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매혹 문학과지성 시인선 344
양진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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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첫 시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언제 마지막으로 시집을 읽었더라 기억도 안나고 사실 이 책이 올해의 첫 시집이었는지도 정확하지 않은 기억이다. 각인된 첫 시집이라고 해두자, 새로이 시에 매혹되는 첫 시작인 것 처럼.

 

 시집을 들 때마다 하는 푸념이지만 '시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도통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책장을 넘기며 깨닫는 일이 시를 읽는 일 아니고 또 무엇일까 싶을 정도로. 양진건 시인의 시는 처음 읽는데, 역시나 누군들 구면이겠냐마는, 어떤 시들은 너무나 사소하여 못미덥다가도 어떤 시들은 또 낯설어서 막막하고 그런 기분 사이를 오가는 반복이었다. 익숙한 주제를 잡아 시를 쓰면 가슴 한 구석을 확 잡아끄는 힘이 없는 것 같아 아쉽고 도저히 알 수 없는 함축이 담겨 있는 시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은 커녕 머리로도 읽지 못할 것 같아 답답하니... 쉽사리 곁을 내어주지 않는 시.

 

 몇 권 읽어보진 않았지만 꽤 자주 시인들이 야생화같은 작은 풀꽃이나 자연물을 두고 시를 쓰는 것 같다. 양진건 시의 시집에서도 같은 주제로 쓰여진 시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공통된 시적 정서, 시스러운, 시다운 정서를 공감하게 된다면 뭔가 또 달라질까 싶다. 재미있는 건 표제작인 '귀한 매혹'은 "여러 종류의 버섯으로 요리되는 태국식 볶음국수"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버섯국수라 해도 될 법한데 굳이 볶음국수라 명명한 데서 오는 태국식 볶음국수의 맛나는 구조에서 의미를 찾다니. 재밌다. 게다가 태국식 볶음국수가 주는 매혹은 충분히 공감할만 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겠다.

 

 가장 인상적인 시들은 병원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전문을 옮기려는 것은 '그들처럼 나도' 라는 시.

 

내 입원실 창 아래로

유년의 긴 골목,

양편에 흐릿한 옛집들이 서 있고

그늘에 치어처럼 아이들 서너 명,

어느 때인가 그들처럼 나도

지느러미에 빛 오를 적이 있었다.

삶은 그런 힘이려니 했지만

나뒹구는 신문지처럼 구겨진 내 생이여.

세월의 강은 유속이 빠르고

이젠 아무것도 아쉬울 것이 없는데

참으로 그리움이란 비루한 것.

입원실 창문을 닫으려니

모든 풍경이

이상하게 가볍다.

 

골목의 풍경을 너무나 공감할 수 있는 시여서 몇번이나 읽었다. 그러고보니 나도 완연히 어른인 것만 같단 생각도 든다. 해마다 나이는 먹어도 속알맹이는 변한 것 없이 그대로려니 했는데도 설명할 길 없는 이 적막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의 전문을 옮긴다.

 

'환술'

 

TV나

인터넷만한 환술이

또 있을까?

환술의 호랑이가 오히려

마술사를 삼켰듯

그것들은

내 땀 냄새,

심지어는 내 혼절의 시간,

오늘은 내 그리움까지도 삼킨다.

어떤 쓸쓸함도 없다.

아, 씨발.

 

나름 오랜기간 동안 스마트한 삶을 거부해 왔었는데, 확실히 내 모든 것을 순식하게 스마트하게 만들어 버리는 기기의 사용은 보이기에 스마트할 지 모르나 매우 피폐한 것임을 통감하는 요즘이다. 정말이지, 내 모든 것을 삼켜 스마트하게 만드는 그 환술들! 그리고 그것에 속절없이 매혹되는 나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

아, 씨발.

 

 물론 다른 달콤한 시들도 많다. 예를 들면 '베추니아'"내 마음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아침이 오고/ 이제 횡포한 바람도 불 테지만/ 베추니아가 만개하는 동안/ 그리움은 더 견고해질 테고/ 당신을 잃어도/ 나는 당신 속에 있습니다." 하는 내용처럼. 읽고자 하는 사람을 두고 혼자만 멀리 가버리는 시들은 아니다. 오히려 함께 음미하자 권유하는 시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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