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04번지 파란 무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8월
평점 :
처음 책을 살펴볼 때부터 느꼈지만, 표지 그림도 그렇고 살짝 동화와 청소년 소설의 중간 쯤에 있는 판타지 책처럼 느껴졌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른 책이 아닐까 싶다. 동화적인 요소도 분명히 있고, 거기에 주인공에 대한 외양 묘사를 보고 있자면 로맨스 소설 느낌이 물씬 난다. 로맨스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주인공 외양 묘사는 언제봐도 부끄럽고, 그러면서도 저절로 순정만화 속 주인공 같은 멋진 모습의 인물을 머리속으로 그려내는 과정이 생략되는 법이 없고, 또 약간은 언제나 비슷비슷한 방식이라 아쉬운 면이 있다. 칠흑같이 까만 눈동자나 청남빛의 머리칼 같은 표현들 때문인 것 같다. 로맨스 소설 적인 면모 외에도 드라마적 요소들도 있어 읽다보면 감성적으로 충족되는 느낌이 든다.
독특한 호흡의 글이었다. 설정이 아동용 판타지 소설에 잘 어울릴 법한데 성인 여성 독자를 겨냥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었다. 몇가지 짧은 에피소드들도 이야기가 나뉘어져 있는데 흐름이 더 전개될 것 같은 순간에 딱 끊기고, 끊기겠다 싶은 때는 더 깊게 들어간다. 과거와 현재도 뒤섞여 있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은 주인공인 '공' 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오래되고 무서운 존재로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이런 존재가 아닐까 하는 확신을 준다. 읽으면서 딱히 공의 외모만이 아니라 행동이나 분위기가 여자들에게 인기있는 남자는 이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깨비를 이토록 매혹적인 존재를 그렸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야할지, 아쉬움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큰 덩치에 냄새나고 장난을 좋아한다 정도로 알고 있는데, 세심하게 구전 설화 등을 어우러트려 환상을 구체화한 것은 좋지만 자칫 혼동의 여지도 있겠다.
책을 읽다보면 꽤 많은 부분이 드러나지 않은 채 이럴 것이다 추측하게 되는 부분이 보인다. 딱 잘라말하면 이 불분명함이 싫었다. 무엇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속시원히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하고 말하지 않는 점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떤 작품들은 그런 모호함이 못 견디게 좋아 나를 끌어들이는 원동력으로 삼지만 분명 여기서 '조금만 더' 라면 기대하는 만큼의, 어쩌면 그 이상으로 달달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딱 여기까지만' 하고 멈춰버린다. 절제의 미덕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독자를 꾀어내는 여지를 주는 일도 중요하다.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을 맺는 동화까지도 그래서 그 뒤엔 어떻게 됐대? 하고 궁금해하는 것이 독자들의 속성이니, 그 이상을 보여주어 현실의 길바닥 위에 소설을 패대기치라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잡을 꼬투리를 남겨 그 다음을 떠올릴 여지를 주는 일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꼬투리를 남기지 않고 잡을 데 없이 끝내버린 느낌이 들어 아쉽다. 모든 에피소드가 중간에 끊긴 느낌이 들어 이야기에 필요한 대부분의 요소들을 작가가 내어준 것 같은데 받은 것은 정작 좀 적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부분이 아쉬웠다.
오히려 시리즈 물로 나왔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공이라는 인물에 들인 매력과 속성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그것과 비슷하게 여겨지는데, 현재의 에피소드를 모아놓은 편 1권과, 과거의 일을 모아놓은 편 1권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만나 룸룸과 공, 아완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뒷 이야기를 모아놓은 편 1권 이렇게 따로 나왔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