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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
이어령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미시적인 눈으로 가위바위보에 관한 문명론을 펼치고 있는 글이었다. 놀라게 한 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정식 출간 된 이 글이, 처음에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을때 잘 모르는 채로 생각하기에 이어령씨의 신간이라고 여겨졌었는데 사실 2005년에
이미 출간된 작품을 현 시점에 맞게 일부 수정하여 발간한 것이란 점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굳이 '신작'을 읽어보고 싶다고 했던 부분이
민망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물고 물리는 한중일 관계, 새 아시아 문명의 답이 여기 있다.' 고 되어 있는 표지글을 보고 가위바위보에 관해서는
하나의 비유적 표현이고, 아시아 한중일 삼국의 정세에 대한 고찰이 담긴 시선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한 고견을 접해볼 것이라 기대했던 부분이 큰데,
실제적으로는 가위바위보에 관한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말 그대로 가위바위보에 관한 문명론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시적이란 표현을
굳이 처음부터 언급했던 것이다.
때문에, 이름난 지성인인 이어령씨의 글을 하나 접해보았다는 의미가 좀 크게 다가올 뿐, 전체적인 내용은 사실 '왜, 가위바위보의
문화인가'에 대한 이유 나열이나, 의미 찾기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단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한중일의 관계가 꽤나 미묘한데 스스로를 높이며
상대를 낮추는 태도가 기본이다. 삼국 중 어디도 자국이 한 수 아래이지'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게 서로를 적대시하면서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셋 중 둘의 의견이 일치하여 소리를 모으거나, 방금 전까지 같은 의견을 내다가도 다른 문제에 있어서는 금세 나머지 한 편 쪽으로 의견이
갈려 다시 형세가 나뉘어지는 일들이 빈번하다. 국민적 감정으로만 보더라도 역사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이 일본에게 책임을 묻고, 현대에 와서 국가적
호감도를 살필 때면 중국보다는 일본의 대중문화나 질서의식이 더 낫다고 평하는 편이 많다. 이 셋은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이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는 묘한 균형을 맞추고 있는 관계인 것이다.
그런 의식 하에서 가위바위보라는 컨텐츠를 가지고 어떤 식으로 삼국의 관계를 바라보고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각을 보고 배우게
될 것이란 기대가 많았는데, 마지막 장에 있는 대륙의 보, 밀도높은 바위의 섬, 균형의 반도 구분 등이 나와서야 어느 정도 충족이 될 뿐
아쉬움이 없진 않았다. 아,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동양이 가위바위보의 문화라면 서양은 동전던지기의 문화라는 구분은, 순간 그동안 보았던
미드나 영화의 장면에서 과연 그런 차이점이 있었구나 싶은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차이에서도 나와 다른 상대방과 소통을 하는 문화인지
아닌지에 대한 구분이 나타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 외에도 개인의 병으로 술을 마시는 서양의 문화와 상대방과의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동양의 문화 차이로 인해 병의 크기가 달라지는 상업적인 요소까지 엿볼 수 있는 부분들처럼 작은 부분이지만 예사로 생각됐던 부분을 환기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어서 좋았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사회문화 분야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