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처음 읽으면서 든 생각은, '협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 것일까. 였다. 책에서 만나게 되는 가장 첫번째 사례는 이미 이륙 준비에
들어간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노력한 학생의 이야기다. 닫힌 탑승게이트 앞에서 실랑이하다 창 너머로 보이는 조종석의 기장 근처로 가서 그들을
간절히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예외적으로 비행기의 엔진 소리가 잦아들고 기장의 탑승 허가가 떨어져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이륙 준비중인 비행기를 세웠다고 하니, 엄청 대단해보이는데 사실 이런 일들은 일상에서 종종 경험해볼 수 있는 유형이다. 버스
정류장을 벗어나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따라가 문을 두드려 탄 경험이 있다면 느낌이 올 것이다. 이 부분에서 '협상'의 범위가 모호하게
느껴졌다. 이 첫 예에서부터 이는 협상이라기 보다는 상대방의 인정에 호소한 일방적인 부탁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 학생이 도착지에 내려서 기장을
만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우린 좋은 협상을 했습니다. 라고 하면 그것이 적합한 표현이 될까? 예시의 범위를 넓게 잡은 것은 아닌지 아쉬운
시작이었다.
이 책에서는 협상을 위한 열두 가지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1 목표에 집중하라, 2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라, 3 감정에 신경
써라, 4 모든 상황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라, 5 점진적으로 접근하라, 6 가치가 다른 대상을 고려하라, 7 상대방이 따르는 표준을
활용하라, 8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마라, 9 의사소통에 만전을 기하라, 10 숨겨진 걸림돌을 찾아라, 11 차이를 인정하라, 12 협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라. 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그것이다. 이 열두 가지의 전략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내용이고 특히, 첫번째 목표에
집중하라는 부분에서 언급한 회의 준비 내용은 크게 공감되었다. 한 안건을 가지고 회의에 참여하는 공동체 인원들이 서로 목표를 달리 해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때 회의는 장거리가 되는데, 회의에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는 커녕 서로의 이견을 가다듬는 일에만 진을 빼는 상황이 생긴다.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일이라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보통의 내용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미리 준비하여 대비하라는 위주의 조언을 한다. 감정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강조하는 한 편, 때로 인정에 호소해서 해결되는 일들의 예를 뒤엎고, 타인에 대한 인정없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는 예도 있었다.
"한 학생이 밤 11시 5분 전에 맥도날드에 가서 감자튀김을 샀다. 그는 감자튀김이 눅눅한 것을 보고 새걸로 바꾸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점원은
5분 뒤면 문을 닫는다며 거절했다. 학생은 말없이 카운터 한 쪽 끝에 있는 광고지를 들고 다시 점원 앞에 섰다. 유인물에는 언제나 신선한 제품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기 맥도날드 맞죠?" 점원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광고지에 언제나 신선함을 보장한다고 적혀
있네요. 문 닫기 5분 전에는 신선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없는데요?" 결국 학생은 새 감자튀김을 먹을 수 있었다. -p.92 제 4강
표준과 프레이밍에 대하여" 의 내용을 보며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고 호소하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상대의 감정과 상황은 철저히 배제하라는 내용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사례들은 책에서 강조하는 협상법이 아닌 제목 그대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법에 가깝다.
10강에 이르면 사회적 분위기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도,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의 마음을 어지럽힐 만한 취업준비 사례들이 나온다. "나는
면접에서 까다로운 면접관을 만났다고 불평하는 학생들에게 "면접 볼 때가 그나마 그 사람이 제일 친절한 것"이라는 일침을 놓는다"는 내용이나,
"나는 해마다 수백 개의 이력서를 받아본다. 그러나 우리 회사에 대해 제대로 조사한 흔적이 보이는 이력서는 드물다.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보지 않은 탓이다."는 내용들은 약간은 꼰대스럽다. 게다가 14강의 원하는 서비스를 얻는 법으로 가면, 서비스업을 조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읽기 곤혹스러운 진상 사례들도 마치 '협상'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은 것으로 끼워냈다. 흥미로운 내용이긴 하지만 호감가는 내용은
아니었다. 자신이 너무나 손해만 보고 사는 것 같다면, 그 예로 제대로 된 컴플레인을 못해서 잘못나온 메뉴을 억지로 먹어 후회된 적 있다면,
불량품을 사놓고 교환, 환불을 하는 일이 망설여져 그냥 방치해둔 적 있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