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풀베개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책을 읽는 것인지 꿈을 꾸는 것인지 같이 길을 걷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소설 안에서 주인공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생각과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외부의 사건과의 구분이 모호하기도 했고, 마치 유람하듯이 자연에 도취되어 길을 걷는 주인공 역시 현실감이 없었다.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고 독특함이기도 했다. 책을 읽은 것은 한참 전인데, 리뷰를 쓰는 것은 늦었다. 뭐라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미루고 미룬 글쓰기다. 이 글을 읽으며 박태원을 떠올렸다. 끊임없이 머리속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이 줄줄이 늘어서다가 어느 한 순간 외부의 자극에 반응해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시선이 옮겨지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시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서술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박태원의 글이 좀 더 내밀했던 것 같긴 하지만 글의 흐름이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은 화구를 들고 길을 떠났다. 길을 걷는 내내 온통 마음이 이 곳에 없는 사람인양 아주 작은 사소함에서 결국 사람의 삶을 아우르는- 세상의 이치까지 사고가 발전해나가기도 하고, 세상을 다 초탈한 듯 자연을 노래하다가도 시선 끝에 결국은 예쁜 여자가 미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러 길을 떠났다고 하지만 그림은 하나도 그리지 못했다. 나코이의 한 온천장에서 머물게 되는데 그 댁의 아가씨가 이혼하고 돌아와 친정에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탕치를 할 겸 머물게 된 온천장에서 만난 아가씨는 묘한 느낌의 여자였는데, 함부로 그가 적어놓은 글귀에 덧글을 남겨놓기도 하고, 욕탕에 알몸으로 들어섰다 돌아가기도 한다. 그는 그런 그녀에게서 영감을 받지만 화폭에 옮기기엔 부족함을 느낀다. 그녀에게서 결여된 무언가를 느끼는데 그는 그녀에게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없으리라 여긴다. 그런데 글 말미에 그녀에게서 그 부족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연민'을 발견하게 되며 끝이 난다.
소세키는 이 글을 2주만에 완성했다고 하는데, 말 그대로 단숨에 써내려간 글이고 그만큼 자신의 내면을 많이 드러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생각을 주인공을 통해 옮겨놓은 것과 다름아닌 작품이라 느껴졌다. 읽으면서 또 하나 놀랐던 점은 그가 폭 넓은 문학과 그림 등의 예술 분야의 식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각주로 덧붙여진 설명들이 없었더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을 것 같은 작품이었다. 읽으면서 하이쿠적 글쓰기라는 것이 뭔지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잘 감이 안오는 부분도 있었고, 중간중간 들어가 있었던 하이쿠 역시 어떤 미묘한 감각으로 즐겨야 하는 것인지 모를 때도 있었다. 하이쿠에 대해 알아보려고 찾아봤는데 지식백과에는 [일본 와카의 5·7·5·7·7의 31글자에서 앞의 5·7·5인 혹쿠(?句)가 발전한 것인데 이것에 계절어(季語)와 매듭말[키레지(切字)]을 써서 형식적으로 발전시킨 세계에서 가장 짧은 노래이다.] 이런 설명이 나와있어서 와카는 또 무엇이고 혹쿠는 또 뭔지 모르겠어서 오리무중이었다. 계절과 관련된 용어가 들어간 짧은 말놀이 정도의 느낌인 것은 알겠는데 글쎄 큰 감흥이 오진 않았다. 분명 한수한수가 주는 느낌이 있을텐데, 그걸 집어내지 못하며 읽은 것이 아쉽다.
그 전에 읽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 '도련님'이 주는 재미와는 전혀 다르다. 그 둘은 읽으면서 실소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어 '웃음'이 나는 재미를 주었다면 이 책은 미묘한 분위기를 읽어내는 재미를 주었다. 읽을수록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단 생각이 '풀베개'를 읽으면서 실감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