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니야
얀네 텔러 지음, 정회성 옮김 / 현암사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기 전에 당신의 가장 절친한 친구 무리를 떠올려보자. 혹은 직장의 같은 부서 사람들, 학교의 같은 반 친구들이나 단 몇십분 만에 300개가 넘는 메세지가 와 있는 가장 많이 접속하는 단체 메신저 창 속의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그 중 가장 가깝게 여기는 사람이나 혹은 누구든 상관없이 또는 가나다 순으로 내 이름 뒤에 오는 사람에게, 그 사람의 삶에서 가장 의미있거나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보자. 가장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물건? 최근에 산 고가의 물건?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았다는 선물? 기가 막힌 노래실력? 어렵게 들어갔다던 좋은 직장? 당신의 머리속에 떠올린 그것을 잘 기억한 채로 '아무것도 아니야'를 읽어보자.

 

 '아무것도 아니야'를 처음 읽으면서 느꼈던 충격이 아직 생생하다. 청소년, 미래, 존재의 증명 같은 키워드로는 감히 상상하지 못할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음에는 안톤이라는 소년이 자기 자신과 사회 제도 같은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세상으로 뛰쳐나가게 되며 겪는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같은 반 친구들도 동요하고, 여기저기 부딪히며 성장하게 되는 약간 전형적인 흐름을 떠올린 것이다. 하지만 가장 첫 장에서 마주하는 "의미 있는 건 없어. 나는 오랜전부터 그걸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그럴 가치가 없으니까.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달은 거야."라는 안톤의 외침은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단초에 지나지 않았다.  

 

 무리에서 벗어난 안톤의 외침은 남아있는 소년소녀들에게 균열을 일으켰다. 지금에서야 무의미를 강조하는 안톤의 외침조차 불안정처럼 느껴지지만, 중학생인 그들에게 쨍하고 날아온 한 소년의 돌출은 외면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것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든 일들이 안톤의 말처럼 가치없는 발버둥이 아니라는 것을 안톤에게 - 스스로에게 알려 이해시켜야만 했다. 그렇다면 세상에 '의미'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그 문제에 대해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의미있는 것에 대한 작은 논의는 그들만의 비밀 공간에서 점점 몸집을 키우는 천연스럽게 잔인한 카니발리즘으로 발화한다.

 

 간만에 현암사의 신작을 읽었다. 책을 고르는 것은 이상하게도 출판사를 살피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암사의 목록은 늘 전보다 더한 만족을 주는 편이다. 책을 읽으면서 정신없이 몰입해가는 도중에 잠깐 책장을 덮고 어디까지 왔을까 살피면서 문득 개인적인 올해의 책으로 '아무것도 아니야'를 꼽게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절반정도를 지나오면서 여러 좋은 책들을 읽었지만 그중에 이만큼 강렬한 소설을 만났던가 싶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에게 책을 추천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타인의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탐색해보고 싶단 욕망도. 당신에게 가장 의미있는 것은 무엇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