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의 선언
이브 엔슬러 지음, 정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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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일은 좀처럼 없다. 눈물과 콧물 소리가 가득한 영화관 안에서 건조한 얼굴로 짐을 챙겨나오면 혹은, '아, 재밌었다.'하는 감상 한마디를 남기면 주위에서 '넌 슬프지 않았어?'하고 물어오는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하곤 했다. '살다보면 울일도 힘든 일도 얼마나 많은데, 저런 걸로 울게 다 뭐야.' 하고. 귀신 나오는 영화를 백번 봐도 실제로 눈 앞에서 만나는 강도 한 명이 평생 두렵고 무서운 거고, 아무리 슬픈 이별 장면이 나오고 안타까운 상황이 드라마에서 나와도 내 곁의 내 사람 떨어지고, 세계 어딘가에서 자행되고 있는 불안하고 치열한 삶들이 더 씁쓸하고 눈물나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브 엔슬러의 책 '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도 그런 생각을 돕는 내용이었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세상과 삶이 더 생생하게 사람에게 상처내는 법이라는.

 

 처음에 암을 치유하면서 쓴 내용이라는 표지를 보고 병을 이겨낸 자신의 수기를 썼다고 생각했다. 물론 큰 병을 얻고 치료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사소한 것을 아닐진대, 대부분의 책들이 비슷비슷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떠올라서 읽기 전에 어찌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선고를 받고 항암 치료를 하고 좌절과 분노를 하다가 나보다 더 아픈 병실의 다른 환자들을 보면서 내가 처한 상황에 감사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전형적인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부분의 내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집중하게 한 내용은 그보다 콩고 여성들의 삶에 대한 폭로에 가까운 서술이었다.

 

 그렇게 책에 몰입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삶이 끝나가는 순간에도 콩고에 가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모습에 대한 당위와 어떤 감명같은 것이 느껴지는 때가 왔다. 마약에 취해 AK-47 소총을 당기는 시에라리온, 르완다 등지의 아프리카 소년병들의 이야기가 전해주는 참혹함을 떠올리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심각성이 있었다. 때문에 처음 다소 냉담했던 시선에도 변화가 생기게 될 만큼 그녀가 조명하는 또 다른 세상은 처참했고 그 속에 자신의 자리가 필요할 것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런 현실에 마주보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어떤 식으로 끝까지 진짜를 맞대하며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느껴볼 수 있는 책이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연극 무대 위에서, 현대 여성들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 요석인지 인지하는 것처럼, 그녀의 삶도 그와 마찬가지로 실제적 세상 속에서 세계 여성들의 삶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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