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착란 - 어느 젊은 시인의 내면 투쟁기
박진성 지음 / 열림원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시집을 잘 읽지 아니하는 철부지의 나는 박진성을 몰랐다. 그런데, 바로 이 산문집 '청춘착란'을 접하고 나니 왜 박진성을 몰랐을까 생각하게 된다.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으니 몰랐을것이고 그건 내 부족함이 팔할이 넘는데도 어딘가에 책임을 씌워 불평하고 싶어진다. 아무 기대없이 받은 꾸러미 안에 생각지도 못했던 귀한 것이 들어있었던 것만 같은, 의외의 발견이자 만남이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좋은글,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쓰는 작가를 만나, 그 사람의 책을 읽는 시간은 설레면서도 달콤하다. 책장을 넘기면서 지나온 장과, 남은 장을 헤아리며 아쉬워할 수 있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작가라도 개개독자와의 상성이 맞아야 한다. 시인 박진성과 운명의 만남을 했다.

 

책을 처음 접하면서 저자가 '공황장애'로 인해 고생을 했다는 부연설명을 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공황장애에 대해 그저 연예인병이란 수식어나 떠올릴 줄 아는 가볍디 가벼운 나에게 걸림돌로 작용될 줄은 몰랐었다. 그것이 이 책과 완전한 별개의 것으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책을 오직 그것만의 틀로 가둬놓고 바라보았던 것이다. 무지로 인한 오해였다. 시인의 삶에서 분명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지만 그것이 시인의 삶 모두를 말하는 전부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이 공황장애에 대한 내용으로 팔할 정도는 나와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책의 초반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도 있고, 처음 공황장애를 겪게 된 날의 기록도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점점 책장을 넘길 수록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것, 짧고 길게, 순서도, 흐름도 없이 그저 적어내려간 사유와 생활의 흔적들이 어떤 사소한 것들을 전부 뛰어넘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이 책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표현으로 글을 쓰는지 음미해보길 바란다. 시인이 담아내는 삶의 조각들은 편편이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한 색조를 띄며, 마치 이채로우면서도 조화로운 패치워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당신이 굳이 어디 아파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 않더라도 누군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슈퍼마켓에서 오렌지 주스나 홍삼 같은 것을 들고 찾아갔던 병원 복도. 그곳에 컴퓨터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곳에서 글을 쓴다. 그대들이 지나는 복도에서 알코올 가득 묻은 바람이 불었을 것이고 어딘가로 급하게 전화를 하는 목소리, 어딘가에서 급하게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

 

개인적인 이유로 책을 읽다가 불현듯, 한동안 이 책에서 손을 놓게 한 부분이었다. 이 문단을 읽으면서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와 한참을 내 생각만으로 보내야했다. 주스를 들고 찾은 병원, 병원 복도에 있던 카드식 공용 컴퓨터, 복잡한 복도 안에서 전화 통화를 하던 사람들,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닌데 어딘지 늘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운 것처럼 느껴지던 복도의 분위기 등 하나하나 떠오르는 것도, 생생한 것도, 비수처럼 가슴에 박힌 것도 참 많았던 부분이다. 단순히 병원의 일부를 떼어다 옮겨적었을 뿐인데, 사실 매우 일상적인 표현인데도 개인적으로는 할말도 많고 생각도 많고 여러가지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부분이었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부분에 이르러서 어떤 개인적인 이유로 나처럼 손을 놓고 자기 안에 담긴 생각을 감내하느라 한동안 서성일 사람들이 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오늘을 이렇게 적을 수 있겠다.

"없다."

어떤 날은 정말로 아무 것도 없다. ""

 

이 부분은 책 속의 한 단락을 그대로 옮겨와 적은 것인데, 공감이 많이 되는 부분이라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 짧은 하루의 기록을 남기면서 가볍게 '일상에 깨알같이 이러저러한 일이 생기는데 잘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안하고 지나가는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은 없어! 가 아니라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날도 있다!'고 적었었는데 바로 그 내용이 시인의 잘 정제된 표현으로 책 속에 담겨있었다.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이 반가웠다. 그리고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이 바로 이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만한 표현으로 옮겨놓았다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하루를 채우지 못하고 흘려보내 버리고 있다. 그 하루가 모여서 벌써 1년을 채워가고, 내 삶의 대부분이 흘러갔다. 저 이야기를 쓰면서 일상 자체를 무료하고 권태롭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 날을 채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차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저렇게 표현했던 것인데, 시인은 어떤 마음으로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날에 대해 이야기 했을까 궁금해진다.

 

이 외에도 시인이 다양한 시들을 적고 그 시들과 관련된 글을 써놓은 부분도 있고, 폐경기의 어머니를 떠올리고 쓴 글 등 여러 부분이 하나하나 다 흥미롭게 다가왔다. 아마 곧 그의 시집을 찾아서 시를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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