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중력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
홍정선.강계숙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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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줄 알았으면 읽지 않는 것인데.

 

 표지의 '엮음'이란 말의 뜻을 깨닫고는 먼저 든 생각이다. 30여년간 매해 10여권의 시집을 내온 '문학과 지성사'의 400호 기념 시집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이 400호 시집은 301호부터 399호의 시집 들 중 시인 83명의 시를 골라 수록하였다. 사실 100호, 200호, 300호 때도 이랬었다고 하나 - 시집 읽는 일이 영 둔하디 둔한 내가 어찌 알아, 그걸. 때문에 교과서 한번 처음부터 제대로 읽어본 준비없이 요약본을 먼저 본 것 같아 영 찝찝했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처럼 시 못 읽어 본 나도 핑계를 댄다. 내가 아직 시선집 모아읽을 레벨이 안되는데 벌써부터 읽어서 아쉽다고. 감상만 잘한다면야 이리 읽든 저리 읽든 뭐 어쩌겠냐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고, 모르면 이렇게 손해다.

 

 그래도 몇 몇 시인들 이름이 눈에 들어와서 그래도 한달에 한 권 정도는 시집'도' 읽자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나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덕분에 내가,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낯설지 않게. 다만 시인들의 시집에서 꼽힌 시들이 영 생소했다는 것은 아쉬웠다. 내게 무언가를 남긴 시가 꼭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 중 하나로 여기에 꼽혀 올라올 정도면 나도 좀 주의깊게 읽었어야 했는데 대부분 무심결에 지나쳐버린 시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새삼 눈에 들어오는 시들도 있었고 또 아직 읽어보지 않는 시집에 들어 있는 시들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꼽아볼 수도 있었다.

 

 [ 타마리스크 나무 아래  - 신대철 "바이칼 키스"

 

모래폭풍이 땅을 뒤집는 순간 황야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두운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푸른 하늘, 붉은 흙먼지, 야생의 숨결을 받은 것들을 숨 돌릴 새 없이 몸부림쳤다. 무엇에 쫓겨 가는지 짐승들이 미친듯이 달렸다. 밤새 살아남은 발자국들은 거대한 먼지 굴 속에서 굴러 나와 먼지를 끌고 달렸다. 황야에 들어갈수록 긴 꼬리가 생기고 몸이 팽창했다. 달궈진 시간만 소멸하면서 생성되었다. 나는 내가 인간도 짐승도 아니라는 것 말고는, 내가 없는 곳에서 내가 무수히 태어난다는 것 말고는, 무엇이 소멸 속에서 생성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평선은 둥글고 향긋해도

 그 중심은 깊고 황막한 곳

 

다시 황야로 들어간다면 모래폭풍 넘어 타마리스크 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 ]

 

 신대철 시인의 "바이칼 키스"라는 시집은 제목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읽었는가 헷갈릴 정도로 또렷하게 제목이 기억난다. 언젠가 읽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리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서 본문을 사진으로 찍어두기까지 했다.  '달궈진 시간만 소멸하면서 생성되었다. 나는 내가 인간도 짐승도 아니라는 것 말고는, 내가 없는 곳에서 내가 무수히 태어난다는 것 말고는, 무엇이 소멸 속에서 생성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를테면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오르도록. 같은 시공간 안에 무수한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그 의식은 끊임없는 신호로 보내질 수도, 존재가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 없을 수도, 어느 지점에서 존재하고 부재하는지도 모를 그런 모든 차원을 포함하고 또 넘어선 면을 그려낸 듯 했다. 황야와 사막을 말하는데도 우주를 떠올리게 만드는 점도 좋았다. 꼭 읽어야지.

 

 이 시와 같이 [ 보이저 1호가 우주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며 - 함성호 "키르티무카" ] 시도 같이 적어뒀다. 내 느낌 상으로는 마치 연작처럼 보이기도 하고 신대철 시인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함성호 시인이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용 중에 [ 어머니 전 혼자에요 / 오늘도 혼자이고 어제도 혼자였어요 / 공중을 혼자 떠도는 비눗방울처럼 / 무섭고 고독해요 / 나는 곧 터져버려 우주 곳곳에 흩어지겠지요 / 아무도 제 소멸을 슬퍼하지 않아요 ... 후략... ] 하는 부분이 있는데 왜 내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지 소멸되면서도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는 존재로 남을 수 있는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더불어서 느껴지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꼽은 시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다음으로 적어둔 [ 책상 - 박형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에서도 비슷한 감각이 나온다. [ 책에는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어요 / 나는 책상에 강물을 올려놓고 그저 펼쳐 볼 뿐이에요 / 내 거처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일 뿐 ... 후략... ] 여기서도 내가 존재하는 것이 어떤 확고한 지점에 확실한 존재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 어쩌면 순간 혹은 중복되어 산재할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그 모호함과 불확실함이 다른 두 편의 시와 비슷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책상'이란 시가 좋았던 점은 그 외에도 [ 나는 어스름한 빛에 얼룩진 짧은 저녁을 좋아하고 / 책 모서리에 닿는 작은 바스락거림을 사랑하지요 ] 하는 부분의 정경이 애틋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해서지만.

 

 읽지 않는 것인데 하고 생각한 것치곤 꽤 흥미롭게 읽었다. 문지의 시집을 고집스럽게 읽고 있는데, 고집스러운 것 치곤 더디게 읽지만. 시집 중에서 뭔가 기본을 제시하는 것 같단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기초영어 같기도 하고. 아직 안 읽은 100호, 200호, 300호도 곧 읽게 되기를. 이런 준비되지 않은 자세가 아니라 준비된 배경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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