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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바람이 되어
송은일 지음 / 예담 / 2012년 9월
평점 :
책장을 펼치자 낯선 세계도 함께 펼쳐졌다.
이런 내용의 책일줄은 예상 못했다. 다소 감성적인 제목을 보면서 어떤 내용일까, 계절의 쌀쌀함을 덜어줄만한 내용의 책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한층 더 쌀쌀함을 더하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존재를 공공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의 분위기가 조성된 세상. 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데, 너무나 다른 이질적인 느낌의 세상이 소설 속에 구현되어 있었다.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전생에서 하나였던 영혼이 둘로 나뉘어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전생의 어떤 부분을 공유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게 되면 회귀를 체험한다는 것, 그런 묘한 키워드를 이용하여 도플갱어- 그것도 영혼의, 도플갱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유난히도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한 사람의 생에 그보다 더 많은 흔적이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풀어내고 담아낼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뜻하나보다. 자신의 전생을 글로 써낸 작가 유아리와 그림, 조형물로 빚어낸 로즈 이가 밀러 두 매력 넘치는 인물들은 과거 하나의 전생이 둘로 나뉘어 태어난 존재들이었다. 환인, 그것도 이분화환인인 그녀들이 서로 만나게 된다면 도플갱어처럼 서로 어떤 뚜렷한 이유없이 다른 존재를 없애고자하는 욕구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과 관련된 의문의 죽음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환인들을 예의주시하는 사람들이 사건의 진상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한다.
독자가 호기심을 가질 수 있을만한 환상적이고 흥미로운 소재들을 소설 곳곳에 잘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유아리가 큰일을 겪게되는 부분에서는 철지난 추리소설의 일부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유아리와 로즈 이가 밀러 두 여자의 모습을 교차하여 보여주면서 데체 누가 그늘에 있는 이분화환인 중 한명일까 독자들이 긴장하며 주목하도록 만든다. 아름답고 매력있지만 알수없는, 그리고 때때로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두 여자가 수수께끼의 용의자 X로 느껴지는 때가 많았다. 독자가 느낄 의문이 풀려간다고 느낄 때 쯤 로즈 이가 밀러의 조형 전시회에 찾아간 유아리와 로즈 이가 밀러의 만남, 끝까지 독자의 신경을 자극하는 결말은 한템포 더 소설 앞으로 다가가고 싶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분량이 많은데도 꽤 흥미롭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문장이 아름답다거나, 큰 감흥이 남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적절한 긴장감과 재미, 독특한 이야기의 구성을 즐길 수 있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