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를 보여주마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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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는 태어나자마자 뿔이 자라기 시작한다. 코뿔소의 뿔은 죽기 전까지 자라는 걸 멈추지 않는다. 싸우다가 부러져도 다시 돋아나 평생을 자란다. 코뿔소 새끼는 어미의 뿔을 보고 가야 할 곳을 찾는다. 코뿔소는 새끼든 어미든 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간다."

 

 사실 아직, 제목에 있는 코뿔소의 의미를 다 모를 것만 같다. 이제와서 다시 프롤로그를 보면 거의 모든 내용이 마치 주마등처럼 휙 훑고 지나가게 되는 것 같은데, 읽는 동안에는 프롤로그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만큼 빠져들어 읽었던 것 같다.

 

 사건과는 별개로 인물들이 하나같이 과거로부터 짊어진 짐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아 그것이 왜 지금 여기에 모인 이들인가 싶이 과하다고 여겨지면서도, 당연하게도 끝으로 갈수록 사건을 계기로 그들이 자신의 짐을 풀어내던 터트려버리던 어떤 결과가 있어줄 것이라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과거가 보여지기만 할 뿐 어느 방향으로든 명확하게 결론이 맺어지지 않는 면이 더 많아서 그 점이 예상 외였다. 두식이 아버지의 죽음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대리만족같은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현실적인 분노를 범죄자들에게 쏟아붓는 모습도 의외였다. 오히려 더 냉정한 대처를 했어야 할 법했던 수연이 지나친 관여를 했다. 자신이 그어놓은 선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이 보였던 수연이 내면을 자각하고 침묵했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반응들이 흥미로웠다. 그에 비하면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졌던 준혁이 생각 외로 전형적인 기승전결이 있는 형태의 인물이었다.

 

 오랜만에 읽은 추리소설이다. 긴호흡의 글을 읽어본 것도 오래된 것 같은데 추리소설로 읽은것은 더 오래된 듯한 기분이라 처음엔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생각보다 문장이 잘 읽혀서 읽기 시작한 날 단숨에 다 읽어내렸다. 관계적 맥락은 간단한 편인데 읽다보면 방향성이 과연 맞는 것인가 싶은 지점도 생기도 꽤 흥미로웠다. 반전에 초점을 두고 그것만을 클라이막스로 끌고 가려는 내용이 아니라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가를 계속해서 어필하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그 묘사가 생각보다 평이했다는 점은 아쉬웠다. 세상 워낙 잔인한 일들이 많아서 그런가 모든 일의 시작점이 된 엽기적인 사건이 생겨났다는 생각보다는 좀 전위적이고 지나치게 많은 의미가 부여된 사건이 생겼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물론 사건의 배경이 어떤 실제적이고 잔인한 일들 이상으로 큰 상처로 남은 사회적-개인적 사건이었지만 현재로 돌아와 묘사되는 일련의 납치, 살해 사건들은 의외로 평이하게 다가왔다.

 

 제대로 된 청산이 되지 않은 과거를 두고 끊임없이 콘텐츠가 생성되고 있고, 청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고착되고 유착되어 버린 현실을 또 한번 지목하는 소설이었다. 이래도 끊어내지 않을 건가, 싶은. 정 안되니까, 세상이 변한게 없으니까, 복수라고 나선 것이 결국은 이런 형태로밖에 나올 수 없는 것 아닌가. 복수조차 셀프인 현실도 그렇고, 과거에 시비를 가렸어야 했을 일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어쨌든, '청산'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선거를 앞두고 있는 와중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만한 내용이었다. 이상하지만 읽고나면 투표해야지 싶은 기분이 든다. 그점이 또 재밌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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