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289
이수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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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를 고르면서 어딘지 모르게, 사실은 확실하게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 비디오를 보고 있는 고양이에 대한 사실적인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누구라도 그려지지 않을까, 고양이 비디오를 보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하지만, 이 시집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을 확실하게 그려낸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는, 시집은 그런 성질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그리고 저 고양이로 시작해서 고양이로 끝나는 시집의 제목이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지 먼저 떠올렸더라면 책장을 펼쳤을때 이런 당혹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 말랑말랑한 환상에 사로잡혔던 사람에게 주체와 타자와 언어를 넘어선 전위적인 시들이 밀려왔다고. 그것은 말랑하진 않아도 환상적이긴 했다.

 

시집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떠한지, 표제작인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의 전문을 옮겨온다. 이 제목에 매료되어 시집을 고르기도 했기 때문에 가장 기대를 했던 시기도 하고, 표제작은 다른 시보다 각별하게 느껴지는 그런 마음이 있는터라, 단 하나, 이 시만 골라서 옮긴다.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고양이 비디오를 틀어놓고

고양이가 하나 둘 셋

의자에 하나 둘 셋

바닥에 하나 둘 셋

창틀에 하나 둘 셋

 

고양이를 관람하는 고양이들

 

고양이를

관람하는 고양이를

관람하는 고양이들

 

거대한

고양이 인형들

 

모두들 고양이를 추모한다.

고양이 비디오를 틀어놓고

 

모두들 고양이 흉내를 낸다.

 

고양이를 끄고 싶은데

고양이 비디오를 끄고 잠들고 싶은데

비디오는 계속 돌아가고

 

고양이도 계속 돌아가고

 

고양이를 따라

고양이를 소비할 뿐

 

고양이 흉내를 내지는 않고

 

고양이 비디오 앞에

고양이가 하나 둘 셋

 

 

이 시에서 보는 것처럼, 고양이에 대한 경계가 어느 순간 사라진다.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들이, 어느새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를 보는 비디오 속의 고양이처럼 되어졌다가 또 고양이 흉내를 내는 고양이가 아닌 것으로, 또 다시 고양이를 소비하는 비디오가 돌아가는 것으로, 다시 고양이 비디오 앞에 선 고양이로 허물어져서 해쳐졌던 것이 원래의 것으로 돌아오며 끝을 맺는다. 대상이 무한하게 뻗어나가고, 세밀하게 나눠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려지는' 느낌의 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확장되고 압축되어 그리는 이수명의 시들이 읽기에 편하지 않았다. 그의 실험적인 언어들은 유희의 공간을 확장하고 언어들이 스스로의 밖으로 저항하고 해방하도록 도모했으나, 그 범위가 나보다 넓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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