 아쉬움으로 남았던 분명하지 않음이 어쩌면 더 넓은 확장으로 닿았을지도 모른다. 분량도 많지 않고 보기 쉬운 만화로 그려져있으니 독립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읽어보기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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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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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와 나란히 누운 어느 날 밤, 때때로 혼자일때 떠올리는 바보같은 생각 같은 걸 두서없이 이야기하다 누가 먼저 갈지는 모르지만 먼저 죽은 사람 유품 중에 남들 모르게 처분해야할 것이 있느냔 질문이 나왔다. 외장하드는 너도 열어볼 생각하지 말고 불태워 줘. 일기장 태워, 아니 그냥 둬도 돼. 지인 중에 누구는 부르지도 마. 누구 알렸는데도 안오면 어떡할까, 계좌라도 보낼까. 하는 대화가 가장 최근의 '죽은 다음'에 대한 논의였다. 책에서 강조했듯이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앞선 실없는 대화에서 느껴지듯이 그것이 나에게 오리라고는 크게 생각치 않고 살아간다. 그래서 '죽은 다음'을 읽기로 마음 먹는 것은 약간의 고민이 필요했다. 이 내용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 혹은 겁먹지 않을 수 있을까? 소설 같은 이야기 속의 죽음이 아닌 현실 속의 죽음과 장례를 다루고 있는 내용이라는 점이 막연한 두려움을 주었다. 터부시 되는 행동을 한 것 마냥 어색히 책 표지를 바라보다 띠지에 적힌 소개글(죽음과 장례에 관한 혁신적이고 탁월한 시선이 벼려낸 사유와 기록 -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에 홀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읽기 시작했다.

 '죽은 다음'은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훑어가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느낀 것은 건강검진 센터에서 주는 표를 따라 시력, 채혈, 내시경 같이 정해진 과정을 하나씩 통과해나가는 과정을 떠올리게 했다. 상황과 감정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보면 그 둘은 내가 모르는 절차를 전문가들의 지시에 따라 이리저리 퀘스트를 깨듯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닮아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떠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책을 읽고 나니 생각이 비워지고 멍해졌다. 수면내시경을 마지막으로 검진을 끝내고 난 뒤와 비슷한 느낌, 경험이 부족하고 미숙하여 알지 못했던 장례 문화와 절차를 단기간에 속성으로 단단히 채워 넣어 벼락치기로 쪽지시험을 준비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죽음과 그 이후의 정리 과정을 담은 휴먼드라마 같은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읽고보니 장례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은 생활 정보라 해얄지, 기사를 쓰기 위해 직접 몸을 던지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모 기자의 '체헐리즘'이 떠오르는 현실감 넘치는 취재 내용을 만나게 되었다. 보내는 것과 정리하는 것, 장례의 현실과 실전을 담아 새로웠다. 

 어찌보면 의미보다 절차가 더 강조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책은 그런 뒤바뀜이 반드시 본질의 훼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충분히 짚어준다. " 소비자가 된 사별자가 그 순간에 해야 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울음과 회한 가득한 장례식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사별자가 해야 하는 일이 상품 선택과 문상객 맞이뿐이라는 것도 쉽게 수긍되진 않는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생산품(노동)에서만 소외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애에서 소외되고 있다. 나는 내 죽음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았다. p233" 장례식장에서 슬픔에 빠진 상주를 매번 판단의 순간으로 불러내고, 수많은 빈객들을 맞아야만 하는 상황들은 '우아하지 못할지도(81)' 모르지만 감정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누군가를 깨우고 환기시키는 장치가 되어줄 수는 있겠다. 

 전에 여성이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르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는 이런 문제에서까지 남녀를 엮어내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자주 겪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남성' 중심의 문화가 장례에 존재하고 있었다. 내 가족의 장례에 여성이란 이유로 책임과 결정의 권한에서 매번 밀려난다는 생생한 경험담을 읽으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상을 치르는 와중에 낯설고 경황없이 절차를 잘 모르니 원래 이런 것인가보다 하고 넘긴 것들이 고정관념(가부장제-정상가족 규범이 지배하는 사회 p289)의 틀에서 의심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책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한두장 넘어갈만 하면 여성이 장례와 관련된 직종에서 일을 하며 겪는 고충과 여성이 상을 당해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겪을 어려움이 나온다. " 여자 장례지도사를 찾기도 어렵고, 여자 장례지도사가 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여자가 무슨"이라는 말부터 들었다.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만류했다. 68", " 여성이 상주를 획득하는 과정도 경합이지만, 이후 장례식장에서 '상주의 자리'를 올곧이 지키는 것은 투쟁에 가까운 일이다. 장례식장에서 여성 상주를 맡은 이들의 경험을 분석한 오지민은 이들이 "순수한 상주"로 인정받지 못한 경험을 따라간다. 207 " 그래도 요즘은 전보다는 인식이 나아졌다, 달라지고 있다는 말이 붙지만 관례라는 형식 아래 뿌리박힌 차별과 허례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 당신의 장례는 어떠하길 바라나요? 언제가 됐든 장례인들과의 대화는 이 질문으로 맺었다. 인생의 마지막에 품는 기대와 바람, 그건 장래 희망을 묻는 일과 비슷했다. 바라는 대로 이뤄질지는 모르는 일. 돌아보면 좀 허망한 그런 희망. 타인의 '장례 희망'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따스하면서도 바스락거렸다. 277" '장례 희망'이란 말을 책을 읽으며 처음 봤지만 금방 원래 알던 표현처럼 익숙하게 이해되었다. 살면서 미래를 꿈꾸고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 미래에 반드시 포함된 죽음도 계획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장래 희망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많은 것처럼, 장례 역시 망자가 품은 희망이 산 사람들의 몫으로 매듭지어지면서 뜻대로만은 되지 않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장례 희망이란 표현이 잘 들어맞는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더니, 지금에 와서야 자신이 보인다. 내가 언젠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덮어두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아직도 굳이 덮어둔 것을 펼쳐보고 싶지 않은 기분이지만 '유한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인지하고 나면, 오늘이 아닌 내일을 생각하느라 하지 못한 일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느라 지금껏 하지 못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195)'는 말처럼 어떤 죽음이 될 것인가를 통해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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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 건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외 기획, 이은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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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한 일에 대해 욕 먹어도 좋다 이거예요. 대신에 왜 그랬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싶어요. 전체 과정을 듣고 나서도 과연 우리 욕을 할까 싶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피해에만 집중해요. 우리가 서울 올라가서 길 막고 데모하면 욕해요. 노조 놈들 때문에 맨날 도로가 막힌다고요. 왜 그러는지, 이유가 뭔지 하는 고민이 없는거죠. p39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직장 앞 도로는 곧잘 시위하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지곤 했다.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깃발과 확성기 소리, 피켓들이 줄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침묵했다. 나란히 앉아 사람들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그 소란함과 번잡함을 비난하고 불평하는 동료들에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우리가 누리는 노동자의 권리들이 저 물결에서 퍼져나왔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저 길 위에서 같지 걷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과 우리가 다를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한 마디로 어색해질 공기가 싫어 피했다. 왜 모든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함께해야 하는지 설명할 밑천도 없었으니까. 그 '왜'를 읽고 싶었다. 

 아무래도 철근 건설업에 종사하는 이도연님의 이야기(48)가 가장 궁금했다. 가끔 집 앞 건설 현장 근처에서 작업복을 입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본 적 있다. 사실 일이 힘들긴해도 기술을 가지고 하는 일이라 소득이 꽤 높다는 얘길 주워들은 적 있어 어떻게 일을 시작했을까 내심 궁금했었다. 막상 이도연님의 사연을 보니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그 힘든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던 데다, 현장은 생각했던 대로 여자라는 이유로 겪어야하는 불필요한 어려움이 있었다. 더욱 함부로 대할 뿐만 아니라 남성 노동자의 급여가 인상될 때도 여성 노동자의 급여는 변동이 없다니 같은 울타리 안에서도 차별이 이렇게 선명한 것이 씁쓸했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인력이 외국인 노동자들로 대체 되는 현실이 아쉽게 느껴지겠지만, 대체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불이익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더 컸다. 더 긴 노동시간을 더 적은 임금으로 채워야했고 동료들 사이의 괴롭힘이나 임금 체불 문제 등 권리를 갖기는 커녕 제대로 보호받지도 못하고 미등록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는 현실(230)이다. 사실 이런 현실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당장 뉴스 기사만 훑어봐도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는 매우 잦다. 건설현장에 불법체류 노동자를 고용한 하청업체 간부가 징역형 집행 유예를 받기도 하고,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유족급여 승인 산재사망 지난해 827명으로 '건설업·추락'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근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도 크레인이 기우는 등 큰사건도 목격한 적이 있다. 알고 있지만 타인의 일이라고 덮어두었던 문제들을 직면하도록 만들어주는 시간이었다. 

 살고 있는 집 근처는 십년이 넘도록 한순간도 끊이지 않고 매번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항상 공사장 근처에서 사는 기분인데, 실제로도 그렇고, 솔직하자면 늘 불편하다. 가끔은 큰 소음이 들려오기도 하고, 인도를 파헤쳐 도로로 길을 다니거나, 각종 먼지가 빈번히 날리고, 건설 노동자들의 출퇴근 점심 시간이면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이 길에 많아 괴로웠다. 실제로 어떤 기간엔 노동운동을 하는 듯 멀리서 몇시간이고 민중가요 소리와 연설이 들려오기도 여러날이었다. 높게 철벽을 두르고 매일 뭔가를 부수고 짓고 있는 현장을 언제 끝나나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를 통해 그 안을 들여다 본 기분이다. 어느 브랜드의 몇층짜리 새 아파트가 생겼다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안에서 일하고 싸우며 살아가고 있었구나,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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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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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질문을 받거나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것인가 아닌가. 거창하지 않아도 학생일 때는 시험 한 달 전으로 돌아가면 시험 준비 열심히 했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질문을 받게 되면 돌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만약 돌아간다면 지금 현재의 나는 어떻게 되는지 먼저 궁금해진다. 현재의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현재의 시간은 다시 같은 시점이 될 때까지 멈추는 것일까? 함께 필름이 되감기는 것처럼 다시 돌아가게 되나? 아니면 나이지만 내가 아닌 내가 계속해서 살아가게 되는 걸까?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산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꿈'은 그런 질문들을 품고 있던 독자에게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데, 오래 걸리는 책이었다. 책을 한번에 읽어나가지 않으면 흐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읽다 멈춘 시점에서 다시 시작이 아닌 처음에서 끝까지로 되돌아가야 시간들 속에서 연속되는 길을 찾게 된다. 책 안에는 시간에 대한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각각의 이야기이지만 모두가 한가지를 말하고 있다. 몇가지 이야기들은 재밌고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어렵다. 4월 26일의 '지구의 중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시간이 더디 흘러간다는 사실(37)'과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171)'는 반대로 되어 있어 처음에 잘못 이해했나 싶어 몇번을 다시 읽었다. 6월 2일(99)의 이야기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간다'가 떠올랐다. 문득 책 안의 날짜들을 보다가 실제로 일치하는 시간들일까 궁금해 달력을 찾아보니 맞았다. 시간의 어딘가에 이 날들이 멈춰있을 것만 같다. 

인상적인 내용들이 많았지만 " 사람들이 영원히 산다고 생각해 보자. 이상하게도 도시마다 사람들은 두 가지 종족으로 갈라진다. 나중족과 지금족이다. 중략 나중족은 어느 가게에서든 어느 길거리에서든 알아볼 수 있다. 헐렁한 옷차림으로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다. p111" 목이 늘어난 오래된 반팔을 입고 이 문장을 읽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최근 알게 된 사람 중에 정말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지금족이라 할 수 있겠다. 생각과 행동 사이에 거의 공백이 없게 살아가는 모습을 정말 아주 조금,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경탄하는 한 편 나중족인 나에게는 상대방에게 전부를 보여주어도 내가 받은 흥미와 인상을 대갚아줄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저 이런 책을 읽고 있었는데 당신 생각이 났다,고 할 수 밖에. 이 책을 추천해줘야지. 

시간에 대한 이론에 흥미가 있는 인문계열 성향의 독자라면 굉장히 매력적으로 읽을만하다. 공식을 상상으로 풀어준 것 같고, 글을 그림으로 그려준 것 같다. 수학과 음악을 잇는 피타고라스의 음계처럼 '아인슈타인의 꿈'에도 과학과 문학 사이의 놀라운 변환이 담겨있다. 다시 돌아가 나는 왜 시간을 이해하고 싶을까 생각해본다. 무상과 공 사이에서 의미를 찾아보고 싶었다. 길게 늘어진 시간들의 끈에서 틀림없이 존재하는 순간을 느껴보고 싶었다. 2025년 4월 28일 저녁 책 한 권과 한 사람이 순간에 머물러 있다. 이 순간은 곧 '아인슈타인의 꿈'을 읽을, 읽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시간에 2025년 4월 28일의 저녁 한 순간으로 고정된다. 이 순간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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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 - 2500년을 초월하는 논어 속 빛나는 가르침
김준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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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책이다. '공자가 AI시대를 산다면' AI랑 토론을 벌였겠지 싶은 생각이 먼저 드는 제목이다. 각각 인 의 예 지를 뜻하는 사람, 올바름, 관계, 배움이라는 네 가지 주제와 저자가 별도로 엮은 '그리고 삶'이라는 다섯번째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초반 '인'의 내용에서 AI시대에 대해 얼마나 몰입하여 다뤘는지 어딘가에는 공자를 지*리 그림체로 그려달라는 내용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삶 전반의 내용을 넓게 담아 균형을 잡았다. 

 책의 첫인상은 시대에 맞는 내용을 담고 있을까 이 둘이 잘 융합될 수 있는 주제일까 염려가 앞섰는데, 그럼에도 내용이 궁금했던 까닭은 예전에 공자와 현대사회에 대한 수업을 통해 고전의 필요성을 느끼고 고전만이 줄 수 있는 깊이와 이해를 오래도록 기억해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더 많은 시간이 지나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현시대에 접목된 공자를 다시 만난다면 이번엔 어떤 기억을 남기게 될지 기대되었다. 

 '인'의 시작은 최근 생각했던 '미래'에 대한 주제와 엮여있었는데, 왜 미래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디스토피아인가, 왜 대부분의 작품들이 인공지능과 로봇, 기후위기로 인한 인류의 위기를 미래로 다루고 있을까 사람과 기계 장치, 안드로이드, 사이보그의 구분은 무엇으로 해야할까 같은 질문들을 떠올린 후여서 첫 시작부터 이를 공자의 '인' 사람다움과 접목시킨 관점이 흥미로웠다. 

 '의'의 내용은 '멀리 내다보기(102)'나 '착한 거짓말은 없다(116)'같은 근본적인 마음가짐과 태도를 연결한 내용을 기대했는데, 주로 순수학문을 하는 학자들의 연구와 논문 상황을 중점적으로 다룬 점은 아쉬웠다. 그보다는 현대 사회에서 교육의 부재, 붕괴 현상과 더불어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다뤄주었으면 더 좋았겠다. 

 '예' 단락으로 넘어가면서는 좀 더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초반에는 AI시대와 접목한 내용이 많았는데 부모님과의 일화(167,171) 등 좀 더 보편적인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오히려 딥페이크(130)와 함께 소개한 내용은 다소 낙관적인 마무리가 아쉬웠는데, 개인적 경험을 담은 부분들은 더욱 마음에 와닿는 면이 많아 가장 마음에 드는 내용이었다. 

 '지'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꼽혔나 살펴보았는데, "'위정' 편의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가 가장 먼저 나와서 반가웠다. 챗GPT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잠깐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는데, 사람이 메타인지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챗GPT에게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정직한 것이 진정한 앎이고 답이 된다는 것을 학습시켜 거짓 대답을 방지하는 것과 연결지었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 

 마지막 단락인 '그리고 삶'에서는 다양한 주제가 나오는데 술과 남을 평가하는 것, 잘못된 정보에 대한 자세, 직장 생활 등 살아오면서 경험으로 정말 다루고 싶었던 내용을 채워넣었음이 엿보였다. 그 전까지는 기본기를 다뤘다면 여기선 실전을 준비한 느낌이다. 읽다보니 75가지나 되는 논어 구절을 언제 다 읽었나모르게 지났다. 고전을 지루하게 여기지 않도록 AI라는 소재를 끌어와 논어와 접목시킨 시도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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