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힘 -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경식 지음, 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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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들어서 한달에 한 권 정도는 시집을 읽자고 생각한 뒤로 그 결심을 따라 시를 읽은 때도 있고, 사실 그저 지나보낸 달도 있었다. 시를 읽어야 겠다고 한 뒤로 읽기 전엔 어떻게 읽어야 할까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막상 책장을 마주하고 보니 읽는 것이야 어떻게든 될 것이지만,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에 대한 어려움이 컸다. 때문에 현암사로부터 저자 서경식의 신간 '시의 힘' 출간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에 이런 부분에 대한 도움을 얻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제목만 보고 오해하여 읽기를 결심하게 된 사정이 있다. 읽기를 희망하시는 다른 분들은 혹여나 이런 과정이 없길 바라며, 읽게 된 계기를 밝힌다. 다소 어려운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의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책을 한 번 읽어보자고 낸 용기는

 

대표적 재일조선인 문필가 서경식의 첫 문학 에세이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본 ‘시’와 ‘문학’의 초월성

 

라는 문구에 주의를 크게 기울이지 않고 단순히 '시'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을 것이라 여겼던 단순함과 무지의 탓이 크다. '에세이'이고 '디아스포라' 문학에 속할 뿐더러 '시'와 '문학'의 어떤 초월성을 이야기 할 것인가를 읽기 전에는 주의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했던 '시'에 관한 이론적 접근이나 정리가 되어 있지는 않았어도 여러모로 흥미롭거나 공감되는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덧붙여, 예상했던 내용과는 달랐지만 읽다보면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확고한 시각으로 목소리를 내는 저자의 입장에 공감하게 되는 바도 많고 남다른 개인사의 조각들을 보며 재미있게 완독할 수 있었다.

 

 본문의 내용은 구분해놓은 단락에 따라 크게 개인적인 성장과정을 다룬 2장과 시를 소개하며 바라보는 강점기, 그리고 그 이후의 민주화운동 시절에 대한 내용이 있는 3장. 후쿠시마 사태를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접근하여 평한 6-7장 등이 있다.

 

 사실 저자의 개인사를 담은 2장의 내용은 그 굴곡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크게 흥미를 당기는 부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부분의 내용이 집중적이고도 필수적으로 읽혔어야 하는 까닭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입장이다. 재일교포로 자라온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리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그 갈등이 적확하게 드러난 부분이 고등학교 시절에 쓴 글이었는데, [그런데 아마도 이 책자는 나의 마지막 시집이 될 것이다. 나에겐 일본어로 '고향'을 쓴다는 것의 한계가 보이고, 모국어로 쓰기엔 난 너무 '일본인'이니.] 하는 부분이었다. 그 양측 어딘가를 오가면서 자신의 근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에 대한 입장조차도 정리하지 못했으나, 글에서처럼의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기에는 지나치게 연연하고 있는 뉘앙스를 풍긴다. '시의 힘'은 그 자신의 거칠었던 부분까지도 담아놓고 고스란히 목도할 수 있도록 함에 따라 천천히 '디아스포라'를 바라보고 디아스포라 '문학'이 어떤 면모를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 이해하도록 해준다.

 

 읽으면서 꽤 여러 부분에 표시를 남겨두었는데,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문학평론가인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언급이 나온 부분도 꽤 흥미로웠다. ('평행과 역설'을 아직까지도 다 읽지 못한 채 어렵게 이어가고 있는 터라) 저자가 읽어 낸 사이드의 '펜과 칼' 의 단락을 눈으로 따르며 이해에 도움을 받은 부분도 있었다. 거기에 4장에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나온 나쓰메 소세키와 이시카와 다쿠보쿠에 관한 대조 부분도 그동안 출판사 현암사를 통한 소세키 전집 읽기를 하며 친숙해진 작가에 대한 언급이 된 부분이라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웠다. 그동안 소세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관통'하는 주제 의식과 인간에 대한 공감대가 발견되는 부분에 많이 집중했는데 그의 작품들이 일본 독자로 하여금 '국민 의식'을 형성하도록 하는데 기여 바가 크다는 내용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경중은 다르다 해도 '목격자'의 입장에서 살아가고 싶은 것에 대한 내용인데, 저자의 경우는 시대적 '증인'의 입장에서 방관하지 않고 그것을 '목격'하여 제 입과 존재로 '증거'가 될 수 있는 존재로서의 '목격자'를 말한다. 앞서 옮겨적었던 시인의 고등학교 시절의 글에서도 그 '목격자'에 대한 내용이 나와있기도 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어떤 강렬한 사건이 생겨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문제가 발생할 때, 종종 그 사건의 순간을 살았던 '목격자'가 될 수 있음에 대한 의식을 할 때가 있어서 일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마치 911 테러의 순간을 티비로 봤던 그 날의 생생한 충격이나, 세월호 사건의 무력감을 짊어지며 지나온 4월의 숨막힘, 안전에 대한 지속적인 염려를 낳은 후쿠시마 사고를 실제적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현장성을, 아주 소소하여 어떤 증명도 될 수 없는 개인이지만 '사건'들을 목격할 수 있었던 시대의 일부가 되는 존재였다는 역할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 단순한 응시로 보여진 것 이상이 되지 못했을지라도.

 

 또한 7장의 패트리어티즘에서는 [이러한 포괄적 레토릭으로 국민적 단결을 고취하고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것이겠지만, 그 단결을 위해서는 '국민의 적'이 필요해지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앞으로 어려움이 장기화되고 지배층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쌓이면 반드시 '적'을 만들어내려 할 것이다.] 고 밝힌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국가에서도 이러한 '만들어 낸 적'을 필요로 하지만, 적은 구성원이 모인 작은 집단 안에서도 억압과 압박이 계속되면 이내 불만과 분노를 표출해 낼 '적'을 만들곤 하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여직껏 이런 '적'의 존재가 집단 안에서 사라진 경우가 드물고, 일명 '따돌림'이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이 미치게 되니 인상적이었다.  

 

 근현대사를 망라하여 작가가 가감없이 보여주는 비판적인 시각은 시원스러운 읽기를 재촉한다. 내용의 깊이에 비해 읽기 어려운 문장으로 되어 있지 않은 점이 좋았고, 덧붙이자면 시인 김지하에 대한 평에 공감하는 바도 있어 리뷰를 쓴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쓰고 보니 흐름상 빠졌기에 언급만 해둔다. 또 덧붙이자면 저자가 오는 9월에 인천에서 있을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초청되어 특강과 대담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이 부분도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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