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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의 청년이 스무 살 청년에게 - 당신의 꿈을 일깨우는 가슴 뛰는 이야기
김희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제목 참 인상적이다. 여든이라는 나이와 함께 따라오는 청년이라는 말이, 약간은 어색하면서도 어쩐지 순응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조화를 이룬다. 스스로를 여든의 청년이라고 칭하는 건양대의 총장이자, 김안과병원 이사장인 김희수. 그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스스로를 아직 청년이라 부르고, 또 스무 살의 청년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었을지 생각해본다. 보통의 흔한 자기계발서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자서전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서전같은데 그러기에는 누군가를 향해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만 같고, 그냥 자기계발서라고 보기에는 작가의 삶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이 많다. 사실 저자에 대해서는 잘 아는 편이 아니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책 제목을 보고 누굴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표지를 보고 조금 궁금해지고, 저자에 대한 약간의 소개가 담긴 글을 보고 조금 더 궁금해지고,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더욱 궁금해졌다. 커진 궁금증은 책을 덮어서야 해결이 됐다.
"나는 먼저 권위의 상징인 양복과 구두를 벗었다. 대신 점퍼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장갑을 꼈다. 챙 넓은 모자도 썼다. 그리고 집게를 들고 캠퍼스를 돌았다. 당시만 해도 학교에는 담배꽁초와 각종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이것들을 줍기 시작했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웬 노인이 새벽부터 학교에 나와 쓰레기를 줍고 다닌다는 이야기였다. 그 사람이 바로 학교 총장이라는 소문은 지역 언론에까지 확산됐다."
저자를 가장 강렬하게 표현하는 부분이었다. 청결함을 강조하려는 생각도 담겨있었겠지만, 저자가 뒤이어 강조하는 청결함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다른 것을 더 많이 얻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그가 권위를 내려놓고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실천하는 지성'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자신이 쌓아올린 것이 많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손에 든 것을 내려놓기 어려워진다. 저자도 비켜갈 수 없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의식하지 못하는 마음이 밑바닥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권위를 내려놓기로 한다. 남에게 시키거나 모르는 척 외면하지 않고 자신부터 실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혹자는 보여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돈이나 물질적인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함으로써 보여준다는 점이 특별한 것이다.
"물이 가득 차 있는 컵을 떠올려보라. 여기에 물을 부으면 어떻게 되는가. 물이 쏟아져 바닥으로 흘러내릴 것이다. 더 이상 물을 담을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 컵을 기울여 물을 쏟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버린 만큼 새 물을 담을 수 있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뭔가를 더 담을 수 없다.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받아들이게 된다. 버리기 위해서는 낮아져야 한다. 꼿꼿이 서 있는 컵은 가득 담긴 물을 버릴 수 없다. 비스듬히 기울여 낮아져야만 물을 쏟아내고 거기에 신선한 물을 담을 수 있다."
이 부분은 다소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런 비슷한 취지의 말을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놓었던 아이가 떠올랐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그 아이가 떠올랐고, 그 아이가 어떤 의도로 그 말을 적어놓았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아이가 써놓은 말을 읽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 책에서 그 문구를 다시 만나게 되니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렇게 나의 일상을 재발견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한 것 같다. 그때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또 그 일들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책을 통해 환기하고, 떠올리고, 정리하게 된다. 아마 저자와 그 아이는 같은 생각을 하며 이 문구를 적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컵을 비우듯이 자신을 비우자고. 그래야 또 다른 무언가를 담을 공간이 생기게 된다고. 나는 늘 채워진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만큼은 비워진 사람이 되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나는 새로운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젊음과의 융합이다. 80년을 넘게 살아온 나의 노련함과 10대와 20대의 무모한 도전과 추진력을 서로 섞어 넣으려는 것이다. 내가 학생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늘 비슷한 얘기를 들었는데, 나이 들수록 젊음과의 소통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는 것 같다. 아마 어렸을 때는 오래됨과의 소통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을 것이리라. 그땐 그게 왜 중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고 지나가는 때였겠지만. 젊고 나이듦 사이의 소통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세대간의 소통이라고 얘기를 하는 게 더 간단하겠다. 그게 필요하다는 것.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니까. 서로 다름을 극복하자는 취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단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세대 간의 소통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고보니 누군가 스무 살의 청년이 여든의 청년을 향한 답가를 보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다. 스무살에게 수신된 여든의 노련함을 젊음의 무모함과 추진력으로 답하는 재미있는 융합이 있었으면, 하고.