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공중전화 문학과지성 시인선 201
채호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6월
평점 :
품절


밤의 공중전화"를 알고 있는가? 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채호기의 시집을 손에 넣어 펼쳐보게 되는 것은. 지나가버린 세기말의 추억 1997년의 응답을 기다리는 시대가 된 2010년대 초반인 지금, 공중전화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한참 열병을 앓던 십대 시절에만 해도 공중전화는 꽤 빈번하게 이용되었다. 그 전에는 말할 것도 없이, 집을 떠나 어디라도 갈라치면 집에 도착을 알리는 전화를 하기 위해 늘어선 공중전화박스 앞에 늘어선 아이들의 행렬이 있었고, 역 앞 광장에 놓인 공중전화앞에는 늘 고달픈 군복차림의 군인들이 구부정한 자세로 서있었다. 그리고 차마 다 할 수 없던 이야기를 온 밤새 끊어져가는 삐-삐- 수신음을 황급히 이어가며 토해내었던 밤의 공중전화가 내게도 있었다.

 

오로지 그 제목만으로 이 시집을 펼쳐들었으나, 기실 이 시집 속의 내용은 내것과 같은 움을 틔우진 않는다. 마치 그래서얀 시집이 아니지. 하는 듯이 날것의 느낌을 담아낸 육체적이면서도 해체된 감각적인 느낌을 동시에 주는 - 단순한 사실적 상황을 시적 언어로 표현하는데서 그치는 조악한 것이 아니라 - 시였다. 그래서 낯설고 너무나 생생하여 한켠으로 저어되는 그런 시어들과 마주하게 된 나머지 생각 의외의 것을 두고 이 것을 어찌해야 하나 하는 막막함이 느껴지는 시집이었다. 말미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어떤 느낌이 되어 가슴을 쳐왔지만, 글쎄 이 농염하면서 감각적인 시집을 다 끌어안을지는 미지수이다.

 

"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中

 

 

끔찍하다.

내 살 속에 사람이 들어있다. "

 

이 강렬한 표현으로부터 시작하여 너의 발, 등, 젖가슴, 품, 손, 꽃, 입, 입술, 허리, 바다에 이르기까지 시들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들을 일깨우며 다가온다. 다음은 밤의 공중전화와 함께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의 전문이다.

 

" 너의 발

 

난초의 발은 화분 안에 감추어져 있다. (모든 식물의 발은 흙 속에? 혹은 물 속에?) 발은 뿌리일까? 너의 발은 구두 속에...... 너는 구두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구두의 맨살이 너의 발에 입맞추고, 핥고, 쓰다듬고, 주무르고, 누르고, 찌르고, 비비고, 달라붙는다. 흥분한 너의 발에서 어느덧 체액이 흘러나오고 구두는 자신의 신체 깊숙이 그것을 빨아들이며 너의 것이 되어간다. (네 몸의 일부가 그의 것이 되어간다.)

 

구두는 들판을 뛰어다니며 꼬부라진 발톱과 뾰족한 송곳니의 야수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던, 짐승의 내장과 근육을 담고 있던 피부였다. 구두는 이빨과 근육에 늘 쫓기면서도, 잎과 물을 뜯어먹고 둥치를 방패 삼으며 꽃을 짓밟고 그것들에 늘 군림하던 짐승의, 민감한 귀와 예미민한 코를 이루고 있던, 껍질이었다.

이제 구두는 네 발의 것이다. 네 발은 구두에 감금되었다. 구두는 짐승의 본래 기억을 되살며 네 발을 강간한다, 두려움 없이 펼쳐진 하늘 아래서. 나는 구름 뒤에 내 눈을 숨긴다. 나는 들판 구렁에 내 눈을 숨긴다. 흘러가는 바람,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끼우고.

 

구두를 떼어내고 너의 발가벗은 발을 따뜻한 손으로 감싸 뺨에 댄다. 너의 발에 입술을 대고 너의 발을 입 안에 담는다. 놀란 너의 눈이 잘 맞지 않는, 불편한 새 구두를 쳐다본다. 동시에 화분처럼 너의 뿌리를 감싸며 꽃핀 너의 눈을 본다. 햇빛이 연방 플래시를 터뜨리며 그 순간을 채집한다. 시간이 점점 속도를 줄이고 끝의 입구가 아련히 꽃과 구두에 반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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