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 건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외 기획, 이은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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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한 일에 대해 욕 먹어도 좋다 이거예요. 대신에 왜 그랬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싶어요. 전체 과정을 듣고 나서도 과연 우리 욕을 할까 싶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피해에만 집중해요. 우리가 서울 올라가서 길 막고 데모하면 욕해요. 노조 놈들 때문에 맨날 도로가 막힌다고요. 왜 그러는지, 이유가 뭔지 하는 고민이 없는거죠. p39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직장 앞 도로는 곧잘 시위하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지곤 했다.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깃발과 확성기 소리, 피켓들이 줄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침묵했다. 나란히 앉아 사람들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그 소란함과 번잡함을 비난하고 불평하는 동료들에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우리가 누리는 노동자의 권리들이 저 물결에서 퍼져나왔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저 길 위에서 같지 걷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과 우리가 다를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한 마디로 어색해질 공기가 싫어 피했다. 왜 모든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함께해야 하는지 설명할 밑천도 없었으니까. 그 '왜'를 읽고 싶었다. 

 아무래도 철근 건설업에 종사하는 이도연님의 이야기(48)가 가장 궁금했다. 가끔 집 앞 건설 현장 근처에서 작업복을 입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본 적 있다. 사실 일이 힘들긴해도 기술을 가지고 하는 일이라 소득이 꽤 높다는 얘길 주워들은 적 있어 어떻게 일을 시작했을까 내심 궁금했었다. 막상 이도연님의 사연을 보니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그 힘든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던 데다, 현장은 생각했던 대로 여자라는 이유로 겪어야하는 불필요한 어려움이 있었다. 더욱 함부로 대할 뿐만 아니라 남성 노동자의 급여가 인상될 때도 여성 노동자의 급여는 변동이 없다니 같은 울타리 안에서도 차별이 이렇게 선명한 것이 씁쓸했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인력이 외국인 노동자들로 대체 되는 현실이 아쉽게 느껴지겠지만, 대체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불이익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더 컸다. 더 긴 노동시간을 더 적은 임금으로 채워야했고 동료들 사이의 괴롭힘이나 임금 체불 문제 등 권리를 갖기는 커녕 제대로 보호받지도 못하고 미등록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는 현실(230)이다. 사실 이런 현실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당장 뉴스 기사만 훑어봐도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는 매우 잦다. 건설현장에 불법체류 노동자를 고용한 하청업체 간부가 징역형 집행 유예를 받기도 하고,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유족급여 승인 산재사망 지난해 827명으로 '건설업·추락'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근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도 크레인이 기우는 등 큰사건도 목격한 적이 있다. 알고 있지만 타인의 일이라고 덮어두었던 문제들을 직면하도록 만들어주는 시간이었다. 

 살고 있는 집 근처는 십년이 넘도록 한순간도 끊이지 않고 매번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항상 공사장 근처에서 사는 기분인데, 실제로도 그렇고, 솔직하자면 늘 불편하다. 가끔은 큰 소음이 들려오기도 하고, 인도를 파헤쳐 도로로 길을 다니거나, 각종 먼지가 빈번히 날리고, 건설 노동자들의 출퇴근 점심 시간이면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이 길에 많아 괴로웠다. 실제로 어떤 기간엔 노동운동을 하는 듯 멀리서 몇시간이고 민중가요 소리와 연설이 들려오기도 여러날이었다. 높게 철벽을 두르고 매일 뭔가를 부수고 짓고 있는 현장을 언제 끝나나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를 통해 그 안을 들여다 본 기분이다. 어느 브랜드의 몇층짜리 새 아파트가 생겼다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안에서 일하고 싸우며 살아가고 있었구나,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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