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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섬옥수
이나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8월
평점 :
연작소설에 대한 무섬증은 잘 알려진 작품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부터 기인했다. 몇 번은 읽었던 것 같은데, 그 때마다 드문드문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그 작품은 사람 많은 시장통 한 가운데 서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욕심껏 주워 듣고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날 것 같은 삶이 강제로 떠안겨져 오는 느낌. 게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인지 누가 누구인지 헤아리다 책장을 그저 덮어버린 적도 있었다. '섬, 섬옥수'도 연작소설이라는 부수적인 분류를 달고 있기에 그 분류 자체에 한 번 겁을 집어먹은 채 읽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무서운' 읽기에 두려운 책은 아니었지만, 여타의 소설들처럼 이야기를 읽는다는 느낌이 덜했던 점은 있었다. 크지 않은 섬이라지만 그래도 그 안에 뿌리내린 사람들이 죄 한번씩은 이름표를 달고 자신을 소개하는 와중이라, 기억해야 할 인물도 많고 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어서 각자 생활에 얽혀있는 사건들이 다 달라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힌 인물관계도 떠올려야 해서 복잡했다. 잠깐 한눈 팔았다가 아까 싸웠던 게 종태였는지, 삼봉이였는지, 인규네 짜장면 집 이름이 뭐였는지 헷갈리기 일쑤다. 오가는 길에 짬을 내어 읽었더니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여유 시간에 짬을 내어 찬찬히 읽어야 좋을 것 같다.
섬 개들이 서로 패를 나눠 싸움을 걸고, 고립된 개를 조직적으로 괴롭히는 모습이 자주 비중있게 언급되기에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갈수록 섬 사람들의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임이 느껴졌다. 개들이 외지 사람들이 관광와서 나누어주는 간식거리에 의존하여 생활하듯 섬 사람들의 생활도 관광 수입에 의존하여 조금이라도 더 손님을 끌려고 온갖 힘을 쓴다. 그러다 패가 나뉘고, 싸움이 나고, 결국 밀려나 문밖 출입을 안하거나 다른 개들을 피해다니는 개들이 생기는 것처럼 버티기 어려운 섬 생활을 접고 떠나는 사람도 생기게 되고.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개와 사람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삶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것이 비록 자식을 앞세운 늙은 어미의 한맺힌 설움이거나 그저 돈에 자신을 내맡긴 채 보기 괴로운 욕망을 드러낸 사람들의 모습일지라도 결국은 이런 것이 보통의 삶인데 고개를 돌릴 필요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관조적인 마음으로 바라보다 결국 그 안에 뛰어들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거기에 서울에서 태어났다는 작가의 이력이 무색하도록 자연스럽게 사용된 사투리는 읽기에 감칠맛을 더해주었다. 제주말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부분들도 있었는데, 대부분은 이런 말을 하고 있겠구나 짐작으로 알아볼 수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처음엔 비중있게 다뤄질 것이라 생각했던 자애의 이야기가 금방 뚝 끊기고 섬 사람들의 삶에 대해 연이어 이어져서 자애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게 여겨졌었는데, 뒤에 가선 자애를 통해 섬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엿볼 수 있게 되어 섬 사람들의 뒷 이야기 궁금증을 풀게 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삶이란 것은 모두가 뒤를 이어 돌려부르는 돌림노래와 같이 느껴졌다. 그 다음 마디, 다음 마디 서로 이어져 시작도 끝도 모두에게 공평히 지나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