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현남 오빠에게'를 받은 택배 포장을 풀면서 속으로 '드디어 이 불온서적이 내 손에 들어왔구나'하고 생각했다. 이 시대에 이를테면, 불온서적이란 것을 정한다면 페미니즘의 필터에 걸리는 책들이지 않을까. 워낙 입장이 분명히 갈리는 쟁점이기 때문에, 집에서도 다른 책들 사이에 '현남 오빠에게'를 밀어넣어뒀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궁금했던만큼 이 책이 가지는 의미가 싫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대지 않고서 밖으로 표출되기 어려운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가깝더라도-가족이더라도- 평소의 생각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더욱이 가까울수록 더 알고싶지 않고, 들키고 싶지 않은 다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이어지는 단편들은 고통스럽게 읽었다. '불편'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사소한 일에 예민하게 구는 일부 여성들을 희화화하고 비꼬며 대표하는 것이 되어버린 탓에 대체될 다른 표현을 쓸까 생각해봤지만, 정말이지 불편한 요소들이 줄지어 나오는 내용에 읽는 것이 고역스러웠다. 묘사된 인물과 상황들은 지극히도 보통의 평범한 것들이었는데도, 지금 종이위에 인쇄된 글로 마주하니 수동적이고 어리석게 받아넘겨온 부조리들로 점철된 후회와 분노가 느껴졌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책들 사이에 '현남오빠에게'를 밀어넣는 자신도 있었다.

 

 자신이 느낀 부조리와 괴로움을 의식하면서도 고작 소설 책 한 권조차 책상 위에 놓기 꺼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페미니즘이 잘못되었다, 입맛 좋을대로 해석한다, 이기적이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일부 여자들이 내세우는 비논리다. 이런 말들이 이 책 한 권을 들고 거리로 나가 어디서든 책을 읽을 시도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 생각을 드러낸다는 것은 "너도 00이었어?" 라는 이상한 질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때로 자신이 느낀 것조차 진짜 그렇게 느껴도 괜찮은 것인지 검열해야 한다는 강박을 지우지 못하게 만든다. 가끔 '현남 오빠'가 해줬던 것들 중에서 '그래도 이건 괜찮네'하고 평가하던 자신도 있었으니까.

 

 문득 '이방인'이나 '화성의 아이'로 내용이 흘러갔을때는 이어진 고통들에 비하는 자극이 왜 더 주어지지 않는 단편들이 나올까 의아했다. 좀 더 공감하고 분노하고 싶었다. 결국은 또 수많은 여성들이 읽겠지만, 여기 미지의 인물로 그려진 현실의 단면이 있음이 명시된 단편들이 이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당신의 평화'나 '현남 오빠에게'처럼 즉각적인 반응이 올만한 자극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이들 작품들이 가진 의도 역시 충분히 공감되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에피소드라 생각하고 있었던 '라이카'에 대한 내용은 특유의 처연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추모곡과 함께 감상하기를.

 

 솔직히 말하자면 표제작 '현남 오빠에게'에서 느낄 수 있는 작품적 감흥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점차 고조되어 마지막에 표출된 분노와 경멸은 아쉬운 마무리였다. 이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같이 병맛스러운 에피소드들과 가까운 이의 연애사정을 듣고 참견하고 싶어하는 심사가 자극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작품이 나와 많은 관심을 받게 된 상황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더 괜찮게 느껴진다. 아직 '82년생 김지영'이나 '딸에 대하여'를 읽지 않았는데, 곧 짬을 내어 읽어보고 싶어졌다. 더 큰 자극을 기대하는 중독자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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