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신회 지음 / 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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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노보노에 대해 책을 낸 작가도 있는데, 보노보노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한둘일까. 이 책까지 열성적으로 읽은 마당에 보노보노를 좋아한다. 고 써봤자 키보드만 조금 더 닳아버릴 뿐 의미없다. 보노보노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때 였다. 채널은 기억 안나지만, 티비에서 만화로 방영해주던 보노보노를 봤는데 정말 좋았다. 신선하기도 했고. 선명하도록 개성있는 캐릭터들도 그렇고, 내용은 잔잔하기만 할 것 같으면서도 재밌었다. 게다가 귀여웠다. 캐릭터의 모습도 행동도 더빙된 성우의 목소리도. 그래서 더이상 티비에서 방영해주지 않았을 때에는 동네 만화대여점으로 달려가 만화책도 쌓아놓고 빌려보기도 했었다. 친구들이랑 교과서와 공책에 찌그러진 보노보노 캐릭터도 그려보고 성대모사도 해보며.

 

 그러나 한동안 보노보노를 잊고 살았다. 보노보노가 아니라 만화를 잊고 살았다. 어른이 되었으니 흥미를 끌만한 더 자극적인 친구들을 찾아 떠나게 되었다. 영화나 미드 같은 것에 빠져들어 봤고 다들 아시다시피 등급의 제한에 구애받지 않는 영화와 미드의 세계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차원의 신천지였다. 때묻고 타락하였으나 후회하지 않는다. 이 또한 나를 성숙의 길로 이끌어준 자양분이니. 하지만 십수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 다시 보노보노 앞에 서보니 내가 알고 있었으나 떠나왔던 세계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맞아, 연쇄살인사건, 과학수사나 성과 도시, 좀비 바이러스 같은 게 아니라 내 감수성의 근원은 바로 이런 것이었어! 하는 재발견을 한 기분.

 

 작가도 이런 소소하면서도 잡다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보노보노의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어 책 속에 풀어냈다. 가지고 있는 성향이 달라 공감이 안되는 부분도 조금 있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이렇게 많이 기억에 남겨두려고 표시를 해놓아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깊게 이해되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누었던 얘기는 시시콜콜하고 껄렁해서 좋고, 언니랑 나눈 대화는 조금 더 성숙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전환시켜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작가는 책의 여러 곳에 스스로를 소심한 편이라고 강조했는데 읽다보니 대범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내밀한 이야기들을 써내려갈 수 없었던 거 아닌가 싶게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진솔하게 적혀있어서 의외성을 발견하며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좋았던 몇가지 부분들 중 "별것 아닌 대화가 필요해" 의 내용에서 아버지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데 나 역시 문득 아버지와 나는 어떤가 생각해보니 얼마전 집에 들렀을 때가 떠올랐다. 엄마가 오라고 해서 집엘 갔는데 때가 맞지 않아서 집에는 아버지 뿐이셨다.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거실에서 아버지가 틀어놓은 '자연인' 티비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부엌에 들어가셔서 식탁을 차려주셨다. 밥을 같이 먹고는 다시 거실로 나와 '승윤씨'가 나오는 자연인을 마저 봤었다. 이렇게 나열하면 별 거 아닌 일 같은데 문득 나라는 인간이 아직도 아버지 식사 챙겨드리지는 못할 망정 챙김을 받고 왔구나 깨달았다. 다음에 갈 때는 내 친구관계 업데이트를 해드려야겠구나 생각하도 해봤다. 아, 나 친구가 없지...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는 왜 칭찬에 목숨을 걸까" 에서 나온 첫 부분이었다. " 예전에 함께 밥을 먹을 때, 외국인 친구 하나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너 웃는 게 예쁘구나." 갑작스럽게 날아든 칭찬에 얼굴이 빨개져서 허둥지둥하다가 겨우 대답했다. "아니야." 그 말에 그는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내가 한국에 와서 놀란 게 있어. 한국 사람들은 칭찬을 하면 딱 두 가지로 반응하더라고. '아니에요' 아니면 '내가 좀 그렇죠?'. 칭찬을 들으면 대부분 부정하거나 장난을 쳐." 그 말에 발끈해서 물었다. "그럼 너네는 칭찬을 들으면 뭐라고 말하는데?" 그랬더니 그가 그랬다. "그냥 고맙다고 하지." " 칭찬에 대한 리액션이 어떤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외국인이 우리의 반응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의 반응도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거니까.

 

 어린시절부터 칭찬을 들으면 '아니에요'라고 하는 일에 익숙했는데, 근래에 예사로 남에게 칭찬을 해줬을때 상대방이 '감사합니다' 혹은 '아 네 저 그런편이에요'하고 대답해서 당혹스러웠던 적이 종종 있었다. 사실과는 상관없이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인데 상대방이 겸양하지 않고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니 기분이 좋았다면 다행인데 어쩐지 떨떠름한 기분은 오래 남았던 기억이 있다. 한편으로는 저렇게 대답할 수도 있는거였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저런 상황을 몇번 겪어보고 나니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던 상관없이 유연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또 누가 나를 칭찬해주면 '어휴, 아니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모두쓰기 기술을 쓰게 되기도 하고.

 

 공감이 좀 어려웠던 부분은 "나 상처받았어" 편에 나오는데, " 책임감이 부족하고 겁이 많은 사람일수록 상대방에게 공을 던지는 말을 자주 쓴다. "난 아무거나 다 괜찮아." "그럼 연락줘." "네가 정해줘." 그렇게 말하고 선택을 상대방의 몫을 돌린다. " 하는 내용이다. 내 주변에서는 저 말들을 진짜 상대방의 스케줄이나 입장을 배려해주기 위해서만 쓰기 때문에 원만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돌아가면서, 때로는 불편을 참아가면서 저 말을 쓴다. 아마 내가 너부리 성향이라 관계 유지에 소중한 배려의 말로 저 말을 사용하는 편이라 좀 다르게 생각했을 수도 있는 것 같다. 보노보노 성향의 사람들은 저 말들을 다른 의미로 쓸 수도 있겠지.

 

 꼭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고 쓰게 되었다. 취향은 소나무와 같고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는 법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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