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43
이윤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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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집은, -이라고 하지만 매일 읽는 것은 아니고 그저 오늘 읽었던 시집은- 이윤학 시인의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이다. 역시, 제목에 한번 잠깐 살핀 시집 안의 내용에 두번 짧은 심의를 거쳐 손 안에 들어온 책이다.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언어 사용의 감각적임은 어느 부분에서 어떤 부분까지 가능한 것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같은 표현을 살짝 바꿔놓은 작은 움직임에도 전혀 다른 것으로 되어버리는 말의- 혹은 글의, '아 다르고 어 다른' 사용법을 시집 안에서 단단히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는 표제작인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였다. 나는 뭐든지 주인공 격인 인물을 좋아하는 히로인 타입이었지. 그래서 늘 표제작이 마음에 드는 축에 드는건지, 아니면 역시 좋은 시여서 표제작이 되었던 것인지 잘 구분을 못하겠다. 어쩌면 누구나 듣고 아, 이 노래 괜찮네. 하고 생각하는 보편적 기호를 반영하는 노래가 있듯이, 내가 꼽는 시들이 다 그런 보편적 기호 아래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래는 시의 전문이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오른손 검지 손톱 밑 살점이 조금 뜯겼다.

 

손톱깎이가 살점을 물어뜯은 자리

분홍 피가 스며들었다.

 

처음엔 찔끔하고

조금 있으니 뜨끔거렸다.

 

한참 동안,

욱신거렸다.

 

누군가 뒤늦게 떠난 모양이었다.

 

벌써 떠난 줄 알았던 누군가

뜯긴 살점을 통해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아주 작은 위성 안테나가 생긴 모양이었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었다.

 

 

그 뒤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황혼의 아스팔트' 중 일부 [아는 사람들 해마다 줄어든다/ 아는 사람 없는 세상을 살지 모른다]는 부분이었다. 작년부터 올해 겨울까지 두번의 장례를 치렀다. 십년 전만해도 대문밖을 나가면 익숙한 어르신들 고개숙여 인사드리기 바빴는데, 해가 지나면서 시나브로 인사할 일이 없어졌다. 장례를 치르면서 이렇게 점점 다들 돌아가시는 구나 혼자 생각했었는데 시인의 시를 보면서 섬뜩한 익숙함을 느꼈다. 나이들어 홀로 남겨진 세상을 적막해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하는.

 

 

아직은 버찌가 연분홍일 때

 

 

조약돌을 더듬는 시냇물이 흘러갔지.

 

유채꽃밭은 목욕탕에서 방금 나온

젖은 머릿결 샴푸 냄새를 흘렸지.

 

내 마음 샴푸 냄새로 후끈 달았지.

 

더는 길이 나오지 않는 길을 걸었지.

 

피아노를 치는 너의

가느다란 손가락

솜털 끄트머리를

나는 바람으로 매만졌지.

 

 

이 시는 그냥, 느낌이 좋아서 꼽아놓았다. 곧 다가올 봄이 먼저 기다려지는 느낌.

 

 

시집을 읽으면서는 거의 꼭꼭 마음에 들었던 시들을 꼽아놓곤 하는데, 글쎄 어떤 시집은 몇 편이나 전문을 꼽기도 하지만 이윤학 시인의 시집에서는 다수의 편이 꼽히는 것은 아니었다. 근데 또 시집을 읽고 난 뒤에 느낌이 어땠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썩 마음에 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요상했다. 이거다! 하고 꼽히는 시는 많지 않았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시들이 많았겠지 하고 혼자 납득한다.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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