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의 질주 - 신은 내게서 두 다리를 앗아갔지만 나는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지아니 메를로 지음, 정미현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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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주인공인 젊은 청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 작년,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 대회의 뉴스에서 였을 것이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무심히 지나쳤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이 어려운 이름의 청년은 화제와 논란의 대상으로 브라운관에 나왔었다. 이 책의 표지에서처럼, 두 다리에 보철 다리를 끼운 채 달리는 육상선수의 모습으로 첫 대면을 했다. 그의 존재가 신기했을 뿐, 그닥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마 난, 그가 끼운 보철 다리가 과연 그에게 얼마나 더 다른 선수들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도움이 될 것인지, 그래서 선수간 경쟁이 공평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애초에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라는 이 청년과 다른 선수들 간에 공평한 대결이 가능한 것인지, 이런 생각들을 조금 했을 것이다. 냉랭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지만, 그랬다. 지금,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이야 그가 질주를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리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감동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해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이 청년을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은 이 책의 출간을 알게 되면서이다. 그때 기시감이 들었다. 어? 잘 모르는 인물이 분명한데 왠지 익숙한 모습이다.'하고 생각했다. 혹시 내가 착각하고 있나, 찬찬히 생각해보니 일년 전 그가 달리는 모습을 언뜻 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팔다리가 없는 레슬링 선수 더스틴 카터의 영상을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더스틴 카터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를 둘러싼 세상에 가득한 사랑과 이해, 배려를 지켜보며, 또 더스틴이 이뤄낸 극복과 승리의 장면을 보며 감동했던 기억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래서 이 청년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면, 아마 팔다리없는 레슬러 더스틴에게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됐다.

 

 "처음에는 내가 어머니의 죽음을 아주 잘 견뎌 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를 보내면서 우리 가족 중 울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슬픔에 빠진 형과 에이미를 위로하던 사람도 나였다. 장례식 후 난 바로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다. 걱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얘기는 했지만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게 한 가지 있었다. 지금까지 구축된 세계와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가 너무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는 점이 그것이다. ...중략... 그 시기에는 운동이 나의 구세주였다. 운동 덕분에 난 그 힘든 시간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생전에 누구보다 강한 분이었던 어머니는 내게 세상의 중심 같은 존재였다. 그런 어머니를 잃고 크나큰 상실감의 늪에 빠진 나를 구해 낸 것이 바로 스포츠였다."

 

 공감되는 부분이라 꼽아보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상실의 경험을 기록해놓은 것이 요즈음에는 많이 눈길을 끈다. 누구에게나 상실의 순간은 온다. 이 청년이 자신이 어떤 삶을 걸어왔는지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인상깊게 보았지만, 어머니를 잃고 괴로워했던 시간을 털어놓은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개인의 경험을 그 안에 투영하고, 자신을 치유하는 바탕으로 끌어모아 이해하고 해석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오스카 역시 상실의 괴로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괴로워했던 시기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 괴로움 속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붙잡은 것이 스포츠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인간적인 약함, 어려움을 보면서 이 책의 주인공에 대해 감정적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그가 이뤄낸 것들이 너무나 크게 느껴져서 나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다가도, 그의 겉모습이 나와는 다른 것 같아서 멀게 느껴지다가도,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경험으로 고통받고, 이겨내려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번 청문회는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 뿐 아니라 반드시 이겨 내야 할 일생일대의 싸움이기도 했다. 시작은 개인적 좌절에서 비롯된 고군분투였는데, 어느새 차별에 저항하는 상징적인 싸움으로 발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그리고 미래에 나와 같은 상황에서 운동을 하든 다른 무언가를 하면서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기 위해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형평성의 논란이라고 해얄까, 그가 사용하는 보철 다리가 그를 달리기 더 쉽게 만들어준다는, 연구로 출전을 하지 못하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고 그는 직접 테스트를 거쳐 그가 동등한 입장에서 겨루고 있음을 입증해보였다. 이 부분을 읽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더 유리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던 면이 없지 않아서 주의깊게 읽어보았다. 다소 전문적인 분석에 대해 나오기도 하지만 어떤 것이 문제가 되고 그로 인해 어떤 이야기가 나왔으며 또 어떤 입장으로 반론했는지 흐름을 놓치지 않고 알 수 있도록 설명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질주를 인정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어린시절부터 지치고,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오스카,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좌절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넘치는 호기심과 의욕으로 대신하였던 그의 삶을 접하며 인생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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