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으로부터 - 감히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오스카 와일드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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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연으로부터'는 오스카 와일드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쓴 편지를 묶은 책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아마도 동화로 더 익숙하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지만,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쓴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당시 작가로 화려하고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사교계에 이름 난 인물이었으나 이 편지의 수신인이 되는 앨프레드 더글러스와의 동성애 관계로 풍기문란 죄목의 소송에 패소하여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간단히 설명하였지만 책 안에 '옮긴이의 말'부터 영향력있으며 능력있던 주요 인사로서의 풍족한 생활을 누리던 그가 한순간에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고 죄인이 되어버린 몰락이 어떤 배경에 기인했는가 꽤 자세하게 나와 있다.

 

 최근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몰입하여 읽었던 것 같다. 사실 모든 책들이 눈길을 끄는 순간"들을 가졌었지만, '심연으로부터'는 사무쳐서 마음으로 들어오는 면이 있었다. 고통에 싸인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상황에서 조차 버릴 수 없었던 미문으로 써내려간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안에 담아두었던 자잘한 상처들이 다시금 날을 세워 올라오는 기분이 든다. 특히나 문장과 표현들이 쉽게 말하자면 타인을 원망하는 말들을 늘어놓고 있음에도 경솔하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들이 당신한테는 몹시 관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치 크리스털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바라보듯 당신에게 삶의 기이하고 비극적인 형태들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게 한 걸 보면. 당신은 쳐다보기만 해도 사람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메두사의 머리도 거울을 통해서만 보도록 허락받았고 말이지. 당신을 꽃들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 수 있지. 하지만 나는 색채와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세상을 모두 빼앗겨버렸어. / 이 편지에서 난 먼저 당신한테 나 자신을 엄청나게 자책하고 있다는 이야기부터 하려고 해. 불명예와 파산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했던 나는 지금 죄수복을 입고 이곳 컴컴한 감방에 앉아서 나 자신을 탓하고 있어. 잠을 설치고 혼란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밤에도, 고통만이 단조롭고 길게 이어지는 낮에도 나는 나 자신을 자책하고 있어. 비지성적인 우정, 그 첫번째 목적이 아름다운 것들의 창조와 관조가 아닌 우정이 내 삶을 전적으로 지배하도록 내버려둔 나 자신을 탓하는 거야." 이처럼 사실 그대로의 상황에 대해서 썼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요소들과 솔직하게 후회와 자책, 원망을 드러내면서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수식들이 매력적이었다.

 

 관심이 가는 책을 읽고 싶을 때면 읽어보고 난 뒤에 정말 마음에 들면 그 책을 사야겠단 생각 때문에 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편이다. -다른 어떤 물건을 살 때도 써보고 결정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책에 대해 인색하기 때문인지 책만큼 경험해볼 수 있는 바탕이 잘 마련되어 있는 것이 없어서인지 모를 일이다.- '심연으로부터'도 마찬가지 였는데,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바로 읽기 시작한 다음날 구매를 했다. 우리는 살면서 때로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일들을 겪지 않는가. 그것이 특히나 인간관계와 같은 문제와 맞닿아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며 깊이 공감하게 될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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