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 - 몽골에서 보낸 어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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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라고 해서 일련의 감성 여행기를 떠올렸다. 몇장의 멋진 사진들과 짧은 문구들, 아포리즘, 자신이 걸어간 여행지에서의 발자취에 대한 기록같은. 첫 프롤로그에서 '야생의 기억'이라는 시를 대면하고서 그제야 놀라움을 느꼈다. 저자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 책은 소설가의 글을 담고 있었다. 여행작가나 혹은 일반인의 정보 전달과 여행기록형 글이 아닌, 소설가의 글을. '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을 통해 걸음과 걸음 사이의 사유를 전달받을 수 있었다. 일상에서 멀어진 지극히 자유롭고 낯선 바람이 몰아온 소설가의 사유를.

 

한 단락씩 에세이를 읽어나갈 때마다 깊은 만족감에 마치 너른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자신을 내맡겨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듯한 흡족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각 장마다 대표되는 핵심어가 있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총 여덟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나는 절반의 기쁨과 절반의 아쉬움으로 책을 읽는 시간을 채워야 했다. 정말 딱 절반으로 프롤로그와 세 개의 장 '첫 발자국', '풍문', '영감'까지 정말 아름다운 표현들과 생각이 마음에 와 닿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이런 것이 여행 에세이라면 출판시장에 넘쳐나는 수많은 여행서들도 그리 과한 것만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여행이야기가 시작되는 '순례'장과 그가 쓴 소설 [조드]의 창작노트와 그와 관련된 좌담에 이르러서는 약간 흥미가 떨어지게 되고, 여타의 여행서와 비슷한 느낌의 서술이라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물론 몽골을 다녀온 일을 바탕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에 그가 몽골에서 어떤 길을 걸었고,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났는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는 것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글이 이어지기엔 그가 처음에 보여주었던 세 개의 장 안에 채워진 내용들이 너무나 흥미롭고 또 좋았다. 평이한 여행기를 보편적인 서술로 옮기기엔 아까울 정도로. 그래서 초반에 읽었던 세 개의 장까지의 내용이 그간 읽었던 여행관련 책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좋았더라면 중후반에 이르러서는 고조되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럼에도 또 하나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몽골에 다녀온 여행을 바탕으로 다양한 색깔로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것이다. 작가가 여행을 통해 느낀 자유로운 사유와 여행의 세부적인 기록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집필한 소설에 대한 대담 형식으로 까지 여러 방식으로 표현해냈다. 마치 하나의 컨텐츠를 각기 다른 색의 필름을 통해 선택적으로 골라 볼 수 있도록 장치-배려 해놓은 것 같이.

 

다른 독자들이 여행서 혹은 에세이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할지 모르겠다. 다양한 방식의 기록이 남겨져 있는 책이니만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마음에 들어했던 프롤로그와 처음 세 부분의 장에 대해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부분이야 말로 진짜로, 바람이 모든 것을 지워도 남는 누군가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가장 멋진 부분의 기록인 것 같다. 여행에서 어디를 다녀왔고 무엇을 했고 누구를 만났는지 기록을 남겨 기억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로인해 내 사유가 어디까지 확장되었는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만큼 멋지고 의미있는 무형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몽골로의 여행을 꿈꾸는 혹은 저자 김형수의 기록에 궁금함을 품고 있는 독자들에게 기대 이상의 독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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